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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갤 칼럼] "도망치면 하나, 전진하면 둘"

긍정(111.118) 2023.05.29 15:30:08
조회 2925 추천 79 댓글 22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모든 경기에 출장했다. 매 타석마다 풀스윙으로 승부에 임했다. 


19번째 타석까지만 해도 썩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다. 16타수 3안타 5삼진 타율 1할 8푼 8리에 그쳤다. 토요일 경기부터는 선발 라인업에서도 제외됐다. 연패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코치진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20대 후반의 유망주 대신 비싼 비용을 들여 영입한 고참 선수들을 신임했다. 보름 전 끝내기 쓰리런의 주인공은 이렇게 벤치 워머로 전락했다. 


스무 번째 타석. 5연패까가 코앞인 8회말 두 점 차 이사만루. 내야를 넘기는 단타 하나면 동점도 가능했다. 반면 장타를 노렸다가 맥없이 아웃을 당한다면 이틀 연속으로 부여받은 대타로서의 입지마저 위태로울지 모른다. 냉정히 말해 임지열은 그런 위치의 타자였다. 만 28세. 세는 나이로 계산하면 내년에 삼십 대에 접어드는 나이. 고등학교 졸업 직후 억대 계약금을 받으며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었던 거포 유망주였으나, 프로 10년 차인 올해까지 1군 94경기 출장에 그쳤다. 265번 타석에 들어서는 동안 단 세 번 넘겨본 외야 펜스를 노리는 대신 방망이를 짧게 고쳐 쥐는 편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임지열은 지난주의 스무 번째 타석이자 마지막 타석에서도 변함없이 풀스윙으로 일관했다.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으로 빠지는 초구를 지켜본 임지열은 몸쪽 높이 들어오는 공에 힘차게 방망이를 돌렸다. 헛스윙, 원 스트라이크. 130km/h의 느린 포크볼이었기에 단타를 노렸다면 안타가 됐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임지열의 왼손은 여전히 노브(배트 끝 손잡이 부분)를 감싸 쥐었다. 3구째 변화구를 침착하게 흘려보낸 임지열은 4구째 승부에서 다시 한번 망설임 없이 스윙했다. 낮게 제구된 빠른 공이 어퍼 스윙에 걸려 외야 정중앙으로 날아갔다. 타구는 힘을 잃지 않고 쭉쭉 뻗어간 끝에 고척 스카이돔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넘어갔다. 두 점 차로 끌려가던 경기를 두 점차 리드 상황으로 뒤집는 역전 만루홈런이었다. 


이 타석 전까지 0.712에 불과했던 임지열의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는 순식간에 0.790으로 치솟았다. 규정타석 소화 여부를 따지지 않았을 때 이번 시즌 키움 타자들 중 두 번째로 높은 숫자다. 3할 8푼 3리에 불과했던 장타율 또한 단숨에 4할 4푼 3리가 됐다. 승부에 있어서도, 자신의 성적에도 결정적이었던 한 방을 위해 임지열은 지난 19타석을 희생했다. '홈런 타자 임지열'을 향해 전진하고 전진한 끝에 팀의 승리와 자신의 성적 모두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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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2003년 56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던 이승엽은 그해 약 10.64타석당 하나의 홈런을 터뜨렸다. KBO리그에서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봤을 때의 타석 당 홈런 비율은 5.65%.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홈런 타자조차 하나의 홈런을 위해 약 열아홉 타석을 희생했다는 뜻이다. 현역 KBO리그 선수 중 최고의 홈런 타자인 박병호는 2011년 자신의 커리어 첫 단일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터뜨리기 전까지 4년간 732타석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는 2010년까지 30.5타석당 하나의 홈런을 쳐냈다. 


대부분의 구단들은 성과가 일천한 거포 유망주의 한 방을 위해 1군에서 수십 타석씩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홈런을 기다리기에는 눈앞의 1승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운이 나쁘면 1군 콜업 이후 벤치만 달구다가 대타로 몇 타석 나선 다음 2군행 통보를 받을 수도 있다. 어쩌다 한 시즌 내내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세 자릿수 타석의 기회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다음이 문제다. 수십 개의 홈런과 함께 리그에서 알아주는 강타자로 자리 잡지 못했다면 이듬해 곧바로 1군과 2군을 오가는 신세가 될 수 있다. 


프로의 세계에서 시간은 대체로 유망주의 편이 아니다. 20대 초·중반을 넘기는 순간 '거포 유망주'의 타이틀은 닳아 떨어지는 대신 '노(老)망주'라는 오명이 붙고 만다. 그 사이에 구단의 지명을 받고 들어온 후배 중에서는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하는 파워 히터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수의 거포 유망주가 이번에 찾아온 기회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선수 생활 내내 길게 잡았던 방망이를 짧게 쥔다. 다음 날에도 1군에 남아있기 위해 단타를 노린다. 누구든 충분히 고를 법한 선택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그들의 '거포 타자'로서의 가치를 갉아먹을 뿐이다. 


임지열은 단 한 번도 '거포 타자'라는 정체성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왔던 2019년에는 13번의 아웃 중 7번을 삼진으로 당할 만큼 과감하게 방망이를 돌렸다. 이는 2020년에 1군에서 단 한 타석의 기회를 받는 결과로 이어졌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2021년에도 꾸준히 삼진당했다. 프로 9년 차인 지난해가 되어서야 1군 40경기 79타석 만에 개인 통산 첫 홈런을 신고했다. 다음날부터 정규시즌이 끝날 때까지 116타석 동안 하나의 홈런도 추가하지 못한 채 35개의 삼진만을 당했다. 결국 포스트시즌부터는 주전에서 대타로 입지가 줄었지만 그의 방망이는 여전히 커다란 궤적을 그리며 돌아갔다. 돌고 또 돌아서 포스트시즌에만 세 개의 홈런을 만들었다. 매 순간 도망치지 않은 것에 대한 늦은 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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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올해는 지난가을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주전 1루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개막 직후 6경기서 7푼 7리의 타율에 그친 뒤 2군으로 말소됐다. 그가 키움 대신 고양이라는 글자를 가슴팍에 달고 뛰었던 한 달 사이에 구단은 트레이드로 베테랑 내야수 이원석을 영입했다. 원래도 불안했던 임지열의 입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줄어들었다. 1군 복귀 직후 두 경기서 주전이 아닌 대타, 대주자로 경기에 출장했으니 말이다. 


그러든 말든 임지열은 여전히 장타를 노렸다. 시즌 타율이 6푼 7리에 불과해도 대차게 스윙했다. 이번 선발 출장이 정말 마지막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진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이 타석에 임했다. 그러다 보니 시즌 2호 안타를 2루타로 만들었다. 시즌 첫 타점은 역전 끝내기 쓰리런으로 추가했다. 매일 홈런 스윙을 하는 상황에서 타격감이 올라오다 보니 다음 날에도 홈런포를 가동했다. 임지열은 현재까지 거포 타자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며 1군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눈앞의 상황이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도망친다면 '실패하지 않았다'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위기에 굴하지 않고 전진한다면 설령 눈앞의 승부에서 이기지 못해도 실패를 통한 경험과 다음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하고 싶은가? 여기 키움 히어로즈의 우타 거포 1루수 임지열이 그라운드 위에서 전진의 미학을 몸소 증명하는 중이다.





고고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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