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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34 "최후진술"

김유식 2010.04.29 09:21:05
조회 11939 추천 6 댓글 70


  10월 30일 금요일.


  오늘은 아침식사로 또 연두부가 나왔다. 내가 다이어트 중인 것을 아는 죄수들이 내게 두부를 먹으라며 건네줬다. 박경헌은 출정을 갔다. 결심공판이라 검찰 측의 구형이 나오는 날이고 피고인의 최후 진술도 있다. 박경헌의 멍멍이 드립을 걱정해서 내가 박경헌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판사가 최후 진술을 하라고 하면 그냥 “잘못했습니다. 제발 선처하여 주십시오.” 정도로 짧게 끝내라고 했다. 괜히 이런 말 저런 말 하면 가뜩이나 바쁜 판사로부터 밉보일 수가 있다. 서너 차례나 반복해서 꼭 짧게 하라고 했는데 박경헌은 알았다며 걱정하지 말란다.


  부산의 지인이 보낸 인터넷서신을 받고 답장을 쓰고 있는데 운동이란다. 오늘 목표는 16바퀴. 열두 바퀴는 바로 뛰고 나머지 네 바퀴는 거꾸로 뛰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구매품이 들어와 있다. 나는 콘치즈 열 봉지하고 신당동 떡볶이 다섯 봉지, 편지지로 쓸 항소이유서 등을 신청했는데 신당동 떡볶이는 주문 요일이 맞지 않아서 짤렸다.


  콘치즈 세 봉지를 집어 12방의 존형한테 가져다줬다. 우리 방의 철문이 닫혔다가 다시 열리면서 교도관이 내 이름을 부른다. 변호사 접견이란다. 변호사가 웬일이지? 접견을 하러 복도를 지나고 있는데 누군가가 “김유식 사장님 아니세요?”하면서 아는 척을 한다. 누군가 봤더니 IC코퍼레이션 인수할 때 인수 팀원 중 한 명의 친구다. 사기로 구속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무죄 주장을 하면서 싸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권모 변호사가 내 운동시간 때문에 기다렸나 보다. 다행히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온 것은 아니고 다음 주쯤이면 재판부가 정해지고, 2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써서 내야 한다고 말한다. 20분 정도 나의 사건과 JU그룹의 주수도 회장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변호사 업무로도 바쁠 텐데 일부러 와준 것이 고맙다. JU의 주수도 회장은 오늘도 변호사 접견실에서 사람 좋은 미소의 얼굴로 변호사들과 인사하기 바쁘다. 나는 JU 사건을 잘 모르지만 내가 구속되어 있을 때까지 주수도 회장의 공소금액 2조 1천억 원은 역대 최고의 사건이라고 했다.


  사방으로 돌아와서 평상복을 벗고 앉아 있으려니 이번에는 일반 접견신청이다. 아는 업체 사장들과 회사 부사장이 왔다. 오늘도 접견 시 특별한 내용은 없다. 접견을 마치고 돌아오려니 주식매각에 따른 공시에 대해서 묻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다음에 물어봐야겠다.


  사방으로 돌아오니 이미 점심식사가 시작됐다. 내가 접견을 마치고 방에 들어오자마자 재판을 갔었던 박경헌이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한 얼굴로 돌아왔다. 무슨 좋은 일이 있나 해서 물어보니 오늘은 구형을 받았단다. 검사의 구형은 1년 6월. 사실 좋아할 일은 아니다. 보통 피해 합의를 보지 못한 사기 범죄의 경우 구형 1년 6월이면 징역 1년 정도가 선고된다. 아주 훌륭하게 운이 좋은 때라면 징역 8월이나 10월도 선고될 수 있지만 드문 경우고, 또 구형량대로 1년 6월을 그대로 선고하는 때도 있지만 이 역시도 드문 케이스다. 


  최후 진술을 잘 했느냐고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그대로다. 박경헌은 피고인 석에 앉아서 두 팔을 교차시켜 피고인석 앞의 책상에 대고 팔짱을 끼는 듯한 모습으로 상체를 숙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 법정의 직원이 눈을 흘기며 쳐다보았다는데 박경헌은 ‘저 새끼가 왜 날 갈구지?’하는 눈빛으로 그대로 있었다고 했다. 잠시 후 판사가 들어와서 기립하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다시 팔짱끼는 것 같은 모습으로 거의 엎드리고 있으니 재판석 바로 밑의 서기가 계속 뒤를 쳐다보면서 눈짓으로 제대로 있으라고 했단다. 그러나 우리의 박경헌은 ‘난 죄가 없다.’는 역눈빛을 보내면서 꿋꿋하게 자세를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자신의 자세가 힘들어서 자세를 바꾸려고 해도 뭔가 법원에 밀리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그 자세를 억지로 계속 유지하고 있던 박경헌은 판사가 최후 진술을 하라는 말에 벌떡 일어나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며 실실 웃는다. 한참을 이야기 하니 옆에서는 국선 변호사가 손가락으로 찌르고, 급기야 판사가, “피고인 짧게 하세요. 짧게!”를 두 번이나 말했다고 했다. 장황했던 박경헌의 최후 진술 중 마지막 멘트는 이렇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고소인을 과거에도 사랑했고, 현재도 사랑하며, 미래에도 사랑할 것입니다. 저희의 사랑에는 죄가 없습니다.”


  박경헌은 이 말이 무슨 대단한 명언이라도 되는 듯이 계속 중얼거렸다. 꼭 며칠 전에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이 반복으로 말했던, “너무 꼴려서 잠이 와야죠. 도저히 못 참고 딸 한 번 치고 나오니까 그냥 잠이 쏟아졌습니다. 아주 푹 잤습니다.” 처럼 계속 반복해 대면서 혼자 말하고 웃었다. 이날 하루 종일 나를 보면서,


  “김 대표님!”


  “네?”


  “판사한테 제가 말했죠. 저는 고소인을 과거에도 사랑했고, 현재도 사랑하며, 미래에도 사랑할 것입니다. 저희의 사랑에는 죄가 없습니다.”


  이 패턴을 반복했다. 대화 상대는 가끔씩 내가 아닌 이재헌 사장이나 창헌, 또는 두식이로 바뀌기도 했지만 유독 나한테는 같은 말 반복 횟수가 많았다. 나중에는 “판사....” 소리만 나와도 그냥 멍멍이 소리려니 하고 읽던 책을 마저 읽거나 먼 산을 바라보며 딴청을 부렸다. 그래도 박경헌은 내가 주목하든 말든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면서 “나도 참 골 때리지~” 라면서 낄낄거렸다. 


  오전 중에 접견 두 번과 운동까지 마쳤으니 오후 시간이 무지 더디게 간다. 뱃속에서는 계속 밥 달라고 꼬르륵 소리를 낸다. 오후에 창헌이는 검찰조사를 갔고, 나는 ‘공무도하’를 읽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옆에서 박경헌의 마른오징어 뜯는 소리에 깼다. 옆에서 너무 쩝쩝거려서 가뜩이나 배가 고픈데 깰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배가 고파서 구운 계란 두 개와 사과 하나를 먹고 계속 책을 읽다가, 자다가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이례적으로 오후 점검을 5시가 아닌 4시에 했다. 저녁 배식까지 남은 한 시간은 땅콩을 까면서 보냈다. 저녁 식사 때도 연두부를 두 개 먹었는데 오늘도 이재헌 사장과 두식이는 해물왕컵을 먹었다. 나더러 한 젓가락 먹겠느냐고 물었지만 초인적인 의지로 거부했다. 내가 입으로는 먹지 않겠다고 거부를 했지만 나도 모르게 젓가락이 해물왕컵까지 가까이 다가가는 바람에 놀라고 말았다. 내 몸이 듀얼코어도 아닌데 멀티태스킹을 하다니!


  저녁 식사를 마치고 쇠창살을 잡고 운동을 하고 있으려니 교도관이 다가와서 다시 비염약을 준다. 알약 3개는 맞는데 며칠 전에 먹었던 약과는 좀 색깔이 다른 듯하다. 두식이가 커피 물을 준비해줘서 커피와 함께 약을 먹었다. 차라리 의무실을 좀 데려가주지!


  TV를 켜니 천추태후를 해준다. 즐겨보던 것이 아니라 책이나 읽을까 하고 발라당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데 박경헌이 나를 부른다. 분명 멍멍이 드립이겠지하고 못 들은 척 했더니 역시나 짐작대로다.


  “야~ 두식아. 오늘 내가 판사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냐?”


  “아까 여러 번 이야기 하셨잖아요?”


  “응. 그래 맞다. 내가 판사한테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고소인을 과거에도 사랑했고, 현재도 사랑하며, 미래에도 사랑할 것입니다. 저희의 사랑에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지. 참 나도 골 때려~ 판사 앞에서 팔짱 끼고 있었으니. 변호사도 옆에서 꼬집는데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다. 야~”


  방 죄수들의 분노 게이지가 한 단계씩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변호사가 접견을 왔다.
2. 박경헌이 출정을 갔다.
3. 박경헌은 판사 앞에서도 멍멍이 드립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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