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은 지독한 아싸다. 이는 디스코그래피 중 [Lonerism]이라는 앨범명이나 [Solitude Is Bliss]라는 곡명처럼 표면적으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그는 가정 환경도 좋지 못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사이가 좋지 않던 아버지와 준비도 못 하고 사별하게 된 건 1집 때의 일이다. 그런 사람이 음악적으로 대성해 욜로 정신으로 무장한 인싸들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야만 했으니 떠나온 길을 돌아볼 시간이 있었겠는가. 까닭에 언젠간 자아성찰을 주제로 한 앨범을 낼 거라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번 4집이 완성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지난 금요일 발매된 [The Slow Rush]는 전작 [Currents]나 [Lonerism]처럼 좋은 반응을 얻지 못 했다. 대체로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평인데, 자전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인데다가 이를 담아내기 위해 호흡을 전작들에 비해 길게 가져간 곡들이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Feels Like We Only Go Backwards]나 [The Less I Know The Better]급의 킬링 트랙 또한 없기 때문에 확실히 재미는 덜하다. 더군다나 케빈 파커 스스로도 이번 앨범은 전작들보다 좋지 못할 것임을 리드싱글인 [It Might Be Time]에서 암시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4집은 케빈 파커에게 있어 퇴보일까? 3집이 커리어 하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4집이 퇴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음악적으로는 덜 흥미로울지언정 4집을 준비하며 삶의 방향을 잡은 케빈에게 있어서는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진보적인 앨범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앨범에서 그는 자신을 옭아매는 과거를 다루는 방법을 찾고, 작년 봄에 결혼한 연인, 미래의 계획에 대해서 얘기한다. 이렇듯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각적으로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Let It Happen]이나 ['Cause I'm Man]에서의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를 보였던 [Currents]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음악적으로도 전작들보다 못하다고 치부하기엔 아쉽다. 비록 전만큼 캐치하지는 않으나 여전히 매력적인 리프들과 멜로디 라인이 앨범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Tomorrow's Dust]에 등장하는 노스탤직한 어쿠스틱 기타 리프와[Breathe Deeper]의 매력적인 피아노 라인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무엇보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One More Year]는 [Currents]의 [Let It Happen]이나 [Lonerism]의 [Be Above It]만큼 앨범의 주제를 잘 나타내주는 멋진 오프너다.

    [Currents]에서 [The Slow Rush]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Lonerism] 발매 3년 후 [Currents]가 나온 것을 봤을 때, 5년이면 더 좋은 앨범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마냥 놀기만 한 건 아니다. 테임 임팔라는 작년까지 코첼라 헤드를 섰다. 작년에도 선 건 조금 오버스럽긴 하지만 [Currents]로 월드 스타덤에 올랐고 장르 특성상 약 빨고 듣는 사람이 많은 탓에 축제 수요가 높은 편이니까... 게다가 4집은 작년 이맘때 발매 예정이었으나 마음에 안 들어서 연기한 것이다. 투어하랴 속앓이하랴 작곡하랴 이모저모 바빴을 케빈 파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쯤이면 허슬러로 쳐줘도 될 것 같다.

Tracklist

1. One More Year

2. Instant Destiny

3. Borderline (Album Version)

4. Posthumous Forgiveness

5. Breathe Deeper

6. Tomorrow's Dust

7. On Track

8. Lost in Yesterday

9. Is It True

10. It Might Be Time

11. Glimmer

12. One More H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