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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Life's too short - 안나편모바일에서 작성

치즈드래곤(218.150) 2014.04.24 22:58:47
조회 1000 추천 31 댓글 10

   커다란 눈사람 괴물에 의해 던져진 나는 계단 밑으로 힘없이 내동댕이 쳐 졌다. 푹, 하고 눈밭 위에 몸이 떨어져 하나의 큰 구덩이를 만들었다. 눈이 부드러워 다행히 큰 부상은 면했지만, 상처가 나 버린 내 자존심까진 어찌할 수 가 없었다. 그래, 이렇게 나온 단 말이지. 아렌델을 그 꼴로 만들어 놓고 지 혼자 도망쳐서는, 뭐? 이젠 \'자유\' 라고? 나 참,엘사가 매일 방 안에 틀어박혀서 정신이 어떻게 된 게 틀림없다. 어떻게 자신의 나라를, 우리 엄마와 아빠가 죽음으로써 물려주신 왕국에 찾아온 위기를 그렇게 쉽게 외면할 수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 위기는 바로 엘사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그래도 나는 다가갔다. 부모님의 장례식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모두들 그토록 기다렸던 대관식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난 그 오랜 세월을 꾹 참고 자존심 대신 동정심을 내세우며 엘사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엘사는 그냥 내가 싫었나보다. 고작 말 몇 마디 했다고 가슴팍에 마법을 날리질 않나, 힘없이 쓰러진 나에게 미안하다는 한 마디 사과 대신 얼음 괴물을 시켜 다짜고짜 내쫓질 않나. 좋아, 나도 이젠 언니한테 질렸어. 두번 다시 언니를 보지 않을 거야. 아렌델의 문제는, 나 스스로 해결하면 되니까. 어떻게든.


   하지만 아무리 자꾸 되뇌여도, 속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모욕감을 쉽게 삭힐 수는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주위에 소복히 쌓인 눈을 모아 대충 뭉쳐서 저 계단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괴물에게 던지며 얼음성이 떠나가라 목청껏 소리질렀다.


   "야! 그러고도 네가 아렌델의 여왕이냐!"


   엘사가 과연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저 눈 괴물이 들은 건 확실한 것 같다. 내가 던진 눈 공이 괴물의 등에 명중함과 동시에, 등지고 서 있던 괴물이 몸을 돌려 나에게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으니까. 한 몇 초간 괴성을 내던 괴물이 계단을 내려와 나한테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이럴 줄은 몰랐는데. 나는 저 괴물의 투박한 손에 또 다시 붙잡혀 던져지기 싫었으므로, 뒤로 돌아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내 앞에 가파른 절벽이 나타났다. 어떻하지? 앞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이고, 뒤에선 내 키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은 엘사의 괴물이 쫓아오는데. 벌써 괴물이 열 걸음 정도 거리까지 다가왔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참 빠르군. 눈이라 가벼워서 그런가? 아니, 이런 쓸데없는 잡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여기서 발만 동동 구를 것이 아니라 어서 이 상황을 빠져나갈 생각을 해야한다. 생각해 안나, 생각!


   가만 있자, 보니까 낭떠러지는 그렇게 높진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밑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눈이 쌓여있다. 방금 내가 저 계단에서 눈 위로 떨어졌을 때를 생각해 보면, 여기서 추락해도 많이 아플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죽진 않을 것 같다. 어차피 눈 괴물에게 잡혀도 이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벼랑 밑으로 몸을 날렸다.


   "꺄아아아아아!"


   후회스럽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몸은 얼굴만 밖에 삐져나온 채 온통 눈으로 뒤덮혀 있었다. 덜덜 떨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온 몸이 얼어붙은 듯 추웠다. 눈에 파묻혀 있었으니 당연한 거 였다. 쓰고 있는 후드의 끈을 단단히 졸라매어 봤지만, 가슴 속을 파고들어 헤집는 서늘한 바람을 막을 순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그 이외에 다른 다친 데는 없는 것 같다. 그나저나, 이젠 어떻하지?


   엘사를 다시 설득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물론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남은 길은 다시 아렌델로 돌아가 혼란스러워진 민심을 수습하는 것 밖에 없었다. 한스가 잘 대처해주었겠지. 문제는, 어떻게 다시 돌아가느냐 였다. 하나뿐인 말은 도망갔고, 남은 건 고작 이 두 다리하고 주변을 뒤덮은 새하얀 눈 밖에 없었다. 이건 진짜로 큰일인데.


   뭐라도 없을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주위를 한 번 스윽 훑어보았다. 왼쪽을 둘러본 내 눈에 쏙 들어온 것은 썰매 모양의 나무 잔해였다. 야호! 하늘이 아직 날 버리진 않은 것 같다. 당장 내 앞을 가로막는 눈더미를 헤치며 그 쪽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예상대로 그것은 썰매였다. 위에서 떨어졌는지 약간 부서져 있었지만 그런대로 사용할 순 있을 것 같다. 갖출 건 거의 다 갖춰져 있으니 바로 올라타기만 하면 되겠지. 아렌델이 어딨는지는 대충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썰매 근처에 무언가 낮선 형체가 눈에 덮힌 채로 웅크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멀리 있을 땐 각도 때문에 보여지지 않았던 그것은 회색빛의 커다란 털뭉치를 누군가가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털뭉치에 머리와 뿔, 그리고 다리 네 개가 달려 있는 것을 눈치챈 나는 그것이 누워있는 채로 가만히 있는 순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걸 뒤에서 끌어안고 같이 누워서 미동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아 보이는 금발 청년이었다.


   둘은 그 상태 그대로 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숨쉬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지긋히 감고 있는 순록과 남자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자는 게 아니다. 얼어 죽은것이다. 이 한여름에, 따스한 햇빛이 쨍쨍 내리쬐어야 할 이 한낮에 이들은 비참하게도 뜻하지 않게 찾아온 겨울에 휩쓸려 생을 마감한 것이다. 애잔한 마음에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어 두 눈에 고이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새삼스레 다시 언니가 원망스러워진다. 엘사 때문에, 고작 그녀의 하찮은 변덕 때문에 어이없게도 아렌델의 두 생명이 삶을 마쳤다. 언니가 이 사실을 알면 뭐라 말할까? 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통감하고 다시 돌아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할까? 아니면, 무시하고 그냥 얼음성의 문을 굳게 닫힌 채로 놔둘까?


   엘사의 마법이 명중한 가슴이 다시금 아릿하다. 순간 휘청거리며 정신을 잃을 뻔한 것을 간신히 버텨냈다. 몸 속을 휘젓고 있는 추위가 더 매서워졌다. 시간이 별로 없다. 이 둘에게 제대로 무덤조차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어쩔 수 없다. 안타깝게 생을 마친 그들에게 잠시 고개를 숙이며 묵념한 다음, 썰매 위에 털썩 올라탔다. 눈 앞에 두개의 밧줄이 보였다. 아마 남자가 순록을 끌고 썰매를 탈 때 사용했을 이것은, 이젠 더 이상 쓸모가 없겠지.


   또 눈 앞이 글썽거렸다. 아냐, 정신차려 안나. 약해지면 안돼. 어서 돌아가 얼어붙은 아렌델을 다시 회생시켜야지. 그건 오로지 나하고 한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까 마음 굳게 먹자. 습관적으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은 나는 결심한 채, 썰매를 움직이기 위해 앞으로 몸을 기울여 체중을 실었다. 처음에 느리게 움직였던 썰매는 곧 가속도를 올려 쏜살같이 눈에 뒤덮인 비탈길을 뒤쪽으로 길다락 흔적을 남기면서 내려갔다. 휘우웅, 맞바람이 세차게 내 얼굴을 때렸다.




   시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아렌델 궁정의 방문을 열었다. 난로가 따스하게 타오르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몸 주위를 온통 감싸고 흐르는 냉기는 더욱 심해진 것 같다. 언니의 마법의 영향인가? 찰나 내 머리를 스쳤던 의문은,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한스에 의해 눈 녹듯 사라졌다. 아, 한스. 드디어 만났어. 이제 모든 일들이 잘 풀릴 거야.


   한스가 내게 다가와 부드러운 손길로  날 자기가 앉았던 의자에 앉혀 주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연유를 물었다. 나는 모든 걸 말해 주었다. 엘사가 실은 얼음 마법을 갖고 있었고, 그로인해 온 아렌델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언니는 얼음성에 틀어박힌 채 도통 나오려 하지 않는다고. 때문에 우리가 힘을 합쳐 아렌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나는 한스에게 호소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왜 한스는 이 모든 이야기를 말 없이 앉아서 무표정으로 듣고만 있는 거지? 분명 내 이야기들 중엔 한스가 전혀 몰랐던 사실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그 순간, 내 이성을 스쳐 지나간 의심의 감정을 애써 부정해 보았다. 에이, 아닐 거야. 한스가 그럴 리 없어.


   이야기를 끝마친 뒤에도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던 한스가, 마침내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안나, 당신과는 여기까지 인 것 같군요."


   동시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 내게 조소를 보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한스?"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뜬금없이 나한테 저런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이유가 뭐야? 저 말은 도데체 무슨 의미지? 수많은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너무나 당황스러운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스가 마치 이 때를 기다렸다는 사람처럼 조용히 일어나 뒷짐을 지고 내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소름끼치는 웃음과 함께, 말은 이어졌다.


   "설명해 드릴까요? 안나 당신은 분명 엘사 여왕이 쏘아낸마법에 심장을 맞았을 겁니다. 붉었던 머리칼이 지금은 하얗게 변색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안타깝게도, 그로 인해 당신은 지금 천천히 얼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스의 말을 듣고 얼른 옆으로 비져나온 내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의 말대로 내 머리는 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맙소사... 한스의 말이 사실이야? 내가 얼어죽어 가고 있다고? 그러면, 그러면 나도 그 순록하고 남자처럼... 아, 안돼. 이렇게 허무하게 죽긴 싫어. 아직 살아야 하는데, 살아서 언니와 화해해야 하는데.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그토록 미웠던 엘사가 다시 보고싶어 진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알고 있는거죠?"


   "미리 사전 공부를 조금 했지요. 당신의 언니이자 새로 즉위한 아렌델의 여왕 엘사와 결혼해, 제 오랜 숙원인 국왕의 권력을 손에 얻기 위해. 계획이 조금 틀어지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목적은 거의 달성한 것 같군요. 당신마저 사라지면, 나를 방해하는 장애물은 이제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장애물? 한스는 날 사랑한 것이 아니었나? 진정으로 날 이해해주고 감싸준 것이 아니라, 그냥 그저 연기한 것 뿐이였다고? 내가 한스에게 추억, 상처, 모든 걸 내비치며 사랑을 속삭일 때 마저, 그는 날 수많은 방해물 중 하나. 단지 그 뿐으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믿을 수 없어. 한스가 나를 농락했다니. 만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여겼는데.


   한스는 여전히 나를 향한 조소를 짓고 있다. 그가 꺼내는 말 한 마디 한 마디 마다, 부정하고 싶은 배신감이 가차없이 날아와 이미 얼어붙은 내 가슴에 비수처럼 내리 꽂친다. 아직도 이 현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의도대로 보기좋게 속아 넘어간 나를, 이미 무너져 버린 나를 더욱 더 짓밟고 있는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한스가 마땅히 미워야 했지만, 증오의 감정보단 그가 지금까진 장난이었다며 웃어 넘겨주길 원하는 헛된 바램이 그것을 앞선다.


  물론 한스는 그러지 않았다. 하늘은 날 버렸다.



  "...그 마법을 풀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행동밖에 없지요. 뭐, 여기서 그런 걸 찾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이제 당신을 이 곳에 놔두고, 엘사 여왕에게 찾아가 그녀를 죽여 아렌델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끝. 저는 영웅이 되는 거고, 당신들은 역사책의 한 페이지 귀퉁이에 자리잡겠죠."



   안돼. 싫어. 가지마. 언니를 죽이지 마. 날 버리지 마. 날 죽어가게 놔두지 마. 다른 사람들을 속이지 마. 문을 향해 다가가는 한스의 등 뒤에 젖먹던 힘 까지 짜 내어 말해 보지만, 목구멍으로 새어나오는 건 차가운 숨결과 들리지도 않는 신음소리 뿐이었다. 애처로히 내뻗는 내 떨리는 손은 그가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가 문을 닫으며 나지막히 말한 한 마디가, 내겐 사형 선고와도 같이 다가왔다.



   "그 동안 즐거웠습니다. 안나. 좋은 꿈 꾸시길."



   달칵, 문이 닫히자 마자 나는 몸에 남아있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문 앞으로 철푸덕하고 걸레짝처럼 엎어졌다. 그리고 문고리에 손을 얹고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손잡이가 반쯤 돌아가다 철컥, 무언가에 걸려 움직이지 않는다. 밖에서 잠긴 것이었다. 이럴수가... 최후까지 날 지탱하던 희망이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무정한 세상이 내 코 앞까지 다가와 절망을 속삭이고 있다.


   문을 두드린다. 처절하게. 쾅, 쾅, 쾅. 소리지른다. 거기 아무도 없어요? 내 별로 남지않은 삶으로 현실을 부정하려 애쓴다. 기운은 점점 빠져가고, 한때 내가 존재했던 아렌델은 멀게만 느껴진다. 팔이 더 이상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머지않아 마침내 세상을 향한 두드림을 멈추고, 모든 걸 포기한다.


  닫힌 문을 등진 채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젠 추위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온 몸에 감각이 모두 마비된 것 같다. 눈꺼풀이 새삼 무거워 진 것을 느낀다. 스르르 절로 감기는 눈을 애써 억지로 부릅뜨려 해본다. 헛수고다. 나는 알고 있다. 이건 졸음이 아니라 죽음이란 것을. 시야가 점점 흐릿해져 세상의 형체조차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고, 난 깊게 생의 마지막 숨결을 내쉰다.



   아아, 엘사. 인생은 너무 짧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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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설갤에 올렸던 건데 이제 프갤에서도 문학이 흥하니 여기도 한번 올려봄

   반응에 따라 엘사편과 한스편도 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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