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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에세이] 아버지는 생계보다 자식이 더 귀했다

운영자 2007.06.22 19:08:23
조회 1752 추천 1 댓글 3

제2장 마라톤에서 배운 것들

  3. 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들 - '아버지는 생계보다 자식이 더 귀했다'


  내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동네에서 농약방을 하셨다. 나는 농약병에 인쇄된 상품명을 보며 처음 한글을 익혔다. 입을 떼자마자 나온 소리가 ‘파라치온’이라는 농약 명칭이었다고 한다. 그러더니 얼마 후에 농약명은 물론이고 가격까지 줄줄 외워 아버지 옆에서 손님들에게 농약을 팔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사건이 발생했다.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내가 농약 창고로 기어들어 가서는 흰 농약가루를 잔뜩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농약으로 분칠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를 본 순간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너무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어버리셨다고 했다.

  농약을 밀가루로 알았던 철부지 아들이 만일 한 줌이라도 그것을 입에 넣었더라면 영락없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아버지는 단호하게 농약방의 문을 닫으셨다. 당장의 생계보다 자식이 더 귀했던 것이다.




  학력고사 전국수석을 하고 ‘제주의 아들’이 되어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적어도 당시에는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서울대 총장님과 법학과 지도교수님이 케이크를 들고 제주도의 부모님을 방문했다. 아무 영문도 모르던 부모님은 귀한 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그런데 총장님과 교수님이 불쑥 아버지의 손을 잡고, 부모로서 올바른 지도를 부탁한다고 뜻 모를 당부를 하시는 게 아닌가.

  아버지로서는 뒤통수에 벼락을 맞는 기분이셨을 것이다. 그야말로 전국수석에 빛나는 훌륭한 아들이 창졸간에 수배를 받고 있는 문제 운동권 학생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내가 학교로부터 유기정학 처분을 받은 후 공단에서 야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던 부모님이 큰 충격을 받았으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군대를 보내십시오. 어차피 다녀와야 할 곳이고, 원 군에게도 그 편이 좋을 겁니다.”

  청천벽력 같은 총장님의 말씀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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