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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에세이] 부산지검을 떠나던 날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202.136) 2007.04.24 20: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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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스타트 라인에 서서

  5. 공공의 적과 맞서다 - 부산지검을 떠나던 날


  그들은 도무지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서투른 거짓말로 발뺌하는데 급급했다. 수도 없이 마약주사를 맞아 시퍼렇게 멍든 팔을 갖고 있거나 수십 군데의 바늘자국이 보여도 늘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약을 어디서 공급 받았느냐고 물으면 항상 정해진 레퍼토리까지 있었다.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지나가던 버스 안에서 누군가 저를 부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돌아보니 십년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었습니다. 친구가 어떻게 사냐고 묻길래 ‘솔직히 요즘 사는 게 시원치 않다’고 대답했지요. 아, 그랬더니 그 놈이 제게 ‘좋은 약 줄 테니까 기분 풀고 나중에 보자’하면서 웬 봉지 하나를 손에 쥐어 주고 가는 겁니다. 와서 보니 가루가 허연 게 말로만 듣던 히로뽕이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하게 됐습니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모든 진술이 정해진 수순을 밟아 흘렀다. 내가 만일 ‘그럼 그 친구가 누구냐?’하고 물으면 그는 당연하다는 듯 ‘십년 만에 스치듯 잠깐 만났는데 무슨 수로 전화번호를 알겠습니까.’하고 대답했다. 누가 듣더라도 뻔한 거짓말이었다.


 whr_036.jpg



  어차피 말단 조무래기들을 잡아야 아무 쓸모가 없다. 거대한 마약조직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공급책이나 제조책들을 잡아야 했다. 수사관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한 끝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믿을 만한 마약 사범을 이용해 함정수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당장 은행에 가서 개인적으로 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대출 받았다. 그에게 돈을 쥐어 준 후 정해진 날 거래선과 접촉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그는 그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물고기가 던져준 미끼만 먹고 달아나 버린 형국이었다. '가난한 검사의 돈을 떼 먹고 도망간 범인을 잡을 때까지 전부 비상근무를 하라.’는 긴급 명령이 떨어졌다. 며칠 후 그는 붙잡혔고, 결국 돈은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에게 검사의 돈을 떼 먹고 도망갈 담력이 어떻게 생겼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whr_037.jpg



  검사로 일하는 몇 년 동안 다양한 사건을 처리하며 범죄와의 치열한 전쟁을 경험했다. 검사는 내과의사와 비슷해서 건강한 사람을 볼 일이 별로 없다. 학교를 다니고, 학생운동을 하는 동안 경험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폭력과 속임수가 난무하고, 공포와 위험이   평화를 압도했다. 조그만 틈이라도 있으면 속이려 했고, 조금이라도 약하게 보이면 야멸차게 공격해 들어왔다.


  부산지검을 떠나 오던 날 무술 합계 40단의 우리 수사관들은 어린애처럼 눈물을 닦았다. 고생 속에 피어난 우애와 동지애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도 뒤돌아서서 눈물을 흘렸다. 파란만장한 사건의 연속이었던 지나간 날들의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라서였다.  또한 박봉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헌신하며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었던 그들의 정직한 열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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