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은 대한민국 게임 역사에 중요한 분기점이 된 해였다. 50년 만에 '문화예술진흥법'이 개정되면서 게임이 법적으로 '문화예술'의 범주에 명확히 포함된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창작물로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문화예술은 창작자의 사유가 담긴 창작 활동이며, 이러한 활동은 필연적으로 경제적 불안정성을 동반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 '예술인 복지법'이고, 그 실행 기관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다. 이 재단은 연간 1천억 원에 가까운 막대한 세금을 집행하며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창작준비금, 의료비, 사회보험료 등을 지원한다.
이 지원을 받기 위한 첫 관문은 '예술활동증명'이다. 자신이 예술활동을 해왔음을 입증하는 절차다. 나는 지난 13년간 게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게임과 관련한 300편이 넘는 글을 써왔다. 게임이 법적으로 문화예술이 됐으니, 게임을 다루는 나의 비평 활동 역시 예술 활동으로 인정받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원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게임이 문화예술로서 행정적으로도 인정받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게임이 문화예술로 인정받는지에 대한 일종의 오픈 베타테스트를 진행해 본 것이다.
그러나 2025년 7월 16일 신청한 나의 예술활동증명 과정은, 이미 법에 명문화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관료 사회가 게임을 문화예술로 인정하는 것에는 인색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신청 한 달 뒤인 8월 21일, 재단은 증빙자료 부족을 이유로 보완을 요청했다. 나는 최근 5년간 작성한 200편가량의 칼럼 URL, 제목, 게시일 등을 꼼꼼히 정리한 엑셀 파일을 PDF로 제출했다. 하지만 10월 2일, 돌아온 답변은 '반려(미완료)' 통보였다. 반려되었다는 사실보다 충격적인 문제는 반려 사유였다. 자료의 수가 부족하고, 게임 관련 비평은 (문학) 비평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임 관련 비평은 대상이 되지 않으니, 이를 제외한 비평은 숫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예술활동증명 신청 분야는 문학, 미술, 사진, 건축, 음악, 국악, 무용, 연극, 영화, 방송, 만화까지 15개 영역뿐이다. 법이 바뀐 지 2년이 지났음에도, 행정 시스템상의 분류에는 여전히 '게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문학'의 비평 영역으로 신청했는데, 재단은 게임을 다루는 글은 문학 비평이 아니라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엄연히 예술인 복지법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정의는 문화예술진흥법의 정의를 따르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실무를 담당하는 재단의 예술활동증명 기준은 개정된 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우리 관료 사회가 아직 게임을 문화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실망스러운 베타테스트 결과로 받아들였고,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재단 입장에서는 기존 분류를 유지하는 것이 편하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산업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왜 게임 칼럼이 비평이 될 수 없는지, 게임이 문화예술이라면 나는 어느 분야로 신청해야 하는지, 왜 아직도 신청 분야에 '게임'이 없는지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 질문에 답변이 오면, 답변을 분석하여 불합리한 답변에는 재답변을 요청했다. 그리고 결국 담당자와의 긴 통화 끝에, 다시 신청하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나는 8월에 제출했던 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동일한 자료로 10월 21일 다시 신청했다. 그리고 해를 넘긴 2026년 1월 6일, 마침내 나의 예술활동증명은 '승인'되었다. 자료가 바뀐 것은 없다. 바뀐 것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행정 편의주의에 맞서 항목별로 조목조목 따진 나의 행위와 다시 검토해야만 했던 담당자의 시선 차이일 뿐이다.
약 6개월간 이어진 이 지루한 싸움을 통해 내가 얻은 '예술인 경력정보시스템'의 인증 화면이 나 개인에게 큰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작은 승리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첫째, 게임이 법에만 존재하는 죽은 문자가 아니라, 실제 행정력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는 실체적 문화예술임을 증명했다.
둘째,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게임을 개발하는 인디 개발자들과 창작자들이 예술인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선례를 남겼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예술인 복지재단의 신청 카테고리에는 '게임'이 없다. 게임의 예술활동증명은 아직 남의 집에 얹혀사는 세입자처럼 문학이나 미술, 만화 등의 항목을 빌려 신청해야 하는 처지다. 나는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할 것이다. 신청 시스템 안내에 신청 대상으로 '게임'이라는 두 글자가 당당히 표시되는 그날까지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게임은 문화이고, 예술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6개월이나 싸워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지만, 누군가는 먼저 걸어야만 하는 길이다. 그 길을 내가 먼저 걸었고, 이제 후배들이 이 길을 통해 조금은 쉽게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중반룡(박형택) 그는?
게임 유저로 시작해서 2001년 게임 기획자로 게임업계에 입문했다. 야침차게 창업한 게임 회사로 실패도 경험했다. 게임 마케터와 프로젝트 매니저를 거치며 10년 간의 실무 경력을 쌓았다. 이를 기반으로 게임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분야 투자 전문가로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게임을 연구 주제로 박사 학위도 받았다. 다양한 경험을 살려 대학에서 게임을 강의하고 있는 그는 게임문화 평론가를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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