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15년만에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들기 전에, 다리 힘이 남아 있을 때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대회 참가 버튼을 누른 게 화근이다. 참가비를 무려 6만원씩이나
내고 말이다. 그게 5달 전의 일이다. 정신차려 보니 이미 결제가 끝난 뒤였다.
마라톤이란 걸 뛰어본 게 언제였던가. 15년 전에 반짝 몇 번 뛰어본
게 전부다. 아들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매년 우리 가족의
올해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해는 가족 전체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게 목표였다. 어떤
해는 등산을 해보자 해서 강화도 마니산을 시작으로 유명한 산 십여 개의 정상까지 오르기도 했다. 아무튼
앞으로 남은 다섯 달의 기간 동안 무얼 해야 하나 생각해보니 15년 전 마라톤(이라고 해봤자 10km에 불과했지만)
몇 번 해보고 살만 쪄온 몸이라 대책이 시급했다. 거의 초보나 다름없는 ‘런린이’ 그 자체다.

광화문 어스마라톤 출발 대기선
젊었을 때야 아무 준비없이 당일에 갑자기 뛰어도 1시간 이내로 들어오긴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뛰었다간 골로 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다섯 달 전부터 열심히 몸 만들기에 돌입했다. 우선 체중부터 빼야 했다. 85kg이 넘는 육중한 몸으로 뛰었다간
무릎 관절이 괜찮을 리 없다. 그래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매일 걷는 연습부터 했다. 시나브로 체중이 빠지기 시작해 다섯 달만에 12kg 정도를 감량했다. 그리고 처음엔 걷다가 두 달 전부터는 매일 2~3km씩 뛰기 시작했다. 주말엔 5km와 10km를
뛰었다. 아내도 이런 나를 위해 마라토너들이 신는다는 나이키 러닝화를 기꺼이 사주었다.
드디어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9월
21일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그 전날 비가 내렸는데 그날은 하늘도 구름이 군데군데 있어
덥지 않고 날씨도 가을 날씨처럼 뛰기에 너무 좋은 날이었다. 하프 코스는 7시 30분 출발이고 10k는 8시 30분 출발이다. 8시까지
집결해달라고 했는데 소풍 가는 날 설레어 일찍 잠에서 깨듯 새벽 5시에 일어나 일찌감치 집에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출발지인 광화문에 도착한 시간이 7시쯤이다. 벌써 사람들이 인산인해다. 공식 명칭은 어스마라톤(Earth Marathon)이다. 세계자연기금(WWF)이 기후위기 대응과 자연보전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취지로 올해 처음 생긴 마라톤이다.

어스마라톤 포스터

어스마라톤 코스
그래서 친환경 러닝 패키지가 제공됐다. 티셔츠는 폐 페트병을 리사이클링해
만든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품 보관 가방 역시 일회용 비닐재질이 아닌 재사용 가방으로
제작됐다. 참가 번호가 적힌 배번호도 친환경 종이라는 데 문제는 코팅이 되어 있지 않아 이 대회의 가장
큰 문제가 됐다.
달리다보니 땀에 젖어 옷핀으로 고정한 부분이 떨어진 사람이 다수 발생했다. 나
역시도 7km쯤 달릴 때 배번호가 덜렁거려 옷핀을 다시 꽂느라 페이스를 놓치는 어이없는 사태도 있었다. 결국 배번호는 떨어져 팔뚝에 매단 핸드폰 주머니에 넣고 달려야 했다. 땀에
젖어 도로에 떨어진 배번호도 없이 달린 러너는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친환경 대회 답게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면 대회 규정에 따라 실격 처리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5km 이후 급수대 부근의 바닥에 버려진 엄청난 종이컵에 아연실색을 했다.
10km 구간은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서대문, 충정로, 마포대교, 서강대교, 여의대로, 여의하류IC, 여의도공원
북단을 거쳐 KBS 앞까지 달리는 코스다. 정확히 10km가 아니고 10.034km다.
34미터를 더 달려야 하는 거리라서 기록도 약간 손해 본 느낌이다.
마라톤 열풍이라 그런지 젊은 참가자들이 엄청 많았다. 여자들은 짧은
레깅스 반바지는 기본이다. 패션쇼를 방불케 했다. 출발해서 5km 정도까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뚫고 앞으로 전진하는 게 힘들 정도였다.
코스를 다시 복기해보면 결코 쉽지 않은 코스다. 광화문에서 서대문, 충정로를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이어 무난히 가다가 마포역을
지나 마포대교 올라서기까지는 경사가 가팔라진다. 이 부분에서 걷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마포대교는 다리가 이렇게 길었나 싶을 만큼 꽤나 길게 느껴졌다.
여의도에 들어서 순복음교회 앞에서 고수부지로 내려간다. 짧은 터널이
두군데 나오는데 목소리가 울리는 곳이라 너도나도 파이팅~구호를 연발한다. 1km 정도를 남겨두고 길 좌우로 쓰러진 사람들도 몇 보인다. 나
역시도 9km 구간 정도에서는 발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뛰는 듯한 느낌도 들어다 그리고 KBS 사옥 근처에서 마지막 오르막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전력질주다.

어스마라톤 메달

공식 기록은 1시간 39초다.
오르막을 올라서고 왼쪽으로 꺾자마자 마지막 골인 지점이 보인다. 왼편에 10km 타이머가 보이는데 1시간
12분을 넘어서고 있다. 공식 기록증이 없는 관계로 D조를
부여받아 A조부터 D조까지
5분 단위로 잘라서 뛰었으니 1시간 내로 들어왔겠거니 생각했다. 앱에서는 1시간 9초가
나왔다. 하루 뒤에 나온 공식 기록증에서는 1시간 39초였다. 너무 아쉽다. 조금만
더 뛰었더라면 1시간 안으로 들어왔을텐데. 아마도 배번호를
옷핀으로 고정하느라 페이스를 늦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간발의 차이로 목표에는 몇 초 미달했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기록을
세우려고 마라톤을 참가한 것이 아니고, 건강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한 번의 마라톤이 더 남아 있다. 처음에 생각 같아서는 10k 마라톤을 몇 번 더 뛰고 하프 마라톤에 도전해볼까도 생각했지만 10km
마라톤을 뛰어보니 하프는 엄두가 안 난다. 언감생심이다.
나와의 싸움은 10km 정도가 딱 적당하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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