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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단편] 둘만의 비밀

ㅇㅅㅇㄴ(61.82) 2019.12.27 00:00:48
조회 186 추천 11 댓글 9


잠에서 깬 엘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침대의 천장이었다.


어제 제스쳐 게임을 너무 늦게까지 했나...?’


엘사는 눈을 비비며 기억을 더듬었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못한 그녀의 머릿속에는 마법의 숲처럼 안개가 껴 있었다. 하지만 비몽사몽인 그녀가 최선을 다해 기억을 더듬어봐도 어제 제스쳐 게임을 한 기억은 없었다.


안나 여왕님, 기상하실 시간입니다. 오늘은 늦게까지 주무시는군요.”


문 밖에서 카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안나의 침실이구나. 어젯 밤 안나와 같이 잠들었나 보네.’


엘사는 동생을 깨우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침대에는 엘사 외에 아무도 없었다.


이미 일어났나? 부지런하네, 내 동생.’


엘사는 카이에게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 안나는 이미 일어나서 나간 것 같아요.”


‘...?’


엘사는 자신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단걸 알았다. 감기라도 걸린건가 싶었지만 목이 아픈 것도 아니었다.


여왕님, 안에 뻔히 계시면서 그렇게 대답하시면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어서 채비를 갖추고 나오시지요.”


? 하지만 안나는...”


카이의 반응에 당황해 주위를 둘러보던 엘사의 시선이 입고 있는 옷에 가 멈췄다. 밝은 초록색이 눈에 확 들어왔다. 분명 엘사가 많이 보던 안나의 옷이었다.


내가 왜 안나의 옷을 입고 있는거지?’


그녀의 시야 끝에 갈색빛이 어른거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헝클어져 덤불을 이루고 있었다. 엘사는 이제야 일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전신 거울로 발을 옮겼다. 거울에 가까워질수록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세상에...!”


거울에 비친 그녀는, 그녀가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여동생 안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뺨에 닿는 축축한 감촉에 안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밝은 햇살이 눈을 찔러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여긴 어디지?’


간신히 눈을 뜬 그녀가 본 풍경은 숲과 절벽, 호수가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었다. 그녀는 커다란 바위 위에 있었고, 브루니가 얼굴에 올라타 그녀의 뺨을 핥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야, 브루니. 언니는 어디 가고 나한테 붙어있는 거니?”


조심스럽게 브루니를 잡아 바닥에 내려놓은 안나는 몸을 일으켜 바위에서 내려섰다.


아렌델 북쪽 숲인가?”


그녀는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아픔만이 생생히 전해졌다. 그녀가 자신의 옷을 내려다 본 것도 그때였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새하얗고 기이할 정도로 얇았다.


맙소사, 언니의 드레스잖아?’


안나의 발걸음이 급히 호숫가로 향했다. 호숫가에서 고개를 숙여 수면을 쳐다보는 안나의 시야 구석에 백색에 가까운 노란빛이 흘러내렸다. 잠시 후, 아렌델 북쪽 숲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런 기묘한 마법은 저도 처음 봅니다.”


페비가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에서도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두 여왕님들에게 또 어떤 사건이 닥치려고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페비는 손을 허공에 휘저었지만 그 어떤 장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군요.”


그러면 저희는...”


불안해하는 안나의 표정으로 엘사가 말했다.


두 분의 몸이 바뀐걸 누가 또 알고 있나요?”


저는 이변을 눈치채자마자 노크를 타고 바로 달려왔어요. 아마 아무도 모를거예요.”


저도 혹시 몰라서 안나 시늉을 했어요. 하지만 글쎄요, 카이가 눈치챘을지도...”


그렇다면 두 분은 앞으로도 서로의 흉내를 내는 것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뒤바뀐 생활을 하다 보면 여왕님들의 몸이 뒤바뀐 이유도 나타나겠지요.”


엘사와 안나는 서로를(지금 같은 경우에는 각자의 본모습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다행히 특별한 일 없는 7일이었다. 엘사는 안나의 여왕 업무에 시달렸지만, 아렌델의 전 여왕다운 면모를 보여주며 매끄럽게 일을 처리했다. 반면 안나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노덜드라에는 이미 옐레나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안나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정도의 역할로도 충분했다.


언니, 편하게 사는걸?’


하지만 엘사가 여왕이고 안나가 공주였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안나는 엘사에게 딱히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안나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괜한 심술에 게일 편으로 제스쳐 게임을 졸라대는 편지들을 보냈다.


일주일 동안 둘은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크리스토프와 올라프에게도 서로 몸이 뒤바뀐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비록 비밀을 가지는 것이 안나의 평소 신념과 어긋난 행동이긴 하지만, 이건 처음으로 생긴 엘사와 안나 둘 사이의 비밀이었다. 그 사실이 둘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했다.


7일째 저녁, 엘사와 안나는 아렌델 성의 침실에 앉아 열심히 이야기하며 글을 쓰고 있었다. 둘은 일주일 동안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이 현상에 대해 조사했고, 알아낸 사실들을 종이에 정리하고 있었다. 둘이 적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엘사 몸의 안나는 마법을 쓸 수 있다.


2. 안나 몸의 엘사는 마법을 쓸 수 없다.


3. 엘사 몸의 안나는 마법으로 생명을 만들어낼 수 없다.

(“나도 마시멜로같이 든든한 호위병을 하나 만들어볼까 했거든.” 안나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4. 엘사의 평소 일상은 굉장히 한가하다.

(엘사는 갑자기 천장의 조명에 지대한 관심을 보임으로써 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5. 아렌델 여왕의 업무는 엘사가 여왕일 때보다 많아졌다.

(“너가 자랑스러워, 안나.” “하지만 언니도 일주일 동안 훌륭히 해주었는걸?”)


6. 옐레나는 굉장히 유능한 지도자이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나는 언제쯤 그녀 같은 여왕이 될 수 있을까?”)


7. 매티어스 장군은 감수성이 풍부하다.

(“아빠의 초상화 앞에서 눈물 지으시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찡하던지...” 이 말을 하는 엘사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안나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8. 노덜드라의 화장실은



안나,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엘사가 글을 쓰던 안나를 중지시켰다.


하지만 꼭 쓰고 싶은걸? 노덜드라의 화장실이 어떠...”


화장실은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잖니. 우린 지금도 충분히 많이 쓴 것 같아.”


언니의 생각이 그렇다면, 알겠어.”


안나는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이었지만, 펜을 내려놓았다.


언니, 우리는 일주일 동안 앞의 세 항목을 빼고 이 현상에 대해 알아낸게 아무 것도 없네?”


쓴 내용을 천천히 뜯어보던 안나가 실망한 엘사의 표정으로 말했다. 안나 몸의 엘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대꾸했다.


그러게, 내가 좀 더 알아봤어야 하는데...”


아냐, 언니! 충분한 것 같아!”


낙담하는 안나와 위로하는 엘사의 모습은 모닥불마저 갸우뚱할 정도로 위화감 있었다. 그 때 희미한 메아리가 안나의 귀에 들려왔다.


언니, 방금 들었어?”


무슨 소리니, 안나?”


방금 아아~아아 하는 메아리 소리, 못 들은거야?”


안나의 말을 들은 엘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안나, 넌 아무래도 아토할란의 부름을 들은 것 같아.”


, 아토할란? 하지만 나를 왜? 몸이 바뀌어서 엘사 언니랑 착각한건가?”


그건 아닐거라고 봐... !”


언니, 뭘 알아낸거야?”


엘사가 결연한 안나의 표정으로 자신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안나, 우리 몸이 뒤바뀐 이유를 알겠어. 지금 당장 노크를 타고 아토할란으로 가.”


곧바로? 나 혼자? 무슨 말이야, 언니?”


가보면 알게 될거야. 어서 가, 안나!”


엘사답지 않게 안나를 재촉하는 모습을 보며 안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엘사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좋아, 언니. 갔다 올게.”





안나는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노크를 타고 오는 그녀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엘사는 자신의 몸을 한 동생을 따스하게 포옹해 주었다.


언니... 알고 있었구나... 그래서 이번에는 나를...”


어땠어, 내 동생? 따뜻하게 맞아주셨니?”


그게...”


안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엘사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엘사는 흐느끼는 동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둘의 몸은 어느새 원래 주인을 찾아가 있었다. 몸이 바뀐 일주일, 그리고 그 날 밤의 기억은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될 둘만의 비밀이었다.



--------------------


예전에 썼던 단편 중에 기다림이라는 글이 있음

https://gall.dcinside.com/frozen/3263323

요약하자면 부모님들의 의식이 아토할란에 스며들었다는 내용인데, 이걸 배경 설정으 해서 이번에는 아토할란이 안나를 부르는걸 가정하고 써봄

처음엔 다들 떠올렸듯이 너의 이름은을 모티브로 해서 가벼운 일상 얘기를 쓰려 했는데 쓰다보니 방향이 틀어져 버렸네ㅋㅋ

읽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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