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도시
계획 전문가, 세계로 향하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도시 계획은
국가와 도시 경영의 기본이다. 그러나 도시 계획의 부실은 건축이나 토목
부실처럼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 여기에다 우리의 앞날이 더욱 답답한
것은 정책 부실과 정치 부실이 함께 뒤범벅되어 미래의 희망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패싸움으로 에너지를 소진하는 정치 현장, 우리 현실에 바탕을
둔 논리보다는 궤변을 앞세우는 사이비 전문가가 수장(首長)이 되는 관변
연구 단체, 흑백 논리 속에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집단 이기주의 ……, 그
속에서 우리의 도시와 국토는 지금도 신음하고 있다.
도시와 국토의
신음은 곧 서민들의 비명으로 이어진다. 마구잡이로 꽉꽉 들어서는 콘크리트
장애물 속에서, 소중한 삶의 터전은 힘겨운 생존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
무너지는 다리와 건물에 깔려 수백 명이 떼죽음을 당하고, 터지는 가스관에
또 수십 명이 죽어 갔다. 그런데도 ‘환경’이란 말은 아예 생각지도 않고
만들어진 공간에 갇혀 수백만, 수천만 명이 오늘도 조금씩 조금씩 죽어 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니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일들에 앞장선 소위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이 죽어 가는 소리와 문화 유산이 무너지는 소리를
실컷 들려 주고 싶다. 그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힘없는 서민들의
비명 소리를 듣게 하고 싶다. 그러나 들을 귀가 없고 볼 수 있는 눈이 멀어
버렸다면 어떻게 할까? 그러나 나 또한 그 죄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무일푼으로 미국에
건너가 공부를 했으면 뭐 하는가. 결국 우리의 소중한 땅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내 한 몸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지를 못하지 않았는가. 달걀로 바위를
깨려는 현실이었다고 스스로 변명을 할 수 있을까. 굳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나의 계획은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배신을 당했다. 온 나라를 뛰어다니며
도시 계획 안(案)을 잡아 놓으면 어느 날 내 구상을 그대로 베낀 설계도가
‘참신한 아이디어’ 행세를 하는 일도 없지 않았다. 설사 아무리 계획을
잘 잡아 두어도 그 실행 과정에서 밥그릇 싸움이 벌어져 계획의 질이 쉽사리
무너져 버렸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무슨 무슨 직함을 자랑처럼 달고 다니며
업자들에게 비밀스럽게 돈을 받았고, 업자들은 끊임없이 담합을 했다. 그것은
폭력이었다. 누군가를 보이게 죽이지는 않았으되 많은 누군가를 죽이는 결과를
낳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안고
있는 한계를 벗어날 필요도 있었지만 모든 분야가 정치 때문에 무너지고
있어 정치를 차원 높게 승화시켜야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정치판에서
또 다른 폭력과 살의를 보았다. 이 민족과 국가는 어떡하라고 서로 헐뜯고
싸우기만 하는지. 그 폭력과 살의에 시달리는 것이 나뿐이라면 나는 모른
척 남은 삶이나 살고 말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국역 환경을 무너뜨리는
그 지독한 폭압에 고통받는 이는 다름 아닌 대부분의 서민들이다.
잘려 나간 산자락
아래서 산사태의 공포에 떨며 사는 사람들, 소음과 먼지 속에 폐를 앓는
사람들, 주차장이 되어 버린 도로에서 교통 체증에 숨막히는 사람들, 콘크리트에
가려서 해와 달도 없는 손바닥만한 하늘을 보고 사는 사람들 ……,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 그들의 신음 소리가 들리고 있는 한, 지금껏 내가 한 일은
없다. 대학로도, 한강 개발도, 지하철도, 올림픽도, 엑스포도 부질없다.
행정 수도도, 두만강 개발도, 세계시도 남의 얘기다. 그 일들이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이 땅에 사는 많은 이들의 고통부터 덜어야 한다. 지금도 인간의
삶터에는 관심이 없이 자신이 머물 안락한 공간만을 생각하는 위정자들과
전문가들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싶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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