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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에세이] 더 쓰임새 많은 발가락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202.136) 2007.03.21 16:37:28
조회 1561 추천 1 댓글 2

  제1장 스타트 라인에 서서


  1.
첫 번째 풀코스의 경험 - 더 쓰임새 많은 발가락


  다섯 살이 되던 무렵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을 리어카에 싣고 계셨다. 고무신이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희고 검은 고무신을 리어카 한 가득 싣고 아버지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곤 했다. 그때 내가 살던 중문에는 오일장이 있었다. 장날 새벽이면 우리 가족은 어김없이 분주해지곤 했다. 지금은 그때의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족들의 말에 의하면 그날따라 나는 유난히 칭얼대며 리어카에 올라타겠다고 응석을 부렸다고 한다. '야까 야까'하며 리어카 주위를 서성이다가 형이 뒤에서 밀고 있는 틈을 타 리어카 옆으로 얼른 발을 올려 놓았다.


  그 순간, 형과 아버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쳐다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내 오른발이 막 구르기 시작한 바퀴에 여지없이 끼어 들어간 것이다. 발가락이 거의 잘라지다시피 했다. 그 짧은 순간, 피가 콸콸 쏟아졌다고 한다.


whr_006.jpg


  아버지는 나를 업고 뛰기 시작하셨다. '내 귀한 아들이 잘못되면 큰 일이다. 모두 내 탓이야!' 하면서 정신없이 내달렸다. 그러나 제주 시골구석에 병원이 있을 리 만무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버지는 당시 우리가 다니던 교회의 장로님이면서 마을 사람들의 주치의 역할을 하시던 어른에게 달려갔다. 동네에 아픈 분들이 약도 받아 오고 치료도 받곤 하는 자그마한 시골의원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상태라 일단 응급조치부터 해야 했다. 외과용 의료기구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사설진료소인 데다가 수술 경험이 거의 없었던 의원 어른은 그만 내 발가락을 수직으로 세워 봉합을 하고 말았다. 뼈가 좀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어 제대로 된 수술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뒤 아버지는 돈이 없어 재수술을 해주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시곤 했다.


  "나중에 돈 벌면 꼭 네 수술부터 받게 해 주마, 서울에서 젤루 좋은 병원에 가자." 누워 있는 나를 내려다 보시며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러나 집안 형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내 발가락을 볼 때마다 부모님은 가뭄의 논바닥처럼 타들어가는 가슴을 움켜쥐시며 깊은 한숨만 내쉬곤 했다.


whr_007.jpg


  달리기는 튼튼한 두 다리만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다. 발가락이 성한 사람도 장시간 달리다 보면 물집이 돋고 살갗이 벗겨지며 뼈에 무리가 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형적인 발가락을 가졌다고 해서 장시간 달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린시절부터 나의 신체적 콤플렉스였던 구부러진 기형 발가락은 마라톤을 통해 그 자존심이 회복되며 통쾌하게 다시 일어섰다. 사실 그 발가락은 부모가 못난 자식에게 더 마음이 향하듯 다른 발가락보다 늘 관심을 받곤 했다. 평소에도 나는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주 신발을 벗어 발가락을 편하게 해주곤 했다. 이젠 거의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나는 내 못생긴 발가락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다른 발가락보다 더 쓰임새 많은 훌륭한 발가락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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