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12년 4월 17일. 오전 08시 45분, 조심스럽게 컴퓨터를 켠다.
두근두근...
15분뒤면 인생이 결정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었던 경찰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더 이상 할 수 없다. 도저히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질 않다. 명단에 내 이름이 없으면 당분간 외국에라도 나가 있어야겠다.
진정을 하기 위해 늘 썼던 방법으로 글을 썼다.
“괜찮다. 임마. 넌 정말 최선을 다했다. 스스로에게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다. 떨어지더라도 절망하지 말자. 그냥 작년처럼 피식 한번 웃자.!”
다시 차분해진다. 이러는 동안에도 벌써 10분이 지나갔다. 5분전...
아직 안 뜬다.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이미 많이 떨어져봤는데 또 떨어지는거 무섭지도 않다.
가슴이 얼음처럼 차가워진다. 계속되는 경찰교육원 홈페이지 배너 클릭.
드디어 떴다. “경찰간부후보생 61기 최종합격을 축하합니다.” 클릭.
최종합격자 명단 첨부 파일 또 클릭. 거침없다. 이미 떨리지도 않는다.
눈을 감거나 기도도 하지 않았다. 그냥 맡겼다. 나를. 빌어먹을 운명에.
“184번 강현욱”
내 이름이다. “피식!” 그냥 웃었다. 순간 당황했다..
“어! 이게 아닌데.. 내가 생각했던 합격의 순간은 이게 아닌데...”
기쁨의 탄성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지, 아니면 펑펑 울어야 했다. 너무 울어 이미 눈물은 말라버렸다 쳐도 피식 웃고 마는건 쫌 아니다. 자그마치 5년을 기다리던 그 순간인데..
그러나 이미 차가워질대로 차가워진 가슴도 그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그 어떤 뜨거운 것을 막지는 못한다. 그 뜨거운 것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 함께 초조히 기다리던 동생에게 한마디 내뱉는다.
“동생아! 행님 무궁화 달게 생겼다.”
들어가는 글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너무도 운좋게 경찰간부후보생 61기 최종합격생이 된 강현욱이라고 합니다. 먼저 많이 부족한 제가 감히 훌륭하신 후배님들 앞에 건방지게 글을 끄적이게 된 것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양해 말씀 드립니다.
하지만 늘 합격하면 합격수기를 꼭 한 번 써 보고 싶었고 훗날 내가 경찰생활에 찌들어 그렇게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망각할 때, 바로 그때 들추어 볼 작은 기록들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발자취가 후배님들께 작으나마 보탬이 될 수 있으면 하는 소망도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합격수기를 두 파트로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한 파트는 경찰간부후보생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또 한 파트는 제 공부 방법을 과목별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럼 먼저 첫 번째 파트인 “청춘을 불사르다” 편입니다.^^
준비
경찰간부후보생이 되기 위하여 경기대학교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합니다. 입대전에는 필요한 자격증 취득과 운동에 매진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가산점 취득에 필요한 모든 자격증을 완비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전역 후에는 영어 공부에 올인 했었습니다. 가산점 2점이었던 토익 700점을 거뜬히 넘기고, 한자검정능력 3급을 취득함으로써 나중에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를 읽어내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도록 했습니다. 이때 익혀두었던 토익의 점수 따는 스킬 등은 점수 인정기간이 2년이 지나서 다시 시작했을 때 금방 점수를 원위치에 가깝게 올려놓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교 시절에는 검도부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체력관리를 했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여 악과 깡, 절대 포기하지 않는 승부근성을 길렀습니다. 해병대에서 배운 ‘안되면 될 때까지’ 정신은 몇 번의 실패 속에서도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습니다.
이렇게 다져놓은 기초체력은 제가 합격할 수 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네.. 이정도입니다. 공부에 뛰어들기 전 준비는 이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재학중이라면 학교공부에 충실하세요. 학점 잘 받는 사람이 어떤 공부든 잘 합니다. 그리고 즐기십시오. 연애도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그래야 나중에 공부하는데 미련이 남지 않는답니다.
공부 이외에는 어떠한 신경 쓸 일이 없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준비입니다.
도전
2007년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오기 전에는 시험삼아 여름방학을 이용해 2달을 고시촌에 와서 보냈습니다. 나름 예비순환 식으로 필요한 강의(동영상)를 전과목 들어보았습니다. 이때 선배가 각 과목당 최고 강사님과 책을 소개해줬습니다. 그 덕택에 기본서의 경우는 합격때까지 거의 갈아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개강해서 학교생활을 하는 사이 거의 대부분을 잊어먹었습니다. 단지 그 기간은 고시촌의 생활패턴을 익히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신림동에 들어와서는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학원을 갈지 말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오래됐지만 그때 선배가 정해준 최고 강사님의 강의와 교재를 싹 갈아치워야 한다는게 싫어서 학원을 가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과목에 대한 단과 실강의나 동영상 강의만 듣고 종합반 실강의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혼자 공부하면 다른 수험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학원을 다니면 매일 테스트나 모의고사 등 평가를 통한 피드백이 가능한데 그런 것이 불가능합니다.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학원을 갈지, 동영상을 들을지, 스터디를 할지 말지.. 수험생활에 접어들 때부터 수많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고 이제부터 그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수험생 여러분이 혼자 지는 것입니다. 선배가 조언은 해 줄 수 있으나 결정은 여러분이 내려야 합니다. 그것이 힘듭니다. 거기서부터 스트레스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럼 한번 따라가 보실까요? 한 합격생이 걸었던 그 시련의 소용돌이 속을...
방황
1년차로 혼자서 공부하다보니 시행착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56기로 합격한 선배의 조언을 많이 들었으나, 저만의 공부방법을 찾는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잘 공부하다가도 막히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스트레스가 쌓여 며칠씩 공부를 손에서 떼어버리기도 하고.. 가을까지는 그런대로 공부를 계속해 나갔으나 시험이 다가올수록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대로 안되는 것, 그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혼자서 술을 먹어보았습니다. 술을 그닥 즐기지 않아 술자리에서도 많이 자제하는 편인데 그때는 혼자 깡소주를 먹었습니다. 그냥 취하고 싶어서. 모든 것을 잊고 싶어서.. 그러나 잘 안됐습니다. 술먹으면 취하지는 않고 토하기만 하고 속만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았습니다. 좋았습니다. 그것을 보는 동안에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점심먹기 전까지만 보고 공부하자. 저녁먹기 전까지만 보고 공부하자.
그러나 당연히 지키지 않았습니다.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끊기가 싫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 밖의 세상은 저에게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밤새도록 보았습니다. 잠자기가 두려워서. 그래서 밤을 꼴딱 새면 낮에 쓰러져 잡니다. 점심때쯤 잠에서 깨면 당연히 또 공부는 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또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리고 또 봤습니다. 밤새고 늦잠자고.. 시험 보기 전 한 달을 거의 이런 식으로 보냈습니다. 마약에 홀린 듯 했습니다. 자타공인 최고의 성실맨이었던 제가 이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힘들까봐 보약까지 보내주시고 있는데..시험 1주일 전에 갑자기 컴퓨터가 안돼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얼른 잊어버려야 할 세상이 자꾸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야밤에 만화방을 갔습니다. 만화방에서 아침까지 만화를 보다가 방에 들어와 쓰러져 잤습니다. 정말 고시원에서 폐인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냐고 물으시면 바로 ‘당시의 나처럼’이라고 말해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첫 시험은 그냥 흘려버린 시험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채..상처만 떠안은채..
방황은 2년차에도 계속됩니다. 이때는 여자친구와의 이별이 저에게는 엄청나게 큰 타격이었습니다. 여자친구가 잘 참아줬습니다. 제 어린 투정도 다 받아주고 옆에 못 있어줘도 늘 씩씩하게 있어줬습니다. 그러나 역시 연인에게 자주 못 본다는 것은 크나큰 결함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 그만 만나자고 해서 제가 다시 마음 돌려놓고 했기에 그때도 그냥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가 9월 중순쯤 되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당연히 공부가 되질 않습니다. 수험생에게 이별이란 것 정말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새로운 만남을 기대할 수도 없고, 공부하러 들어간 놈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친구들에게 얘기도 못했습니다. 가슴이 아프다는 것,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가슴 언저리가 아팠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그때 차라리 어학연수를 다녀오자고 해서 학교 유학프로그램에 신청을 하고 합격 통보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급작스런 등록금 상승으로 그마저도 좌절됩니다. 또 폐인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50여일을 또 흘려보냈습니다. 아마도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가 이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방황... 제게는 그 방황의 골이 너무 깊어 다 열어 보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경찰간부후보생 합격생인 제게도 이런 방황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요...
재기
슬럼프 기간동안 공부는 안하더라도 하고싶은 것은 하자라는 생각에 검도장에 갔습니다. 그렇게 한달을 운동하고 경기도 대회에 출전하게 됩니다. 근데 그 대회에서 경찰대를 누르고 단체전 우승을 하게 됩니다.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나 같은 쓰레기도 잘하는 것이 있구나'
전혀 엉뚱한 곳에서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 금메달을 방에다 걸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 슬럼프에서 빠져 나올려면 어째야 할까. 벌써 11월인데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내가 공부가 하기 싫은 것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를 풀다가 모르는 것이 나와 생각의 틈이 생기면 딴 생각이 계속 기어들어오고 그러다 보면 책상에서 일어나 버렸습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문제집에 모든 정답을 표시하고 문제집도 기본서처럼 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형법문제를 딱 한 문제 보았습니다. 답을 표시했기에 정답 찾는 스트레스도 없었습니다. 그 한문제가 머리 속에 들어옵니다. 그러니 다음 문제가 궁금합니다. 그렇게 한 문제 한 문제 풀어나갑니다. 어느덧 나의 뇌는 슬럼프를 서서히 덮어버리기 시작합니다.
슬럼프 기간에는 단 1초의 결단으로 책상 앞에 앉고 1분만 책을 보는 전환이 중요합니다.
정말 한 글자도 보기 싫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서든 자신감을 얻고 단 한 순간의 결단으로 그 지긋지긋한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공부가 정말 하기 싫을 때는 아는 문제를 보시고 쉬운 문제를 보십시오. 다 모르겠으면 아예 답을 달고 보십시오. 공부방법을 전환해 보는 것, 그것은 뇌에서 새로운 흥미를 느끼게 하여 다시금 공부모드로 전환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겁니다.
이순신 장군의 일화를 떠올렸습니다. 명랑해전 당시 300여척의 배가 쳐들어 왔을 때 장군이 선조임금에게 올린 표문입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도 장군은 포기하지 않고 생각합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나도 비록 2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포기하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은 기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을까.’
당시 고승덕 변호사의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라는 에세이를 읽고 힌트를 하나 얻었습니다.
‘낮과 밤을 바꾸어 보자’
그때 낮은 나에게 상당히 두려웠습니다. 공부하다가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뛰쳐 나가버렸습니다. 그러나 밤은 나에게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추웠고 나가 봤자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기에..
오후 1시정도에 일어나고 오전 7시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한 일주일 정도를 그렇게 하니 몸이 완전히 적응되었고 공부에 탄력이 붙었습니다. 저녁먹고 12시 정도에 간식만 살짝 먹었는데 일단 속이 편안했고 밤의 그 고요함은 집중력을 배로 늘렸습니다. 쉬는시간을 10분씩 두었는데도 별로 쉬고 싶지 않았습니다. 서늘한 기운 탓인지 공부하는데 그렇게 체력소모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밤의 적막함 속에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단지 책이었습니다. 책속의 세계로 빠지는 느낌. 그 당시의 집중력은 아마 수험기간 중 최고였을 것입니다. 남은 기간은 그렇게 보냈습니다.
‘단 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한다.’
도약
두 번째 시험에서 비록 떨어졌지만 객관식에서 커트근방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가 이렇게 만약 1년차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1년을 더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그랬더라면 2년차때, 자신감과 함께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출발 할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1년차 수험생이시라면 끝까지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니면 그 다음해도 또 떨어집니다. 그리고 더 짜릿한 것은 운이 좋으면 1년차 그대로 합격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명심하십시오.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떨어지십시오. 분명히 얻는게 많습니다. 어차피 떨어질 거 좀 쉬자는 생각은 정말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래서 저의 진짜 공부는 3년차때부터인거 같습니다.
<계획>
전번 시험에 정말 최선을 다하고 떨어지면 결코 바로 시작하지 못합니다. 바로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온 힘을 다하지 않았거나 시험 전에 미리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경우입니다. 제가 1년차때 그랬으니까요..
저는 보통 떨어지면 한두달은 푹 쉬었습니다.
계획은 항상 1주일 단위로 했습니다. 일주일 중 6일을 공부하고 일요일에 쉽니다. 그리고 잡다한 일과 약속들은 일요일로 몰아버리고 토요일까지는 무조건 12시간을 공부했습니다.
공부와 1시간 운동외에는 결코 다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핸드폰도 공부 시작할 때 꺼놓고 했습니다. 하루하루 목표량을 정하고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오버하지 않았습니다. 정해진 12시간안에 끝내려 노력은 했지만 어쩔 수 없을 때는 다음날로 넘겼습니다. 하루 분량을 채우려고 잠을 줄이고 하다가 리듬이 틀어지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단, 1주일분량은 반드시 채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요일을 비워둔 것입니다. 혹시 밀렸다면 일요일에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저는 일요일에 쉬기 위해서 6일동안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달콤한 휴식, 친구들과의 만남, 그리고 다음주의 계획.
주관식은 하루에 2시간 반정도 투자 했습니다.
하루하루 다이어리에 적어놓은 계획을 마치면 싸인을 했습니다. 싸인하는 성취감도 있어서 싸인하기 위해 또 열심히 했습니다.
<생활>
방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 때문에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방에서 하면 눕고 싶지 않냐구요? 일단 잠은 6시간이상 충분히 잤습니다. 간혹 수험생활은 잠과의 싸움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소리입니다.
진정한 고수는 싸우지 않고 이깁니다. 전 잠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낮잠을 꼭 잤기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방에서 공부하는 최대의 이점이라면 온도조절이 자유자재라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서늘한,, 약간 추울정도의 온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니 잠이 올 턱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잠이 올 때는 그냥 잤습니다. 졸면서 공부하는 것, 괜한 시간낭비입니다. 하나 더, 서늘한 온도는 체력소모를 최소화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름에 운동하는 것과 가을에 운동하는 것 어느 것이 더 힘든가..
카운트다운이 되는 수험용 시계로 80분씩 끊어서 공부했습니다. 80분이라는 숫자는 이리저리 나누기가 편합니다. 40,20,10. 그리고 12시간을 공부하기로 했을 때 80분짜리를 세 번 돌리면 네시간, 아홉 번 돌리면 12시간이 나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우리 객관식 시험 시간이 80분이라는 사실. 80분이라는 시간에 익숙해지시길 바랍니다.
-하루일과표-
06:30-07:30 기상, 세면, 조식
07:30-08:50 주관식
09:00-10:20 주관식
10:30-11:50 복습
11:50-12:30 중식
12:30-13:50 객관식
14:00-15:20 객관식
15:30-16:50 객관식
17:00-18:20 객관식
18:20-19:00 석식
19:00-20:20 객관식
20:30-21:50 객관식
22:00-23:00 운동
12:30 취침
낮잠 시간이 없는데 그것은 10분짜리 휴식을 끌어다 썼습니다. 그래서 중식 후 한 타임 돌리고 20분정도 잤습니다.
하루에 80분짜리 9번을 돌리기만 하면 됩니다. 꼭 위 일과표에 맟추지도 않았고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응가가 오래 나올 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짜놓으면 허점이 무엇일까요? 그냥 시간 때우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가지 장치를 더 해 놓습니다. 매80분마다 할 분량을 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벽에 매달 성과표를 붙여놓고 목표를 달성하면 ‘O’ 실패하면 ‘X’를 표시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공부 성과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계속 엑스네.. 이번 타임에 두고보자...’
‘아, 오늘은 부족했구나.. 내일 더 분발해야지...’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이번 타임에 할 것, 오늘 하루에 할 것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시험이 다가와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11월달부터는 운동을 빼고 공부시간 한 타임 더 집어넣습니다. 13시간 20분.
12월에도 한 타임 더 집어넣습니다. 14시간 40분.
1월부터는 주별로 시간을 조금씩 더 추가합니다. 그래서 시험 마지막 주에는 16시간을 공부했습니다.
<스터디>
2년차때 잠깐 스터디를 해 본 이후로 스터디는 하지 않았습니다. 맟추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그냥 따라가야 했고 내 위주의 공부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위 방법 등을 통해서 스스로의 통제가 가능했기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불안요소가 따르는 스터디는 저에게 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스터디의 장점도 많이 있습니다. 일단 한 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판단하세요. 자신이 스터디가 맞는지 안 맞는지를요. 실패를 두려워 마십시오. 저 같은 경우는 스터디를 해보았기 때문에 이후에도 스터디를 안 하는데 대한 후회는 없었습니다. 단, 절대 ‘난 안 맞다’고 지레 짐작으로 처음부터 겁먹고 회피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week point>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습니다. 저에게는 살짝 예민하고 감정적인 성격과 완벽주의자적 기질, 집중력 저하, 그리고 소화기능이 원활하지 못한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다른 수험생들이 겪지 않는 고통으로 신음했습니다. 수험기간 중 정말 안 가본 병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딱히 병명이 나오거나 한 적도 없습니다. 오랜 수험기간 중 극도의 스트레스가 나를 아프게 한 것입니다. 병명이 없으니 치유방법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얼마전 마지막으로 간 병원은 제 모든 아픔을 씻었습니다. 바로 아산 경찰교육원입니다. 여기저기 쑤시고, 결리고, 두통, 치통, 안구 건조, 소화불량 모든 아픔들이 한 번에 나았습니다.
합격이 바로 만병통치약이었던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이러저러한 약점들이 장애물로 생각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지그시 밟고 지나야 할 걸림돌 정도로만 느꼈습니다. 바로 목표에서 절대 눈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목표를 향한 눈빛만은 결코 떨구어서는 안됩니다. 장애란 여러분이 목표에서 눈을 뗐을 때 그 때 비로소 보이는 것입니다.
An obstacle is something you see when you take your eyes off the goal.
치유
정말로 최선을 다하고 떨어지면 그 충격은 엄청납니다. 3년차 이후에는 어느정도 합격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객관식 1문제 차이. 주관식에서 남들이 못쓴 단문도 나는 완벽하게 아는대로 다 썼는데 채점도 못 들어갔습니다. 주관식 채점만 들어갔어도 분명 승산이 있었습니다. 4년차에도 마찬가지구요. 생각하기도 싫은 그 절망감, 심장을 파고드는 좌절, 공허함, 자기비하, 열등감, 패배주의, 비관주의, 외로움, 한꺼번에 짓누르는 이 모든 것들의 무게는 작은 제 어깨가 감당하기 너무 버거웠습니다.
여행을 떠납니다.
한 번도 안 가봤던 제주도. 일주일 동안 올레길을 근 150킬로 가까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이 길 끝에는 답이 있을까..?’
푸른 파도 소리와 수줍게 움튼 새싹은 봄이 이제 오고 있음을 알리는데 전 여전히 혹독한 겨울입니다. 매서운 바람이 눈가의 눈물을 확 한번 훝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문득 어떤 소리가 들렸습니다..
‘천천히 가라.. 그러면 더 많이 볼 수 있다.’
잔잔하던 그 소리는 이제 가슴속에 펑펑 울립니다. 천천히 가니 모든 것이 보입니다.
파도의 빛깔을 보셨는지요? 전 파도가 항상 파란색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파도는 분명 에메랄드 빛깔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겨울에 뜯기어 앙상한 나무가짓 속 한 둥지에 숨어있는 새끼 새를 보았습니다. 바위 틈새에서 눈치를 보며 엉금엉금 기어나오는 가재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서두르면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렇구나, 결코 늦은 게 아닌데 내가 너무 조급했구나. 더 많이 보고, 배우고, 느끼자꾸나.’
지리산을 갔습니다.
3월이지만 지리산은 아직 겨울이었습니다. 아직 대부분의 산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었고 평일이라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리산 첩첩산중에서 혼자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칼바위 코스로 올라가면 급경사긴 하지만 시간이 적게 걸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코스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장터목 코스는 완만한 대신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눈길에서는 보통 이 코스로 하산합니다. 그러나 저는 바보같이 거꾸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훨씬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코스로..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속에 숨어있던 계곡얼음에 미끌려 앞으로 그대로 고꾸라집니다. 바닥에 뺨을 쳐박혔습니다. 마치 주먹으로 맞은 것같은 충격이 왔습니다. 일어나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의식을 잃으면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얼어 죽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다시 일어납니다. 그리고 한발짝 한발짝 떼어놓습니다. 10미터 가고 쉬고 10미터 가고 쉬고.. 그러기를 수십차례. 드디어 드디어 장터목 대피소가 보입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아~ 살았다...’
대피소에서 충분히 쉬고 다시 천왕봉으로 짓쳐 올라갑니다. 이제부터는 거의 능선을 타고 가는 코스라 힘들지 않았습니다. 근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그렇게 괴롭히던 눈들이 이제는 저 아래에서 절경을 연출하고 있었다는 사실...
천왕봉에서 시계를 보니 2시가 조금 안 되었습니다. 10시쯤 오르기 시작했는데 소요시간이 4시간 반인걸 감안하면 금방 올라왔습니다. 나는 그렇게 늦은 줄로만 알고 좌절했었는데..
이제부터 또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산길은 칼바위코스, 즉 짧은 코스로 내려 왔는데 2시간이 채 안 걸렸습니다. 내려오자마자 버스를 탔습니다. 지금부터 5개의 차를 타야 합니다. 버스 두 번, 지하철 두 번, 셔틀버스 한 번, 총 다섯 번을 갈아타는데 놀랍게도 합해서 단 1분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차는 저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문을 열고 있다가 제가 타자마자 출발을 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7시도 안되었습니다. 부산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여 2시간 반이 걸리는 중산리에서 입산, 1917m의 천왕봉을 찍고 12시간도 채 안돼 부산 집까지 도착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지리산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무리 늦다고 생각 하더라도 경위로 처음 임관하는 것, 결코 늦은 게 아닙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기적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네 인생이 그래서 짜릿한 걸지도 모릅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제가 지리산 중턱에서 넘어져 포기했더라면 그런 기적은 보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수험기간 도중 포기했다면 이렇게 합격수기를 쓰는 기적은 없을 것입니다.
수험기간 중 수많은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다들 성공비법은 제각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무슨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실패는 능력이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부디 조금만 더 인내하십시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우실 겁니다. 그러나 당당히 합격하여 그 세상에 우리 아름다운 균열을 내주는 건 어떤가요. 우리 같이 그 세상에 로킥 한방 먹여 주자구요.^^
‘절망이라는 이빨에 심장을 물어 뜯겨 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
비상
필기 시험 이후 저는 떨어진 줄로만 알았습니다. 민총 50점짜리 사례를 거의 못 썼기 때문입니다. 모범답안과 비교해 과정도 결론도 틀렸습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땀이 나서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포자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종결과는..
형소: 87.5 민총: 64 국사: 87.5 형법: 90 행정학: 95 경찰학: 65 총점: 489점
커트라인이 430점대였던것에 비하면 50점이 넘게 높았습니다.
물론 당락이었던 체력도 평균보다 월등히 높게 나왔습니다.
합격자 발표 후 수십통의 축하전화를 받았습니다. 거의 하루종일 전화를 받았습니다. 밥도 제대로 못먹을 정도로. 나는 무덤덤한데 모두들 나보다 더 기뻐해 주었습니다. 나대신 울어주는 이도 있었습니다. 제가 한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냥 그들처럼 늘 못난 저를 응원해 주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조금이나마 그들에 보답할 수 있어 기쁩니다.
하고 싶던 검도를 다시 하고, 기타를 다시 치고, 보고 싶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보고 싶던 책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행도 이제는 언제라도 떠날 수 있습니다. 글도 마음껏 쓸 수 있습니다. 참!! 사랑도 이제는 다시 하고 싶습니다. ^^
오랫동안 번데기였던 제가 이제 서서히 날개를 펼치려 합니다. 그러나 함부로 날아오르진 않겠습니다. 서서히 겸손한 날개짓을 하려합니다.
후배님들께서는 저보다 훨씬 더 크고 찬란한 날개를 가지고 계십니다. 단지 잠시 감추어져 있을 뿐, 제게는 그 날개들이 보입니다. 이제 곧 그 날개를 펼치십시오. 그리고 저 창공으로 날아오르십시오. 하늘이... 저 넓은 하늘이 여러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치며
후배 여러분, 여러분의 당장의 꿈은 합격이시겠죠? 그렇다면 그 꿈을 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꿈을 버리지 않는 한 꿈은 결코 여러분을 버리지 않습니다. 강해지십시오. 지금 가장 강해질 수 있는 길은 경찰간부후보생에 합격하는 것입니다. 지위도 높고, 명예도 있고, 돈도 많아야, 그렇게 내가 강해야, 내가 강해져야, 남들도 더 많이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디 꼭 합격하십시오.
저는 지금까지 봄을 몰랐습니다. 고시촌의 봄은 언제나 추웠습니다. 그러나 여기 아산 경찰교육원에서는 봄이 보입니다. 개나리도 보이고, 벚꽃도 보이고, 목련꽃도 보입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건 61기 후보생들의 어깨위에서 빛나고 있는 무궁화입니다.
후배 여러분들도 이제는 그 꽃을 피우셔야지요. 그러나 지금은 잠깐만 가슴속에 품고 계십시오. 가만히 가슴 속에 소중히 품고 온 힘을 다해 공부에 매진하십시오. 젊은 청춘을 온통 불태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꽃은 피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열정과 끈기, 노력, 그리고 소망이 비로소 가슴속의 그 꽃을 여러분의 어깨위에서 활짝 피게 할 것입니다. 내년 이맘때 또 다른 무궁화 꽃내음으로 흠뻑할 이곳 경찰교육원을 기대하며 진심으로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기를 기원합니다.
아산의 상쾌한 아침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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