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의 징계사유는 미귀가 탈영이다.
새로운 소대장전입과 훈련소 동기와 친구들이 보고싶어 목욕외출(주말에 목욕탕 방문 일시 외출) 후 집으로가서 차를가지고 탈영을 했다.
미 귀가 후 입대시 작성한 지인들 가족들에게 연락이 갔지만,
휴대폰이 없던 시절로 약 7일간 귀가하지않았다. 오래되서 어디서 숙식했는지는 모르겠다.
자대 복귀 후 몇일간 관심사병으로 지정되 대기 하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7일간 살다가 나왔다.
유치장 입소할때 속옷을 벗고 항문검사를 하였고, 활동복(그당시 포돌이)을 입고 아무것도 하지않았다.
그냥 앉아있었다. 그떄 음주운전 등으로 들어온 유치인들이 많았다.
일주일 후 자대 복귀.. 또 다시 관심사병으로 지정되어 어느정도 대기 하다가
기율대(충주 경찰학교) 입소 하루전날 보고 받았다.
봉마(부대 배식차)를 타고 충주 경찰학교 입소 하였다.
도착 즉시 오바로크한건 다 떼고, 더블백을 머리에 이고 경찰학교에서 제일높은 기율교육대까지 오리발로 올라갔다.
보급으로 받은 운동화의 앞코가 떨어져 나간게 기억이 난다.
도착 후 더블백 안에 담배, 돈, 반입금지되는 모든걸 다 빼야한다.
난 ...분명 동전이있었는데 안나와서 당황하고 없나보다하고 있었는데...어디선가 떨어져서 대가리박기를 했다..
그뒤로 하루 일과는 목봉체조, 유격훈련, 뛰기, 오리걸음 매일 일과는 이거였다.
의경이라 유격훈련이 몇개인지는 모르나 더 많은 유격훈련이있었다.
목봉은 180키로 짜리였다, 1인 20키로를 드는거지만 중간중간 키작은 친구들이 안드는것처럼 보여 욕을 하면서 훈련에 임했다.
그 당시 입소한 애들은 탈영, 폭행, 강간 등 다양한 친구들이있었다.
그 분위기에 눌려 모두 순한 양으로 변한다.
어느날 야간 집합이있었다 어느 웅덩이에 단체로 알몸상태로 들어가서 앉아 일어서를 반복..매우 추웠다 9~10월 정도 였는데..
아직도 기억이 남는건 나의 거시기가 이렇게 작아질수있다는걸 처음알았고, 거시기 털에 물풀들이 붙어있었다.
여긴 각자의 번호로 불리며 입소 후 번호를 직접 오바로크한다.
밥먹으로 갈떄는 교내 식당을 이용한다. 산에서 내려와 걸어서 또는 오리걸음으로 간다.
팔을 직각으로 펼친구 두세발 전 잰걸을으로 쿵쿵대며 줄을 맞춘후 차렸을 한다.
첨에는 무섭고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다른 교육생들을 의식하며 눈에 힘도 더 주고 더 크게 발을 굴리며 밥을 먹는다.
이것도 짬이라고 여유가생긴다.
째들이 날 무서워하겠지? 뭐 이런생각도 하고, 앞사람과 은근 조용히 얘기도 한다.
밥은 숟가락 하나만 준다. 물컵은 아마 내기억에 우동그릇같은거였다.
뷔페식이 아니였던걸로 기억한다.(당시 21살 .....현 나이 42살)
그렇게 2주동안 미친듯한 훈련을 받고 부대 복귀를 한다.
돌아오고 또 관심사병...
2년 1개월 3주 (당시 2년2개월인데 1주일 줄어듬) 복무하는동안 1주일 탈영, 2주정도 관심사병, 2주 기율대, 2~3주 관심사병
약 2달 정도를 난 그렇게 빡쎄고, 편하게 있었다
당시 부대 내 탈영병은 나 뿐이였어서 큰 문책이나 전출없이 생활하였으며.
추후 차하나( 중대장 운전병) 으로 제대하였다.
기율교육대, 기율대에 대한 2002년 정보가 없어서 올려본다.
내 기억엔 여기가 기율대 막사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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