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미친 소 II
---이중섭 그림 「걸어가는 소」를 보며
박 남 철
1
어허 시장타 풀 뜯어먹고
샘물 마시고 누웠다 돌베개하고 누웠다
풀뿌리도 씹고 흙도 개꽃도
시뻘건 독버섯까지 모조리 모조리 씹고 나도 어허
이거 몹시 시장타
몇 백 마리 몇 천 마리
질긴 놈으로만 그저 어허 지근지근
되야지 고길 씹고 싶다 살찐 놈으로만 한꺼번에
소금에 질러
콱
가자구
이봐 어서 가자구
오래 굶어 환장한 이 거대한 빈 창자를 끌고
서․울․로․ 가․자․구․[방점 인용자] 가서 줏어먹어보자구 닥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우라질 것 이봐 어서 가자구
생선 뼉다귀도 콩나물 대가리
개들이 먹다버린 암소갈비도 복쟁이도
집도 거리도 자동차도 모조리 모조리 우라질 것
암수컷 가릴 것 없이 살찐 놈으로만 콰콱콱
사람 고기도 씹어보자구
어허 몹시 시장타
돈마저도
콱
---김지하, 「허기」 전문*
* 김지하, 「허기」,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시선집』(창작과비평사, 1982), 제42면에서 43면 사이에서.
소가 아니면 소가 아닐세
이중섭이 소는 조선소가 아닐세
조선소 아니면 소그림 안되는 법
조선엔 자고로 미친 소 없네
얼룩소* 수입소 물소 코뿔소
사람 무는 소 사람 들이받는 소
노기등등 분기탱천하는 소
뼈만 남은 이중섭이 소
절간에서 소소소소소 하는 그런 소
거 다 소 아닐세
조선소
조선놈 닮아 어질고 에미령하고
때려도 밟아도 치고 차고 패도 그저
끄덕끄덕 일하는 소
갈데없는 그 소
그것이 소
조선엔 자고로 미친 소 없네
우황 들어 앓긴 해도
미치는 일 따윈 아예 없어
천만의 말씀, 뼈만 남은 소라니!
소 죽어 뼈는커녕
터럭 한 올 남기는 걸 본 일 있던가
없어
다 주고 가지
가죽은 가죽대로
꼬리는 꼬리대로 다 먹어라 주고 가지
없어
없다니까
그게 소여 조선소
조․선․소․가․ 소․여․.[방점 인용자]
---김지하, 「소를 논함」 전문*
* 이 \'얼룩소\'도, 실은, \'조선소\'가 맞다! [2008. 6. 6. / 인용자] / 김지하, 「소를 논함」, 『애린 ․ 둘째 권』(실천문학사, 1986), 제19면에서 20면 사이에서.
이중섭의 그림 「걸어가는 소」를 연상해도 좋을 김지하의 뛰어난 시 한 편과 다소간은 억지가 좀 섞여 있다고 여겨지는, 그러나 이중섭-조용필의 박수부대들의 그것보다는 몇 배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그러나 역시 방만한 ("대설적인!") 자기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별로 뛰어나지 못한 시 한 편이다.
「허기」는 민족적이다. 「허기」는 민족에게; 있으면서도 없는, 없으면서도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소를 논함」은 민족적이지 못하다. 아니, 아예 반민족적이기까지 하다. 「소를 논함」은 민족에게 있으면서도 있는, 없으면서도 없는, 그런 세계만을 보여주었다. 김지하의 「소를 논함」은 \'조선소\'의 일면만을 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방점 대목의 억지, 과장까지가 끼어들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이중섭의 「걸어가는 소」는 김지하의 「허기」의 세계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그런 세계의 \'흰 소\'이다. 그러나 김지하의 「허기」의 세계가 다소간은 \'지방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음에 반하여---방점 대목을 주시하라!---이중섭의 「걸어가는 소」는 거뜬히 이를 뛰어넘어버리고 있다. 가히 민족적이고 가히 세계적이라 할 만한 것이다. 보라!
화火를 내면서도 걸어간다. 화를 내면서도 묵묵히 걸어간다. 아니, 화를 내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그 눈동자가 얼핏 보면 화를 내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은 속으로는 통사정을 하고 있는 듯한 그런 눈이다. 화를 내면서도 걸어간다. 자신을 하나님으로 과신하고 있는 그런 눈만도 아니다. 자신을 예수로 착각하고 있는 그런 눈만도 아니다. 자신이 소임을 알고 있는, 자신이 저주받은 소임을 알고 있는, 그러나 끝끝내 그런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아니, 받아들이면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그리하여 마침내는 \'조선소\'의 그 무엇인가를 뛰어넘어버리고야 말 듯한; 뛰어넘어버리고야 말아야 될 그런 소의 안 미친 눈이다!
미술평론가 이경성의 이중섭의 그림에 대한 두 가지 지적은 훌륭하다. 이중섭의 그림 「도원桃園」에 나오는 아이들과 산맥들의 이미지가 고려청자와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그것들의 이미지와 너무도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하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중섭의 내면에는 죽어도 순치될 수 없는 고구려인의 육식적인 투쟁의 넋이, 포기할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무릉도원의 시원이 함께 들끓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시방 우리에게 있어서, 이중섭이 주는 의미는---김지하의 「허기」의 의미가 그러하듯이!---고故 이중섭의 「걸어가는 소」가 주는 의미는, 우리들 이 한恨 많은 초식 민족의 "왜곡 표현된"(「풍자냐 자살이냐」), 폭발 일보 직전의 내면 풍경일지도 모른다.
명태야......
명태야......
아니, 병태야......
반항을 하려거든 똑바로 해라......
왜 애꿎은 나를 보고 자꾸 그러지이......
니 친구 동태보고 그러든지, 아니면
니 작은 황태보고 그러든지......
(북어보고 그러든지)
병태야아,
병태야아,
네 이, 생떼야아......
(네 이, 대가리에 피도 채 안 마른 놈아......)
---졸시, 한 무용-화가-여성 평론가에게 드리는 「---명태에게」 전문*
* 박남철, 「---명태에게」, 『반시대적 고찰』(한겨레, 1988 / 세계사, 1999), 제75면에서.
1987년 4월과 5월 사이.
2
불과 같은 1987년을 넘겼다.
넘기고 나니, 이제서야, 「소를 논함」의, 그, 울음이 엷게 깔린 웃음과 강변과 직선의 언어 속에 내포되어 있는 \'방법적 발광方法的發光\'이 눈에 보이는 듯도 하여 눈물겹다. 김지하는 역시 \'위대한 시인\'이다! 그리고, 한국에는 아직도 존경할 만한 ("별로 안 무서운!") 선배들이 많다!
1988년 10월과 11월 사이.
---이상, 졸시집 『용의 모습으로 / 박남철 비평시집 I』(청하, 1990), 제36면에서 41면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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