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 금융으로 본격 진입하기 시작한 전환점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GENIUS Act 서명과 유럽의 MiCA 시행으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주요 금융기관과 글로벌 결제 사업자들이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코빗 리서치센터가 30일 발표한 보고서 ‘스테이블코인 특화 L1의 부상’은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기존 퍼블릭 블록체인이 제도권 금융 환경의 요구를 충분히 충족하지 못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유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더리움과 트론 네트워크는 모든 거래가 공개되는 구조로 인해 기업의 민감한 거래 정보와 결제 흐름이 외부에 노출될 수 있으며, 거래 확정까지 일정 시간이 소요돼 실시간 결제나 기관 간 정산 환경에는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을 전송하기 위해 별도의 변동성 자산을 가스비로 준비해야 하는 구조는 회계 처리와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마찰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보고서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현재 스테이블코인 유통량의 약 94%가 온체인 금융 내부에서만 사용되고 있으며, 현실 경제에서의 결제 비중은 6%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애초 기대됐던 범용 결제 인프라로 충분히 확장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Circle의 Arc, Stripe와 Paradigm이 공동 개발하는 Tempo, Plasma, Canton Network 등 스테이블코인 특화 L1 블록체인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해시드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염두에 둔 인프라로 Maroo를 공개했다.
이들 네트워크는 공통적으로 BFT 계열 합의를 기반으로 빠른 거래 확정성을 지향하며, 기존 퍼블릭 체인 대비 결제 확정 지연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다.
일부 프로젝트는 수백 밀리초 단위의 거래 확정 시간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지만, 보고서는 이러한 수치가 실제 운영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될지는 향후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프라이버시 측면에서도 기존 퍼블릭 체인과는 다른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보고서는 기관 금융 환경에서는 거래의 기밀성과 규제당국의 감사 가능성이 동시에 요구된다고 지적하며, 이를 절충하기 위한 방식으로 ‘선택적 프라이버시’ 설계가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거래 당사자 외에는 정보 노출을 제한하되, 필요 시 규제기관이나 감사 주체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다만 프로젝트별로 구현 단계에는 차이가 있으며, 일부는 로드맵 또는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는 만큼 규제 요구사항과의 정합성은 지속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언급된다.
가스비 구조 역시 변화하고 있다. Arc는 USDC를, Plasma는 USDT를, Maroo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가스비 자산으로 설정해 사용자가 별도의 변동성 자산을 관리하지 않아도 되도록 설계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던 사용자 경험과 회계 처리상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보고서는 차세대 스테이블코인 특화 L1들이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주요 활용 주체는 서로 다르게 설정돼 있다고 분석한다.
Arc와 Canton은 검증자 구성과 거래 권한 구조를 통해 규제 준수를 인프라 차원에서 강하게 반영하며, 은행과 증권사 등 제도권 금융기관의 고액 결제·정산 환경을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
Canton은 거래 당사자에게만 정보를 공유하는 ‘need-to-know’ 구조를 채택해 일부 제도권 금융기관의 실험적 활용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Maroo는 이러한 접근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국내 규제 환경에 초점을 맞춘 설계를 취하고 있다.
거래를 규제 적용 경로와 일반 경로로 구분하고, 법률 오라클을 통해 규제 정책을 온체인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국내 제도권 결제 환경을 염두에 두고 있다.
반면 Tempo는 대량 트랜잭션 처리와 비용 예측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글로벌 결제 사업자와 커머스 플랫폼에 적합한 구조를 지향하며, Plasma는 소액·고빈도 결제와 해외 송금, P2P 결제 등 리테일 환경에서의 사용 편의성을 우선시하는 설계를 취한다.
보고서는 규제 명확화와 기관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온체인 금융’ 환경이 점차 현실화될 경우, 현재 이더리움과 트론에 집중된 스테이블코인 유동성이 이러한 특화 L1들로 이동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초기 유동성을 확보한 네트워크는 거래 깊이와 가격 발견 측면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으며, 이는 추가적인 유동성 유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달러 스테이블코인 특화 L1의 발전 양상은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될 경우 반드시 참고해야 할 선진 사례”라며 “선택적 프라이버시, 규제 준수, 결제 신뢰성을 위한 빠른 확정 구조, 가스비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국내 온체인 금융 인프라가 해외 달러 스테이블코인 기반 인프라에 종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단순한 기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금융 주권과도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Arc와 Tempo는 테스트넷 단계에 있으며, Plasma와 Canton은 메인넷을 운영 중이다.
Maroo는 라이트페이퍼가 공개된 초기 단계로, 향후 구체적인 구현과 실증 과정이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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