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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에 멍든 '추석'…이혼 방아쇠에 가정폭력 증가까지

파이낸셜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10.08 15:07:44
조회 9227 추천 9 댓글 29
추석 직후 이혼 건수 가장 높아
전통적 성역할 강화되는 시기
가정폭력 신고도 증가
"사회적 지원 체계 강화해야"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 결혼 3년 차인 박모씨(33)는 이번 추석 남편과 크게 다퉜다. 평소 집안일을 잘 하지 않던 남편이 갑자기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것이 화근이었다. 남편의 행동에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평소에도 저렇게 집안일을 하냐"는 질타 같은 질문까지 이어졌다. 박씨는 "시댁에서 말 한마디 편하게 못하는데 남편은 눈치가 없다"면서 "추석에 정이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4~2023년) 월별 이혼 건수는 추석 직후인 11월(9.1%)에 가장 높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통계가 단순한 명절 스트레스를 넘어, 부부 간 누적된 불만이 ‘명절’을 계기로 폭발하는 경향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즉,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명절은 관계 회복의 시간이 아니라 결별의 방아쇠로 작용한다는 취지다.

실제 명절 직후 이혼 상담 문의가 잇따른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태연 태연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갈등 한 번 있었다고 이혼을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평소에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명절이 최종적인 결심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속권 분쟁부터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 가족 불화와 법적인 문제와 결부돼 이혼 상담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명절 직후 이혼율이 높아지는 이유로는 과거와 달라진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꼽힌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으나, 명절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기대를 받으며 갈등이 커진다는 것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명절에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화돼 갈등이 증폭하기 쉽다"고 분석했다. 통계청의 '2024년 사회조사'에서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중은 68.9%로 2년 전보다 4.2%p 증가했지만, 부부가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남편과 아내 각각 24.4%, 23.3%에 그쳤다.

다만 단순히 성역할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남성 역시 장시간 운전, 경제적 부담, 가족 내 위계 속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감정이 누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절 스트레스는 남녀 모두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는 사회적 이벤트이며, 성역할 갈등보다 ‘소통의 단절’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명절 기간 가정폭력 사건도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 기간 가정폭력과 교제폭력의 하루 평균 112 신고 건수는 각각 62.3%, 30.5% 증가했다.

이런 신고는 매년 증가 추세다. 지난 2021년 5일간 4568건(일평균 914건), 2022년 4일간 3660건(일평균 915건), 2023년에는 6일간 5623건(일평균 937건), 2024년 5일간 5246건(일평균 1049건)으로 집계됐다.

이혼 증가와 폭력 신고 급증은 모두 ‘가정 내 갈등 구조’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지표로 풀이된다. 명절이라는 특정 시기마다 가족관계의 불균형이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통계가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다 보니 화목한 집안은 더욱 화목해지고, 갈등이 있는 집안은 갈등이 더 표출되곤 한다"고 말했다.

올해 추석 연휴에도 가정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노원구에서 연휴 기간 큰집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와 아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60대 남성 A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매년 명절 기간 범죄 예방을 위해 특별치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월 29일부터 오는 12일까지 2주간 추석 연휴를 '종합치안대책 기간'으로 운영하며 재범 우려 가정, 고위험 대상자, 아동 학대 피해자 등을 대상으로 전수 관찰 중이다. 성평등가족부는 명절 연휴에도 폭력피해자 보호 및 지원 시설을 24시간 가동 체계로 운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정폭력은 자택 등에서 범행이 이뤄져 피해 당사자가 신고하지 않으면 적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고 후 보복을 우려해 신고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명절 기간 가정폭력은 더 많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정폭력을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가정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교육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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