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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단편] 아토할란의 부름

안나윌리엄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19 0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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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다섯 번째 정령이 되기 위해, 강의 끝에서 진리를 받아들여라”.]
 


오랜만에 아렌델에 방문해 성대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고 돌아온 다음 날, 엘사는 아토할란이 또 다시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법의 숲 최북단 골짜기에서 어둠의 바다를 바라보던 엘사는 품속에서 닷새 전 전 게일이 실어다 준 편지를 펼쳤다. “편지가 늦어서 미안. 생일 축하해, 언니! 오늘은 아렌델에 눈이 펑펑 내렸어. 어서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투덜대던 올라프가 얼마나 즐거워했는데! 그리고 크리스토프는 옆 나라에서 ‘머스킷’이란 걸 가져왔더라고. 한 발만에 늑대 녀석들이 꽁무니가 빠지게 줄행랑치는 모습을 언니도 봤어야 돼. 참, 아렌델엔 또 언제 놀러 올 거야? 이번 크리스마스? 다음 주? 아니면 다음 달? 괜찮아. 언니도 언니의 일이 있을 테니까. 서로 다른 곳에 있어도 자매는 한 마음이잖아? 어...쓸 말이 아직 많은데 크리스토프는 자기 잘 때 옆에 촛불 켜져 있는 걸 정말로 싫어하더라고. 난 언니가 항상 자랑스러워. 잘 자, 보고 싶어!”



 엘사는 눈을 감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지금 느껴지는 아토할란의 부름은 제안이 아니라 차라리 명령에 가깝다는 것을 엘사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토할란이 간직한 세계의 근원을 받아들이는데 걸리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을 것이다. 엘사는 첫 모험에서 느꼈던, 아토할란 내부의 마력을 가늠해 보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토대로 이번에 아토할란으로 떠나면 자신이 의무를 다하고 아렌델로 돌아가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도 어림잡아 보았다. ‘일 년? 아니, 그것보단 긴 시간이겠지. 이 년 정도?’ 엘사가 감았던 눈을 지그시 떴다. 달조차 없이 짙게 드리워진 어둠 때문에 수평선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를 향한 이토록 강력하고도 단호한 부름이라니. ‘오늘도 사랑하는 이들을 편지 속의 글씨로만 만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했던 지난 나날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한동안 그것조차 불가능하게 될 처지였다. 냉혹한 빙하의 강 아토할란은 작별 인사를 위해 아렌델을 찾아갈 하루의 말미조차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엘사는 사랑하는 이들을 또다시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자신의 잔인한 운명에 몸서리쳤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사실과, 그 의무가 왜 나에게 주어졌는지 곰곰이 생각하던 엘사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균형을 수호하는 다섯 번째 정령으로서의 대의를 받아들이고 아토할란의 부름에 따르는 것이 ‘예’와 ‘아니요’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엘사는 나지막한 소리로 게일을 불렀다. 엘사의 마지막 답장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정령에게 주어진 숭고한 의무니, 사명이니 하는 것들은 일절 적지 않았다. 겨우 글자 몇 개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했고, 굳이 글로써 표현하지 않아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안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인사가 담긴 종이를 조심스레 새 모양으로 접은 엘사는 편지를 공중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게일은 자신이 작별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엘사의 주위를 몇 바퀴 맴돌다 이내 아렌델이 있는 남쪽을 향해 불어갔다. 항상 편지를 보내준 데에 감사를, 갑자기 찾아온 이별에 대해 사과를, 아렌델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이 땅을 잘 다스려 달라는 안나를 향한 당부 정도가 적힌 작별 편지를 왕궁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는 크리스토프가 받게 되리라.



바깥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단절되어 있는 아토할란. 그 입구에서부터 끝없이 펼쳐진 얼음의 통로는,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더 짙은 마법이 드리워 있어 무한한 강줄기를 따라가다 아토할란이 허락하는 지점을 넘어서는 자는 끝내 얼어붙어 삼켜지는 아토할란의 잔인한 대답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마법의 한계점을 넘어선 아토할란의 최심부에는, 빛이나 소리 같은 무형의 존재들조차도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이 있다. 아토할란은 이전에 있었던 엘사와의 첫 번째 만남 이후, 때를 기다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섯 번째 정령을 불러 자신의 가장 깊은 곳으로 가는 길을 허락했다.
 


 엘사에게 짧은 감사 인사를 들은 녹크는 이내 얼어붙은 바다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토할란의 거대한 입구를 바라보며, 엘사는 첫 번째로 이곳에 당도했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벅차오름이 온몸을 떨리게 하던 그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이번에 이곳 아토할란에 다시 찾아온 이유는  첫 번째 여정과는 달리, 아렌델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나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이니까.



 ‘안나, 크리스토프, 올라프, 스벤, 그리고 아렌델의 주민들. 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내 소망이 너무나도 큰 욕심이었던 걸까?’ 기나긴 이별을 앞에 둔 엘사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영원한 작별이 아닌 게 참 다행이야. 내가 가야만 하는 길인걸. 아토할란에서의 의식이 끝나고 서로 만날 땐, 지금보다도 더 행복한 모습이기를.’ 이윽고 엘사는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사사로운 감정’ 정도로 치부해 버렸다.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차오르고 가슴 한 편이 뜨거워지는 감정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냉정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짙어지는 냉혹한 아토할란의 얼음 결계를 지나갈 방법이 없었다.



 ‘정말 끝이 없는 강이야. 이렇게 긴 통로가 있었다니…….’첫 여정에서 도달했던 가장 깊은 곳까지의 열 배도 훨씬 넘는 거리의 길을 엘사는 기꺼이 따라갔다. 아니, 길을 ‘만들어’갔다는 표현이 차라리 더 정확했다. 이제는 빛 한줄기, 물 한 방울조차 보이지 않는 속에서 깎아지른 절벽, 칼날과도 같은 얼음바닥, 얼음을 캐는 송곳보다도 날카로운 고드름이 당연하다는 듯이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을 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마법을 쓰지 않으면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런 자잘한 따위의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엘사가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아토할란의 얼음 결계였다. 첫 번째로 삼켜진 그 지점보다 수백 배는 강한 마법이 휘몰아치는 속에서는 한 순간이라도 의지와 각오를 다잡지 않으면 또다시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었고, 동시에 이번에는 자신을 구할 이가 아무도 없는 ‘다른 운명’역시 맞게 되리라.



 얼마나 깊이, 그리고 멀리 들어온 것일까? 지칠 대로 지친 엘사는 지겹도록 지나쳐 왔지만 또다시 앞을 가로막는 낭떠러지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작은 얼음 조각을 만들어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레 마법으로 주위를 밝힌 엘사는 더 이상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도, 더 이상 나아갈 길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틀림없이 이 아래가 바로 모든 것의 어머니, 아토할란의 심장이었던 것이다. 엘사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절벽에 몸을 던졌다.
 


빙하의 강이 끝나는 지점이자 아토할란의 가장 깊은 곳. 일반적인 상식에 따르면 그곳을 ‘공허’라 칭할 수 있겠으나, 숭고한 부름을 받아 정령이 된 자에게 이 공간은 정령과 마법, 그리고 자연의 정수가 가장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는 ‘근원’ 그 자체였다. 엘사는 물결치며 흘러가는 구슬 모양의 은청색 정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북쪽 바다의 얼어붙은 빙하를, 누군가의 절망이 되었던 매서운 파도를, 그리고 겨울 하늘을 뒤덮은 눈송이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물의 정수구나.’ 그러자, 물의 정수가 차츰 작은 입자로 변하더니 이내 흩어졌다. 정수 하나를 받아들인 엘사는 고개를 들어 초점을 흐렸다. 형형색색의 수많은 정수들이 주위에 가득했다.



 ‘이것들을 모두 받아들이면 진정한 다섯 번째 정령이 되어 아렌델에 돌아갈 수 있다는 거지? 좋아……. 피할 수 없다면, 해내고 말겠어.’ 거대하고도 숭고한 의무를 앞에 둔 엘사의 각오는 비장했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엘사는 남은 모든 마력을 끌어모은 뒤 마지막 편지에 못다 쓴 추신을 아렌델을 향해 쏘아 올렸다. “이 년 뒤, 그러니까 다다음 크리스마스가 되면 돌아갈게.” 이제  오직 하나의 ‘해야 할 일’만 이 남은 엘사는, 다음 보이는 정수를 향해 힘차게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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