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욜에 극이 취소되고, 남는 시간에 에너지도 불태울 겸 후기(를 빙자한 상상과 해석글)을 써 보았음
(스포주의, 긴글주의, 자의적 해석과 상상의 나래 주의)
(뮤지컬 팬레터, 영화 유즈얼 서스펙트 및 제목 기억나지 않는 몇몇 추리소설과 판타지소설 스포 주의=_=+++)
(2018년도 트유와의 비교 있음. 둘다 열심히 봤고/보고있고 각각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글 작성했어. 문제가 있을 시 댓글로 알려주면 고맙)
난 2018년 장인 트유로 트유의 존재를 처음 접했었어.
16인가 나온 트유 딥디 (서막이랑 재게가 페어로 나오는)를 구하긴 했지만,
뭔가 당시 내가 달리고 있던 트유랑 영 다른 느낌이라 낯가리면서 아직도 안 봤음;;;;
18트유때는 오픈주간에 노핫으로 자첫을 했고, 그 후 모든 페어를 찍먹했고,
나름 본페어를 2팀정도 가지며 연장공연까지 미쳐서 씐나게 회전을 돌았다!
다시 돌이켜봐도 행복한 연말이었음....
그러다 이번에 원래 제작자인 연출가와 함께 달중 트유가 원년멤버+뉴비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설레임 반,
코시국이라 같이 샤우팅도 못하겠구나 하는 시무룩 반으로 열심히 기다리다가, 역시나 오픈주간에 웅메로 자첫을 했음.
그리고 당황했지.
아는 내용인데 모르겠더라고;;;;;;;;
일단 노래들이 다소 느리게, 그리고 낯선 음들로 편곡된건 그렇다 쳐.
나는 음알못이고, 회전돌다 보면 감길 수 있는 부분이니까.
신곡 뭔가 스토리랑 1도 안 어울리는 것 같고 가사도 내가 생각하는 트유 이미지에 비해 너무 시적이고 서정적인 것 같지만,
오케이, 그렇다 쳐. 이건 내 기호 문제니까. 정 낯가리면 내가 안 봐야지 (감겨서 엄청 회전돌고있음;;;;)
근데 내용을 모르겠어;;;;;
여자가 죽은 거야? 아니면 안 죽은 거야?
안 죽은 거면 너는 거기 왜 갇혀 있는 거야?
여기서 나가기 위해서 너(본하)가 필요했던 거면, ‘지켜야만해 운명이니까’ 하고
자첫에 내가 내외하게 했던 그 서정적인 가사들은 대체 어떻게 된거야? 나 낚인거야?
분명 수 십번 보고 대사까지 거의 외운 극이 돌아왔는데 당최 모르겠더라고.
내게 남은 것이라곤 의외의 롹보컬로 샤우팅까지 깔끔하게 잘 뽑던 메본과,
무서웅 보러갔는데 다리 긴 애새끼 양육하던 다정웅의 칼같은 딕션뿐이야
시무룩+시무룩이 돼서 터덜터덜 집에 왔는데 달중연출이 트위터에 장문의 글을 올렸더라고
솔직히 2번 정독하고 나서도 감상은 딱 하나였어
이걸 연출이 글로 설명해야 할 정도면 극에서 전달이 안 된거 아닐까;;;;;
그 말인즉슨, 이 극이 너무 설명이 부족하고 불친절한 극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지만 난 불평불만 많으면서도 시키는 건 또 곧이곧대로 잘하는 수동적인 바발이기 때문에(=_= 젠장......)
자둘을 하러 가서는 연출이 이야기 한 것처럼 이전에 봤던 장인 트유의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내가 바로 직전에 봤던 회차 정보만 가지고 새로운 극을 보는 것처럼 한 번 봐보자! 하고 결심을 했지.
그러다 보니까, 의외로 이건 확실히 ‘사실’이야 하고 가져갈 만한 게 별로 없더라고.
내가 생각하는 ‘사실’이라고 할 만한 건 세 개 정도였어
1. 이들의 본체는 정신병원에 갇혀있다.
2. 둘 중 최소 하나는 여기에서 나가고 싶어한다
3. 나이는 23~4 전후이다.
4. 모솔이다
그 외에는 하나도 확실한 게 없더라고. 그냥 이 우빈과 본하라는, 정말 존재하는 건지도 모를 인격들이 말하는 소리일 뿐이잖아.
연출이 이야기 한 것처럼 여자가 정말로 있는지, 있다면 그들이 각자 말하는 여자가 같은 여자일지,
기억을 지운 날 그 여자가 정말로 죽었는지, 그 여자를 죽였는지, 정말로 만나긴 했는지.
이 결정적인 부분들을, 특히 ‘여자’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부분들을 연출이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어놔서 딱 이게 맞아 라고 할 수가 없더라고.
대사는 중의적이고 피상적인 가사로 가득찬 넘버로 바꿔놓고, 그대로 대사를 둔 부분도 미묘하게 바꿔서 진상을 파악하기 어렵게 해 놓고...
(ex.
2018 버전 : “3년 전 그날, 네가 여자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했으니까
2021 버전 : “3년 전, 넌 여자를 죽이지 않았으니까”)
장인 트유때는 적어도
1. 이들의 본체가 정신병원에 갇혀있다.
2. 이들은 여기서 나가고 싶어한다.
3. 나이는 23~4 전후이다.
4. 이들이 계속해서 말하는 여자는 본체의 엄마이다.
5. 이들이 말하는 ‘3년 전 그날’ 그 여자는 죽었다.
6. 이 둘 중 최소 한 명 이상은 여자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7. 이 둘 중 최소 한 명은 여기서 나가고 싶어한다.
여기까지는 확실했거든? 극 진행 중에 대사나, 넘버로 확실하게 땅땅땅 못을 박는 부분들이 있었고,
내가 느끼기에는 거의 모든 페어들이 이 부분은 고정으로 두고 나머지 부분들을 변주하면서 연기를 했다고 생각했어.
1) 여자의 죽음에 누가 책임이 있는가?
2) 이 책임소재에 대해 누가 알고 있고, 누가 잊어버린 상태인가?
3) 두 인격 중 어느 인격이 좀 더 지배적인가?
4) 엔딩 이후 어느 인격이 어떤 형태로 살아남거나, 혹은 공존했을까?
이 정도 변주에 따라 배우들은 그 날 노선과 극의 흐름이 바뀐다고 생각했고, 그것만으로도 한 회차 한 회차가 새로워서 느낌표 띄우면서 봤지.
그런데 이게 2021에는 적용이 안 되는거야.
이건 뭐 말 그대로 정신분열이 될 만큼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인거지.
그래서 관극 방법을 바꿔보았어.
************(여기서부터 망상에 가까운 상상과 과도한 해석 주의!!)***********
내가 알앤제이처럼 사전지식이나 상황설명 없이 느닷없이 시작하고 끝나는 극들을 볼 때 몰입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극 속에 ‘내’ 자리(혹은 역할)를 정해놓고 이입을 해 가면서 극을 따라가는 거야.
그래서 자둘 때 (헥헥 여기까지 오는 길이 참으로 길다...) 자리에 앉아서 우빈이랑 본하가 무대에 나타날 때부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봤지.
‘나(=바발)’가 정신병원을 방문하게 됐는데, 거기에 입원해 있는 한 인물을 만난거야.
나는 의사도 아니고 관계자도 아니야. 그냥 앞에 이 인물이 지껄이고 있는 말을 듣고만 있어.
얘는, ‘내가 바로 구본하다, 이 클럽 드바이의 보컬이자 상징이다’, 뭐라뭐라 말을 하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전혀 다른 말투로 ‘아~ 아저씨는 왜 애 이름을 구본하로 지어줘서~’ 이러면서 조금 전까지 말하던 인물이랑
전혀 다른 인물인 것처럼 2인칭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이걸 계속 반복하는 거야.
마치 혼자서 1인 2역인 연극을 하는 것처럼.
난 이 사람을 오늘 처음 봤고, 이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전에 내가 알고있다고 생각했던 사진지식을 모조리 무시하고,
‘오늘’, ‘지금 내 앞에서’ 말하는 것만 듣고 상황을 판단하는 거지.
얘는 왜 여기에 입원했고,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그렇게 보니까 그날그날 배우들의 노선이나 미묘하게 바뀐 대사들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더라고.
▶ 첫 번째. 여자의 존재
이 모든 일의 원인이자 핵심 키워드야. 여자.
지금 내 앞에있는 얘의 머릿속에는 ‘여자’와 ‘노래’밖에 없어보여.
그런데 그 여자는 정말 실제 인물일까?
얘는 이름조차 제대로 말을 못 해. 내가 정신병원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취할 수 있는 흔한 스탠스,
‘상상속의 인물과 연애중이시구만’, 하고 넘겨버릴 수 있는 정도의 정보밖에 안 줘.
벽에 그려져 있는 여자는(마지막 엔딩 후의 벽 낙서들과 그림이 실제 이들의 본체가 있는 정신병원 병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마치 피카소를 연상케 할 만큼 기괴하게 해체되고 재조립된 모습이지.
이 미지의 인물이 혼자 지껄이는 걸 끊임없이 듣고있는 ‘내’가 처음으로 떠올리는 질문은 이거야.
이 사람이 말하는 여자는 대체 누굴까?
이 여자는 정말 존재하는 사람일까?
▶ 두 번째. 그 여자는 누구일까?
a : 그 여자를 편의점에서 만난 적이 있었을까?
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자의 존재에 대해 결정적으로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 부분이야.
내내 ‘본하’가 여자 이야기를 하고 ‘우빈’은 본하의 말을 모른척 해.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거냐고. 그 여자가 누구냐고.
그러다 갑자기 ‘우빈’이가 태도를 바꿔서 그 여자를 편의점에서 만난적이 있다고 하지.
그런데 내내 여자이야기만 하던 본하는 정작 그 이야기를 바로 기억을 못해.
우빈이는 본하와 달리 여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손목에 물감이 묻어있었고, 드바이의 앨범을 들고 있었고, 날 따뜻하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고.
마치 여자는 이런이런 인물이고, 이런 캐릭터이고, 클럽에서 만나기 전부터 ‘본하’와 어떤 모종의 관계가 있을 거라고
마치 청자인 나에게, 여자를 제대로 기억 못하는 ‘본하’에게 특정 정보를 꾹꾹 눌러 각인시키듯이.
이런 여자가 정말 존재했다면, 우빈의 말은 본하의 기억 속에서 여자의 존재를 일깨우기 위한 장치일 거야.
하지만 그런 여자가 존재하지 않았거나, 본하가 말하는 여자와 우빈이 말하는 여자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면?
이건 일종의 세뇌 혹은 장치일 수도 있는거지.
본하가 여자를 자기 기억 속에서 어떤 끔찍한 인물로 재창조해내거나, 충격을 받고 무너져내리게 하기 위한 장치.
혹은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청자)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장치.
왜냐면 여자에 대해서 우빈이 이렇게 말하잖아.
매일 낮 두시쯤 우리가 낮에 잠깐 아르바이트 했던 편의점에 와서 ‘딸기맛 나는 초코바나나 우유’를 사 갔다고.
과학이 쓸데없이 많이 발달해버려서 실제 편의점에서 딸기맛 나는 초코바나나우유를 파는 시대가 되어벼렸지만,
극의 처음 시작때만해도, 그리고 지금도 이 단어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대한 메타포잖아?
그러면 여자가 정말 그 편의점에 왔었는지, 거기서 본하 혹은 우빈의 본체와 만났던 게 ‘정말로 존재하는 사실인지’가 참 모호해져버려.
그리고 이 메타포랑 같이 쓰인 말에 대해서도 의심이 드는거지.
정말로 그런 우유를 파는 편의점이 있었어? 너는 편의점에서 일한 적이 있어?
정말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쫓겨났었어? 그런데도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신고조차 못 했어?
아니, 주민등록증이 없는 건 맞아?
이때쯤 되면 그냥 이 모든게, “시발, 카이제 소여!!!”를 외치고 끝나게 되는 <유주얼 서스펙트> 마냥이게
다 얘의 머릿속 망상이자 헛소리일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드는거지.
왜 굳이 민증이야기까지 꾸며댈까 싶기도 하겠지만, 아니 얘는 그 수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신기할 만큼 자기 이야기를 안 하고 있잖아요.
이쯤되면 일부러 정보를 숨기고 있나 싶을 정도로 민증 없다는 말도 곱게 들리지 않는 것이에요.
(이쯤되면 눈치 챘겠지만 정신병자 이야기를 듣고있는 청자 1의 역할에 과몰입해서 관극중인 바발의 말입니다. 걸러 들으세요=_=)
b : 그 여자가 신문에 난 여자가 맞을까?
편의점의 딸기맛 초코바나나우유가 얘의 말 전체를 의심하게 하는 요소라면,
스크린에 신문기사들로 처리된 여자의 정보는 이들의 ‘기억 속에’ 여자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심하게 하는 제일 큰 요소였어.
(난 이 장면에서 얘가 조각조각 스크랩해놓은 신문기사들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이야기 하는 걸로 상상했어. 과몰입이 너무 심각하지? 응.... 나도 알아.....)
일단 기사에 정확한 날짜 없이 시간만 나와서 언제 일어난 일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고, 인상착의도 모호하고,
피해자로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해. 사건에 대한 설명도 다 모호하고.
현대의 대한민국이 여성관련 범죄 및 실종과 살인사건이 얼마나 많은지(시발) 생각해볼 때, 그 키워드에 맞는 서로 다른 실종건만 수십건이 뜰 거 같은거지.
그럼 저 수많은 기사들은 다 같은 사건의 기사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수많은 기사들 중, 얘가 말하는 여자에 관한 기사도 있기는 한 건가?
그 기사 여부에 따라 얘가 여기 갇혀있는 이유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어 보이더라고
가정 1. 얘의 말이 다 사실이다. 자기의 클럽에 왔던 여자가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고, 이 신문들은 그 사건에 대한 기사들이다.
가정 2. 얘의 말은, 본하의 말이든 우빈이 말이든 다 말도 안돼는 헛소리들이고, 본인만 그게 사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얘가 보여준 신문기사들도 아무 상관없이 키워드 비슷한 기사들을 무작위로 오려서 수집했거나, 아니면 자기가 망상으로 만들어낸 기사들이다.
내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이 수많은 가정 앞을 맞딱뜨렸을 때 제일 궁금해지는 건 이제 이거야.
실종된 그 여자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 세 번째. 그 여자는 죽었을까?
a의 경우 : ‘그’ 여자가 죽었다면
만약 가정 1 의 상황에서 실종된 여자가 죽었다면,
얘가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이유는 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이지만 정황증거밖에 없어서 얘의 진술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었어.
그 와중에 얘는 정신적 문제로 진술이 어렵다는 판단하에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는거고.
그리고 높은 확률로, 애의 본체는 살인자인거지. 이유와 과정이 어찌 되었든.
b의 경우 : ‘어떤’ 여자가 죽었다면
가정 2의 상태에서 그 신문 속 여자들이 죽었다면, 그 실종된 여자들의 죽음은 얘랑 상관이 없을 가능성이 커.
그런데 얘는 자신의 기억 속 그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키워드를 신문에서 발견할 때 마다 (‘홍대 클럽’, 30대 여자, 미술, 새벽 4시 등등) 그 여자라고 생각해 버리는 거지.
그리고 그 죽음이 자신과 관계가 있을까봐 불안해 하는거야.
왜냐면 그 여자는 자신과 만난 후 사라졌고, 자신은 그 날의 기억이 없으니까.
내가 연뮤에 빠지기 전에 추리소설과 범죄수사물을 참 좋아했었는데....
이런 설정을 가진 추리소설을 동서고금 장단편을 막론하고 매우 많은데, 모두가 알다시피, 여기에는 절망편과 희망편이 있지 않겠어요.....?
먼저 절망편
그 무작위의 실종사건들이 정말 얘와 상관이 있었던 경우;;;;
이건 근대 서양 연쇄살인물의 시초에서 많이 나타나는, 소위 여자에게 상처받아서 살인을 저지르는 나약하고 무책임한 스토리인데, 여기에 약간의 정신병이 추가되는거지.
제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건 제목은 기억 안 나는 서양 단편 추리소설이었는데,
자신의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되어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아내를 연상케 하는 여자를 만날 때 마다
그 날 아내에게 했었던 행동을 똑같이 한 후에(선물을 한다던가, 여자를 붙잡고 함께 왈츠를 춘다던가) 계속 살해하는 내용이야.
그런데 잡고 나니까 이 남자는 자기가 죽인 여자들이 모두 자기 아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자기를 잡은 형사에게 그렇게 말해.
“저기 서서 날 보고 웃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머리를 내려쳤어. 분명히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되살아나. 다시 저기 서서 날 보고 웃고 있어”
(당연히 정확한 대사는 아니고. 내 머릿속에서 대략 이런 형태로 남아있음. 보면서 좀 충격적이었어서)
그 범인에게는 살인을 했던 날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물론 범죄의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_=) 날이 계속 반복되는 무한루프물 이었던거지.
극의 흐름상 설득력이 약한 가설이지만 (대학로 상업극에 이런 내용이 올라온다면, 당연히 안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굳이 넣은 이유는,
이 극 자체가 이런 말도 안되는 가설도 4초쯤 떠올렸다 지울 만큼 많은 부분을 확실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이 때 가장 많이 느껴서였어.
그 다음 희망편
그 무작위의 실종사건들이 얘와 상관이 없는 경우.
만약 이 경우라면, 얘가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자해 때문인거 같다고 생각했어.
무대 위에서 자해를 연상케하는 직접적인 행동들도 그렇고, 손목의 흉터들, 근처에 널려있는 칼들
(정신병원이니 당연히 실제 칼은 아니고 기억의 일부나 어떤 상징이겠지만), ‘칼날 위의 핏방울’이라는 노래 가사까지.
과거이든 현재 진행형이든 얘가 충격과 도피로 자해를 선택했던 건 맞는 거 같아서.
그럼 자기가 죽이지 않았는데도 죽였다는 생각하는 이유는?
어떤 존재였든, 자신에게 상처를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기억에서 지우거나, 자기가 죽였다고 생각하거나, 정말 죽이고 싶을만큼(성공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치고)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줘서.
이유는 뭐, 요새 일어나는 말도 안 돼는 살인사건들 보면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가능할 거 같기 하다만....
그럼 얘는 어떤 여자에게 상처받고, 무너지고, 자기 안으로 숨고, 여자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죽이고 싶어하는,
정신병과 자해 위험이 있는 환자이지만, 적어도 살인자는 아닌거지.
▶ 네 번째. 여자는 엄마가 맞을까
얘가 하는 말을 쭉 따라가다보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가진 막장드라마의 실화버전을 듣고 있는 거 같은데,
그 속에 담긴 상징이나 이야기의 흐름이 지나치게 신화의 모티프를 잘 따르고 있어서. 잘 듣다가 한 번씩 의심이 들기도 해.
벽에 그려진 분해되고 재조립된 여자의 그림처럼, 사실 '첫사랑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날 버린 엄마'였던 실존하는 여자가 아니라,
얘의 머릿속에서 충격과 상처와 역린들이 조합된, 끔찍한 혼종이 아닐까 싶은거지.
왜냐면 드바이, 라는 테베를 암시하는 클럼 이름도 그렇고, ‘이오에오’ 라고 반복되는 후렴구도 그렇고,
성장하며 아버지를 무능력한 아버지를 살해하고 무책임한 어머니에게 잘못된 애정을 갈구하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모티프가 노골적으로 보이는데,
난 분명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그 속에 신화적 장치가 보이면 이건 말하는 화자가 그 신화를 토대로 꾸며낸 이야기란 소리잖아=_=
다시한번 ‘시발 카이제 소여!!’를 외치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형사가 된 기분을 느껴버리고 마는 것이지. 이거 다 너의 개소리였냐며
만약 이게 지어낸 개소리라면. 상처 준 여자들을 엄마에게 중첩시킨 이유는 그 모든 상처의 가장 근본적인 흉터가 부모에게,
특히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부분이기 때문이겠지.
(잠시 관극하는 바발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중간중간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배우들의 열연을,
특히 여자가 스스로 엄마라고 밝히는 부분에게 극도로 분노하고 차라리 처음부터 엄마의 존재 자체가 없이 외로웠던 상태로 돌아가려고 악 쓰는 모습을 보면,
이런 해석이 극적으로는 허용될지 몰라도 배우의 노선 안에는 해당이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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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 여자부분까지만 썼는데 왤케 길어졌지. 쓰려던 거에서 항상 삼천포로 빠져서 글 길어지고 쓰려던 거 까먹으니까 환장하겠다;;;;;;
그..... 위에 길게 줄줄이 쓴 말들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처음에 썼지만 여자의 존재를 불확실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서 극 자체에 의도적인 불확실성으로 줘서 수십 가지의 가정이 가능하게 만든 게 올해 버전의 포인트인거 같아.
(물론 나만의 생각이야....쭈글...)
내가 이 버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배우들의 그날 노선에 따라 정말 찐 해피엔딩이 가능하다는 거였어
왜냐면 이들이 여자를 죽이지 않았을거라는 가정도 존재하니까.
그 전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같이 하하 웃고 나와도 극장을 나오며 한 구석에서 찝찝했거든.
그런데 얘네를 사회에 풀어놔도 되나? 그것보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이렇게 스스로 용서하고 행복해해도 되는건가? 뭐 이런 생각들 때문에.
그런데 이번에는 회전 돌 때 마다 그 날에 노선에 따라,
응 그래, 심약한 멘탈을 붙들고 이제 그만 행복하렴 /
응, 아직도 반성을 못했네. 정신병원 탈출하고 나가는 입구에서 붙잡혀서 감옥가자 /
죄책감도 없지만 행복도 없구나. 이 고통의 무한루프가 너에게 주어진 벌인가보다 / 등등
배우들의 노선과 내가 가진 사회적 윤리적 기준 사이에서 협의점을 찾기가 쉽더라고.
그리고 당연하지만, 배우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어떤 가정으로 극을 이끌어가는지,
그들이 떨어뜨리는 실마리(a.k.a.도토리)를 하나하나 주워담으면서 극을 따라가는 재미가 정말 쏠쏠한 거 같아.
원래 쓰려던 후기는 더 있었지만 그거 다 쓰다간 이거 무슨 망한 논문되고,
들어온 바발들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 글이 되어버릴 거 같아서(이미 늦었나....?) 급 마무리ㅠㅠ
혹시혹시 다 읽은 바발이 있다면 읽어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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