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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장편] 얼음꽃 (6)

서리나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21 22: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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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링크] 얼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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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




(6)






8. 카산드라 / 발데로스 산장(Vardaros Mountains)



하찮은 벌레를 보듯 카산드라와 크리스토프를 슥 둘러보다 발데마르는 가벼운 명령을 뱉었다.



“처리해.”



차가운 머스킷 총구가 뒤통수에 들이밀어지고, 공이치기가 서슬 퍼런 마찰음을 내며 당겨지고. 끌려가지 않으려 제 손목을 잡은 발데마르의 팔을 내리치는 엘사의 모습을 카산드라는 그저 무력하게 바라보며 자신을 향해 스멀스멀 다가오는 죽음의 악취를 감내할 따름이었다. 검지가 방아쇠에 얹히고, 금속의 비릿함을 느끼며 카산드라는 지옥의 쇳소리가 두개골을 부술 때를 망연히 기다렸다.



여기서 끝이구나.


이토록 허무하게.



흑과 백으로 양분된 십자의 세계 끝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건 허기진 희망에 대한 두뇌의 마지막 소망일까. 이제 단지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주제넘은 날뜀에 불과했나. 삶의 낭떠러지에서 용을 쓰고 버틴 건 그저 단말마의 발악이었던 걸까.



하아.



카산드라는 신중하게 마지막 숨결을 뱉고는 눈을 꼭 감았다.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눈에서는 서릿발처럼 시린 주마등이 수없이 흘렀다. 느닷없이 총구가 다른 쪽으로 돌려지고, 당황한 아우성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적어도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흙탕물 속에 힘없이 엎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캐스 언니!”



어영부영 자세를 일으켜 카산드라는 자신에게 손을 내민 소녀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여우처럼 붉은 머리를 두 갈래로 묶고, 주근깨가 난 길쭉한 얼굴의 소녀가 진한 녹색 눈을 빛내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레드?”



예고 없이 나타나 천진난만한 웃음을 던지는 말괄량이 소녀에 카산드라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이 참, 레드가 아니라 카탈리나라니까. 하여간 퀘이드 아저씨도 그렇고 왜들 오래된 이름을 잊지 못해 안달이람.”


“여긴 웬일로.......”


“웬일이긴 뭔 일이야.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뭐, 하긴 언니한테 걸린 현상금이 얼만데, 보답은 그걸로 받도록 할게.”



자신에게 달려드는 병사를 주먹 한방에 눕힌 후 카탈리나는 물결처럼 찰랑이며 말을 이었다.



“‘Please Only Alive’라고 라푼젤 언니가 붙인 포스터 봤어? 코로나 왕국 건립 이래 수많은 범죄자들이 있건만 언니가 그 중 최고가를 자랑한다는 게 웃기지 않아? 유진 오빠는 제 몸값보다 언니 것이 훨씬 높다며 어찌나 원통해하던지-”


“카탈리나!”



유진의 외침을 듣고서야 카탈리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곡예 하듯 정예병 두엇을 처리한 카탈리나는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순식간에 전장의 판도를 뒤집어 버렸다. 몸에 긴장이 풀려 비척거리면서도 카산드라는 검을 들어 싸움에 가세했다. 상처가 터진 크리스토프는 물론이고 남은 이들이 정예병과 전투를 이어나가는 동안 그녀는 눈으로 끊임없이 발데마르의 자취를 좇았다. 체구가 거대한 붉은 망토 사내를 잿빛 벌판에서 찾기란 사바나에서 코끼리를 찾는 것보다도 더 쉬운 일이었다. 



자세를 최대한 낮춰 카산드라는 바닥을 쓸듯 기동했다. 꺾인 관절이 쑤시고 근육은 터질 듯 비명을 질러댔지만 조그만 빛이라도 남아 있는 한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거리는 차츰 좁혀질 듯 멀어졌다.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기라도 한 걸까, 카탈리나가 늑대인간으로 변하며 시선이 그쪽으로 몰린 틈을 타 카산드라는 발데마르를 향해 힘껏 달렸다. 허벅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뛰고 또 뛰었다. 작은 스파크처럼 튀는 새파란 빙염과 빙염을 집어삼키는 성난 광휘가 불안의 늪을 만들어 회오리친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법한 거리에 이르러, 카산드라는 손마디 사이에 끼워 두었던 단검을 힘껏 던졌다. 가느다란 동공으로 놈의 목덜미를 정확히 노려, 놈의 가증스러운 살갗을 찢고 선혈을 양껏 마시길, 선혈이 앗아간 기운으로 하여금 엘사를 놓치고 무너지듯 쓰러지길 간절히 기도했다.



퍽.



검이 둥근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날았다. 카산드라의 동공이 커졌다.












9. 카산드라 / 발데로스 산장(Vardaros Mountains)



고결한 냉소의 끝에서 카산드라는 꽉 여문 이빨을 똑똑히 보았다. 뾰족뾰족한 가시를 품은 노기 어린 웃음이었다. 여유 가득한 조소로 날카롭게 벼린 입매가 하얗게 주름진 얼굴을 사선으로 찢고 있었다. 비웃음의 의미를 곧바로 깨닫지 못해 카산드라는 한참을 그 자리에 못 박혀 서 있었다.



느닷없이 가슴팍이 뜨뜻하게 젖어오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하더니 뜨거운 열기가 정수리를 타고 솟구친다. 카산드라는 고개를 꺾어 제 갈비뼈를 파고든 단검을 보고, 마냥 능글맞은 발데마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단검은 분명 놈의 뒤통수를 노리고 있었다. 그를 노리고 던진 것이었다. 날아가던 단검, 그 단검이 궤적을 바꿔 그녀에게 꽂혔다. 통증보다는 상황을 읽지 못해 이는 당혹감이 머리를 달궜다. 같은 테두리로 제 몸뚱이와 이어진 이 단검에 기괴한 위화감이 일었다. 순간 세상이 빙글 돌아 카산드라는 비틀거렸다. 살갗을 찢고 뼈와 뼈 사이를 날붙이가 파고드는 이물감이 감각의 파동을 타고 온몸을 울렸다. 카산드라는 그대로 엎어져 땅을 짚고 헐떡였다. 검자루를 타고 흐르는 핏방울이 그림자 위에 흉한 자국을 드리웠다.



“카산드라!”



불에 덴 듯 가슴이 뜨거워진다. 입술을 꽉 짓이기며 카산드라는 발데마르를 노려보았다. 엘사의 눈빛에는 여전히 뾰족한 날이 서 있었으나 그 끝이 두려움으로 흐물흐물 일그러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겨울이 사방에 난자해 있었다. 하지만 공황에 빠진 겨울은 그저 혼란스레 흩날릴 뿐 모든 것은 굳센 군홧발 아래 짓밟히고 말았다.



“카산드라, 나는 괜찮으니 도망쳐요. 도망쳐!”


“엘사 여왕, 내 하나 조언하건대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이오.”



윤기가 흐르는 눈썹을 구기다 발데마르는 반지로 엘사의 관자놀이를 슬쩍 눌렀다. 그저 닿기만 했을 뿐인데도 찢어지는 비명이 공간을 수억 갈래로 깨트린다.



“그러지 마!”


“반항하면 할수록 내게 이런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니, 처신 잘 하는 게 좋을 것이오.”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왜!”



조롱하듯 입술을 가볍게 핥으며 발데마르는 마치 짐짝처럼 엘사를 말에다 던져 실었다.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엘사의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미어져 터질 것 같아,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이끌고 카산드라는 어영부영 자세를 일으켰다. 가슴팍에 박힌 단검이 근육을 휘젓고 상처를 벌리는 게 느껴진다. 거친 숨결이 목구멍을 할퀴고 눈앞이 차츰 흐려지고 있었다. 하악골이 사정없이 떨리며 이젠 말조차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자줏빛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건 가느다란 신음뿐이었다.



“기.......다, 려.......”


“카산드라.”



입술 사이로 흐르는 신음을 듣는 순간 서슬 퍼런 고통이 더욱 심장에 와 닿는 것 같아 카산드라는 이빨을 더욱 꽉 악물었다. 악을 쓰며 독기 서린 눈으로 발데마르를 죽일 기세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놈의 손아귀에 끌려가는 엘사의 새파란 눈시울이, 차가운 꽃을 담은 그 눈빛이 그녀를 다독이는 눈밭처럼 여겨져, 카산드라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위화감이 삐그덕거리는 마찰음을 내며 겨우 굳게 세웠던 심지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카산드라, 난 괜찮아요.”


『카산드라,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죽음을 피해 도망치는 열차에서 오르골과 함께 엘사가 건넨 용서의 말처럼 그녀는 또다시 모든 짐을 떠안고 멀어졌다. 카산드라가 져야 했던 책임과 그녀가 져야 할 것만 같았던 책임조차 껴안고 외로운 몸을 던졌다. 새파란 눈동자가 낙인처럼 심장에 찍혔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온몸을 달구고 뇌리를 태운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서서 카산드라는 고함쳤다. 고통 섞인 욕설인지 비탄 젖은 호소인지 혹은 회오리치며 뒤엉키는 감정에서 해방을 갈구하는 부르짖음인지 모를 것이 텅 빈 아가리 속에서 쏟아진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게 개소리 하지 마!”



그러나 파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채 한 발짝을 떼기도 전에 느닷없이 웬 그림자가 등 뒤를 덮쳤다. 뒤통수를 내리치는 강한 충격과 함께 그녀는 앞으로 푹 엎어지고 말았다. 세상이 천천히 빙글빙글 돌다 차츰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시퍼런 절망이 육중한 군화를 들어 그녀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치는 세계 그 중심에서 엘사를 실은 말이 피처럼 붉은 망토와 함께 멀어지고 있었다.



“엘....... 사........”



잡음 섞인 소리처럼 흐려지는 별천지 속에서 숨결이 흐트러진다. 새카만 밤이 그녀의 세계에 들이닥쳤다. 카산드라는 또다시 절망의 늪으로 빨려들고 말았다.












10. 매티어스 / 아렌델(Arendelle)



장부를 뒤지는 걸 도와달라고 했을 때 카이는 예상대로 무척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렇잖아도 할 일이 많은데 장부나 뒤지고 있어야 하느냐며 성을 내는 그를 진정시키느라 매티어스는 반나절을 의미 없이 소모했다. 케케묵은 장부를 죄다 꺼내 제 집무실로 가져가는데 문득 현기증이 일어 책상 모서리를 짚고 그는 한참을 비틀거렸다. 언뜻 보기에 카이는 안나가 벌인 일을 수습하기도 몹시 힘들어 보였다. 왕실 업무에 찌들어 지친 카이의 목소리가 두개골 안에 갇혀 왱왱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으나 매티어스는 그가 몹시 야속했다.



“수입업자의 이름은 벤자민이었네.”



수천 장의 장부 사이에서 그나마 겹치는 이름 하나를 찾아냈을 때에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허니마렌은 흥미로운 눈을 빛내며 그에게 물었다.



“이름으로 보아 이곳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아는 이름인가요?”


“전혀. 알다시피 나는 아그나르 폐하께서 집권하던 시절 숲에 갇혀 있었으니.”


“아, 근래에는 이 사람을 통해 거래를 하진 않았나 봐요?”


“아그나르 폐하께서 승하하시기 전까지만 거래하던 자였어. 엘사 폐하께서는 이 자의 존재를 전혀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네. 혹은 알면서도 거래하지 않았거나.”


“카이는 이 자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건 물어 봐야지. 하지만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군.”


“이유는요?”



침음하다 매티어스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카이는 이 일에 엮이기를 싫어해. 끔찍이도.”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허니마렌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카이도 힘들 걸세.”


“하지만 이전에도 사람들이 마법에 공포를 갖고 있었던 적이 있었잖아요.”


“루나드 폐하께서 노덜드라를 침공했을 때를 이야기하는 건가? 혹은 엘사 폐하의 대관식 날을 말하는 건가?”


“양쪽 모두요.”


“루나드 폐하께서 노덜드라를 습격했을 때에는 아렌델 주민들 사이에서 뚜렷한 불안이 나타나진 않았다네. 노덜드라는 아렌델에서 꽤 북쪽으로 떨어져 있고, 정령들이 아렌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니까. 엘사 폐하께서 북쪽 산으로 달아났을 때 일은 루나드 폐하의 서거 이후 몇 십 년이 흐른 후 벌어진 일인데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오히려 기이함에 따른 형용할 수 없는 경외라든가 놀라움이 우선됐다고 보는 쪽이 옳다네.”


“그것, 그러니까 후자요, 그것은 카이가 말해 준 건가요 혹은 장군님의 재해석인가요?”


“양쪽 모두.”



턱을 괴고 잠깐 생각하다 허니마렌은 말했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가죠. 매티어스, 솔스타드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요?”



되는 대로 머릿속을 박박 긁어내 매티어스는 어물어물 대꾸했다.



“연금술 길드가 모여 만든 도시라는 것.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있다는 것. 아렌델과 마찬가지로 포경이 유명하다는 것.......”


“연금술사들은 지식욕이 무척 강해요. 세상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지어 놓고, 온갖 서적과 마법물질을 모아 놓은 후 그들은 정식으로 허가받은 자가 아니면 그 안으로 좀체 들여보내지 않죠.”



자세를 바짝 당겨 앉으며 허니마렌은 말을 이었다.



“의문을 몇 가지 제기할 수 있겠네요. 이 자가 쓴 책들은 대체 어떻게 도서관 밖으로 반출될 수 있었던 것일까? 혹은, 처음부터 도서관에 있지 않은 책이었던 걸까? 이 자는 솔스타드인이 맞는 걸까? 이 자는 도대체 어떠한 연유에서 노덜드라에 이토록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걸까?”


“솔스타드인이 맞는 것이냐는 건 무슨 말이지?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건가?”


“오직 가능성뿐인 얘기예요. 매티어스, ‘이슈마엘’이라는 이름이 성경에 나온 이름이라고 하셨죠?”



번뜩이는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가명을 쓰고 행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


“솔스타드나 대륙에서 흔한 이름은 결코 아니니까. 하지만 이 자가 솔스타드나 서던 제도 사람일 확률이 높은 건 확실해요. 내용을 주욱 읽어봤는데 양쪽 언어 모두에 너무도 능통했거든요. 원어민 수준으로."


“그렇군.”


“조금 더 확실한 정보는 없는 건가요? 벤자민의 행방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를 찾아가 이슈마엘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캐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갖고 온 장부를 의미 없이 뒤적이다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 매티어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허니마렌을 뒤로 하고 그는 한달음에 도서관으로 달려가 다른 서류 뭉치를 찾아 한참을 뒤적였다. 막대한 양의 종이에 파묻혀 허둥지둥 돌아온 매티어스를 허니마렌은 굉장히 신기하게 지켜보았다.



“아렌델의 모든 선착장에는 출입국 장부를 쓰도록 되어 있네. 좀 도와주겠나?”



낙엽더미처럼 쌓인 서류에서는 먼지가 끊이질 않았다. 재채기를 억지로 참자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그렇다고 시원스레 하자니 종잇장이 자꾸만 재채기를 피해 도망치는 통에 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동안 고역을 치렀다.



“가장 최근부터 찾아보면 될 것 같군. 나는 1835년부터 시간 순서대로 찾아볼테니, 자네는 올해인 1844년부터 역으로 찾아보게.”



1835년은 아그나르 왕이 사망하기 1년 전, 벤자민으로부터 마지막 책을 사들인 해였다. 아그나르 왕의 직인이 선명한 문건을 훑다 매티어스는 문득 고개를 들어 방을 휘 둘러보았다. 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야 할 벽은 텅 비어 있었다. 혀끝에 맴도는 씁쓸함이 너무도 원망스러워, 문득 그는 외로운 허탈감에 사로잡혀 바보처럼 웃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수입한 날에서부터 몇 달을 주기로 벤자민은 꾸준히 명부에 이름을 남겼다. 1836년에도, 이듬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마치 때가 되면 들어왔다 빠지는 조수처럼 들르는 주기는 대략 규칙적이었고 일정했다. 행선지는 언제나 같았다.



“로윰.”



불현듯 매티어스는 사회의 이단아들이 모여 산다는 로윰의 더러운 빈민촌을 떠올렸다.



“벤자민의 마지막 행적은 로윰에서 아렌델로 왔다는 1843년의 기록이에요.”



허니마렌이 건넨 문서는 그나마 최근 작성된 문서였음에도 불구하고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얇게 닳아 있었다. 문서 가장자리에서 신기루처럼 희미해져 가는 안나의 직인을 손날로 쓸다 매티어스는 위에서부터 문건을 빠르게 읽어 내렸다. 아렌델 항, 1843년 7월. 노덜드라인 폭행 사건이 벌어지고 엘사가 종적을 감춘 후 2달 뒤에 작성된 것이었다.



“아직 아렌델 어딘가에 있겠군.”


“벤자민이라는 이름, 혹시 아렌델에서 비슷한 이름이라도 가진 자가 있을까요? 아렌델은 작은 도시이니 이방인의 존재를 쉽게 알아챌 수 있을 텐데요.”


“내가 알기론 없었네. 하지만 마을 어귀의 농가나 아예 다른 마을에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



그러다 매티어스는 무언가 석연찮음을 깨달았다.



“이상한 일이야.”


“뭐가요?”


“문건들을 살펴보면 벤자민은 마법 물품을 주로 취급하는 교역상으로 보였어. 몇 개월에 한 번씩 아렌델을 드나든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겠지. 그런데 갑자기 왜 생업조차 내팽개치고 종적을 감춘 걸까?”



둘의 눈빛이 서로 교차했다. 의구심으로 굳어지는 동공에서 매티어스는 허니마렌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죽임을 당했거나, 몸을 숨긴 것이거나.”


“어쨌든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게 아닐까? 적어도 내 촉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네.”


“혹은 무언가 숨기고픈 게 있을지도요. 아렌델에서 몰래 수상한 짓을 벌인다거나.”


“왜, 짚이는 거라도 있나?”



우물거리며 말을 삼키다 허니마렌은 대꾸했다.



“명확하진 않아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매티어스는 결연히 내뱉었다.



“뭐, 어쨌건 나는 마을로 좀 가 보겠네. 오큰을 좀 만나 봐야겠어. 오큰은 교역중개인으로 예전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으니, 벤자민이라는 이 교역상에 대해 뭐라도 알겠지.”



허니마렌은 대답 대신 창밖으로 먼 시선을 던졌다. 새하얀 달빛을 타고 이름 모를 새소리가 외로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조심하세요.”



매티어스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슬쩍 숙였다.



“별말씀을. 무슨 일 있으면 문 밖에 있는 병사를 부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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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소개하려다 링크 잘려서 실패한 노래





Ready as I'll ever be.


라푼젤 tva 시즌1에서 악당이 된 바리안을 조지러 가는 코로나 사람들의 각오가 담긴 노래야.


원래는 목요일에 올려야 하는데 갑자기 삘받아서 오늘 올림.


다음화는 금요일 or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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