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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to(182.213) 2020.05.25 23:41:35
조회 105 추천 1 댓글 0

수업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9시 반. 교수는 백석의 시가 얼마나 감미롭고 서정적인지 논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윤동주의 시라는 것은 그저 백석의 시에 드러난 정서를 윤색하고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기가 감명받았다면서 낭송하는 피피티를 보면 수영에게는 전혀 와 닿지가 않는 것이었다. 달이 어떻고, 사랑이 어떻고, 그래서 얼마나 슬프게 고개를 떨구는가 하는 것이 담담한어조로 적혀있다는데 정작 수영에게는 뭐 그래서 시발 어쩌라고 이 새끼야 하는 상상이 머릿속을 휘적대고 있었다. 이것이 대학이란 말이냐,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2위를 달리는 A대에서 제공하는 강의라는 것이냐?

 

다행인지 불행인지 강의실 내에서 꾸벅꾸벅 조는 인간이란 것은 나 뿐 만이 아니었다. 태반이 늦잠을 핑계로 출석조차 하지 않았으며 그나마 강의실에 앉아있다는 인간들도 최소한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였다. 맨 앞 좌석에 앉아 강의를 듣는 의찬 선배만 다르다. 그는 일전에 백석시인이 얼마나 위대한지 온갖 미사여구와 버벅거림을 섞어가며 내게 얘기해준 바 있다. 그렇게 문학의 위대함을 열렬히 찬양하는 인간이란 사람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보는 한심한 족속에 지나지 않은지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도대체 아름다운 문체와 서정적인 감성이 뭘 할 수 있다는 건가, 빵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N번방 범죄자를 잡아내는데 일조를 하나.

 

시간은 끼덕거리며 흐른다. 열쇠구멍에 꼭 맞는 열쇠를 찾기 위해 한참을 웅얼거리던 시간은 그 교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 자리를 찾는다. 그러면 뭐 하는가, 이 추레한 쇳덩이의 쩔껑거리는 혼잣말은 세상이 모두 자기 것일 것 같던 두 살 때나 무시할 수 있던 것이다. 부모님이 새로 사 들고 온 자동차 장난감이 사실은 동생 것이고 황토색 곰돌이와 쥬쥬 인형과 분홍빛 구두만이 자기 것이라는 것을 배울 때 그 불쾌한 노인네도 킬킬대며 열리지도 않을 문에 열쇠를 후비적 거리는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얼굴 없고 표정 없는 여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녀의 9개 구멍에 자신의 축 늘어진 물건을 밀어 넣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곧 이것이 사유재산이며 현대사회를 지탱한다는 것을 수영은 중학교 때 배웠고, 이러한 사유재산의 개념이 자본가 계층으로부터의 핍박을 정당화시키는 거라는 것을 수영은 고등학교 때 배웠다. 그리고 이런 논쟁이 결국 자기에게는 하등 의미가 없는 것임을 수영은 지금 배우고 있다. 비스마르크는 이런 수영 같은 족속들을 보고 가슴이 차가운 이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답이라며 학술 포럼을 열고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선거 운동을 하는 동년배들은 이 비스마르크가 말한 문장의 반만 이해할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은 회색분자니 배교자니 하는 이상한 말들을 만들어 내서 분노에 치를 떠는 것이다. 병신새끼들.

 

나이 40이 넘어서도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작자들은 머릿통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다.”

 

수업이 끝난다. 최의찬이 수영한테 다가와서 또다시 그 백석시인의 위대함에 대해 설교한다. 대충 고개를 끄덕여준다.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수영은 자기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최의찬은 같이 점심을 먹자고 구내식당에 앉아서는, 입을 앙 벌려서 스테이크를 입에 넣고 뭉개며 자기의 정치 사상을 말한다. 듣자 하니 자기 친가 쪽에서 물려받을 자산이 꽤 되는데 (전형적인 금 수저 새끼다) 얼마 전에 자기 할아버지가 5억을 빌려줬다고 그것으로 재단을 만들 거란다. 내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재단을 만드는 거냐고 묻자 그는 홍가예라는 신인 정치인을 갑자기 끌고 와서는 정당을 만들 거라고 한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자기의 생명중시사항을 얘기한다. 사실 자기가 입에 넣고 있는 스테이크는 고기가 아니라 두부로 만든 것이며, 자기는 이제 동물권을 존중해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또한 여성의 인권이 얼마나 바닥에 떨어져 있으며 바로 앞에 있는 나에게 페미니즘이 어떤 것인지 강화까지 한다. 슬슬 나는 한계를 느꼈다. 이제 그는, 너도 이제 고기를 끊고 채식을 해야 한다며 내가 입에 담고 있던 생크림 컵케잌을 고깝게 쳐다본다. 그러면서도 그 한가운데 얹어진 체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는데, 한입 달라는 건가 싶었다. 내가 자기와 같은 국문학을 전공하니, 차라리 자기 재단 아래로 와서 기사 쓰는 일이라도 해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이제 나는 저 자식과 인연을 끊을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재수생 시절 모의고사는 이것을 풀어보라며 학원은 여길 등록해 보라며 추천해주던, 아니 훈수를 두던 때만 해도 그나마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으니 이런 헛소리도 웃으며 받아주던 것이었지만,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 자기 아래로 들어와? 한 살 더 많은 주제에 어딜 감히 내 위에 서려고 들어?

 

그래도 결국 누굴 뽑으나 그 놈이 그 놈 아니겠어요?’

아니야. 정치가 있어야 그래도 세상이 바뀌는 거야.’

 

옳거니, 저 개 자식을 영영 떼어낼 구실을 찾았다.

 

선배,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엄마가 원장으로 있는 영어 유치원에 간 거 있죠. 수요일인가 그랬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정문 앞에 가만히 서있더라고요.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벽 한 켠에 기대어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염상섭이 쓴 태평천하였어요. 고등학교 때 문학 지문으로나 보던 것을 읽고 있는 것이 신기해서 몇 살이냐고 물으니 고3이라는 것이었어요. 아직 유치원생인 자기 동생을 기다리는 모양이었죠. 3이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느냐고 물으니까 학생부에 한 줄이라도 더 적으려고 읽는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앞으로 고3인데 열심히 공부하라고 해주고 그 유치원으로 들어갔죠.’

 

 그런데?’

 

웃긴거죠, 전 안했거든

 

나는 고등학교 때 틴더를 깔고 하룻밤의 전희를 채울 남자를 찾던 자신을 회상 했다.

 

뭔 소리야, 니가 그런 식으로 충고한 거 맞잖아.’

 

옳거니, 니 놈이 나한테 시비를 거는구나.

 

무슨소리에요, 제가 공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데

 

그래, 그건 당연한 거고

 

 혹시 몰라서 구내 식당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나는 내 갤럭시 7에 녹음 기능을 켜두었다. 이제 이것은 저 한남과 나 사이의 정중앙에 서서 대화를 모조리, 그러나 조용히, 삼켜내고 있다. 나는 기분이 상했지만, 사실 내가 기분이 상황을 연출한 것이었지만, 혼자서 까르르 웃다가 그 선배에게 미소 띠며 말했다.

 

선배, 그거 알아요? 떡도 안 체할 라면 개떡도 찰떡처럼 먹어야 한데요.”

그래, 니가 개떡같기는 하지

 

오호라, 이 정도까지 병신 같을 줄은 몰랐는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 병신은 자기가 무슨 승리라도 한 것 인양 혼자서 킬킬거린다. 스마트폰을 들고 일어설 때 찬 물이 담긴 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그 놈 얼굴에 줄줄 부어보면 어떨까 하고 잠깐 생각했으나, 이내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고 생각하곤 그냥 밖으로 나섰다.

 

 도서관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지이잉 하고 문자가 온다. 왜 갑자기 그렇게 나가냐고 한다. 평소와는 달리 왜 그렇게 말도 없냐고도 한다. 나는 조용히 페북으로 들어가 그 놈을 언팔로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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