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한아름 기자] 이건 초유의 행정 대란이다. 지난
26일 대전에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단순한 설비 사고가 아니었다. 리튬이온
배터리 폭발로 시작된 불은 서버실을 집어삼켰고, 정부 전산망 647개
서비스 중 40%가 중단됐다. 이에 따라 주민등록 확인, 부동산 거래, 여권 발급, 우체국
택배와 금융, 지방세 납부에 이르기까지 국민 생활과 직결된 서비스가 동시에 멈췄다. 행정은 마비되고 시민 불편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같은 재난이 ‘예견된 사고’였다는 점이다. 2022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때 이미 드러난
문제, 즉 ‘백업 시스템의 부재’가 3년 만에 똑같이 반복된 것이다.
정부는 민간기업에는 혹독한 매를 들었지만 정작 스스로의 치부는 감추는 데 급급했다.
이번 화재는 세 가지 중대한 취약성을 드러냈다.
첫째, 노후 설비다. 문제의 UPS 배터리는 설치된 지 10년이 지나 권장 수명을 초과했다. 기술적 한계를 알면서도 교체 대신 사용 연장을 택한 결과가 대형 화재로 이어졌다.
둘째, 백업 부재다. 정부는
데이터센터 이중화와 백업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즉각 전환 가능한 ‘실시간
재해복구(DR)’ 체계가 없었다. 민간에 이중화를 요구하던
정부 스스로가 허술한 관리에 매몰돼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셋째, 비용 우선의 정책 실패다. 국회
보고에 따르면,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던 ‘동작-동작(Action-Action)’ 방식의 DR 체계는 예산 부담 때문에 도입이 미뤄졌다. 대신 상대적으로 값싼 ‘동작-대기(Action-Standby)’
시스템만 부분적으로 적용됐다. 결과적으로, 예산
절감이 국가적 손실로 돌아왔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프로세스는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됐다.
정부는 지난 20여년간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디지털 정부’라고 큰소리 쳐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 구호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정부24, 주민등록, 나라장터 등 핵심 서비스가 순식간에 멈추면서 국민은 불편과 불안을 감내해야 했다.
특히 추석 연휴를 앞두고 우체국 업무가 마비되자 사회적 파장이 컸다. 단순한
전산 오류가 아닌, 정부 내부 결재망까지 멈추며 행정 기능 전체가 사실상 멈춰 섰다. 국가 핵심 인프라가 이렇게 취약한데도 “디지털 선진국”을 자랑해온 현실은 씁쓸하다.
사실 정부는 ‘공주센터’를
통해 재난 대비 3중 체계를 구축하려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착공 지연, 예산 부족, 행정적 차질로 18년째 개소조차 못 하고 있다. 건물은 2023년에 완공됐지만, 전산 환경 이전은 계속 미뤄졌다. 만약 공주센터가 정상 가동 중이었다면, 이번과 같은 행정 대란은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정부는 사고 때마다 임시 처방을 내놓고,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했다. ‘카카오 먹통’ 사태도, 2023년
전산망 장애도 교훈으로 삼지 못한 채 이번 화재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 정보 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순한 사과와 약속으로는 부족하다. 국가 전산망은 행정 지원을 넘어 국가 안보와 국민 생활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다.
전문가들은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첫째, 재해 복구 체계 전면 개편이다. 실시간 이중화(Active-Active) 시스템을 의무화해, 어느 한쪽이 멈춰도 즉각 다른 장치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설비 교체 주기 관리다. 노후 UPS·배터리 등 핵심 장비에 대한 교체 주기를 법제화해 안전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셋째, 백업 센터 조속 개소. 공주센터
같은 대체 시설을 더 이상 지연하지 말고 조속히 가동해 다중 안전망을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위해 안정적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비용 절감 논리에
흔들리지 않도록 재난 대비 예산을 국가적 ‘필수 비용’으로
분류해야 한다.
이번 화재는 단순한 기술 사고가 아니라, 국가 정보 관리 전반의 구조적
실패가 빚어낸 총체적 위기다. 여야 정치권이 서로 책임 공방에 몰두하는 사이, 국민의 불편과 불신은 커지고 있다.
재난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가
기능을 지켜내는 체계는 정부의 책임이다. 이번 사태를 또 한 번의 “땜질
대책”으로 봉합한다면, “세계 최고 디지털 정부”라는 구호는 공허한 수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책임 공방이 아니라, 실질적 재발 방지와
제도 개혁이다. 이번 위기를 국가 전산망의 근본적 신뢰 회복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가, 디지털 정부의 미래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다.
<catchrod@reviewtimes.co.kr>
<저작권자 ⓒ리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view_times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