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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에세이] 서울지검 원희룡 검사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202.136) 2007.04.16 11:56:59
조회 2759 추천 4 댓글 1
  제1장 스타트 라인에 서서

  5. 공공의 적과 맞서다 - 서울지검 원희룡 검사


  '괴물과 싸울 때는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악과 싸울 때 악의 모습을 닮아가면 그보다 더 위험한 악의 얼굴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소극적이거나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다. 오히려 모범생일 것 같다는 주변의 선입견에 비추어 본다면 대단히 활달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검사 시절 내 성격의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내가 지닌 본성보다 거칠어지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일을 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피의자들이 용의주도하게 만들어 내는 거짓말의 장벽을 뚫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나는 고슴도치처럼 거칠기만 한 피의자들을 다루기 위해서 상대를 제압하는 카리스마를 가져야 했다.


  검사로서 나의 첫 근무지는 서울지검 형사4부였다. 그곳은 주로 경제사범을 단속하는 부서였다. 내 담당은 금융과 수표였는데 재개발조합 사기 사건, 딱지어음 사건, 다단계 피라미드 사건을 비롯해 경제와 관련된 사건을 맡게 되었다. 한 마디로 소위 사람들에게 들러붙어 피를 빨아 먹는 거머리 같은 사기범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일평생 사기꾼을 만나지 않고 사는 것도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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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곳에서 많은 종류의 사기꾼을 보았다. 대표적인 것이 물건만 납품 받고 가짜어음을 돌린 후 튀어 버린 딱지어음 사기 사건이었다. 피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영세 기업을 하루아침에 주저앉혀 버리는 사건으로 이들은 암말기 환자와 노숙자의 명의를 사서 당좌를 내 거래한 후 고의부도를 내고 도주하는 악질 사기꾼들이었다. 지불능력도 없으면서 어음을 발행하고 그 어음을 유통시키고 부도를 내는 전형적인 사기수법이다.


  "원희룡 검사가 달팽이 엑기스 사업에 동참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갑작스런 전화 문의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피해자가 700명이 넘는 피라미드 사건을 맡고 있을 때였다. 나는 뜬금없이 피라미드 사기범들과 공범이 되어 있었다. 입이 닳도록 '달팽이 엑기스는 가짜이고 그들은 사기꾼이며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난 담당검사일 뿐이다'라고 해명했으나 그들은 별로 믿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당시 맡고 있었던 사건은 피해액만도 250억이 넘는 큰 사건이었다. 피해자들이 진정을 내면서 수사가 시작됐는데 수사를 진행하면서 피해액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일단 장부를 압수해 검토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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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새 장부를 보며 씨름했다. 어떻게든 이 사업방식이 사기라는 것을 증명해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또 똑같은 수법으로 빠져나갈 게 분명했다. 자기들은 돈이 들어오면 돈을 모두 나눠 줬기 때문에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물건은 다 나눠 주고 들어온 자금은 재투자를 했다고 했다.


  장부 추적을 해 본 결과, 돈이 들어와서 배당해 준 걸로 돼 있으나 실제 배당받은 사람은 없고, 배당했다고 주장하는 돈이 같은 날짜에 다른 데로 재투자가 돼 있었다. 결국 돈은 애초에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돈 상자를 보여 주면서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나는 모든 것을 하나씩 입증해 내며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주범들이 구속되고 얼마 후 피해자들에게서 엉뚱한 탄원서가 날아온 것이다. 범인들을 풀어달라는 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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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가 가해자를 풀어 달라니 어이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범인들이 변호사를 통해 다시 한번 피해자들을 속인 사기극이었다. '우리가 구속돼 있으면 당신들 돈은 한 푼도 건질 수가 없다. 하루 빨리 우리가 나가 백화점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돈을 무사히 돌려줄 수 있다'라고 설득한 후 삼백 여 명의 피해자들에게 탄원서를 받아낸 것이다.


  때문에 주범들이 모두 풀려났다. 그들은 사람들을 현혹해 다시 35억을 모았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원금과 이익금을 돌려주겠다. 검찰까지 아는 마당에 우리가 속이겠는가. 원검사도 우리의 사업방식을 납득하고 선뜻 구좌에 가입하기로 했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전화해서 확인해 봐도 좋다' 며 사람들을 회유했다.


  구속되었던 주범들이 다시 풀려나 말하니 깜빡 속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현직검사까지 가입했다고 하니 사람들은 다시 그들을 믿고 돈을 내어 주었다. 며칠 동안 사실 여부를 묻는 전화가 빗발치고 직접 검사실을 찾아오는 사람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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