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킬레스 보고 삘받아서 예매함.
2층 극싸였는데 퐁당이라 시방 없고, 달오름 음향 좋았음.

서사는 뭐 기본 베이스가 있으니까 탄탄했고, 창도 다들 잘함

극심플한 무대에, 새하얗기만한 의상에, 소품도 뭐 딱히 없고, 오로지 창만 듣는 거임.

창극 처음인 바발은 비추. 트로이 전쟁 배경지식과 신화 잘 예습해올 자신 없어도 비추. 유튭으로 창극이나 판소리 좀 보면서 인터미션없이 110분 잘 감상하겠다 싶음 추천. 아킬레스랑 연결 고리 찾는 재미 원한다면 추천.

근데 극 중간 두세 번 정도 창을 하면서 객석 통로를 지나감. 물론 노마스크. 무서우면 2층 ㄱㄱ

근데 나는 계자면 1층 앉았을거고, 이게 그냥 심심해서 와보는 사람은 없을거고 어느정도 장르적 취향과 이해가 있으니까 2층 자리 올거라 생각했는데, 희한하게 많이들 페트병을 손에 들고 입장하더니 110분 러닝 내내 여기저기서 계속 까서 마시고, 안마셔도 뭔 스키복 같은 바지입고 다리 번갈아꼬아가며 만지작거리는 사람은 뭘까 싶음. 2층 여기저기서 페트병 뿌시럭 소리로 추임새를 넣는데, 놀래서 뒤돌아보니까 어떤 건 마스크 내리고 아이코스 입에 물고 있드라.


암튼 원전 서사가 탄탄하니까 창극도 기본은 함. 원전 서사를 비틀고 꼬거나 그런 거 없이 원전 내용 그대로, 원전에는 없는 전쟁 뒤 남겨진 여인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메넬레우스가 헬레네를 어떻게 잔인하게 죽일까 창을 하는데 듣기 불편한 표현이 좀 나옴. 그러다가 드디어 무대에 헬레네가 등장하는데 헬레네 역할을 남자가 맡음.

그 전까진 전령, 메넬레우스 빼고 쭉 여성들이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데 갑분 헬레네 남자...
헬레네가 비중도 꽤 되고, 독창 분량도 상당함. 헬레네 등장 이전에 헤카베, 카산드라, 안드로마케 서사가 막 눈물 줄줄 짜며 한창 절정 향해 치닫고 있었는데 갑분 헬레네 남자...
헬레네 등장 이후로 트로이의 여왕도, 공주도 죄다 뒤에 배경으로 서있는 여인들이 됨. 헬레네 역할이 딱히 젠더프리여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음. 남자 헬레네가 여성 서사를 망치는 느낌. 의상도 여인들은 죄다 흰 옷, 남자 헬레네는 진회색이라 진짜 잘 되가던 서사에 먹물 떨군 느낌 남.
글고 이 부분 내용도 헬레네와 다른 트로이 여인들이 막 싸움. 헬레네 더럽다고 모욕하고 여인 역할끼리 싸움. 헬레네는 연약한 여인이 어찌 신에게 맞설 수 있었겠냐 이런 항변 하다가 객석 속으로 사라짐.

작창은 진짜 잘함. 창도 잘하고 다들 발음도 좋아서 첨 들어도 누구나 바로 따라부를 수 있을 듯함.
안드로마케 부분은 진짜 좋았는데... 여왕이나 공주하고는 또 입장이 다르잖아. 현실과 맞서는 용기있는 여인으로 굉장히 설득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는데 갑분 남자 헬레네...



그럼 나도 이만 갑분 후기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