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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보이 #2

ㅅㅇ입니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1.03.26 19:29:23
조회 1698 추천 0 댓글 1

나중에 큰어머니가 보여주신 사진을 보고 갓난아기 시절에 내가 이 큰집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기억을 못하고 있었을 뿐 어머니와 부산에서 살기 이전에 나는 이곳에서 컸다.

서울로 왔을 당시 나는 처음 보는 듯 싶은데 다들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대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사촌누나와 내가 서로 발가벗고 목욕하는 아기 때 사진을 보니 어쩌면 나는 큰어

머니가 물린 젖을 먹고 자랐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어느 날 처음 보는 아가씨가 집에 찾아왔는데 어른들이 말하길 이제 이

사람이 나의 엄마라고 했다. 나도 모르는 새, 아버지는 결혼을 했던 것이다. 나는 새로운 어머니

가 생겼고 이제 큰어머니의 품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맞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새로운 가정 안의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어머니의 맘을 조금 수틀리게 하면 모진

매질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퇴근하고 오기 전까진 방안에서 책보는 것 말고는 허락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가 없을 땐 늘 따로 차려진 밥상을 방으로 가져다가 혼자 밥을 먹었다.

난 밖에선 항상 개구쟁이였는데 집에 오면 말을 잃은 내성적인 아이가 되었다.

여동생이 태어났다. 나는 어머니가 정이라곤 눈곱 만치도 없는 냉혈한 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생은 어머니의 크나큰 사랑을 받으며 키워졌다. 나는 친자식이 아니어서 그랬던 것

이라는 걸 알았다. 나에겐 괴물 같더니 동생에겐 그야말로 푸근한... 정말로 어머니였다.

어머니에게 맞았던 일은 부지기수로 많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 그때 당시 아버지

직장이 원주로 발령이 나서 초등학교 입학 하기 전에 원주로 내려가서 살았다. 우리 가족이 살던

연립주택 뒤는 죄다 논이었는데 동네 친구들끼리 보통은 연립주변 놀이터 등에서 놀지만 어쩌다

논으로 놀러 갈 때가 있었다. 그 날도 몇 번 없던 논으로 놀러 간 날인데 나는 발이 논에 빠져

신발과 양말을 흙탕물에 버리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한테 또 혼날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났다.

신발이야 말려서 털면 되는데 빨래를 해본 적이 없어 양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집에 들어와 양말을 돌돌 말아 이불장 뒤에 숨기고 잠이 들었다. 양말을 숨기는 것이

당시 내가 생각한 것 중 최고였던 것 같다. 잠을 얼마나 잤을까... 한밤 중에 어머니가 곤히

자던 나를 깨웠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나에게 잘못한 것을 말하라고 했는데 나는 왜

그러는 것인 질 몰랐다. 모르겠다고 계속 말하니 어머니가 더러워진 양말을 들이대며 이게

뭐냐고 했다. 내 딴에는 꼭꼭 숨겨 놔 절대로 안 걸릴 줄 알았는데 그날 바로 걸리다니. 아버지도

집에 안 들어온 것 같고 나는 이제 죽었구나... 정말로 나는 그날 밤 죽도록 맞았다.

어머니는 항상 철사로 된 옷걸이로 손등을 때렸는데 옷걸이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정말 공포

스러웠다. 당연히 고통에 나는 엉엉 울게 되는데 밤인지라 어린 동생이 자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내 울음소리에 동생이 깨면 정말로 죽여버린다고 했다. 나는 양말을 더럽히게 된 건

잘못한 것이지만 동생은 곤히 자는데 나는 자다 일어나 계속 맞으며 저런 소리 듣는 것이 너무

서러웠다. 그리고 그 당시는 내가 크게 잘못 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크고 보니 놀다가

양말 더럽힌 것은 그다지 맞을 거리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날 느낀 서러움도 아직까지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2학년 도중에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우리 집은 큰집 바로 아래에 있는 반 지

하 빌라였다. 사촌누나와 학교가 같아져서 같이 가려고 큰집에 갔는데 누나가 울고 있었다. 큰

어머니가 도시락 반찬으로 계란말이를 했는데 맘에 안 든다고 울고 있는 거라고 하셨다. 나는

도시락 반찬이 만날 김치, 멸치, 시금치였는데 만날 계란말이 싸가지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큰어머니는 너희 엄마가 네 건강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동생들이 커서

도시락 싸가지고 다닐 때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동생들은 기름지고 맛있는 반찬을 잘

싸가지고 다녔다. 나는 학창 시절 점심시간이 너무 싫었고 창피했다. 김치, 멸치 보다 창피한

반찬은 조리가 안된 생 햄이었다. 생 햄이 반찬 통에 썰려있으면 학우들은 왜 너희 엄마는 햄을

안 구워 주냐고 했다. 나중에 어머니께 왜 생 햄을 자꾸 싸주냐고 했더니 생 햄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생 햄이라고 먹을 때 마다 느꼈는데 조리된 것이라고 답을 해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앞으로는 구워서 싸줄게 라는 대답이면 좋았을 것을.

나는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어머니가 너무 무섭고 미웠다. 어릴 땐 어머니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고 몸이 떨렸던 적도 있다. 따듯한 사랑을 바란 것도 아니고 그냥 나를 모질게 대하지

말고 그만 혼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생들은 우리 딸, 우리 아들 이라 불리고 나는 아닐지라

도 같이 살아온 20여 년 간 한번도 날 안아 준 적이 없어도 그런 건 상관 없었다. 나를 그냥

내뒀으면...하는 바람뿐...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나이를 점점 먹으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어머니는 결혼

을 하고 나서야 나라는 존재를 알았다고 했다. 남들은 결혼해서 달콤한 신혼을 보낼 텐데 결혼

하자마자 7살 난 사내아이를 아들로 맞이해야 한다니. 나의 존재로 어머니도 심적으로 많은 갈등

이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어떻게 대했든 결국 내가 서른을 바라보는 이 시점까지도 뒷바라지를

하고 계신다. 능력 없는 남편 만나 세 아이를 정말 정신력 하나로 키워내신 분이다.

아버지가 실직하고 나서 매일 술에 절어 지낼 때  대학교 기숙사에서 허드렛일 하면서 생활비를

대고 살림을 다하셨다.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어렸을 적에는 밉기만 하던 어머니가 나이를 먹어 갈수록 이해하게 되고 오히려 측은해 지기까지

했다. 내가 꼭 보답하여야 할 사람 중 한 명.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다.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중학교 시절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성적이 나오질 않는 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내가 처한 이런 환경이 싫었고 반항 심리인지 뭔지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다.

시험기간에 벼락치기 아니면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내 사촌은 공부를 잘하여 전교 1, 2

등을 다투니 비교되기 십상이었고 그럴 수록 나는 더더욱 공부에서 멀어져 갔다. 이 시절부터는

주로 아버지에게 맞는다. 아버지는 불 같은 성격이라 일단 화가 나면 손찌검을 하고 화가 가라

앉으면 몽둥이로 일명 "사랑의 매" 를 드셨다. 어렸을 적엔 그래도 잘 지냈던 동생들 하고도 멀어

져갔다. 차별대우 당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대우를 받는 동생들하고 자연스레 멀

어진 것 같다. 집에 오면 나는 한마디도 안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밖에서는 여전히 개구쟁

이었다. 나는 내가 이중인격자 같았다.

  공부가 싫다는 이유로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 했다. 실업계 고는 과가 나누어져 있는데 우리

과는 학교에 1개 반 밖에 없어서 3학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끼리끼리 모인 것인지 학우들의

가정사를 알아 갈 수록 일반적인 평범한 가정이 드물었다. 우리들의 환경이 결국 이곳으로 모이

도록 한 것 같았다. 나와 가장 친해진 친구도 어머니가 계모였다. 서로 비슷한 처지라는 것을 알

게 된 후 더 빨리 친해 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 내내 나를 따라다니던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도박과 도벽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친구들한테 고스톱을 배운 후로 도박이 시작 되었다. 중학교 땐 매일같이 팡팡, 판치기로 불린

책 위의 동전을 뒤집어서 같은 면을 맞추면 따게 되는 도박을 하였다. 그때는 나름 고수라 집에

서 용돈을 주지 않았는데도 PC방과 군것질 등 당시의 유흥을 잘 즐기고 살았다. 화투나 카드로

하는 도박은 거의 잃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항상 뭔가를 훔치고 싶었다. 처음 도둑질을 한 건 유치원 다닐 때 슈퍼에서 초콜릿
을 훔치다 걸린 일이다. 당시 큰어머니에게 정말 엄청나게 맞고 혼이 났다. 그리고 나서 몇 년

간은 탈 없이 잘 살았는데 중학교 시절부터 도벽이 도졌다. 용돈이 없어서 항상 돈이 필요 했기

에 아버지, 어머니 지갑을 매달 건드렸다. 슈퍼에 가서 군것질 거리를 훔치고 문방구에서 학용품

을 훔쳤다. 물론 걸린 것이 한 두 번이 아니고 엄청나게 맞고 혼나고 아버지가 나를 경찰에 신고

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겨우 출동한 경찰 분들을 돌려 보냈는데 안 그러면 소년원에 갔을까 싶다.

도박은 중학교 시절로 거의 끝났는데 도벽은 고등학교 때도 계속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주로 음악 CD 를 훔쳐서 들었다.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학창 시절 남의 물건과 돈에 손을

댄 것이 통틀어 수십 번은 되는 것 같다. 이것도 나중에 크고 나서 병이란 것을 알았다.

어영부영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전문대에 입학하였다. 원래 넉넉지 못한 가정이었는데 아버지가

실직까지 하여 등록금은 할머니가 내 주셨다. 내 환경에 대한 답답함은 여전 했지만 이제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자유롭기도 했다. 처음으로 연애도 해보고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본 것이 가장

큰 수확인 듯 싶었다. 사랑에 목마른 나에게 너무나 달콤한 단비 같았다.

군 시절은 나에게는 생 지옥이었다. 나는 군대에 적응을 잘 못했다. 나를 때리고 못살게 구는

고참을 참지 못하고 간부에게 말해 그 고참은 영창을 가고 전출 당했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일 이등병 시절은 거의 반 왕따나 다름이 없었다. 병장 시절에 우연히 당직 근무를

하면서 행정반의 문서를 보게 되었는데 내가 관심병사로 등록 되어있었다. 사유는 개인주의 성향

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 것을 보고 난 후 내가 개인주의라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

아 특별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원래 머리 숱이 별로 없는 편이었는데 군생활 하면서

머리가 많이 빠져 생활에 자신감이 없어진 것이 제일 큰 악재였다.  


돌이켜 보면 나는 무엇인 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없다. 그 대가는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학교 졸업 후 나는 취업을 해야 했는데 취업하는 것이 쉽지도 않았을 뿐 더러 월급 150만원

이상 준다는 곳도 없었다. 지나간 삶을 후회해 봐야 이미 늦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라도 열심히

살아야 했을 텐데 현실에 낙담하여 그러지도 않았다. 사촌들은 모두 명문대를 나와 꿈을 향해

달리는 것 같은데 나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해 보여 자괴감이 들었다.

내 비참한 현실을 남의 탓으로 돌리느라 내 스스로 나를 구제할 방법을 만들어 놓지 못한 것

이나 다름이 없다. 나의 인생은 이렇게 불운하게 시작해 별볼일 없이 끝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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