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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훈 에세이] 통일 평화시(統一 平和市)

운영자 2006.02.01 14:45:18
조회 2510 추천 1 댓글 3

  3. 평화, 멀고도 험한 길

  
통일 평화시(統一 平和市)

  서울 올림픽과 대전 엑스포는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세계를 향한 눈을 뜨게 해준, 계획된 비전 프로젝트였다. 동서 간에는 이념의 벽을 허물었고, 남북 간에는 환경 보전 및 기술 교류의 방법을 찾는다는 목표를 가져 세계 문명이 변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나는 이 두 행사와 연결되는 다음 비전 프로젝트도 역시 세계사와 민족사를 접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한국의 ‘세계를 향한 눈’을 더욱 확실히 뜨게 하고 세계의 ‘한국을 향한 귀’도 더욱 확실히 뚫리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같은 비전을 개념화할 때는 그 목표가 크면 클수록 접근 방법은 간단명료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타낸 다음 개념은 동서남북의 순서를 바꿔 북동서남, 즉 영어로 ‘NEWS’가 되게 하였다.

  서울 올림픽이 동서(EW) 간의 이념의 벽(Ideological Wall)을 허물고, 대전 엑스포가 북남(NS) 간의 기술 교류(Technological Way)의 길을 찾은 것처럼, 세 번째 비전 계획도 북동서남(NEWS)에 지식을 알리는 망 체계(Epistemological Web)로 개념화시켰다.

  이런 개념 속에 그 핵심 내용은 세계 시민이 함께 지구촌 문명을 화이부동(和而不同)하게 창출시키는 것으로 잡았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목표는 우리 민족을 갈라놓은 DMZ 근처에 세계인들이 모여 살 수 있는 통일 평화시를 건설하는 일이다. 서울 올림픽을 통해 가까운 시기에 민족의 통합이 이루어질 줄 알았지만 기대는 어긋나고 말았다. 세계의 동서 분단은 허물어졌고 동·서독이 합쳐졌으나 우리는 그대로 갈라져 있어 지금도 애를 태우고 있다. 우리 민족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는 먼저 넘어야 할 장애가 있다. 이산가족이 생사조차 모른 채 눈물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아픔,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맞대고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있는 현실, 바로 분단의 장애이다.

  나는 우리 민족이 이 눈앞의 현실을 넘지 않고서는 진정한 지구촌 문명 시대의 주역으로 거듭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기회로 인식될 수도 있다. 2,000년 전 아테네와 스파르타, 페리클레스와 소크라테스의 관계처럼 다음 천 년, 이천 년 동안에 인류 문명의 근본을 찾아내는 일을 한반도와 배달민족이 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특별한 구상 하나를 해 왔다. 그것은 바로 휴전선 비무장 지대 부근에 남북이 공동으로 도시를 건설하는 구상, 즉 ‘DMZ 통일 평화시’에 관한 논의였다. 이런 계획을 당시 이홍구 통일부 장관에게 여러 차례 제시한 바 있었다.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난 직후인 1988년 10월 노태우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DMZ 평화시에 대한 계획을 유엔에 제의하자고 이홍구 장관에게 건의했다. 늘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이 장관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화답하며 평화시의 이름을 ‘유니피스 시티(Unipeace City, 통일 평화시)’라고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유엔 총회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예정대로 세계 각국 대표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그 연설문은 ‘DMZ 근처에 남북이 합의하여 같이 살 수 있는 곳을 건설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이후 이 제안은 실질적인 타당성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이홍구 장관은 연구 작업을 위한 예산을 배정해 주었고, 나는 1990년까지 작업을 마무리하여 ‘남북간 평화시 구상에 의한 평화 지역 개발 기본 구상’, ‘남북간 평화 구역 설정을 위한 광역 개발 기본 구상’ 등의 보고서로 정리하였다. 평화시의 위치로 제시한 곳은 기존의 경의선 축상의 장단과, 판문점 지역을 중심으로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 서해로 흐르는 김포와 개풍군이 포함되는 곳으로서, 향후 항구 도시로 발전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이 지역은 분단의 역사 현장을 평화시로 개발한다는 상징성을 가질 수 있고, 평야 지대로서 각처로 연결되는 도로가 있으며, 기존의 판문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아울러 서울과 일산, 개성 등의 도시와 인접하여 남북 교류 및 배후 지원에 유리한 곳이었다.

  이 제안이 발표된 후 북한이나 유엔의 즉각적인 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후 단 한시라도 통일 평화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끈을 놓지 않았고, 지금도 놓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이 땅에 이념의 벽이 사라지고 철조망이 걷히는 날, 그리하여 이산가족의 눈물이 마르게 되는 날까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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