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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발해 뗏목 탐사대 방의천 대장님의 인터뷰-중국역사가 한국역사에 편입되어야...

ddd 2004.09.30 19:09:57
조회 494 추천 0 댓글 9

(펌)발해 뗏목 탐사대 방의천 대장님의 인터뷰-중국역사가 한국역사에 편입되어야... 출처 http://www.uoogi.com/cgi-bin/ez2000/ezboard.cgi?db=05storage&action=read&dbf=7&page=0&depth=1 이름 : 관리자 제목 : 발해 뗏목 탐사대 방의천 대장님의 인터뷰 내용 - 중국역사가 한국역사에 편입되어야... 발해 뗏목 탐사대의 대장인 방의천 대장님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조금 길긴 하지만 사명을 갖고 끝까지 읽어주세요. ^^; 왜 발해 역사를 되찾아야하는 지에 대해 설명하시는 방대장님의 해박한 역사지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일반인들의 역사관의 오류,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국사의 현실과 그 뿌리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 ....중략...... 임 : 지금 국내의 화두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한 의도적 고구려사 왜곡이다. 그런데 사실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위 의도적인 왜곡에 대한 기초 근거는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이 제공했다는 논리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즉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한 역사해석이 우리역사의 주류를 이뤄왔으므로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통일론이 나왔고 이 삼국통일론으로 하면 당시 신라의 북방경계선인 한주 이북의 역사 자체에 대한 의도적 회피가 이뤄졌으므로 중국에게 역사왜곡의 빌미를 준 것이라는 논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방 : 난 전문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알고있는 부분만 답하겠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역사는 다시 생각해 봐야할 부분이다.사실 나당 연합군과 백제와의 전투는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하여 삼국을 통합하기 전에 백제를 공격하기 위한 연합이었다. 그 때 당시 신라나 당나라로서 고구려는 엄두도 내지 못할 상대였기 때문이다.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고 있는 중 고구려는 내부의 분란때문에 망하게 된다. 이는 기록으로도 확연하다. 즉, 고구려와 나당연합군이 치열하게 싸운 기록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국지적 전투는 있었지만 국가의 흥망을 걸고 싸운 기록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고구려는 서기 668년에 왕조가 망하게 되는데 당시 고구려의 지배층 계급 약 20만 명(혹은 50만명)이 중국의 영주로 강제 이주 당하고 이 지배층의 일원에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과 대조영 아버지(걸걸중상)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당나라에서 인질로 30년을 살다가 탈출하여 동모산(지금의 간도땅)서 진국이라는 나라를 건국하게 되는데 이 때가 서기 698년이다. 그리고 원산을 기점으로 신라와 국경을 이루게 되었다. 결국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이나 그 기층민중은 당연히 고구려족이었으므로 사실상 신라는 한주 이남지역을 통할한 국가였고 그 이북 지방은 발해의 영토가 되었으므로 우리의 역사에서 삼국통일은 없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상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그 당시 상황을 남북조시대라 주장하기 시작한다. 즉 지금까지 사기의 경전으로 떠 받들던 김부식의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해석된 신라의 삼국통일은 역사적으로도 허울 뿐이고 실질적으로 발해국이 창설되기 전에도신라의 통치권력의 힘은 원산 이북으로 미치질 못했다.는 것인데....사실 발해의 영토가 된 옛 고구려 땅은 사실상 신라의 영향권이 없었던 영토였다는 것이다. 대조영은 이 땅을 기반으로 발해를 건국했으니 발해는 당연히 고구려의 뒤를 이은 우리 역사이다. 그리고 기록으로 보면 발해의 전성기는 고조선 이후부터 가장 영토가 넓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는 우리 역사에서 우리의 영토가 가장 넓었던 시기를 고구려 장수왕 시기라고 배워왔지만 이도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발해의 영토는 고구려보다 1.8배나 컸었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건데 사실상 발해의 전성기가 우리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시기라고 나는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발해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분단된 뒤 이북지방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폄하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신라에서 찾았기 때문이며 이와 반대로 북한은 또 고구려와 발해 민족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국가라 주장해 왔으므로 민족적 정통성 대립에서 북한에 우위에 서려면 당연히 신라의 백제통합을 삼국통일로 이어야만 했었다는 가설을 성립시켜야먄 했던 것이다. 물론 어떤 이유로든 당시에 고구려도 망했으므로 이를 신라의 삼국통일로 무리하게 연결지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 때문에 발해사 연구가 원할하지 못했음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실 대한민국의 건국 후 발해사를 정통으로 연구한 학자가 귀했을 뿐 아니라 발해사를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현재 7명 뿐인데 한규철 박사(부산 경성대 교수)가 발해사 1호 박사이며 한 박사가 박사학위를 받은 시점이 1993년도이니 발해사 연구나 우리의 상 고대사 연구에서 우리는 정말 할 말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임 : 당신의 생각에 나도 거의 상당부분 동의한다. 사실 발해 이 후 우리가 오랑케라고 했던 여진족이나 거란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선 여진족(麗眞族)의 여진(麗眞)은 참 고구려족이라는 뜻이며 거란족의 거란은 궐(闕)안 사람들을 순 우리말로 거란족이라 했으며 이 궐(闕)안은 고구려의 대궐안, 즉 고구려 지배층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므로 여진족이나 거란족은 사실상 우리 고구려의 후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살펴본적이 있는가? 방 : 중국이 고구려사를 침탈한, 아니 침략한 이유는 (침략전쟁이며 도발이다.) 명백하다. 중국은 이미 30년 전에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이미 30년 전부터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국주의의 침략정책은 사실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이는 종교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하고 아주 작은 생활상으로 침략하기도 한다. 방파제에 물이 스며 들듯이 알듯 모를듯 천천히 시작되는 것이다. 홍수가 나서 방파제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면 모든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고 대비하지만 아주 작은 구멍으로 스며들고 있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듯이 그렇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침략도 그와 똑 같다. 발해보다는 고구려가 역사적으로 더 의미가 있고 역사상 오래된 나라이기 때문에 일부러 더 파괴력이 작은 발해사 부터 왜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발해역사의 침탈이 성공하면 당연히 고구려사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30년 전에 발해를 중국의 속국이라고 했으나 우리 측의 극렬한 반응이 없자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성공하면 고려와 조선역사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본다. 임 : 위에서 내가 지적했지만 지금도 엄연히 고구려와 발해의 후예들인 거란족을 감히 북쪽의 오랑캐로 취급하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공영방송인 KBS 의 대하드라마인 무인시대는 고려의 무신정권을 다루고 있는데, 거란족의 침입을 보고받은 이 무신정권의 철권통치자인 문하시중 최충헌으로 분한 김갑수가 "감히 북쪽의 오랑케가 고려를 침략해?"라는 대사를 하는 것이다. 발해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써 이에 대한 생각은? 방 : 분통이 터질 일이다. 그리고 능지처참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어찌 우리의 조상을 스스로 모독하는 말을 우리가 하는가 말이다. 우선 오랑캐라는 개념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오랑캐의 개념은 중국에서 나온 이야기인데...중국의 한족들이 동이족을 일컬어서 했던 말이다. 즉 한족(漢族)이 고구려의 후예들인 기마민족을 대상으로 칭했던 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우리민족을 비하하는 말로 통칭했던 오랑캐라는 말을 우리가 썻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모독하는 사대주의 정신이다. 반대로 우리가 오랑캐라고 불러야 할 대상이 있다면 지금 중국의 한족에게 오랑캐라고 해야 맞다.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기마족을 오랑캐라고 하는 것은 중국 사대주의사관에서 나온 소산이라고 볼수 있다는 것이다. 거란족은 명백히 우리의 형제인데.....형제에게 오랑캐라고 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되었다는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고려를 신라의 정통성을 이어간 국가라고 보는 것도 상당한 무리가 있다. 고려는 고려를 창건한 궁예 스스로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했고 이는 고구려와 발해의 모태를 가지고 시작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고려왕조의 기틀을 마련하고 북방으로 국토를 넓힌 광종의 북방회복에 대한 신념도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고려왕조가 안착하고 신라출신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고려사가 신라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니 이 또한 한탄할 일이다. 임 : 당신의 그 광범위한 역사지식에 찬사를 보낸다. 나도 당신처럼 정말 한탄할 뿐이다. 계속 가자. 사실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하게된 근본적인 이유는 양국 공히 상당한 필요가 있었다. 신라는 신라대로 백제가 차지한 그 광할한 평야지대가 욕심났고 당나라는 지금의 중국 서해안 밸트에 자리잡은 백제족들의 땅을 점령해야 했었다. 그러므로 백제를 쳐부시고 영토를 나눠가질때 중국에 자리잡은 백제족의 땅(실질적으로 백제 땅)은 당나라가 가져가고 한반도의 백제 땅은 신라가 차지한다는 약속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에 대한 약속도 있었는가? 방 : 아니다. 사실 고구려는 당시의 당이나 신라가 터치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이들의 목적은 오직 백제에 있었다. 당신의 지적대로 한반도에 있는 백제땅은 신라가, 중국 동북연안을 따라 백제인들이 사는 땅들은 당나라가 소유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의 동북연안(산동지방)에는 백제인들이 이주해서 살고 있었고 백제는 강대한 해양국가였으므로 백제의 실질적 통치권이 그곳에까지 미쳤었다. 그래서 백제가 망해야만 그 동북연안을 당나라가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고구려는 나당이 연합하는 과정에서 제외된 부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약속을 할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할 필요도 없었다. 임 : 그렇다면 고구려가 망한 뒤 그 고구려 땅과 고구려족은 어떻게 변하는가? 방 : 고구려는 사실 신라나 당나라와의 전쟁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연개소문의 자녀들끼리 권력 쟁투를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어쨌든 고구려도 백제가 망한 시점에 같이 망하나 당나라나 신라의 정권이 이 고구려 땅을 실질적으로 통치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영토에는는 부족장 통치 형태로 살아가다가 고구려 왕족과 귀족들 20만명이 당나라로 끌려간 뒤 탈출하여 돌아온 대조영 부자에 의하여 진국이 창건되는 것이다. 이 진국이 발해로 국호를 바꾸어 228년간 존속했고 그 뒤 거란족이었던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멸하고 요나라를 세운다. 하지만 발해의 후손 들은 바로 금나라를 세운다. 금나라는 바로 발해이다. 이 금이 나중에 후금이 되고 청이된다. 사실상 중국 전역을 통일한 청나라는 우리 배달민족의 나라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은 우리 땅이며 우리가 지배한 나라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금나라의 국호인 금(金)은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아버지였으며 동부여의 왕이었던 금와(金蛙)왕의 후예를 자처하여 금나라로 했다는 것이다. 이 금와왕이야말로 단군의 후예이며 주몽과 온조의 아버지로서 우리민족의 실질적 뿌리인데...주몽의 기예를 질투하던 금와왕은 주몽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며 자신의 부인과 해모수가 간통하여 생긴 아들이므로 언젠가는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핍박했고 이러한 아버지의 핍박을 피한 주몽이 20년 후 동부여를 침공하여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창건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중시해야할 것은 고구려족과 부여족의 차이이다. 고구려의 창건시조인 주몽은 아버지의 나라인 부여를 이기기 위하여 기마부대를 조련하였고 금와왕의 부여국은 경보병부대의 원조인 말갈족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갈, 여진, 거란족 모두가 다 우리 민족의 선조들이었고 지금 중국의 선조들인 한족들은 이들을 단 한 번도 확실하게 이겨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를 보면 황하 이남은 한족이 지배하였으나 황하 이북지역을 완전히 지배한 기록이 없다. 사실상 중국 전역을 통일한 나라는 몽골족이 통치한 원나라와 여진족이 통치한 청나라 뿐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지적한대로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일한 청나라가 발해의 후예들이었으므로 우리 민족의 선조들이 중국도 통일하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더 연구하여 중국의 역사침략에 대응해야 한다. 이는 역으로 우리가 중국역사를 지배했다고 말하고 중국이 그것을 부인하는 역사연구가 진행되어야 함에도 그 반대로 지금 중국이 우리의 엄연한 역사인 고구려사를 중국역사에 편입하려는 후안무치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임 : 상당히 근거있는 주장이다. 그 주장이 학설로 용인되기 위해서는 더 근본적으로 그것을 뒷받침해야할 역사적 사실을 고증으로 내놓아야 한다. 이에 대한 복안은 있는가? 방 :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확실하다. 자 한 번 가정해 보자. 고구려가 망할때 약 280~300만 인구가 있었다고 한다. 이중 50만이 이주했다고 하는데....20만이라는 설도 있고....50만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230~250만이 그냥 그 지역에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다시 30년 만에 대조영에 의하여 발해가 세워졌는데....어떤 기록(당나라 서기)을 보면 당시 발해의 지배층은 대조영(고구려인)이고 피지배층은 말갈족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끌려가고 남은 230~250만의 고구려 사람들은 다 어디갔는가? 납득 할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이러한 것들을 한국사를 쓰는 역사가들이 이어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당나라 서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우리 학자들이 그대로 믿는 것 자체가 문제이며 지금이라도 중국한테 따져야 할 부분이다 도데체 230~250만에 달하던 고구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이냐? 이것을 입증해 봐라. 이렇게 따진다면 그들은 무슨 대답을 하겠는가? 임 : 내가 오늘 당신과 인터뷰를 하고자 하는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중 고대사를 보면 삼국시대와 발해의 역사까지는 그래도 그런대로 기록도 있고 연구도 활발하다. 그런데 역사의 기술에서 고구려-발해-요-금-청으로 이어지는 고구려족, 즉 거란 여진족의 역사가 고려 이 후에 아주 당연스럽게 사라진다. 내 생각은 위에서 지적한대로 여진족과 거란족이 고구려족의 후예라고 볼 때 이 민족은 고구려 족이며 당연히 우리의 선조이다. 그리고 만주도 당연히 우리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고구려사를 회복해야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교과서에서부터 역사기록까지 아주 당연스럽게 요, 금, 청의 역사는 중국역사로 가르치고 연구하며 고구려 발해까지만 우리나라 역사라고 인정하기 때문에 중국에게 역사왜곡의 빌미를 준 것이라는 생각이다. 당신은 어떤가? 방 : 그것이 바로 식민사관 때문이다. 임 : 그렇다면 발해 이후의 북방민족 역사가 우리의 역사 기술에서 사라진 시점이 언제라고 보는가? 방 : 삼국사기때부터라고 본다. 임 : 그렇다면 삼국사기의 역사를 전면 부인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방 : 일고의 가치가 없이 버려야 할 역사책이다. 임 : 고구려사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 역사학자들이나 우리 정부가 정말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방 : 할말이 없다. 당장 국면한 고구려사 조차도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요나라 금나라 청나라까지를 어찌 챙기겠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했지만 사실 청나라는 우리의 역사다. 청나라의 민족은 고구려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회복하지 못하고서는 고구려사 왜곡문제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것은 중국을 지배했던 우리민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들은 그 두려움의 뿌리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민족의 기상과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발해를 돌려가지는 것이다. 그 출발이 발해에서 시작되는 뗏목을 띄우려는 것이다. 이하 생략... Posted at 2004-09-15 Wed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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