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이후 반세기 넘게 드라마와 연극 무대를 오가며 한국 연기계의 한 축을 지탱해온 그는, 지난 4일 오후 2시 향년 79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해 8월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이어왔으나, 병세가 점차 악화됐다. 올해 8월 응급실에 입원한 뒤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가족 곁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으로,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러졌다.
박상조는 데뷔 이래 대중의 눈앞에 늘 묵직하게 존재했던 배우였다. 화려한 주연보다는 언제나 극의 중심을 잡는 조연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연기력으로 평가받았다. 생전 그는 인터뷰에서 "배우는 대사보다 존재감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박상조 온라인커뮤니티
1969년 MBC 공채 1기 탤런트로 데뷔한 박상조는 한국 드라마의 성장과 함께한 인물이었다. 1970년대 국민 드라마로 꼽히는 '수사반장'(1971~1989)을 비롯해, 농촌극 '전원일기'(1980~2002), 사회적 명작 '모래시계'(1995) 등 수많은 작품에서 선 굵은 연기를 남겼다.
사극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배우였다. '용의 눈물'(1996), '태조 왕건'(2000~2002), '태종 이방원'(2021~2022)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왕과 장수, 그리고 민초의 삶을 연기했다. MBC 탤런트실 회장을 맡았던 1988년에는 후배 배우들의 처우 개선에 힘써 업계 내에서도 존경받았다.
그의 연기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았다. 1980년대엔 정의로운 형사, 1990년대엔 엄격한 아버지, 그리고 최근엔 깊은 연륜을 담은 노년의 인물로 변신하며 자신만의 색을 이어갔다.
연예계 관계자들은 "박상조는 진정한 배우였다. 늘 현장을 사랑했고, 마지막까지 연기를 놓지 않으려 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생전 "연기는 사람 냄새가 나야 오래 간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긴 세월의 무게와 진심은 많은 후배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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