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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회계장부가 아닙니다

운영자 2009.12.29 17:50:07
조회 918 추천 0 댓글 4

3월 11일 (금) 프라하, 바람과 눈


몸은 프라하에 있는데 머리는 아직 바르샤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떠나기 전 바르샤바 시내를 둘러보았습니다.

바르샤바항쟁 기념, 게토영웅 기념비, 파비아크 감옥 그리고 이름 모를 숱한 기념물들.

바르샤바는 시내 곳곳에 피와 눈물의 기록들만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르샤바는 말이 없었고 우리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들 침통한 마음으로 바르샤바를 떠났습니다.


바르샤바항쟁 기념관은 항쟁 60주년을 맞이한 작년에 개관된 일종의 전쟁 기념관입니다. 1944년 8월 바르샤바의 폴란드인들은 점령 독일군에 대항하여 수도를 탈환하겠다는 <무모한> 무장봉기를 일으킵니다. 두 달간의 전투 끝에 폴란드 저항군 만 8천명은 모두 사살되고 민간인 2만여명도 사망합니다. 사망한 민간인 중 대부분은 저항군을 투항시킬 목적으로 민간인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수 만명씩 집단 학살하는 과정에서 숨졌습니다.


44년 바르샤바 봉기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폴란드인들이 실용적이지 못하며 대책없는 낭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흔히 드는 예가 바로 44년 봉기입니다. 엄청난 희생 이외에 무엇을 얻었느냐고 그들은 묻습니다.  두 달간 수십만명이 죽어가는 동안 근처까지 진격한 쏘련군은 폴란드 저항군의 기대와 달리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독일군들이 저항군들을 다 정리한 후에야 쏘련군은 바르샤바 주둔 독일군들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쏘련군들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특유의 <대책없는 낭만과 미욱한 기질> 때문이라고 악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르샤바 항쟁 기념관은 전시방법에 있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듯 보였습니다. 제 3자적 위치에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 속에 들어가 온 몸으로 체험하게 하는 배려가 인상이었습니다. 중학생, 고등학생 그룹들이 여기저기서 교사들의 열띤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한과 분노가 역사와 함께 계승되는 현장입니다.


항쟁이 시작된 44년 8월부터 10월까지 저항군들이 장악한 지역이 얼마나 자유가 넘치는 해방구였나를 보여주는 장면은 1980년 5월의 광주항쟁 당시의 광주풍경을 연상케 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수도를 탈환해야 전쟁 후 폴란드의 자주성을 지킬수 있다는 그들의 절박감에서 45년 8월 15일을 비통하게 맞이한 김구와 장준하의 탄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 목숨보다 자유가 더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때문에 훗날 많은 사람들의 자유가 보장되기도 하였습니다. 1944년 8월부터 10월까지 두 달간의 자유를 위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나무랄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회계장부가 아닙니다. 실리니 실용이니 하는 것은 장엄한 역사의 잣대일 수 없습니다.  80년 5월 광주의 시민군은 무모하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광주항쟁을 실용적이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광주항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역사는 우리에게 살아남은 자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해 더 많은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실리와 실용은 의미 있는 가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 민주주의, 평등, 혹은 개혁등과는 다른 차원, 더 낮은 차원의 개념일뿐입니다. 그래서 실리와 자유, 실용과 개혁을 같은 차원에서 논하고 양자택일의 것으로 논하는 것은 배신자의 궤변이나 비겁한 자의 변명에서나 나타나는 일입니다,

일제에 맞서 싸우는 것은 비현실적이니 차리리 순종하여 실리를 찾자는 비겁한 지식인들 궤변은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과거로 남아 있읍니다. 

 

최근 등장한 논리지만 소위 개혁과 실용을 동일한 차원에 놓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고뇌>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개혁은 비실용적이었으며 그들의 실용은 비개혁혹은 반개혁적이라는 말인가요?

<개혁>을 <비 실용적인 것>혹은 <덜 실용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전제도 한심하지만 <개혁>을 포기하는 명분으로 <실용주의>을 운운하는 것은 비겁한 사람들의 뻔뻔한 변명일 뿐입니다.   

 

프라하에서 카를 법무부 차관, 크레섹 하원법사위 부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상원 법사위와의 면담에는 상원의원 8명이 참석하였습니다. 페베르 상원 법사위 부위원장은 우리말로 뚜렷하게 <건배>를 제의합니다. 진한 한국식 대접을 받아본 탓이지 그가 점심을 크게 샀습니다.

 

3년 전 방한한 적이 있는 그의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은 <폭탄주>입니다. 슬로바키아의 질리나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광공업박사인 그는 1999년 스토나바 시장으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광공업 기술자 출신인 그는 프라하에서 스스로 <폭탄주>를 제조해 보았으나 서울에서의 그 맛이 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만일 성공했다면 그는 체코의 <최무선>이 되었을 것입니다.


체코 일정은 시간에 쫓기며 숨가쁘게 진행되어습니다.

이곳 정치상황도 폴란드와 유사합니다.

98년 이후 사민당 주도의 중도좌파연정을 이루고 있으나 2006년으로 예정된 차기 총선에서 우파의 승리는 확실시 되고 있습니다. 우파가 총선을 앞당기려 하는 것고 똑같습니다. 집권 사민당의 최근 지지율은 14%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여기서도 정치인들의 부패는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국제투명성 기구가 해마다 발표하는 부패지수를 보면 양국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체코 교민대표들과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유학생을 포함하여 모두 4백여명.


프라하의 칼바람 속에 악수를 하고 서둘러 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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