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기회와 희망

제2장 - 질 좋은 성장을 위한 산업정책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

  양극화된 사회는 소비기반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고 이들의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머문다면, 소비에 의해 뒷받침되는 성장기반은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의 양적 성장과 수출부문의 눈부신 신장에도 불구하고 국내경기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은 가계의 소비여력이 크게 줄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용의 양극화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다른 한편 사회 양극화는 불가피하게 복지수요를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가난의 극복을 선언한 것이 오래전 일이건만, 정부 예산을 지속적으로 투여해야 하는 빈곤계층 보호정책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복지의 사각지대가 늘고 있으나 예산의 뒷받침은 충분치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복지예산의 확대 편성이 현재의 상황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복지의 확대는 양극화의 결과에 대한 소극적인 처방일 뿐입니다. 올바른 대응책은 양극화의 원인을 해결하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고용의 양극화를 가져온 원인인 산업의 양극화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현재의 사회 양극화에 대한 올바른 대응책인 것입니다.

  우리 경제가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 구조가 파괴된 것입니다. 수출 호조에 힘입어 총량지표 면에서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지만, 이것이 일자리의 창출로 이어지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일자리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 양적 성장 시대의 산업정책과는 패러다임을 달리하는 새로운 산업정책이 필요합니다.

  일부에서는 고도성장기 ‘주식회사 한국’을 이끌어 왔던 정부의 산업정책이 이제는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경제는 시장에 맡기라고 말합니다. 민간부문의 역량이 커지고 경제의 규모가 세계 10위권 정도로 커졌기 때문에 이런 주장에도 일면 타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 달리 한국의 시장에서 아직 공정경쟁의 원리는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제 기능을 하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입니다. 또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과제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제안하는 신산업정책은 스스로 국제경쟁력을 키워 갈 수 있을 정도로 커진 대기업은 시장의 자율에 맡기면 되지만, 중소․중견기업은 여전히 정부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물론 질 좋은 성장을 위한 신산업정책은 과거 고도성장기의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신성장동력 산업의 발굴이나 기업이 수행하기 어려운 기초과학기술의 개발과 지원 등이 그것입니다. FTA 등으로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지는 세계시장에서 국산 제품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보 제공 역시 정부의 중요한 산업정책 영역입니다. 정보와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에서 세계적 산업표준과 제품표준을 만들어 시장을 선점하고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혁신을 통한 생산성향상과 양질의 노동력 창출에 필요한 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서비스산업의 육성과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해외 선진기업을 유치해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투자환경을 조성하는 일 역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정부의 역할입니다.

  질 좋은 성장을 위한 정부의 새로운 산업정책은 ‘고용 있는 성장’, ‘균형 있는 성장’, ‘혁신 주도 성장’의 세 가지 전략을 통해 추진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