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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에세이] 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202.136) 2007.05.08 11: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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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민의 머슴 10년


  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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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2003년 12월 29일 17대 총선 한나라당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임명되어 2004년 3월 15일까지 100일 이상 일했다. 우리는 최병렬 당대표의 적극적인 뒷받침 아래 공천심사위원회의 구성 자체부터 이제까지 정당 역사상 없었던 획기적인 내용으로 하였다.

  공천의 모든 일정을 야당인 우리가 선도해 나갔다. 우리가 하던 방식을 열린우리당이 뒤따라 왔다. 기존의 공천심사위원회는 국회의원 중심이었다. 그러나 우리 심사위원회는 국회의원은 1/3인 6명뿐이었고, 9명은 국회의원이 아니었다.기존의 공천심사위원회는 당내인사중심, 남성중심이었으나, 우리는 기존관행을 과감하게 탈피하였다. 당원은 8명이고, 비당원 외부인사가 7명이었다. 여성을 4명 포함시켰다.

  심사위원회는 강만수(전 재경부차관), 이춘호(여성단체협의회장) 부위원장과 홍준표, 이방호, 이성헌, 김성조, 심규철 국회의원과 외부인사로 이문열(작가), 안강민(변호사), 김영수(의사), 김석준(교수), 이계경(전 여성신문 대표), 강혜련(이화여대 교수), 나경원(변호사) 등으로 구성되었다. 공천을 끝낼 때까지 단 한명도 중도 탈락하지 않았다.


  기존의 공천심사위원회는 사실상 당총재의 복심이 가장 큰 작용을 했으나, 우리는 우리를 임명한 최병렬 당대표 까지도 공천하지 않았다. 최병렬 대표께서는 “많은 선배들이 당의 혁신을 위해 자진해서 정계를 은퇴하는데, 당대표가 스스로 솔선수범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생각으로 큰 결단을 내렸다.우리는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공천심사를 했다.

  이 시대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양심은 우리가 마지막 보루라는 자부심을 서로 확인하며 한발 한발 나아갔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탄핵으로 당이 대폭풍을 만났을 때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공천을 마무리하였다. 공천과정에는 당대표 등 그 누구로부터도 완전 자율적으로 철저한 회의체로 운영하였다. 가급적 만장일치 합의가 될 때까지 무수한 토론과 조사를 계속했다.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7시 언론사 기사 마감 시간까지 하루 12시간 이상 강행군을 계속했다. 그야말로 죽을 각오로 정성을 다했다. 그러니 심사위원들은 너무 힘들었고 시간도 많이 빼앗겼다. 심사위원 가운데에서도 선거운동을 할 시간이 부족하여 낙선한 경우가 있다. 미안한 일이다.

  나는 인재영입위원장과 공천심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강한 권한이 쥐어졌고,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내 평생에 다시는 이러한 권한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주어져서도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나는 108일 동안 108번뇌에 시달렸다.나를 공천심사위원으로 임명한 최병렬 대표는 나에게 “당분간 살림집을 옮겨라. 집에서는 살 수 없을 것이다”라며, 여러 번 충고해 주셨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부천 소사본3동 우리 집을 떠나지 않았다.매일 매일이 전쟁이었다. 새벽부터 자정 넘게까지 우리집을 찾아오는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다. 내 평생에 이렇게 괴로운 날은 없었다. 17대 총선 공천에서 당시 한나라당 현역의원 중 3분의 1이 탈락했다. 그것은 일종의 태풍이었다.
대신 84명의 40대 젊은 인재가 공천을 받았다.

  유례없는 대대적 물갈이였다.공천물갈이는 외부심사위원 9명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9명의 외부 심사위원들은 부정부패 연루자나 이미지가 나쁜 정치인에게는 엄한 잣대를 들이대며 나를 몰아쳤다. 혹시라도 부정부패 연루자 등을 공천하려는 기미가 있으면 당장이라도 그만 두겠다는 것이다.

  공천 탈락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당내 반발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공천심사위원장의 자리는 어지간한 강심장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그런 자리였다. 한 사람을 공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머지 사람을 잘라내야 하는 악역은 사람이 할 일이 못되는 고통이었다. 나를 보고 “지독하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공천과정에서나 지금까지도 안타까운 생각에 기도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

  내가 간절히 기도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분들이 더 애절하게 기도하셨을 것이다. 내가 흘리는 눈물보다 훨씬 더 쓰라린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존경하는 선배·동료의원 27분이 불출마선언을 하셨다. 자의반 타의반 시대의 흐름을 따라 정계를 떠나야 했던 이분들에게 나는 평생 빚을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리는 하나뿐인데 지망자가 많으니, 피할 수 없는 악역이다. 그래서 정치가 선진화될수록 소수에 의한 밀실공천은 사라지고, 보다 많은 유권자에 의한, 보다 공개적인 공천과정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공천이 끝나고 국회의원선거도 끝난 지 2년이 다되었지만, 공천 잘 해서 고맙다는 소리는 들어 보기 어렵다. 오히려 공천탈락자들의 원성이 아직까지도 들린다. ‘선거원수는 평생원수’라는 말이 실감난다.“왜 공천을 늦게 해주었나?” 그 때문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왜 우리지역만 경선을 붙였나?” “왜 우리지역만 여론조사를 세 번씩이나 했나?” “일주일만 빨리 공천해 주었으면 당선되었을 텐데” 낙선후보들의 모든 불행의 씨앗은 공천위원장인 나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획기적인 ‘개혁공천’을 했다고 평가 받을 만큼 여러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공천된 후보도 ‘모두 저 잘나서 당선’이지 공천 잘해서 당선되었다는 인사는 빈말이라도 들어보기 어렵다.정치권에는 모두 제 잘난 사람이 모여 있지만, 다른 한편 공치사가 풍성한 동네이기도 한데, 공천관련 해서는 공치사도 드물다.

  나는 공천심사위원장을 마친 이후 2년이 지나는 동안, 가급적이면 공천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인재영입위원장이나, 공천심사위원장 모두 민감한 인사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 말하면 다칠 수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당장 형사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한 경우도 있다. 수십억 원의 돈으로 나를 매수하려던 사람도 있었고,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흔들릴 때마다, “옳은 길을 걷다가 죽으면, 영원히 산다”는 신념을 되새기며 다시 일어섰다. “절대로 한 푼이라도 받으면 독이 된다”고 우리 심사위원들과 가족, 주변 친지들에게 신신당부했다. 그 독을 받아 마시면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가 죽고, 국민이 불행해진다고 역설 또 역설했다.

  만약 내가 한 푼이라도 돈을 받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공천심사위원회가 지역구 국회의원후보 243명의 공천을 마치고 전국구 공천을 시작하려는 참에 당 운영위원회는 공천심사위원회의 활동을 종결하라는 의결을 하였다. 비례대표공천심사위원장은 나중에 박세일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우리 공천심사위원회가 그 동안 누누이 밝혔던 전국구공천 3원칙은 많이 지켜졌다고 본다. 첫째, 전국구 국회의원 전원 물갈이 원칙이었다. 그대로 지켜졌다. 둘째, 여성 과반수 원칙도 그대로 관철되었다. 셋째, 호남 최우선 배려 원칙이었다. 나의 생각은 광주, 전남, 전북 각 1명씩 총 3석은 당선안정권에 호남을 배려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비례대표의석이란 지역구로는 당선되기 어려운 분야의 대표인물을 국회의원으로 모시려는 제도라고 본다. 공천이 끝나갈 무렵인 3월 12일에는 헌정사상 초유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3월 12일 오전 11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재적 271명 중 195명이 투표하여, 193명이 탄핵안 가결에 찬성하였다.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 자민련이 모두 탄핵안 가결에 찬성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는 즉시 중지되었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탄핵 후폭풍으로 공든 탑이 다 무너져 내렸다. 4월 15일 총선에서 추풍낙엽처럼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한나라당은 차떼기당, 탄핵당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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