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권수는 NPB에 진출하지 못했을까
이를 추측하기 앞서 우린 안권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안권수는 어떤 유형의 선수일까?
그는 매우 적극적인 플레이를 지향한다. 그것도 공수주 모두에서.
1분 37초부터 안권수 등장.
수싸움을 통한 방어적인 승부보다 존에 들어오는 공은 적극적으로 공략한다. (김태형 감독이 좋아하는 타격관이기도 하다)
특히 몸쪽대응력이 뛰어나 승부구에도 거침없이 배트가 돌아갔다.
몸쪽 밀린 공을 허리로 붙잡아 기어이 내야수를 넘기던 타구는 그만의 전매특허였다.
공격적인 수비를 지향하여 '남들은 공이 빠질것을 우려하여 짧은 단타로 끊어낼 타구를 안권수는 주저없이 몸을 날렸다' 는 평을 들었다.
유년시절 수영으로 단련된 어깨는 '바주카'란 별명을 선사했다.
그의 적극성은 주루에서도 빛났다. 그는 공격적인 주루와 '경기를 읽을줄 아는 눈'을 바탕을로 수많은 도루를 쌓았다.
결정적으로 스카우트와 팀을 매료시킨 안권수의 진가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 에서 비롯된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뭐냐고? 그의 고등학교 리포트를 읽어보자.
"안권수의 공수 모두에서 '날카로움'과 '적극적'을 느낀다. 그의 플레이는 일종의 '독특한 공기'가 흐른다.
사무라이란 단어가 가장 잘어울리는 선수다. 어쩌면 그는 일반적인 개념이 통하지않는 거물일지도 모른다 "
앞서 살펴봤듯 안권수는 노림수에 의존하기보단 '그저 오는 공을 돌려보내는' 필히팅을 지향한다.
그 역시 본인은 구종과 코스를 노리지않고 오는대로 친다고 인정했다.
필히터는 태생적으로 유인구에 약하며 컨디션에 좌우되는 성향을 띈다.
안권수 성적의 큰 특징중 하나인 '몰아치기' 즉, 기복은 이런 성향에서 비롯됐으리라 추측된다.
그가 대활약했다고 알려진 고시엔의 성적도 뜯어보면
1차전: 3타수 2안타
2차전: 6타수 4안타
3차전: 6타수 0안타
로 순식간에 식어버린 것을 볼수있다. 물론 저 성적만으로 안권수는 기복이 있다!라 하는건 넌센스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필히터는 이런 약점을 지울 강력한 선구안을 지녔거나 이를 만회할 파워가 있어야한다.
안권수는 전자의 방법으로 그의 접근법을 보완했다.
그는 컨택능력이 우수하여 스프레이 히팅에 능했고 타격존이 확고하여 유인구에 쉽사리 반응하지 않았다.
그덕에 안권수는 높은 출루율을 기록할수 있었다.
보장되는 출루율의 위력은 1세대 세이버매트릭스 혁명에서 가장 먼저 조명받은 가치였다.
또한 안권수는 많은 파울을 만들어냈다. 파울은 곧 많은 투구수를 부른다.
현대야구에서 '파울생산 능력'은 또하나의 능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있다.
투수 피로도와 경기환기를 야기하는 파울생산능력의 위력을 우린 저번글의 주인공, 나카지마를 통해 배웠다.
한마디로 안권수는 '진짜' 야구할줄 아는 선수였다. 이런 선수를 좋아하지 않을 코칭스태프는 없다.

KBO 트라이아웃에서 타격중인 안권수
본론으로 돌아와 안권수가 왜 지명에 실패했는지를 알아봐야한다.
우선 그는 지명 가능한 수준의 선수였을까?
그렇다. 당시 안권수는 충분히 지명을 노려볼 선수였다.
당해 드래프트 자원들의 성적과 시장상황을 보면 상위권은 못미치지만 중하위권 지명정도는 노릴수준은 됐다고 본다.
하지만 냉정히 안권수는 외야수 + 단타를 양산하는 '똑딱이'였다.
이는 가장 대체하기 쉽고 메리트가 떨어지는 유형이다. (이를 의식해선지 페가수스 시절 3루수를 연습하기도 했었다)

저 시기가 언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점이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기사에서 그가 '주니치 입단직전까지 갔다' 하니 대내외적으로 기량을 인정받았다는것만 알수있을뿐.
당연히 왜 지명되지 않았는지는 알수없다.
그러나 가설을 몇개 세울수는 있다.
가설1) 실력부족으로 인한 실패
입단 직전의 여부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기에 이 '직전'의 의미 역시 추측해야만한다.
어쩌면 이 '직전'도 입단확약을 받은후 모종의 이유로 무산된것이 아닌 드래프트 최종회의에서 밀린것을 언급한것일수도 있다.
가설2) 워크에식으로 인한 실패
안권수에 대해 조사하던 중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의 평가는 극과극이었다.
칭찬일색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 동료와의 불화, 심지어 인성까지 언급하며 혹평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혹평의 코멘트에 적의가 느껴지며 선수시절 늘 주장을 역임하던 선수기에 이 부분이 상당히 의아하지만 어찌됐든 진실은 알수없다.
어쩌면 그는 혹평처럼 '실력은 프로에가기 충분하지만 팀불화를 야기해 프로에 갈수없는 선수' 였을지도 모른다.
가설3) 1-2년후 주니치 입단약속을 받고 카나플렉스로 이동했다가 주저앉은것
실제로 그가 입단에 실패한 주니치를 필두로 몇몇 팀은 '로스터 절약'이란 편법을 써 세간의 질타를 받았다.
이 '로스터 절약'이란 1-3년후 지명을 담보로 아마추어 선수를 사회인야구에 보내 육성시키는 것으로
구단은 빈 슬롯에 즉전감선수를 영입하거나 용병슬롯을 확보하는등 여러 선택지를 누릴수있고
사회인팀 입장에선 질좋은 선수가 들어와 전력상승을 꾀할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즉, 돈도 아끼고 팀로스터 확보도 하며 일정수준 리그에서 육성도 겸하는 '누이좋고 매부좋고 꿩먹고 알먹는' 무상의 팜인셈.
물론 아무팀에 보내는것은 아니고 보통 환경이 좋은 미쓰비시나 파나소닉같은 팀에 들어간다.
하지만 안권수가 간 팀은 창단 3년차 열악한 환경의 카나플렉스였다.
오죽하면 카나플렉스팬이 안권수가 이팀에 왜있냐며 놀라했을정도. 이러한 점 또한 이치에 맞지 않긴한다
가설4) 부상으로 인한 실패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부상으로 인해 좌절됐을수도있다.
테스트 당시 부상으로 인해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거나, 고질적인 기량저하를 야기하는 허리같은 부위를 다쳐 입단을 철회했다거나
...
안권수의 NPB 입단실패의 굵직한 가설들을 살펴봤다.
하지만 '주니치 입단직전까지 갔다' 란 추상적인 워딩만으로 추측하기에는 애당초 많은 영역을 상상으로 때워야한다.
저 가설들중 답이 있을수도 있고, 여러가설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수도 있다.
요지는 그는 프로에 갈만한 재능을 갖추었었지만 프로진출에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는것이다
정체된 현실
대학교를 졸업한 안권수는 독립리그에서 사회인야구로 둥지를 옮겼다.
새로운 팀은 카나플렉스. 그러나 이 팀은 무사시 히트 베어스 보다 더 열악한 환경이었다.
애당초 야구만을 했던 이전 팀들과 달리 카나플렉스는 오전에 일을하고 오후에 훈련을 하는 생업의 터였다.
더욱이 카나플랙스는 선수의 복지보다 공장에서의 업무우선을 요구하는 환경이었다.
심지어 야구시즌이나 대회예선 중에도 사업우선기간 (야구를 전혀 하지않는 기간)을 배치한다.
훈련과 경기수가 확 줄어버리며 안권수도 점점 야구선수로서의 면모가 옅어져갔다.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이 팀에 관심을 두지 않음은 당연한 이야기.
카나플렉스는 스카우터들이 운집하는 베이브루스컵같은 전국대회로 발돋움하기 위해 치르는 예선에서 마저 번번히 미끄러져 대회기록조차 찾기 힘든 팀이었다.

카나플렉스 시절 안권수
설령 안권수가 뛰어난 재능을 지녔어도 스카우터들의 시야밖으로 멀어질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였을까 안권수의 평가는 해가 갈수록 떨어져갔다.
눈여겨봐야하는 독립리그 선수로 기사에 여럿 이름이 오르내리던 안권수는 그저 사회인야구 드래프트 목록에 '등급 B' 라는 코멘트만 달랑 적힌 그저그런 뒷배경을 채우는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안권수는 정체되어갔다. 그러나 시간은 정체되지 않는다. 안권수는 그렇게 4년을 카나플렉스에서 보낸다.
세간의 관심도 멀어져갔다. 그래도 17시즌까진 '드래프트 후보'로 이름이나마 싣을수 있었지만 그 후엔 그마저도 없었다.
그렇게 안권수의 야구는 끝난듯해보였다.
그가 놓지않았던 한국의 끈, 두산으로 이끌다
재능을 썩히고있는 안권수를 안타깝게 여기던 주니치 스카우트는 선동열 전 감독에게 안권수의 존재를 알렸다.
더 이상 NPB행은 힘들지만 '한국인'이었던 안권수는 해외파 트라이아웃을 통해 KBO에 입단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식을 전해들은 선동열 전 감독은 두산에게 사정을 알렸다. (선동열 전 감독은 김태룡 단장과 엄청 친하다)
두산은 2018년 마무리캠프에 안권수를 초청해 가볍게 기량테스트를 치뤘다.
정체된 그에게 한줄기 희망이 다가온 순간이었다.
하지만 안권수는 트라이아웃에서 좋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트라이아웃 일주일전에 입은 허리부상으로 제대로된 쇼케이스를 선보일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리통증으로 신음하는 안권수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참담하지만 묵묵히 결과를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산은 드래프트 마지막 순번으로 안권수를 지명한다.
트라이아웃 이전의 기량테스트와 선동열 전 감독을 통해 들은 이력으로 그의 재능에 승부를 걸은 셈이다.
그의 아버지 안룡치씨 말마따나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안권수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한평생 일본에 살면서도 한국국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산에 올수 있었다는 것이다.

두산베어스의 신인 안권수
어쩌면 안권수의 야구는 두산에서 별다른 빛을 못보고 끝날수도있다.
그가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선수였음은 맞지만 야구선수 실링성장에 가장 중요한 이십대중반을 헛되이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지향하던 야구관처럼, 성적처럼, 체력테스트 결과처럼 '끈기있고' '악착같은' 노력에 응원의 시선이 간다.
아마추어시절 몸을 사리자않는 허슬과 투지넘치는 플레이로 '사무라이'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란 칭호를 받았던 선수.
우리에게 익숙한 유형이다.
두산'만'의 계보로 내려오던 허슬두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다시 '날카로움'과 '적극성'으로 무장한 안권수가 그라운드를 누비며 '열정'을 불사르는 모습을,
두산의 선배들이 일궈놓은 '허슬두'의 향을 그에게서도 맡을수 있길 희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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