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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32 "영치품"

김유식 2010.04.27 00:59:11
조회 12597 추천 3 댓글 85


  이재헌 사장이 갖고 있던 침낭을 깔고 누워 있는데 소지가 와서 오늘 운동시간이 세 번째 타임이라고 한다. 오전 11시부터다. 목과 어깨가 아직 많이 아프다. 운동을 나갈 수 있을까? 그래도 운동을 빠지고 싶지는 않다. 겨우겨우 일어나 오늘의 목표량인 열네 바퀴를 뛰었다. 조선생과 두식이, 창헌이와 이재헌 사장은 운동장을 거닐었고 박경헌은 오늘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옆 운동장에서 ‘드라큐라’라는 별명의 죄수와 노닥거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제 접견 온 사장들이 넣고 간 영치품들이 가득 와 있다. 영치금이 없는 조선생을 제외한 다른 죄수들의 구매품들도 방 안이 빽빽하게 쌓여 있다. 그리고 어제가 교정의 날이어서 그런지 관급품으로 비누와 칫솔도 한 개씩 들어왔다. 또 지난주에 구매 신청한 우표도 받았다. 각각 1,750원짜리 열 장, 90원짜리 열 장이다. 다른 죄수들은 모두 구매품 정리를 하고 방바닥을 한 번 쓸고는 점심배식을 준비하려는데 저가 운동화를 주문해서 받은 박경헌이 운동화 박스를 뜯지 않고 있다. 흰색 긴팔 티셔츠와 양말들도 뜯지 않고 정리도 안 한다. 오히려 자신이 구매해서 받은 음식물들과 함께 주섬주섬 챙긴다. 닭다리, 쏘세지, 참치, 사과와 과자류 등등 많기도 하다. 잠시 후에는 소지를 불러댔다.


  “소지님! 여기 5방입니다.”


  “왜요?”


  “이것들 좀 15방에 갖다 주시겠습니까? 15방에 앞니 모두 빠진 사람 아시죠?”


  “네.”


  “5방에서 박경헌이 보냈다고 하시면 아실 겁니다. 좀 부탁드립니다.”


  “쯧쯧. 알았어요.”


  소지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더니 물품들을 들고 15방으로 향했다. 박경헌의 난데없는 행동에 조선생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박경헌은 옳은 일을 했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대답한다.


  “아. 5방에 드라큐라 있잖습니까? 그 사람이 면회 올 사람도 없고, 영치금도 없고, 반평생을 징역으로 살았다고 하잖습니까? 제가 불쌍해서 운동화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그런 겁니다.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아무리 징역이지만 다 같이 사는 사회 아닙니까?”


  방 안 죄수들의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박경헌의 말에는 어폐가 없다. 구구절절하게 옳은 소리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방 죄수들의 얼굴은 모두 한우 꼬리곰탕을 주문했다가 개죽이 꼬리를 씹은 모습이다. 자기의 영치금으로 구매품을 사서 남 주는 것을 뭐라 탓할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5방에서 집어 먹은 먹을 것에 대한 보상으로 구매품을 잔뜩 주문하는 줄 알았더니 자기 몫으로 들어온 것은 모두 드라큐라한테 보냈다. 심지어 자신은 흰 고무신을 하나 주문해서 사 신고 정작 구매한 운동화도 드라큐라한테 줬다. 그 돈으로 자기 운동화나 사 신지 않고.


  조선생이 혀를 찼다. 이재헌 사장도 비웃음을 날렸다. 정두식의 얼굴에도 조소가 서렸다. 창헌이는 배알이 뒤틀렸나 보다. 바로 날렸다.


  “자기 먹을 것 남 줬으니 이제 도사님은 관식만 먹고 지내요! 네? 알았어요?”


  무슨 뜻인지 세 살배기 어린애도 알 만한 소리건만 우리의 박경헌은 이해하는 눈치가 아니다.


  “야~ 창헌아. 저기 먹을 게 저렇게 쌓였는데 왜 관식만 먹냐? 바구니가 터지겠구만.”


  창헌이도 이에 질세라 한 마디 더 한다.


  “아니! 도사님은 도사님 돈으로는 먹을 것 안 샀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관식만 드시라구요.”


  박경헌의 ‘노 눈치 액션’은 계속됐다.


  “야~ 창헌아. 내가 왜 먹을 것을 안 사? 어제 많이 산 거 너도 알잖아. 네가 구매용지 써 줬잖아.”


  “에이~”


  창헌이가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둔다. 기껏 처음 들어온 영치금으로 먹을 것 구매해서 남 주고는 방 사람들에게는 아무 소리 하지 않는 박경헌에 대해서 뭔가 일러주고 싶어 하는 기색이지만 그걸 가르치기에는 박경헌의 지적 수준이 너무 낮다고 생각해서일까.


  “3683 김유식 씨!”


  교도관이 다가와 내 이름을 부른다. 접견이 왔다. 동생과 아내다. 동생과 아내에게 탄원서나 많이 준비해 보라고 했다. 접견을 마치고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지나있다. 방 사람들이 밥과 소고기무국, 어묵조림 등을 남겨놓았는데 조선생이 반찬이 부족한 거 같다며 참치를 하나 뜯어준다. 밥을 먹고 있는데 소지가 다가오더니 접견 갔다 온 사람 밥을 뭐하러 남겨 놓았냐고 묻는다. 이 소지는 붙임성이 좋아서 툭하면 우리 방 창살 앞으로 와서 농담을 하고 돌아간다. 그러면서 나더러 오늘 목욕 이후에 어제 교정의 날이었기 때문에 특식으로 라면이 나오니까 조금만 먹으라고 말해줬다.


  대충 먹던 밥을 치우고 목욕준비를 했다. 이재헌 사장은 오늘도 검찰 조사를 받으러 나갔다.


  목욕시간. 간만에 뜨거운 물로 머리를 감고, 때도 박박 미니 날아갈 것 같다. 목욕을 마치고 쉬고 있자니 멀리서 소리가 들린다.


  “각방 배식 준비하세요!”


  정말 교정의 날 기념으로 라면이 특식으로 나왔다. 컵라면이 아니라 끓인 라면이다. 신라면이나 오징어 짬뽕과 같은 맛은 아니라도 나름 먹을 만하다. 아까 점심 때 남겨 둔 밥그릇에 담아서 몇 젓가락 먹었더니 배가 부르다. 오늘 점심은 구속 이후에 가장 많이 먹은 듯하다. 목과 어깨의 통증도 오전보다 꽤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다.


  오후 3시 30분쯤, 소지가 다가오더니 12방에서 보냈다면서 비둘기(쪽지)를 전해줬다. 존이 보낸 쪽지다. 유치원생의 한글실력으로 써서 보냈는데 전문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다.


  “유식아, JOHN형이다. 2009 WORLD ALMANAC 영문으로 꼭 있지 말고 식켜.. 형이 갈지게 너안테 주면 되자나. JOHN형이”


  존은 신입방 시절부터 저 월드 알머낵이 읽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영치금이 없고 책 넣어 줄 사람이 없으니 내가 주문해서 저 책을 넣어주면 자신이 출소 때까지 읽다가 다시 나한테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사주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왜냐면 신입방 시절에도 영문소설이 읽고 싶다고 해서 존 그리샴의 “The Firm”을 구해다 준 적이 있는데 존은 말이 워낙 많아서 나랑 같이 있었던 일주일간 겨우 20여 페이지밖에 읽지 않았다. 월드 알머낵도 사주면 분명히 몇 페이지 안 볼게 틀림없다.


  저녁 배식이 왔지만 특식으로 라면을 먹었기에 거의 먹지 않았다. 편지를 쓸까 하다가 잠깐 누웠더니 TV에서 드라마인 ‘보석비빔밥’을 해준다. 소이현을 보면서 같은 방 죄수들이 모두 예쁘다고 서로 난리다. 이재헌 사장은 오늘도 검취가 늦게 끝나서 파김치가 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제도 그렇지만 오늘도 아주 조사를 심하게 받은 모양이다.


  TV를 보면서 구매물품을 신청하는데 편지지로 쓸 항소이유서와 사탕, 커피, 콘치즈 과자 열 봉지와 역시 과자인 신당동 떡볶이 다섯 봉지를 주문했다. 아마 과자 중에서 내가 먹을 것은 없을 듯. 음식물은 영치금 있는 죄수들이 알아서 나누어 주문해서 같이 먹는다.


  비염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오늘 저녁부터는 약이 들어오지 않았다. 내일 보고전을 다시 써 내야겠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박경헌은 자신의 영치금을 '드라큐라'에게 썼다.
2. 그 행태에 창헌이가 화가 났다.
3. 박경헌은 왜 창헌이가 화를 내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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