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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독후감]크리스토프 3부작

ABC친구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05 11: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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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에 있을 때 가장 차갑고 가장 외로운 아이의 이야기. 강렬하다고는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소하고 확실한 감동을 뽑아내는 작가의 능력은 감탄스럽습니다.


일단 묻고 싶네요. 프갤문학에서, 공포에 기반하지 않은, 순전히 이질감 때문에 누군가가 무시받고, 박해받고, 멸시받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보셨던가요? 흔치는 않습니다. 겨울왕국 본편에서 엘사가 멸시 받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마법에 대한 '공포'때문이죠. 사람들이 그 공포만 극복해낸다면, 엘사는 무시받을 이유도, 멸시받을 이유도 없는 완벽한 인물입니다. 예쁘고 똑똑하고 성격좋고 노래 잘하고, 집안까지 빵빵하죠. 안나의 경우에는 시작부터 멸시 모멸 따위와는 거리가 먼 평행선을 달립니다. 그래서 평범한 문학작품이나 현실세계에서는 너무나도 보기 쉬운 이야기들, 즉 '정당한 이유없는 멸시'의 이야기를, 프갤문학에서는 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작품만 봐서는 크리스토프의 이야기를 담다 보니 그런 이야기들이 쏟아지게 된건지, 아니면 이런 테마를 담고 싶어서 일부로 크리스토프를 고르게 된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이 테마는 3부작 전체를 관통합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이 세 이야기는 비슷한 테마를 활용한 비슷한 내용들이 변주되는 것을 통해 너무나도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박해받고, 가장 고통받는 상황에 몰려버린 아이가 정말 나쁜 길로 가지 않고, 정말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작가는 그 답을 확실하게 정해놓은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에서의 크리스토프의 삶은 정말 불우합니다. 친부모는 누구인지 모릅니다. 어린시절 처음으로 아빠라 부를 수 있었던 사람은 적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습니다. 그 뒤로 그를 받아준 가족은 따뜻한 트롤들이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어디 밖에 나가서 자랑할 수도 없고, 함부로 이야기조차 꺼낼 수 없습니다. 결국 밖에서 보기에 그가 가족없는 아이 취급 받는 것은 똑같습니다. 이로 인한 모멸, 수치, 고통은 그가 가장 사랑하고 그를 가장 아껴주는 사람들에게도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것은 곧 '당신들이 내 가족인걸 나는 밖에서 부정하고 다닐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나요? 현실에서야 '엄마아빠가 내 엄마아빠인게 싫어!' 하면서 부모 가슴에 대못박는 아이들이 있겠습니다만은, 크리스토프는 그런 아이는 절대 아닙니다. 이 아이는 가족의 소중함을 압니다. 그저 어쩔 수 없는 고통을 어쩔 수 없이 받고 있을 뿐이죠.


이 아이는 평생 자기편을 만들지를 못합니다. 이쯤 호의를 베풀었으면 진정한 우정같은걸 만들법도 한데, 이 이야기들 속의 인간들은 소름끼치게 현실적입니다. 자기에게 위험이 될 것 같은데도 이 착한 아이를 감싸주고 계속 친구가 되어주겠다며 손을 내미는 동화속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현실적인 이야기들에서도 가끔 그런 아이들은 나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없습니다. 그런 아이가 없는 이유조차, 시대상과 작중 배경을 고려하면 또다시 소름끼치게 현실적입니다.


이 이야기속에는 그렇게 살도록 교육받은 아이가 없습니다. 현실의 초등학교에서 왕따받는 아이를 보고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준다면, 그리고 이유없이 괴롭힘당하는 착한 아이를 한 몸 던져 지켜주고 그 아이 대신 가해자들에게 일갈해주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어째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걸까요? 그 아이가 본성적으로 착한 아이라서? 가능한 설명입니다만, 그건 한계가 있습니다. 큰 병이 있는게 아니라면 어차피 모두들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지키도록, 그리고 어느 정도의 연민은 품도록 설계되어 있는 걸요. '소년은 자란다'의 아드리안과 '아이스 게임'의 고아원 출신 아이도 어느 정도 감정은 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둘 다 크리스토프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았을테고,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주는 사람 얼굴에 침을 뱉는데 고민스러운 마음이 있었을 겁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크리스토프의 친구로 남지 못합니다. 동화적인 이야기라면, 이 이야기가 그 아름답고 간결한 문체만큼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삽화만큼이나 동화적이었다면 이 아이들은 크리스토프의 친구로 남았을 겁니다. 하지만 작가는 '너의 선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선한 행동으로 돌아온다'같은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있지가 않습니다. 제가 잘못 해석한걸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조금 다른 것이 선한 행동으로 돌아오는 그런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전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가정에서의 교육이라고, 가정에서의 사랑이라고 보았습니다.


크리스토프가 이정도 고난을 겪었으면 이제 슬슬 차갑고 무뚝뚝한 사람이 될 만도 하지 않나요? 제 말은, 겨울왕국1 본편에서 초반에 크리스토프는 분명히 차갑고 무뚝뚝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따뜻한 본성을 가진 사람이라는게 드러났잖아요. 쉽지 않을 걸요? 그게 될까요? 이정도로 주구장창 인간에게 배신당한 아이가 그런 마음을 유지하고 살아간다는 거요.


그런데도 크리스토프는 망가지지 않았어요. 그 이유로, 그 원동력으로 작품 내에서 주구장창 제시되는 것은 아무리 험악한 상황에서도 크리스토프에게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존재했던 것으로, 그에게 가장 소중한 선생님, 친구가 존재했던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프에게 고난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야기를 좀만 더 주물러본다면 크리스토프가 밖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트롤들과도 갈등을 일으키고 트롤들에게서 잠시 등을 돌린다던가 하는 이야기도 만들 수는 있었겠죠? 하지만 전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면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는 조금 상처입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트롤들은 크리스토프를 전적으로 지지해주고, 크리스토프드 그들을 온전히 사랑하며 그 지지를 온몸으로 받아주는게 맞아보여요. 이 이야기에서 크리스토프가 바닥 끝까지 무너지지 않은 유일한 원동력이거든요, 이 트롤들의 존재는. 순록이름짓기에서라면... 어른 스벤이겠지만요. 아무튼 그렇다고요.


같은 이유에서 크리스토프의 편에 서주는 다른 아이들이 없었던 거죠. 동화속에서 나오는, 왕따당하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아이는 이 이야기에서는 있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이 아이들이 크리스토프에게 어떻게 굴었냐를 보기 전에, 이 아이들이 어떤 가정에서 살고 있었냐를 집중적으로 보는 건 흥미로운 독서가 될거에요. 아드리안의 아버지가 그런 인간말종에 악당이었다는 건 단순한 반전요소는 아닙니다. 왜 크리스토프 주변의 사람들이 크리스토프의 편이 되어줄 수 없는지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봤어요, 저는. 아드리안은 크리스토프와 가장 친해질 수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크리스토프와 친해질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하려면, 그의 가정은, 그가 받은 교육은 가장 최악의 것일 수밖에 없었죠. 아이스 게임에서 크리스토프의 썰매를 빌려탔던 아이는요? 이미 자식이 있는데도 입양아를 받아준 걸 보면 기본적으로 선량한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를 교육시키기에는 너무나도 좁은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그 아이의 형이 가학적이고 불량하다는 점은 기본적으로 그 부모가 첫번째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데도 실패한 부모라는 사실을 암시하죠. 다른 사람의 성품을, 옳은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는 크리스토프의 역할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거에요. 개개인 인물들의 가정 환경이 가장 중요했던 거죠. 그리고 그 개개인 인물 중에서, 정말로 올바른 가정 환경에서, 가장 많은 사랑과지혜로운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아이는 크리스토프를 제외하고는 별로 없었던 겁니다.


이게 그들과 크리스토프를 가른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고아냐, 사미족이냐 이런 눈에 보이는 구별은 뒷전으로 두고 생각한다면,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구분, 즉 올바른 사람이냐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냐를 가른 결정적인 차이점은 결국 가족에서 온 거죠.


이 이야기에 감명받는 사람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일까요? 겨울왕국 팬? 그중에서도 크리스토프의 팬? 어릴 적 따돌림당하고 무시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 아니면 실제로 지금 당장도 그런 불행에 놓여있는 사람들?


모두 다 해당되겠지만, 왠지 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첫번째는 눈 앞에 아이가 있는 사람들, 선하고 착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두번째는... 스스로가 행복하고 올바른 가정 속에서 자라나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그걸 잊고 사는 아이들 본인들. 가장 어려운 순간에 뒤를 받쳐줄 가정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를 망각한 채, 자기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아이들.


읽을만한 이야기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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