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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단편] 서던의 세 왕자

치즈드래곤(203.226) 2014.05.03 01:24:59
조회 406 추천 1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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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밤, 주위가 온통 깜깜한 방 안에서 오직 벽 위에 달린 화려한 장식의 오색 스테인그라스 창문만이 하늘에서 내리는 별빛들을 투과하며 조용히 자신 고유의 빛을 발했다. 창문 아래에 놓여진, 귀족풍 아름다운 푸른 색 침대에 소복히 덮혀진 이불 속에서 한 열 댓살은 된 듯한, 새하얗게 빛나는 머리카락의 소년이 몸을 옆으로 돌린 채로 새근새근 숨을 몰아쉬며 곤히 잠자고 있었다.


   그 때에, 방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살짝 열리더니 자고 있는 소년와 닮은 얼굴의, 하지만 나이는 훨씬 더 어려보이는 붉은 머리칼의 소년이 까치발을 하고 조심조심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들키지 않았나 하며 잠시 긴장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 보더니,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얼굴에 묘한 웃음을 띄우고 자신의 형이 자고 있는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푹, 소리가 나며 누워 있는 소년의 등 뒤로 부드러운 이불이 구겨져 주름을 만들었다. 자신의 단잠을 방해하는 소란에 의식이 든 소년은 졸린 눈을 살짝 뜨고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스... 이젠 잘 시간이잖아... 빨리 네 방으로 돌아가."




   한스라고 불리우는 작은 소년은 이미 그 말을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은 뒤, 웃음기 가득 섞인 목소리로 누워 있는 그의 등에다 대고 말했다.




   "요제프 형. 눈사람 만들고 싶지 않아?"




   그 말에, 새하얀 머리카락의 소년 또한 얼굴에 묘한 미소를 띄우고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한 밤 중의 왕궁 거실에는 두 소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요제프가 두 손을 들어 서로 휘감자, 그 가운데에 조그마한 눈송이가 생겨 점점 커져갔다. 한스는 눈을 크게 뜬 채로 해맑게 웃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어느덧 새하얀 눈송이가 자신의 손 크기까지 커져 갈 즈음에 제프가 휘감던 손을 거실 천장으로 뻗어 눈송이를 날려 보냈다. 푸른 빛을 발하며 빠르게 꼭대기를 향해 날아갔던 눈송이가 펑 하고 터지더니, 눈이 되어 넓은 거실 안에 천천히 내렸다. 붉은 머리의 소년은 신나는 기분을 느끼며 두 팔을 벌리고 거실 바닥을 마구 뛰어다녔다.


   요제프가 뛰어다니는 한스를 잠시 멈춰세우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힘차게 바닥에 발을 디디는 것을 보여주었다. 발끝에서 시작되었던 얼음의 파장은 빠른 속도로 주위로 퍼지더니, 곧이어 온 거실을 얼려 찬란히 빛이 나는 눈으로 덮이게 만들었다. 한스는 순식간에 자신의 발목까지 차오르는 눈의 바다 속에서 마치 헤엄치는 듯한 모양으로 누웠다. 소년이 두 팔과 다리를 움직이자, 그 모양새를 따라 눈밭 위에 한 폭의 그림이 생겼다. 요제프 또한 기쁜 표정을 짓는 그를 지켜보더니, 따라 누워 자신도 양 팔로 나비 모양의 그림을 그렸다.




   한참을 눈 밭위에서 뒹굴고 있던 한스가 옷을 털고 일어서더니 제프에게 들뜬 목소리로 부탁했다.




   "요제프 형! 이제 눈사람 만들어 줘. 멋진 눈사람으로."





   "흐음... 그럼 어떤 눈사람을 만들어 줄 까?"




   "형 같은 눈사람을 만들어줘. 나는 형이 제일로 좋으니까!"




   "...그래? 그럼 대신에 이건 어때?"




   말을 마친 소년이 한 팔을 들어 천천히 휘저으자, 그의 옆에 청색 빛을 발하며 눈들이 뭉치더니 소년과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눈사람이 하나 생겼다. 꽤나 그럴듯한 모양새였다. 요제프는 한스의 시선에 보이지 않게 두 팔을 벌리고 웃는 모습의 눈사람 뒤로 숨으며 목소리를 이상하게 깔고 말했다.




   "안녕! 나는 빅터라고 해! 나는 제프의 동생이고, 너의 형이야!"




   "와, 형이 한명 더 생겼다!"




   붉은 머리의 소년이 폴짝 뛰며 짝짝 박수를 쳤다. 요제프는 눈웃음을 지으며 눈사람 뒤에서 나와 또 다시 손을 휘저었다. 환하게 빛이 나더니, 빅터라는 눈사람 옆에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채로 웃고 있는 눈사람이 만들어 졌다. 제프는 또다시 그것의 뒤로 숨으며 다른 목소리로 변조하며 말했다.




   "안녕! 나는 케빈이라고 해! 나는 제프와 빅터의 동생이고, 너의 형이야!"




   "우와, 멋지다! 요제프 형, 한 명 더 만들어 줘!"




   "알았어."






   그렇게 한참을 논 후에, 어느덧 거실 한가운데에 웃으며 앉아 있는 두 소년의 주위에는 각각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눈사람들로 둘러쌓여 있었다. 한스는 손가락을 들어 천천히 그것들을 세어 보았다. 모두 합쳐서 열 개였다. 요제프에겐 충분히 많은 숫자였지만, 한스는 만족하지 못했는 지 약간 피곤한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요제프에게 말을 걸었다.




   "형, 다른 눈사람 형 한 명만 더 만들어 줘."




   "안 돼. 이미 많이 있고, 지금 나는 너무 피곤해."




   "딱 한번만, 응?"




   "형이라면 눈사람들 말고도 어차피 둘이나 있잖아. 나도 있고, 지금 저어 쪽 방에서 자고 있는..."




   "카인 형은 싫어! 맨날 요제프 형 무시하고, 나하고도 안 놀아 주고!"




   뾰류퉁한 표정을 지은 채 팔짱을 끼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한스를 보고, 요제프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런데 그 때,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언제부터인지 열린 거실 문 방향으로 누군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제프와 한스는 그 쪽을 바라보았다. 한스와 같은 붉은 머리카락의, 요제프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는 비록 잠옷 차림이었지만 자신의 동생들인 두 소년을 위압시키기에는 충분했다. 한스는 순간 자신이 방금 한 말을 카인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카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거실 바닥에 소복히 쌓여있는 눈에 발자국을 새기며 다가가, 팔을 번쩍 들어 놀란 표정으로 서서 굳어있는 요제프의 뺨을 손바닥으로 가격했다.




   짜악-


   소리가 차가운 거실 공기를 갈랐다. 소년을 붙잡고 있던 공포도 그에 맞추어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렸다. 맞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요제프를 대변한다는 듯이, 한스가 화를 내며 소리지르듯이 말했다.




   "카인 형! 형이 뭐 엄마나 아빠라도 돼? 왜 자꾸 요제프 형을 자기 마음대로 혼내는 거야?"




   카인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굴곡 없지만 짙은 어조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군 요제프에게 말했다.




   "요제프. 너의 그 힘은 절대로 세상에 밝혀져서는 저주이다. 만약 네가 방금 피운 소란으로 인해 왕궁 외 다른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네녀석 한 명의 명예를 떠나서 온 서던 왕조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고작 이따위 장난질을 하기 위해 네 마법을 사용했단 말이냐? 아버지가 왜 너에게 항상 숨기고, 느끼지 말고, 보이지 말라고 가르쳤는지 한번이라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서슬 퍼런 카인의 말에, 대꾸하려던 한스의 목소리는 목구멍 안으로 힘없이 녹아 사라져 버렸다. 그는 너무나도 차가웠다. 붉은 머리의 소년은 닥쳐오는 두려움에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모두가 굳은 채로, 한참 동안 거실 안에서는 한스가 흐느끼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정적을 깨고, 카인이 말했다.




   "다시는 이런 경솔한 행동을 하지 말아라. 너는 비록 쓸모없지만, 엄연한 서던 제도의 왕자니까 말이다."








   그가 거실 문을 닫으며 돌아가자, 요제프는 고개를 들고 힘겹게 팔을 치켜 들었다. 거실에 쌓인 눈들과 눈사람들이 은은한 푸른 빛을 발하며 그의 들려진 손 안으로 모였다. 곧 이어, 왕궁 거실은 두 소년이 처음 들어왔을 때와 같이 밋밋하고 어두운 모습이 되었다. 한스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요제프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축 쳐진 그의 등은 말하지 않아도 지금 둘의 심정을 표현해 주었다. 서 있는 한스를 뒤로 한채로, 요제프는 천천히 닫혀진 거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요제프는 거실 문을 조금 연 후에, 고개를 돌려 울고 있는 한스를 바라보고 말했다.






   "미안해 한스, 다음엔 더 재미있게 놀자."


















   아름답게 서던 제도 특유의 문양이 장식 되어있는 방 문을 누군가 벌컥 열고 들어왔다.  한스였다. 이제 스물 두살, 어엿한 청년이 된 붉은 머리카락의 한스는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조용히 침대 위에 앉아있는 그의 형 요제프를 바라 보았다. 그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창문 밖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반사해 더욱 새하얗게 보였다. 한스를 눈치채고 그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 보이는 요제프의 무릎엔 웬 두꺼운 책이 하나 엎어져 있었고, 침대 옆 선반 위에도 여러가지 두께와 색깔의 책이 반듯이 정렬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스의 눈엔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요제프 앞으로 달려가 한쪽 무릎을 꿇고 따지듯이 물었다.




   "형, 그게 정말이야? 추방이라니?"




   "추방이 아니라, 잠시 외딴 섬으로 이동하는 것 뿐이야."




   "그게 추방이잖아! 망할, 카인 형이 왕이 되고나서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거 아니야? 자신의 동생을 내쫓는 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한스, 말 조심해. 카인 형도 원해서 내린 명령이 아닐 거야..."




   힘없이 내뱉어진 요제프의 말은 흥분한 한스를 이해시키고 진정시키에 충분하지 못했다. 그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방 안을 맴돌며 분노에 가득찬 어투로 카인과 그의 귀족 측근들을 원망하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요제프는 아무 말없이 슬픈 눈으로 계속 움직이는 그의 몸을 향해 시선을 움직일 뿐이었다. 몇 바퀴를 돌았을 까, 마침내 한스는 요제프의 옆에 앉아, 하지만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로 그를 향해 호소했다.




   "형은, 형은 아무것도 안했어? 그 말도 안되는 결정에 조금이라도 항의해 보지 않았냐고?"




   "너도 알잖아, 한스. 내겐 아무런 힘이 없어. 항상 숨기고, 보이지 말아야 하지."




   "힘이 없긴 왜 없어! 형은 마음만 먹으면 서던 제도 전체를 얼릴 수도 있잖아?"




   "그런 건 힘이 아니야, 한스. 진정한 힘은 바로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고, 다스리는 거지. 왕인 카인 형 처럼."




   "그렇지만... 젠장! 아니야, 분명히 형을 이 거지같은 상황에서 구해 낼 방법이 있을 거야."




   "그만둬, 한스."






   요제프의 말에, 한스는 그를 바라 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너의 형이야."







   "나도 알아!!!!"




   한스가 소리지르며 앉아있던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충격으로 선반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던 책들이 흐트러졌다.




   잠시 차가운 침묵이 방 안을 타고 흘렀다. 숨을 몰아쉬며 서있던 한스는 곧 후회를 느끼고는, 그에게 사과하며 다시 침대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 미안해, 형. 조금 신경이 예민해 져 있었어... 단지, 단지 형을 돕고 싶은 마음에..."




   "...정말 나를 돕고 싶니?"




   슬픈 표정을 짓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를 바라 보며, 요제프가 말했다. 그의 말투엔 약간 희망찬 어조가 담겨 있었다. 한스는 순간 눈을 크게 뜨고 요제프를 바라보고는 다급히 질문했다.




   "방법이 있어?"




   "서던 제도의 북쪽으로 배를 타고 가다보면, 아렌델이라는 왕국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 거기서 왕과 왕비가 사고로 죽고, 지금은 정통적 왕위 계승권을 갖고 있는 왕족이 공주 두 명 밖에 없어. 그 중 엘사 공주는 내년에 여왕으로 즉위하는 데..."




   요제프는 거기서 말을 끊고는,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진 책을 펼쳐 손으로 페이지를 빠르게 훑었다. 수많은 왕과 여왕의 그림들이 보였다. 그들의 머리카락 색깔은 모두 타오르는 듯한 붉은 빛이였다.




   "이것들은 그동안 아렌델에 있었던 왕과 여왕들의 그림이야. 보면 알겠지만, 모두 붉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지. 하지만 내가 알아본 바로는, 엘사 공주의 머리 카락은 플래티넘 블론드, 백색이라더군. 참고로 그녀는 지금까지 계속 아렌델 왕궁에서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에, 외부에 밝혀진 사실들이 별로 없어. 이 정보도 믿음직한 소식통에 의해 가까스로 알아낸 거지. 너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알고 있겠지?"




   "설마... 그녀에게도 저주가...?"




   "글쎄, 이 드넓은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몇 명 쯤은 더 있는 것 같은데?"




   요제프가 웃으며 자신의 새하얗게 빛나는 머리카락을 몇 가닥 만졌다.




   "아무튼, 그녀는 분명 별로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 왔겠지. 그녀의 여동생 조차 그녀와 자주 접촉하지 못했다고 하니까. 여기서 네가 할 일은, 그녀에게로 다가가서 그녀의 아픔을 달래 주고, 여왕이 된 그녀와 결혼해 왕으로 공동 즉위하는 거야."




   "아렌델의... 왕으로?"




   "그래. 왕. 카인 형과 같은. 아까 내가 진정한 힘은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고 다스리는 것이라 했지? 네가 그녀의 슬픔을 이해하고 포용하면, 그녀는 자연스레 네게 다가가 좀 더 헌신적으로 변할 꺼야. 항상 이 저주를 가진 나를 이해해주던 네겐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 그러면 무역 강국, 아렌델의 왕의 힘으로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꺼야."





   "내가...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말은 하지 마. 넌 할 수 있어. 네겐 널 응원하는 형이 많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 손을 들었다. 침대 옆에서 갑자기 푸른 빛이 발하더니, 두 팔을 벌리고 웃고 있는 눈사람이 그 둘의 눈앞에 나타났다.




   "맞아! 나 제프도 니가 잘 할수 있을 거라 믿어!"




   하하하...




   둘은 웃음을 터트렸다. 방 안을 가득 메운 그 둘의 웃음은 이루 말 할수 없이 순수하게 빛났다.






























   서던으로 돌아가는 배 위, 독방 안에서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는 한스에게, 간수가 다가와 철창 사이로 종이 쪽지 한장을 건네 주었다.


   한스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노랗게 변색된 그 쪽지를 펼쳤다.






   서던의 두번째 왕자, 요제프가 반역죄로 사형당했음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한스는 웃었다.




   별이 빛나는 밤 하늘 아래에서, 한스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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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 단편 시리즈 그 두번째

    만약 한스가 안나랑 비슷한 삶을 살아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써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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