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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장편] Let It Come 4

ㅇㅇ(219.249) 2020.09.01 00:07:26
조회 508 추천 30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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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4877031

2화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4877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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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frozen&no=4938737





 그로부터 두 시간 뒤, 안나라는 여자 뒤에 네 명의 환자의 절단 수술을 도운 뒤에야 그녀는 이 악몽 같은 파트타임 업무를 끝내었다. 그다지 짧지 않은, 그 순간 동안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몸서리 칠 악몽을 얼마나 겪었는가! 누가 이 절단 수술 보조 업무에 대해서 묻는다면, 그녀는 '참으로 잔인한 일이었어'라고 말할 용기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급여에 대한 불평은 큰 두려움 없이 읆을 수 있을 것이다. 밀빵 한 주먹 또는 보리빵 세 주먹이 제공되는데, 이름조차 모르는 다른 사람의 팔 하나 값에 비하면 짜디짠 사해에 식수 한 방울 붓는, 그런 덧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이 사람의 팔 한 쪽, 인생 하나의 값을 치르고 싶으시오? 태양을 가져오시오. 그녀의 머릿결과 같은 빛을 가진, 티탄 족속만큼이나 거대한 구름에게 가려진 그것 말이오.



얼음과 고깃덩이를 어설프게 자르는, 그 순간이 잔상처럼 아른거리는 것을 애써 참으며, 계단을 오르고 올라 그녀는 2층에 있는 자신의 집에 들어갔다. 다락문을 열었을 때 자신의 방에서 아래층보다 심한 한기가 느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환자를 치료하던 방에 모든 온기를 소비하면서 어느새 다른 방은 온도가 낮아진 것이었다. 그래도 환자가 무사할 수만 있으면, 쇄골 아래를 뒤덮은 그 얼음이 다 녹아내리는 것을 볼 수만 있으면. 충분히 치를 수 있는 대가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에게도 방에서 몸을 녹일 시간이 주어질테다.



그녀는 머리를 문에 가까이 하며 그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를 집었다. 가져다 준 스프는 다 드셨는지? 몸 상태는 어떠하신지요? 문을 가볍게 노크하면서 그 뒤에 넘긴 질문들이었다. 불행히도 어떠한 답변도 들어오지 않았기에, 고요히, 방 안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청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신호는 보일러가 30도를 유지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가는 소리 뿐이었기에. 그녀는 문을 열었다. 역시나 그 원망의 무더기들은 여자의 몸을 옷처럼 계속 뒤덮고 있었다.



"혹시 그 얼음은 다 녹았습니까?"



"괘, 괜찮습니다. 이건 녹지 않아도 괜찮아요."



"녹지 않아도 괜찮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몇 초의 순간이었으나 그녀는 아까 느껴진 그 작은 충격은 무시할 수 없는, 세간의 상식에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몸에 달라붙으면 그 부위를 도려내야 할 정도로, 그렇게나 끔찍한 얼음이 온 몸을 옷처럼, 가죽처럼 감싼 상태인데 괜찮다니. 잠시나마 그 백금발 여자의 정신상태에 대해 작은 의문이 돋아났다.



"이건... 제 옷이에요."



"저게요? 저 끔찍한 조각들이 옷이라고요? 솔직히 말하세요. 필요하면 서툰 솜씨로라도 그 얼음을 떼어내겠습니다."



백금발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눈송이가 여왕의 상징처럼 새겨진 반투명한 망토를 조금씩 끌어 모으며, 그녀는 영문을 알 길이 없는 두려움으로 벌벌 떨리는 두 손을 감쌌다. 왜 이러는 것일까. 궁금해하던 클로디아는 시선을 냄비로 옮겼다. 한 두 술밖에 뜨지 못한 것처럼 스프의 양은 변화가 없었다. 다시 데우기 위해 손을 대었을 때, 얼음 덩이의 차가움으로 뒤덮힌 것에 기겁했다.



"이게 왜 이렇게 차갑지? 혹시 난방이 끊기기라도 했나요? 오늘 온도는 영하 60도인데."



그녀는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왜 그러는 것인가요. 무슨 이유로, 무엇이 그리 두려워서 손만 벌벌 떨고 있는 건가요.



"말하세요."



"...제 탓이에요. 제가 만지는 바람에, 얼어버려서..."



"네? 당신이 만져서, 얼었다고요?"



"맞아요. 맨손으로 잡아선 안 되는데..."



"솔직히 말해도 괜찮습니다. 여기 난방은 낡은 전등처럼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니까요.



자기가 만져서 얼어 붙었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로군! 그녀는 생각했다. 물론 그 스프 그릇이 두 시간 전의 따스함을 완전히 잃고, 한 겨울 센 강처럼 차가워진 것이 이상한 일은 맞았다. 기름까지 딱딱하게 굳어서 눈가루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도 비정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제가 만져서 얼어버렸어요'라는 말 또한,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지, 마법, 정신이상 등의 가정을 들어보더라도 그 가정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마법과 마녀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부의 재산을 탐내던 능구렁이 같은 신부들이 마녀로 몰기 위해 지어낸 속임수였다. 


아직도 그녀는 흔들림 가득한 눈동자와 입술을 진정 시키지 못했다. 우선 스스로를 드러내고, 이곳은 안전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야겠어.



"맨손으로 잡으면 안 된다면, 나중에 장갑 한 쌍 드리리라. 손 하나를 더 얹은 것 만큼 두꺼운 걸로. 자기소개가 늦은 것 같네요. 클로디아라는 사람입니다. 멸망 이전에는 노트르담 성당 종지기 겸 경비원 겸 청소부였죠. 잡부였어요. 짧게 말하자면."



"아렌델에서 온 엘사 아그나르스도티에에요. 근데 멸망 이전이라고요?"



"아, 그건 이 도시에서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건내는, 그런 상투적인 인삿말입니다. 굳이 옛날에 어떤 왕가나 귀족 가문의 몇째 딸인지, 아니면 하던 일 같은 걸 말씀하실 필요는 없어요."



클로디아는 보라빛 태생으로 보이는, 엘사의 앞에서 예를 갖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곧 손으로 머리를 도로 고쳐야 했다. 쓰고 있던 불꽃 모양의 검은색 가발이 쓰러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잘 감싸고 있던, 잔'털' 하나 없는 정수리가 들어났다는 것에 짧은 순간 동안 얼굴이 붉어졌다. 



"어, 잠시만요. 그 머리가..."



"괜찮아요. 후훗."



...아까 그 웃음소리는 무엇인지? 클로디아는 속으로 '이 석탄 세 근짜리 불꽃 모양 가발이 우스꽝스러워서 그런 것이야'라고 기도하듯이 생각했다. 가발 속에 감춰진 민머리를 보고 비웃은 것은 아니라고 빌면서 믿었다.



"네. 죄송합니다. 혹시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



"아, 농, 농. 드무아젤. 스 네 빠 그하브(아뇨, 아뇨. 아씨 별 것 아닙니다). 근데 여쭤보고 싶은 한 가지가 있는데... 아렌델 사람이라면 바다를 건너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럼 혹시 북해, 그 차디차고 험한 바다마저도 얼어붙은 건지요?"



"...네."



 무언가를 괴롭게 삼키듯이 대답했다. 어디서 온 건지 도통 뿌리를 알 수 없는 냉기는 프랑스 전역과 피레네 산맥 너머, 브리트니아 제도에다 동쪽 짜르의 왕국, 오스만까지 덮쳤다. 알제리와 이집트조차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러면 지리학적으로 백인이 거주하고, 옛 로마의 땅을 들쑤신 바이킹의 자손이 지내던 곳이자 지금은 루터교회로 개종한,  스칸디나비아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당연한 질문이었다. 



"참으로, 우린 어둠의 시대에 살고 있구려. 북해도 얼었소, 파리도 얼었소. 지중해는 물론이요, 이집트에 레바논에. 우리의 알제리도 그러하고. 시작과 끝조차 알 수 없는 날씨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이런 소리 듣는 게 전부겠지. 전능하신 설계자님께서 우리에게 작업을 명령하셨다! 태업자는 엄격히 처벌 받을 것이다. 어서 고개를 숙여라, 석탄을 나르라, 나사를 조이라. 프로파간다에 귀를 기울이라. 코로나 왕국에서 오신 설계자님의 말씀!"



엘사는 그녀가 난데없이 튀어나온 한탄조, 풍자의 냄새가 가득 섞인 노래 한 구절을 내뱉은 것에 놀란 눈치였다. 탄광과 공장 풍경이 절로 떠오르고 설계자를 언급하는 가사는 그녀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없는 이야기였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대의 노고 덕에 설계자님께서 만족하셨다. 이번 주도 발전기의 열은 공주의 금발, 태양의 코로나처럼 타오르리라!"



"아뇨, 갑자기 말씀하신 그 노래요."



"아 이건... 감독관들이 매일 성가처럼 떠드는 명령 사항입니다. 이 도시에서 한 달만 살아보시라요. 귀를 찢는 듯한 선전 문구와 칠판 긁는 듯한 잡음이 뒤섞인 장대한 헛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클로디아는 속으로 그 여자가 더 비참해질 자리가 없는 도시 생활에 공감이라도 해주기를 살짝 기대했다. 어딜가나 똑같지 않는가? 새하얕고 얼어붙은 것은 온 세상의 풍경 아닌가. 우린 결국 같은 왕 앞에 고개를 숙인 농노들이잖소? 하지만 이러한 공감팔이에 후회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엘사는 한 순간의 실수로 가문의 명예, 재산 같이 중요한 것을 홀로 망쳐버린 소녀 같이 움츠려든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은 미세하게 떨렸고 손은 쥐어짜듯이 오그라들었다.



'그래, 그녀는 우리 같이 글도 모르고, 매일 같이 석탄 캐고 돌 나르고. 그런 농노가 아니겠지. 혹시 혁명으로 몰락한 귀족 자녀 아닐까? 일주일마다 북동쪽에서 몰려오는 눈폭풍에 의한 공포감에, 아렌델의 화전민과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축출당한 것이겠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남는 음식을 받고도 말그대로 손 하나 대지 않고 최대한 거리를 두려는 것에 서서히 질려가던 클로디아는 직감을 느끼고 커튼에 다가갔다. 진동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 앞의 잡상인, 또는 황금 냄새를 맡은 약탈자처럼 문을 두들기던 폭풍이 내려앉은 것이 분명했다. 세월의 흐름이 주름이 되어있는 갈색 커튼을 치우니 선명하게 바깥 풍경이 드러났다. 다시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굴뚝과 인부들이 연장을 챙기는 쇳소리를 내는 것은 창 너머에서 저마다 아침 풍경을 그려 내었다. 그러나 아직은 소음도 없고 밖에 나온 사람도 없는 적막함이 안개처럼 잔류했다. 인부들을 감독하기 위해 놋쇠 종을 든 채, 블록마다 설치된 단상에 올라가 회중시계를 확인하는 양복쟁이들이 밖에 있는 살아있는 사람의 전부였다.



새장처럼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너머에서 여섯 번의 종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이제 오전 여섯 시로, 출근을 준비하고 어젯밤 얼어죽지 않은 것에 하느님 아니면 감독관에게 감사를 표할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몸을 뒤척이며 눈만 겨우 뜨고 있던 도시는 본격적으로 일어서며, 피부에 느껴지는 기온과 오늘 해야 할 작업들, 아침 점호와 감독관에게 굽신대기 등을 생각했다. 



연장을 완전히 준비한 인부들은 저마다 현관을 나섰다. 곡괭이와 망치 따위의 연장들이 덜걱거리는 소리는 하나둘 서로 뒤섞이더니 파도 소리, 기사들의 행군 소리 같은 멜로디가 되었다. 상인들은 고개를 창 밖으로 내밀어 통근자들의 수와 오늘 날씨를 파악했고, 운수가 좋겠구나 판단한 그들은 거두어 두었던 천막을 다시 펼치고 가판대를 세웠다.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는 석탄 가루가 검게 칠해진 듯이 잔뜩 묻은 저울을 올려 놓았다. 그 상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면, 저울을 항상 내놓은 것과 팔과 다리가 하나 쯤은 없다는 것이었다.



 담배를 사시오. 이건 폐건강에 제격인 물건이라오. 집에서 담근 문샤인을 사시오. 여긴 허가 받은 곳이니 그쪽이 취하지만 않으면 괜찮소. 의수를 사시오. 가격이 꽤나 비싼데, 아마 팔 하나를 담보로 잡은 꾼돈을 내야 할 수 있을 거요.



그러나 대부분의 인부들은 잠시 가게 앞에 멈춰서 석탄 무게와 물건의 가치를 흥정할 여유를 내어줄 수 없었다. 당장 들리는 종소리를 따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쉴 세 없이 울리는 종을 들은 그들은 수 십개의 줄을 서서 앞을 알 수 없는 길을 걸었다. 차가운 공기 속을 누비는 그 소음에 모두가 몸을 숙였다. 감독관들은 더 재촉했다.



걸어라! 계속 걸어라!

우린 떠돌이니 고향의 따스함을 잊어라!

이제 집도 없고 남는 건 녹지 않는 얼음 뿐

주님이든 우리에게든 기도하라 

이제 생명도 얼어붙지 않기를!


파리를 떠난 우리들. 그곳은 소돔이 되었네

자, 이제 고개를 숙여 땅을 파고 화로를 타오르게 하라

누군가의 어머니, 딸, 연인이 사라진다 해도

누군가가 낙오되어 눈속에서 사라진다 해도


우린 흔들리나 침몰하지 않는다!



감독관들끼리 작당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성가대처럼 똑같은 가사, 같은 순간에 종을 흔들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발음으로 복종을 요구하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온 골목을 맴돌며 늦잠 자는 사람과 노숙자들을 깨웠고 거리를 향해 난 창문들을 한 번씩 흔들었다. 거리를 빼곡하게 매운 인부들은 명령에 맞춰 고개를 바짝 숙인 채 앞사람의 발걸음과 종소리에 의존했다. 바늘 하나 들어가기 어려운 인파가 일사분란하게 전진하는 모습은 2층의 시야에서는 회색 옷감들이 급류처럼 순식간이나, 나름의 질서 있게 흐르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 강물은 중간에 멈춰있는 바위에 부딪히며 쇳소리를 내었다. 



"무슨 일인가요?"



엘사는 점점 거대해지는 소음과 새로운 진동에 관심을 보이며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이것은 인부들이 떼를 지어 억압 하에 놓인 풍경이다. 그녀에게 그들은 언제 폭발해서 다시 단두대를 세울지 알 수 없는 화약고 무리들이었다. 그리고 엘사는 혁명으로 추방된 것으로 보이는, 프랑스의 옛 부르봉 왕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었다. 적어도 클로디아의 머릿속에서는 그랬다. 지금은 발전기를 가진 이에게 왕위가 있다. 화려한 베르사유 궁과 보주가 아니라.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일입니다. 당분간 창 밖을 보시면 안 됩니다. 나가시는 건 더욱 그렇고요."



"설명만 해주세요. 그러면 나가지 않을게요."



"이건 다 아씨를 위해서에요. 필요한 게 있으면 지금 말씀해주세요. 시장에 가볼 생각이거든요."



"시장에는, 왜 가시나요?"



"먹을 걸 사야죠. 요새 배급으로 나온 음식은 성당에서 받는 게 아니면 먹을 게 못 되요. 고기 한 뭉텅이에 석탄 한 광주리를 받는 데가 있는데 거길 갔다올게요. 아, 가능하면 의수도 하나 사려고요. 그게 필요한 사람이 있어요."



여전히 섬섬옥수 같은 손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서로 뒤섞으며, 등을 구부린 채 문 앞으로조차 나서지 못하던 엘사를, 클로디아는 사랑스런 애인에게 인사를 건내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씨 걱정은 마세요. 마스크랑 외투랑 다 쓰면 죽을 일은 없어요."



"...다치지 않으셨으면 해요. 영하 60도라니... 저는 그런 걸 느껴본 적도 없어서요. "



클로디아의 작은 웃음소리가 그녀의 쇄골 바로 위부터 콧날까지 덮는 흰색 마스크 너머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그녀는 진한 검은색 눈화장으로 미소를 그리며 다가왔다. 어느새 두 사람의 얼굴 사이에는 한 뼘의 거리만 남았다.



"저희 성당에서는, 추울 때마다 이런 기도를 해요. 걱정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언젠가 그 분은 오게 하신다. 그것은 따뜻한 여름이니."



그리고 그녀는 천으로 덮힌 뺨을 가져다 엘사의 것에 가까이 했다. 엘사는 가슴 속에서 턱턱 막히는 두려움에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으나, 이것이 프랑스식 인사라는 것은 인지했다. 



"...그때까지 버림 받은 이들, 앉은뱅이와 장님, 팔이 없는 이들을 돌보아라. 가장 낮은 이에게 해준 것이 그 분에게 해준 것이다."



비쥬(서로 뺨을 비비는 인사)는 짧은 기도문과 함께 끝났다. 엘사는 바로 도망치듯이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며 '아까 그' 행위를 갑자기 한 것에 질문을 하려고 했으나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묵살 되었다. 



그녀가 나가는 문은 낡은 쇠들이 서로 스쳐지며 나오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클로디아가 나무로 된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눈이 깔린 도로 위로 사라지기 전까지 엘사는 그 인사의 끝마침에서 들린 소리에 대한 생각을 떨쳐놓을 수 없었다.



 그 희미한 입맞춤 소리는, 10년 가까이 쌓여온,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뿌리 깊은 복잡한 마음에 또 한 번 떨어진 꼬인 실타래였다. 그리고 더는 계속하고 싶지 않은 수렁과 두려움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사람을, 그것도 이제야 이름과 출신지를 알게 된 타인을 가까이 한 적은 태어나서 거의 처음이었다. 클로디아라는 그 프랑스 여자의 눈빛과 행동에는 털끝만큼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제 몸과 창조물에게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그녀의 말소리에는 적지 않은 온기와 친절함도 느껴지고 있었다. 아까 그 비쥬도, 따뜻한 피를 가진 사람과 가까이 하는 것이 기억도 나지 않던 그녀에게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엘사가 가진 모든 두려움은 자신을 가까이 한 사람들이, 자신에 의해 말미암아 고난을 겪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 괴로움의 반복을 막고자 13년 간 새장 속 새 같은 삶을 살았다. 결국 성장과 함께 다가오게 된 운명의 왕관을 썼으나 스스로 집어던졌다. 자신에게 가까이 오던 이들에게 운명처럼 주게 될 상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두껍고 새까만 빙하를 깨고 다가온 하나 뿐인 가족을 , 악몽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내쳤으나 종국에는 늘상 두려워하던 결과가 다가왔다. 그 뒤로는 얼음으로 가득찬 세상을 떠돌고, 얼어버린 도시들을 보며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다.



'다시는 누구와 가까이 있지 않으리.'



그러나 그 여자가 자신에게 한 것은 무엇인지? 엘사는 클로디아라는 사람은 그녀의 가짜 머리카락처럼 불꽃 같은 속마음과 욕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었기에 더 관찰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 여자가 가진 욕심은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비극으로 끝날 것이란 게, 불볼 듯 뻔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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