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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션] 불꽃 왕국 - 11

치즈드래곤(119.201) 2014.06.29 02:06:59
조회 251 추천 17 댓글 1



   [불꽃 왕국 - 1]


   [불꽃 왕국 - 2]


   [불꽃 왕국 - 3]


   [불꽃 왕국 - 4]


   [불꽃 왕국 - 5]


   [불꽃 왕국 - 6]


   [불꽃 왕국 - 7]


   [불꽃 왕국 - 8]


   [불꽃 왕국 - 9]


   [불꽃 왕국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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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각. 또각.



   계단 위로 발을 올릴 때마다, 밑에서부터 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눈 앞엔 오직 내 오른손에서 조용히 일렁이는 진홍색 불꽃뿐,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헛디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계속 지내왔던 다락방. 이미 계단 수 까지 외우고 있다. 정확히 열 아홉개. 그리고 지금 내가 디디는 게 열 여덟번째이다. 한 걸음 더 올라가자, 어둠을 향해 나아가는 나를 발치에서 방해하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른팔을 좀 더 앞으로 내민다. 은은한 불빛이 칙칙한 다락방 내부를 가득 비춘다. 주위엔 오랫동안 보아왔던 낯익은 물건들이 희미하게 여럿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하나 하나마다 추억의 아련한 냄새가 깃든 것들. 모두 가져가고 싶지만, 그러기엔 그 수가 너무 많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탐색해 본다. 나머지는 모두 버려두고 떠나야한다.


   왼쪽 구석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다가가보니, 주먹만한 유리 공이다. 꽤 두껍고 탁한 유리로 이루어진, 지금은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공. 조용히 그것을 집어본다. 은근 무겁다. 만약 던지다가 잘못 맞으면 큰 부상을 입을 정도. 이런 걸 내 동생이 어렸을 때 갖고 놀았다고? 공이 깨지는 것은 둘째치고, 내가 왜 이렇게 위험한 걸 만들어 녀석의 일곱번째 생일 때 선물했는지 의문이다. 물론, 그땐 나도 그렇게 성숙하지는 않았을 때였지만. 아무튼 그 녀석은 이걸로 다른 아이들과 웃으며 잘 놀았던 기억이 난다. 공을 등에 맨 배낭 안에 넣는다.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잡동사니 사이에 익숙한 크기의 네모난 것이 내 관심을 자극한다. 저것이 무엇인지 안다. 반가운 마음에 득달같이 달려가 확인한다. 트럼프 카드뭉치. 예전에 구석에 쳐박아 두고 쭉 잊어버리고 있었다. 맨 윗장과 아랫장에만 먼지가 조금 쌓여 있을 뿐, 다른 카드들은 모두 새 것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잘 보관되어 있었다. 문득 생각이 난다. 그때, 아빠가 3개월만에 배에서 돌아와 돈과 함께 외국에서 많은 기념품들을 사오신 날 저녁, 우리 셋은 거실 탁자에 모여 카드게임을 했다. 하지만 다들 처음 해 보는거라서 제대로 게임이 되지 않았다. 동생은 끝까지 이 게임에선 하트가 가장 등급이 높으므로 마지막에 하트 에이스를 낸 자신이 이긴 거라고 우겼다. 아빠는 - 어이없게도 - 그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고. 할수 없이 그날 저녁 식사 설거지는 내가 해야했다.


   카드 뭉치를 가방 안에 넣으면서 나중에 언젠간 다시 이 게임을 해 봐야지라는 생각을 할 때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그 카드게임은 세 명 이상이어야만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셋이 아니었다



   아빠가 죽었으므로.



   그 순간 짜릿한 충격이 내 머리를 강타해, 애써 망각하고 있던 끔찍한 기분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또다시 온 몸이 떨려온다. 내 가슴 속 어딘가에 자리잡은 상처가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어째서. 이젠 아물었을 줄만 알았는데. 그러나 아문게 아니었다. 아물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저, 그 상처를 어둠으로 덮고 있었을 뿐이었던 거란걸, 알고 있었다. 치켜튼 팔을 떨구니 불꽃이 팍 꺼진다. 그러자,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던 심연이 순식간에 다가와 나를 둘러싼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먹먹하다. 갑갑하다. 그리고, 망연하다.


   아빠는 뱃사람이라 치더라도 너무나 허무하게 생을 마쳤다. 매번 엄청나게 출렁이는 파도와 몰아치는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위험한 고비를 넘겨왔다며 허풍을 떨어왔던 아빠에게, 이번엔 허풍이 아닌 진짜로 거대한 위협이 닥쳐왔다. 그리고, 아빠는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다. 당연한 노릇이었다. 자연의 섭리를 한낱 인간이 거스를 수는 없는 거였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아빠의 빈자리가, 그것을 대신 채우는 슬픔이,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컸다.


   털썩, 무릎을 꿇는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물결에 나는 입 사이로 터져나오는 울음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운다. 서럽게 운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흐느낌 소리가, 어둠으로 채워진 다락방 속에서 잔잔히 울려 퍼졌다.










   다그닥. 다그닥.



   그리고, 흐느낌 소리는 그대로 말발굽 소리가 되었다.


   셀라는 감겨있던 눈꺼풀을 느리게 뜨면서, 딱딱한 것 위에 눕혀져 있던 몸을 부스스 일으켜 세웠다. -으으음... 마치 달콤한 잠에서 방금 깬 사람처럼 그녀는 눈을 한 번 슥 비비고 주위를 훑어보았다. 조금 옅게 내리깔린 어둠 너머로, 암녹빛 침엽수림이 천천히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비췄다. 잠시 멍해져 있던 셀라는 갑자기 자신의 밑에서 흔들리는 것에 그만 중심을 잃을 뻔 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상황 파악을 한 그녀는 자기가 트롤들의 터전을 향해 어두운 숲 속을 걸어가는 유리말 뒤에 타고 있고, 그 바로 앞에서 말을 몰고 있는 검정색 제복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셀라는 앉은 자세를 바로 잡았다. 한스의 어깨 너머로 평범한 흰 갈기의 말을 몰고 있는, 하얀 머리와 푸른 드레스를 입은 엘사와 그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인채로 걸어가고 있는 리버트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둘러싼 풍경은 그녀가 정신을 잃기 전보다 약간 더 밝아진 듯 했다. 셀라는 뒤를 돌아 그들이 지나온 길을 찾아보려 했다가, 문득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그만두었다. 셀라는, 의기소침해진 말투로 한스의 등에다 대고 말했다.



   "결국, 전 또 다시 모두에게 잘못을 저질렀네요."



   그러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한스는, 말을 몰면서 몸을 뒤로 비튼다. 그리곤 위로의 말을 건넨다.



   "괜찮아요. 다 잊어버려요. 이미 지난 일이니까."



   그 말에 셀라는 떨군 고개를 들어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한스의 얼굴을 보았다. 잠시 흐릿한 초점을 가다듬고, 자세히 보니 그의 붉은 머리카락 중 한 줄기가 살짝 검게 타들어 간 것이 보였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스! 머리카락이..."



   "아, 이건 그냥 그을음입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미안해요. 정말로 미안해요. 정말로..."




   맙소사, 나는 그마저 불태울 뻔 했던가. 내 끔찍한 모습을 모두 오롯이 경험하고도 끝까지 남아준 그마저, 매정하게 내쳐 버릴뻔 했던가. 다시금 셀라는 그녀 자신이 혐오스러워 졌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 되뇌이지 못하는 자신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약한 손아귀로 부여잡은 채, 또 한번 고개를 떨구었다. 한스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연민과 동정이 담긴 눈빛으로 묵묵히 쳐다보았다.


   그 때, 앞에서 엘사가 입을 열었다.




   "다 온것 같네."




   여왕이 몰던 말을 멈춰 내렸다. 한스와 셀라는 그녀를 따라 유리말에서 내리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걸어나와서 리버트와 엘사의 곁에 섰다.


   넷의 눈에 우선 비친 것은, 넓은 공터였다. 양 옆으로 계속 펼쳐질 것만 같았던 나무들의 향연이 끊어지고, 창공에서 내리는 달빛과 별빛이 그대로 환하게 내릴 정도로 탁 트인 곳이었다. 온통 짙푸른 이끼로 뒤덮인 그 공터 곳곳에는 여러가지 크기와 많은 숫자의 둥근 바위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그 바닥의 갈라진 틈새마다 수증기로 보이는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올라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공터에서로부터 둥글게 퍼져 올라가는 낮은 돌계단 너머 또한 그 풍경의 연장선이었다. 온통 바위와 연기, 그리고 이끼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허전한 풍경의 중심에 서 있었다.




   "...트롤들은?"




   리버트가 한 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중얼거리자 마자, 갑자기 돌이 구르는 것과 같은 소리가 넷 사이를 울려 퍼졌다. 바위들이, 스스로 진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황하는 셀라와 한스에 비해, 엘사는 마치 오랜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감았고, 리버트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무언가 새로운 일이 생기기를 기대했다. 계속 진동하던 수많은 바위들은, 점차 그 울림이 커지더니, 마침내 그들 쪽으로 빠르게 굴러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굴러오는 대신 한꺼번에 공터의 중앙으로 쏟아져 회색의 파도를 이루는 그것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엄청난 숫자가 되어 넷의 주위에 우뚝 멈춰섰다.


   엘사 여왕의 앞에 있던 바위들 중 하나가 뒤틀리더니, 무언가로 변했다.


   녹색 망토를 걸치고, 화려하게 치장된 목걸이를 두르고, 머리를 풀잎으로 장식한, 늙은 바위의 정령이었다.




   "여왕이시여."




   그 말과 함께 다른 바위들도 뒤틀려 형체를 바꾸었다. 다들 맨 처음 엘사 여왕을 대면한 바위의 정령과 작달만한 키로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그보다 좀 더 젊어 보이고 목걸이 또한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한스는 먼저 모습을 바꾸어 여왕에게 인사를 건넨 트롤이 바로 그들의 우두머리란 것을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안녕하세요, 패비. 13년 만이군요."



   "제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물론, 여왕이 되고 난 후에도 단 한번도, 그날을 잊지 않았어요."




   한스는 그 패비라고 불리우는 우두머리 트롤에게 어떠한 경외심과 기운을 느꼈다. 그가 입을 열어 한 마디를 말할 때마다 왠지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셀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함부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긴장감에 질려 있었다. 리버트조차 자신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다른 트롤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가라앉아, 호기심을 억눌렀기 때문이었다. 오직 아렌델 왕가의 피가 흐르고 있는 엘사만이, 패비를 똑바로 쳐다보며 당당한 목소리로 대화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저 낯선 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지요?"




   패비의 질문에 엘사는 뒤를 슥 돌아보았다. 


   한스는 마른 침을 삼켰다. 셀라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리버트는 셀라의 손을 꼭 잡아 쥐었다.




   "패비."




   그리고 엘사 여왕은 말했다.




   "저들을 잠재워 주세요."






   뭐라고?





   "잠...!!"



   한스의 부르짖음은 패비의 손짓 한 번에 그대로 잦아들었다. 그의 눈꺼풀이 갑자기 무거워지고, 세상이 순간 동떨어졌다. 검은 장막이 스르르 감겼다. 발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한스는 뒤로 누우며 털썩, 쓰러졌다. 그 곁에 셀라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리버트는 짤캉, 유리 고유의 파열음을 내면서 옆으로 굳어버린 채 넘어졌다. 잠에 빠진 리버트는 보통의 유리 조각상으로 되돌아갔다. 셋은 잠든 그 상태 그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엘사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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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 통수치는 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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