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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대공분실 이야기 1

김유식 2010.02.10 17:29:28
조회 66378 추천 51 댓글 73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나는 내 스스로 성향이랄 것도 없지만 그냥 보수우익쪽이라 생각한다. PD니 NL이니 하는 것을 들으면 머리가 아플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미국이 어쩌고 해도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한 적도 없고 의식화 서적 하나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다. 이런 것 읽을 시간이 있다면 오히려 만화책을 한 권 더 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지금까지 집회나 시위에 참가해 본 적도 없고 운동권 학습을 해본 적도 없다. 김일성 주체 사상을 배워 보거나, 좋다고 느껴본 적도 없으며,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과 김현희의 KAL기 폭파 사건을 정부가 저질렀다고 의심해 본 적도 없다. 전두환 정권 당시 북한의 수공에 맞서자는 평화의 댐이 완전 구라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도 정부에 대한 별다른 불신감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살기 좋은 문민정부로 바뀌었으니까...

  전대협, 한총련 주도자들이 쫓겨다닐 때는 그 놈들을 잡으면 현상금이 두둑하겠지 하는 생각뿐이었으며 간첩 한 번 잡아서 팔자 고쳐 보겠다는 생각도 계속 했다. 복권 당첨보다는 간첩 잡는 것이 항상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92년에는 건대와 용산에 매장을 갖고 있는 모 컴퓨터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사장이 이전 건국대 총학생회장이자 '87 건대 점거 농성 사건과 구로 경찰서 습격 사건의 주범이었던 "이 ○○" 였다. 당시 나와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전과 2범 이상들로서 (물론 국가보안법) 누군가가 내가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느냐? 라고 묻는다면 웃어 버리겠다. 노동자의 편에 서서 싸우며, 구로 공단 등지에서 위장 취업했다던 사장은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는 나와 또 다른 여학생 한 명을 적은 월급으로 얼마나 부려먹으려 들던지 이가 갈렸다. 오죽 내가 열이 받았으면 당시 IBM하고 같이 특판 하던 기간에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여학생과 나와 버렸을까? 학생 때는 노동자 편에 섰다지만 사장이 되고나니깐 로보트처럼 부려먹는 것을 보고는 '운동권이란 것이 우스운 동네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7년간 내가 컴퓨터 통신을 해 오면서 학생 운동 지지성의 글을 올린 적은 한번도 없으며 오히려 반대쪽의 입장이었고, 강경대, 노수석이 열사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96 한총련의 연대 점거 농성 사태 때도 전경을 신나게 두들기고 나니깐 "엄마 배고파요." 를 외치며 집에 보내 달라는 그들의 유치한 요구에 코웃음을 쳤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긴급 구속을 당했다.

  '96년 11월 6일 오전 7시경. 동생이 전화 왔다면서 받으란다. 나는 보통 새벽 3-4시경에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전화도 잘 오지 않으며 와도 받지 않지만 동생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바꿔 준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내가 "여보세요?" 하니까 저쪽에서 "김유식씨?" 하며 묻는다. "네." 라고 대답하는 순간, 전화는 끊겼다. 다시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싹~ 달아났다. '지금 누군가 나를 잡으러 오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검찰이나 경찰이나 검거하러 올 때는 거의 아침 일찍 오는 경우가 많다. 이전 음반법으로 인한 구속 시에도 아침에 들이닥쳤었다. '일어나야지.' 하면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며 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문을 열어주기 전에 누군가 물었더니 경찰이란다. 이때까지는 나는 아무런 걱정하는 것이 없이 왜 왔나 싶어서 문을 열어 주었더니 건장한 체격의 남자 수사관 다섯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김유식이 누군가 묻고는 PC 통신 게시판에 강릉 무장 간첩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냐고 묻는다. 그래서 있다고 했더니 "긴급구속  영장"을 내밀며 사인하란다. 이밖에도 "압수수색 영장" 도 들고 왔다. 나는 지난 8월에 선고받은 음반법으로 인해서 현재 집행유예기간인데 여기서 또 구속이 된다면....?

  앞이 캄캄해져 왔다. 하지만 내가 올린 글에 대해서는 충분히 해명하고 이해시킬 요지가 있었기에 마음 한쪽 구석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수사관들이 컴퓨터를 챙기고는 내방을 마구 뒤진다. 백날 뒤져 봤자 소용없다. 이적물이나 이념 서적들을 찾는 모양인데 내방에서는 나와 봤자 만화책이나 내가 좋아하는 전쟁사뿐인데.... 그들도 뒤지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그런데.... 동생방을 갔다 온 한 수사관이 갑자기 내 눈앞에 책들을 쏟아 부으며 다그쳤다.

  "이거 네가 읽은 거지?"


  그 책들은 "다시 읽는 한국사" , "미제국주의 침략사" , "모택동과 농민 혁명" , "오 어머니 그리운 얼굴은" , "미국의 배반" , "박노해 시집. 참된 시작" , "변증법적 유물론" , "반제 민족 해방 전선" 등등이었다. 일반 서점에서도 살 수 있는 책이지만 좌파 성향의 책들이었는데 동생이 사서 읽던 것들이다. 사실 내 동생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약간의 운동권 기질이 있다. 책들을 꺼내 놓으니 기분이 묘해진다. 분명 내가 읽은 책은 아니지만 누가 믿어 줄 것인가? 그들은 내가 갖고 있던 디스켓까지도 모두 챙겨서 가지고 가자고 했다. 내 동생도 옷을 차려입더니 같이 가겠다고 한다. 그래서 만류했더니 수사관들한테 묻는다.

  "긴급 구속은 며칠 동안 입니까?"


  "48시간이다."


  "어디로 가십니까?"


  "....."


  "형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청와대옆 옥인동으로 간다."


  "대공분실입니까?"


  "그래. 자식 잘 아네."


  대공분실이라.... 그곳은 간첩들이나 조사 받는 "무서운 곳" 아닌가? 내가 도대체 거길 왜 가야 되는지? 집밖에 세워 둔 봉고차에 올랐다. 사복을 입은 의경이 운전했는데 길을 모르는지 이리저리 잘못 가는 바람에 청와대 옆의 옥인동까지 가는데 한시간 반이나 걸렸다. 차안에서 또 다른 수사관 한 명이 내게 담배를 피우냐며 권했지만 나는 담배를 배우지 않았기에 사양했다. 옥인동에서 내릴 줄 알았더니 다시 종로 경찰서로 간다. '일단 유치장에 넣으려나?' 종로 경찰서 수사과로 들어가더니 철문을 열고 유치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지갑의 돈과 반지 등을 맡기고 소지품을 모두 꺼내란다. 그리고 건방지게 보이는 어린 경찰 한 명이 오더니 신발하고 양말을 벗으라고 해서 벗으려 했더니 다른 경찰관이 와서 "아냐. 바로 출감이야. 벗기지마." 한다.

  '음...뭐야. 유치장에 들어왔는데 바로 출감이라니.....?'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를 구속해 간 서울 지방 경찰청 보안 수사대는 경찰청 내에서도 대공 업무를 별도 독립해서 담당하는 듯 했다. 그전에 듣기에도
보안 수사대는 대공 수사 업무에 대해서는 안기부보다 더 무서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했다. 부여 무장 간첩 김동식도 보안 수사대에서
한달 정도 조사를 받고나서 안기부로 넘겨졌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안기부가 우선권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먼저 검거한 기관에 우선권이 있다고 한다. 내 물품들을 영치 시키고는 주민등록증을 빼앗더니 다시 데리고 나가려고 한다. 이때 경찰서 조사 계장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나를 잡아온 수사관들한테 "수갑 왜 안 채워? 빨리 채워요." 라고 말한다. '헉~ 또 수갑을 차다닛!' 다행하게도 수사관들이 수갑을 안 가져왔다고 하면서, 그냥 나가서 봉고차에 태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고개를 숙이라고 한다. 10분쯤 지났을까? 어느 건물 앞에서 내려서 나를 데리고 들어간다. 이층을 지나 3층으로 갔더니 "금지구역" 이라는 팻말이 붙은 철문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두 층을 더 올라갔다. 아마도 5층이 아니었나 싶다. 복도에 있던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갔는데.... 여기가 과거, 악명 높던 대공분실이었다.
 
  대공분실은 내가 알기로는 이곳을 제외하고도 홍제동과 장안동, 용산등 서울 시내 곳곳에 있다고 한다. 창문은 없고 빛이 들어올 곳이 없다. 철창이 두군데 있지만 이곳들도 다시 철문으로 막혀 있다. 위에는 기다란 형광등이 두개 달려 있고 출입문 옆쪽으로 조명용으로 쓰이는 기구가 내 쪽의 책상을 비추고 있다.

  벽쪽의 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니 사사로운 것 몇 가지를 묻는다. "해외에 친척이 있느냐?" , "외국에는 얼마나 다녀왔느냐?" , "최근에는 무엇을 했느냐?" 등등 묻더니 사복 의경 한 명이 밥을 가져다준다. 군대에서 쓰는 식기에다가 잡곡이 섞이지 않은 흰 쌀밥, 무우국과 김치, 김과 콩나물 무침 등이 나왔다. 수저는 철제였으나 젓가락은 일회용 나무젓가락이었다. 이런데 끌려와서 누가 밥맛이 있으랴? 대충 두어 숟갈 뜨다가 내려놓았더니 왜 더 안 먹느냐고 한다. 속으로 열이 났지만 그냥 아침이라 밥맛이 없다고 했다. 잠시후 몇 명이 왔다갔다하더니 내 사건 조사관이라면서 박부장이라는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 내 앞에 앉았다. 박부장은 약 45세 정도로 보였다. 박부장 뒤로는 김부장이라고 불리는 조사관이 노트북 PC를 가지고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김부장은 30대 후반의 나이에 체격도 좋고 강인하게 생긴 사람이었는데 수사관보다는 폭력 조직에 몸담고 있을 만한 사람으로 보였다.

  박부장의 조사가 시작됐다. 복사 용지가 아닌 갱지로된 A4 용지 한 묶음과 볼펜을 한 자루 주더니 앞으로 적을 것이 많다면서 부르는 대로 쓰라고 한다. 박부장과 나 사이에는 노란색의 두꺼운 파일이 있었는데 겉표지에는 "김유식 ID. yusik00" 라고 씌여있고 그 밑으로 "방첩 3반" 이라고 붙어 있다. 그러니까 이곳은 정확히 말해서 서울 지방 경찰청 보안 수사대 방첩 3반이었나 보다. (보안 수사 2대 라고 언뜻 본 것도 같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그 옆에는 "이인홍 ID. 달호의 꿈" 이라는 파일도 있었는데 파일 크기가 꽤 두꺼웠다. "달호의 꿈" 이 ID 인 것을 보니 아마도 나우누리에서 잡혀온듯 하다.


  갱지에 "자술서" 라고 쓰게 한다. 그리고 본적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을 적고 학력, 경력도 적게 했다. 그리고는 내가 하이텔 플라자(PLAZA)란에 올렸던 "간첩이 수상하다." 는 제하의 게시물에 대한 본격적인 질문을 한다. 먼저 나의 게시물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고조시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북한의 주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적 표현으로 단언하면서 이런 성향을 갖게 된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래서 내가 그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무장 공비가 침투한지 하루도 안 지난 18일 저녁이었는데 (무장 공비는 18일날 침투) 그 당시는 몇 가지 의심스러운 일이 많아서 당시 플라자란에는 무장 공비 침투가 조작임을 의심하는 게시물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몇 가지 의심나는 내용을 모아서 올려놓은 것이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우리를 조사하는 경찰들은 컴퓨터를 모른다. 각각 노트북을 갖고 있긴 했지만 그것은 도스용 한글 3.0을 쓰기 위한 것뿐이었다. (그것도 노트북을 도스로 켤 줄 몰라 윈도우 '95를 띄워서 그곳의 도스 프롬프트로 들어가 한글 3.0을 실행시키는 수준이다.)

  컴퓨터를 모르고 컴퓨터 통신은 더더욱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PC 통신망을 검열해서 잡을 수 있겠는가? 모뎀이 뭔지 몰라서 나에게 묻기에 "변복조장치" 라고 말해 주기도 이상해서 "통신용 카드" 라고 이야기해 줬다. 그래서 내가 컴퓨터 통신 게시판이란 인신 공격이나 음란성의 글이 아니라면 개인의 어떤 생각이던 올릴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곳이다. 라는 식으로 설명을 했더니 수사관들 특유의 억지를 부린다. 그 내용은 어찌되었던 간에 그런 반정부 성향의 글을 올리게 된 동기와 목적은 최종적으로 국가 전복을 꾀하려는게 아니었냐는 투로 우긴다. 여기서 구차하지만 내가 올렸던 글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의문. 어떤 멍청한 무장 공비가 바닷가에 총을 내버려두고 가는가?"

"의문. 무장 공비가 소총 두자루만 갖고 왔는가?"

"의문. 왜 저들끼리 싸우고 자폭했는가?"

"의문. 수상한 물체가 있다고 신고했는데 관할 구역이 아니라고 딴 데 가보라는 군인이 있을 수 있는가?"

"의문. 대구 지하철 폭발 사건 때는 그렇게 TV 중계해 달라고 해도 선거전이라 모른 척하고 대학 야구 중계나 틀어 주더니 왜 이번엔 빨리 보도하는가?"

"의문. 철로 된 잠수정이 강릉까지 내려오는데 우리 해군은 도대체 뭐하고 있었나?"


등의 의문점 제시와 더불어 세 가지 가정을 붙였다. 첫 번째는 무장공비다. 두 번째는 조작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표류한 잠수정이다. 등이다. 만약 조작되었다면 정부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도 기술하였는데 그것이 이적물 표현과 배포에 따른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특히 표류설은 일본 언론 등에서 이미 발표가 났었던 것이고 내가 위 글을 쓸 때만도 북한의 발표 전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내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기 때문에 그런 글을 올렸다고 하는 것이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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