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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희의 기후 에너지 인사이트] 8. 46억 년 균형, 200년 만에 무너지다

IT동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6.04.13 17: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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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지구라는 항온 동물


사람의 체온은 36.5도 안팎을 유지한다. 너무 올라가면 땀을 흘려 식히고, 너무 내려가면 몸을 떨어 열을 만든다. 지구도 이와 비슷한 체온 조절 장치를 가지고 있다. 다만 체온계의 눈금이 '도(℃)'가 아니라 '탄소(C)'로 매겨져 있고, 한 번 조절하는 데 수만 년에서 수억 년이 걸린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46억 년 동안 지구는 이 느린 체온 조절 장치 덕분에 얼음 행성도, 불의 행성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인류가 이 장치의 속도를 무시한 채 체온을 강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출처=AI로 생성한 이미지


화산이라는 가스 밸브


지구의 체온 조절은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 지구 전체 탄소의 90% 이상이 핵과 맨틀에 저장되어 있다는 추정이 있을 만큼, 탄소의 본거지는 발밑 깊은 곳이다. 이 탄소가 지표로 올라오는 통로가 화산이다. 지질학적 시간 척도에서 화산은 차가운 우주 공간에서 지구가 온기를 유지하도록 이산화탄소를 공급하는 '가스 밸브' 역할을 해왔다. 태양이 막 빛을 내기 시작했을 때 밝기가 지금보다 약 30%나 어두웠음에도 지구가 얼지 않은 것은, 화산이 뿜어낸 이산화탄소와 초기 대기의 메탄이 '담요'가 되어 지표를 감싸 주었기 때문이다.

암석이 빗물에 녹을 때


그러나 담요가 두꺼워지기만 했다면 지구는 금세 찜통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규산염 풍화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빗물에 녹으면 약산성의 탄산수가 되고, 이 빗물이 암석을 깎아낸다. 깎여 나온 성분은 하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 탄산염 퇴적물로 해저에 가라앉으며 탄소를 땅속에 가둔다. 기온이 올라가면 비가 많아져 풍화가 빨라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풍화가 느려져 이산화탄소가 다시 쌓인다. 보일러의 온도 조절기처럼, 뜨거우면 꺼지고 차가우면 켜지는 음의 되먹임(negative feedback)이 작동하는 것이다.

산소라는 양날의 선물


지구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체온 교란은 뜻밖에도 생명 자신이 일으켰다. 약 24억 년 전, 남세균이 광합성으로 산소를 대량 방출하면서 벌어진 '대산화 사건'이 그것이다. 산소는 생명에게 강력한 에너지 대사의 문을 열어 주었지만, 당시 지구를 따뜻하게 유지하던 메탄을 분해해 버렸다. 보온 담요가 급격히 얇아지면서 지구는 수억 년에 걸친 혹독한 빙하기를 겪었다.

더 극적인 냉각은 약 7억 2000만 년 전에 찾아왔다. 이른바 '눈덩이 지구' 시기다. 지표 대부분이 얼음으로 덮이자 햇빛이 우주로 반사되는 양의 되먹임이 작동했고, 지구는 거의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러나 두꺼운 얼음 아래에서도 화산은 멈추지 않았다. 풍화가 사실상 정지한 상태에서 수백만 년간 축적된 이산화탄소가 임계점을 넘어서자, 지구는 얼음 감옥을 깨고 나왔다. 체온 조절기가 끝내 작동한 것이다.

5600만 년 전의 경고장, PETM


과거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약 5600만 년 전의 '팔레오세-에오세 최대 온난기(PETM)'는 오늘의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다. 수천에서 수만 년에 걸쳐 대량의 탄소가 대기로 유입되었고, 전 지구 평균 기온은 5~8도나 치솟았다. 심해 유공충의 30~50%가 멸절했으며, 초기 말과(馬科)인 시프르히푸스는 체구가 30% 이상 줄어드는 왜소화를 보였다. 기후 변화가 생명체의 몸집까지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PETM과 현대를 비교할 때 진짜 소름 돋는 것은 '속도'다. PETM의 탄소 방출률은 연간 약 0.3 - 1.7 GtC로 추정된다. 반면 글로벌 탄소 예산 2024에 따르면, 현대 인류의 탄소 배출은 2023년 기준 연간 약 11.1 GtC에 이른다. 현재의 속도는 PETM보다 적어도 약 10배, 추정에 따라 수십 배 빠르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


지구가 수천 년에서 수만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인류는 단 200년 만에 강제하고 있다. 규산염 풍화*는 수만 년에서 수백만 년 규모의 장기 조절 장치이지, 한두 세기 만에 쏟아지는 탄소를 상쇄할 메커니즘이 아니다. 바다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해양 표층 pH는 산업화 이전 약 8.2에서 오늘날 약 8.1로 떨어졌다. 0.1의 차이에 불과해 보이지만 수소이온 농도 기준으로 약 30%의 산성화이며, 이 속도 역시 PETM보다 약 10배 빠르다. 산호와 조개류에게 이 변화는 집의 벽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과 같다.

10만 년의 청구서


PETM이 남긴 가장 무거운 교훈은 '회복의 시간'이다. 그 사건 이후 지구가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데는 적어도 10만 년 이상이 걸렸다. 우리가 오늘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일부는 수 세기 안에 바다와 육지로 재분배되겠지만, 충격을 충분히 상쇄하려면 인간 문명사가 아닌 지질학적 시간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은 도덕적 구호가 아니라 공학적 필연이다. 46억 년간 유지되어 온 탄소의 균형을 이해하고, 그 흐름에 순응하는 에너지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과제다. 지구는 PETM 같은 교란을 겪고도 결국 회복했다. 그러나 그 회복에 10만 년이 걸렸다. 지구는 회복한다. 다만 인간이 기다릴 수 있는 속도로 회복하지는 않는다.

*이산화탄소가 녹아 있는 빗물이 암석을 부식시켜 탄소를 지각에 반영구적으로 격리하는 지질학적 과정이다. 육상 식생과 해양 표층의 흡수가 수십 년 – 수백 년 단위의 '단기 탄소 순환'이라면, 규산염 풍화는 탄소를 암석(탄산염암)으로 변환해 수백만 년간 고정하는 '장기 탄소 순환'의 핵심 기제다.

글 / 정석희 전남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출처=전남대학교



정석희 박사는 전남대학교 교수이자 에페트솔루션(EFET Solutions) 창업자 겸 CEO로, 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 기반 그린 하폐수처리 및 에너지 전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 장학 지원으로 해당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지닌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환경 분야에서 3년 연속 스탠포드대 ‘세계 상위 2% 과학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등 학계와 산업계를 아우르며 기후 에너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광주녹색환경지원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정리 /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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