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건데 이리빨리 퍼오냐고요? 제거 맞습니다. 오늘 완결 기념으로 그냥 여기에도 추가로 올리는 겁니다. 한꺼번에 ㅇㅇ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pqiob
+본 작품은 겨울왕국 갤러리에서 연재되었던, 오리지날 [한스 나이트] 이후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화 2화 3화 4화 5화 6화 7화 8화 9화 10화 11화 12화 13화 14화 15-1화 15-2화 16화 17-1화 17-2화
"끝났다 마녀여..."
사력을 다해 최후의 일격을 찔러넣은 오큰의 안광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궁니르의 창끝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표트리아의 등을 뚫고 심장을 관통하고 있었으며 창을 잡은 손으로 전해지는 여제의 생생한 심장박동은 공격이 틀림없이 적중했음을 알려오고 있었다.
"허,... 이렇게 끝날 줄이야."
힘없이 주저앉고만 표트리아의 입술 사이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허공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빛은 단 한번도 생각 해본적 없던 패배가 믿기지 않는 듯 했다. 이제껏 수많은 전장을 넘나 들며 앞을 막아서는 모든 적들을 압도적인 힘으로 무릎 꿇렸던 그녀였기에 이 단 한번의 패배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그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해진 말로일 뿐이에요. 수많은 이들의 피를 삼켜온 당신의 끝이 설마 좋게 끝나리라 생각 했었나요."
천천히 표트리아의 바로 앞까지 다가선 엘사가 냉랭하기 짝이없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저항할 작은 힘 조차 남지 않는 여제의 턱 아래에선 엘사의 푸른 검신이 싸늘하게 번득이고 있었다.
"푸하하!!!"
"무엇이 우습지요?"
"푸흐흐..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제까지 내 발아래 쓰러진 패배자들이 왜 그렇게 목숨을 거둬 줄 것을 재촉하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
"치욕스러운 가요?"
엘사의 싸늘한 물음에 표트리아의 입꼬리가 스륵 말려 올라갔다. 무언가 말할 듯 말 듯 그녀의 입술이 잠시 달짝거렸지만 엘사와 마주한 표트리아의 눈빛은 이미 답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패자에게 치욕이란 감정은 사치일 뿐이지...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것이다. 아렌델의 여왕이여... 당신의 승리다. 나는 패배하였고 내 군단의 목숨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자질구레한 언쟁은 그만두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지?"
"만약 당신이 승자였다면 어떻게 하겠나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요."
정말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님을 알지만 굳이 저렇게까지 묻는 다면야...
"다 죽여야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일말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 섬뜩한 답변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 그녀 다운 것일지도...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나요."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에요."
엘사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쪽 눈꼬리를 치켜 올리던 표트리아는 지긋이 내려다보는 엘사의 눈동자를 슬쩍 훑어 보곤 피식거렸다.
"이유같은 건 없어. 내 의지가 원하는대로 굴러갔을 뿐이지. 너도 나와 같은 힘을 가졌으니 알텐데..."
"............"
"아니 뭐야 그 반응은... 내가 뭘 말하는지 모르는 거냐?"
되려 알아듣지 못하는 엘사의 반응에 표트리아의 표정이 애매하게 일그러졌다. 자신과 대등하게 겨룰 정도면 당연히 발현되었으리라 생각했던 표트리아는 다소 허탈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에 왜 앞서 저런 쓰잘대 없는 질문들을 자신에게 내뱉었는지에 대한 의문감이 풀리는 듯 했다.
"아직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이정도 힘인데 깨어난 뒤면 정말 볼만하겠어."
"난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정말 모르는 거야? 아직 내면의 속삭임을 듣지 못한 거냐?"
자신이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하고 있는 엘사를 애석하다는 듯 찬찬히 바라보던 표트리아는 짦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내렸다.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지금 내가 뭘 말하는지 알게 될거다. 자 그럼 영양가 없는 소리는 이쯤에서 관두고 할일을 해야지?"
표트리아의 손끝이 그녀의 턱밑을 겨누고 있는 엘사의 푸른 검을 짚었다.
"이 자리에서 내 목숨을 거둬. 뭐... 슬슬 몸이 나른해지는 걸 보니 그냥 둬도 시간이 얼마 남은 것 같진 않지만."
"굳이 당신이 원하는대로 해줘야 할까요."
엘사의 대답에 표트리아는 주변으로 슬쩍 눈짓을 돌렸다.
"너와 나에게로 집중된 모두의 시선을 생각해. 특히 오직 여왕과 왕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너의 군대. 적어도 저들은 자신들의 원흉이 시원하게 최후를 맞이하길 원할텐데... 여기까지 불가능한 싸움을 해온 이들에게 그정도 보상은 해줘야지. 안그래?"
틀린말은 아니었다. 전장 전체의 시선이 쏠린 지금 괜히 어정쩡한 모습을 보여서 좋은 건 없었다. 더구나 이제껏 패전을 거듭하며 울분만을 삼켰던 아렌델의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국왕인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 동시에 아렌델을 침공했다간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줄 확실한 본보기 또한 필요했다. 하지만, 굳게 마음 먹었음에도 막상 직접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으려니 망설임부터 드는 것만큼은 그녀로서도 어쩔도리가 없는 듯 보였다.
"제가 하죠."
엘사의 속내를 눈치 챈 오큰이 대신하겠노라 나섰다. 여왕의 손에 피를 묻히느니 이미 수없이 많은 피를 묻힌 자신이 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 판단하며 오큰은 궁니르를 한 손으로 잡은 채 다른 검 하날 주워 들었다.
"아뇨. 왕으로서... 이번 만큼은 내가 해야 할 일이에요."
"괜찮겠습니까."
오큰의 염려스러운 물음에 엘사는 괜찮다 끄덕이며 겨누고 있던 검을 들어 올렸다. 새벽을 깨우며 동이 틀 무렵 어둠을 걷어 내며 비상하고 있는 태양 아래 여왕의 검이 고고한 자태와 함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검을 쥔 손이 무거워 보이는군. 하지만 왕이라면 감내해야 할 일이지."
"이번만이에요."
"그리 쉽게 단언하지 마."
표트리아는 마치 앞일을 모두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네가 아무리 아니라 하여도 결국 피할 수 없음을 자각하라며...
"마지막으로 할말은 없나요."
"행운을 빌지."
그걸로 끝이었다. 표트리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사의 검날은 단호히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고 검이 지난 자리로 여제의 피가 솟구쳤다. 그것은 천하를 호령하던 제국의 군주에게 어울리지 않을 초라한 말로였지만 한편으론 질풍처럼 몰아치던 전쟁의 종식을 고하는 장면이었다. 여제의 몸뚱아리가 힘없이 고꾸라지기 무섭게 절망하는 러센군과 믿기지 않는 승리에 환호하는 아렌델군 간의 희비가 엇갈렸다.
"병사들이 보고 있습니다. 폐하..."
어둡게 표트리아의 시신을 내려다 보고 있던 엘사는 오큰의 말에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기적같은 승리에 환호하며 여왕의 이름을 부르짖는 병사들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엘사! 엘사! 아렌델의 위대한 여왕! 엘사!
곧 찬찬히 그들을 돌아보던 엘사의 입술사이로 웅혼한 여왕의 음성이 환희에 찬 전장을 휘어감으며 터져나왔고 일순간 모두의 귀가 그녀의 음성에 쏠렸다.
"불의 여제는 죽었고 전쟁은 끝났다. 다시 말해 너희 러센은 패배하였다. 비록 너희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나의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 목숨을 거두어 마땅하나 이미 이 자리에서 러센의 황제에게 죄값을 물은 터... 이에 나는 더 이상의 피를 보진 않으려 한다."
여전히 아렌델 군을 압도하는 대군이었지만 황제를 잃은 그들의 눈에서 전의 따윈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러니 돌아가라. 무기를 버리고 너희들의 고향으로 모두 돌아가라."
그냥 보내주겠다는 여왕의 말은 러센 뿐만 아니라 아렌델 군 마저 동요케 만들었다. 자국을 유린한 적들을 그냥 놓아준다니...
"폐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 아가리 놀리는 놈들은 모조리 전시 군법에 따라 즉결 처분할테니 전부 닥치라고해."
물론 티억스 사령관의 엄포 앞에 잠시 술렁이던 아렌델 군은 금세 잠잠히 수그러들었다. 바로 옆에서 가장 먼저 인상이 썩었다가 티억스에게 후드려 까인 부관은 덤...
"정말 그냥 보내주겠다는 말입니까?"
도무지 쉽게 믿지 못하겠다는 듯 러센의 장군 하나가 군단 사이로 헤집고 나오며 물었고 엘사는 나즉이 끄덕였다.
"그러나 잊지 말아라. 너희가 또 다시 아렌델에 해악을 끼친다면 그땐..."
표트리아의 선혈로 물든 엘사의 검끝이 왕을 잃고 침묵중인 군단을 향해 매섭게 날을 세웠다.
"내가 너희를 끝장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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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위로 드리워진 그림자에 크리스토프가 눈을 뜨자 오큰은 너털 웃음을 흘리며 손을 뻗었다.
"일어나."
"좀 더 누워있고 싶네요."
"전쟁 다 끝났어. 쉬고 싶으면 집에 가서 쉬어."
"음, 사실 몸이 말을 안들어요. 손가락 하나 안움직여서 말이죠... 하하하... 하..."
무리하게 힘을 쓴 부작용의 결과일까. 여제의 화염 속에서 전신을 보호하던 거신의 육체가 모조리 붕괴했음에도 운이 좋았던지 목숨은 건졌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몸은 더 이상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지가 않았다.
"아무런 느낌도 없네요. 완전히 맛이 갔어요."
"일으켜 줄게..."
오큰의 도움으로 간신히 상체를 일으킨 뒤에야 크리스토프는 방금까지 격전을 벌이던 전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격렬한 전투로 초토화된 벌판 여기저기 전쟁의 잔해가 되어 널브러져있는 적과 아군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적의에 사로잡혀 서로를 죽이던 병사들은 그저 말없이 동료의 주검과 유품을 거두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승리하였는데... 가만히 그 장면을 지켜보던 크리스토프는 왜인지 뒷맛이 씁쓸하기만 한 기분에 잠시 말을 잃었다.
"전쟁이란 그런거야. 이기든 지든 영 개운하지가 않거든."
"그래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다소 가라앉은 크리스토프의 물음에 오큰은 녀석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물론이지. 이 희생을 발판삼아 아렌델은 미래를 약속 받았으니까."
"다행이군요."
오큰의 위로에 그제야 크리스토프는 안도감을 띄우며 나릇하게 미소지었다. 비록 많은 것이 사라졌지만 비가 내리고 난 뒤 땅이 굳는 것 처럼 아렌델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아..."
문득 잊고 있던 것이 떠오른 듯 크리스토프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왜?"
"그 녀석 어떻게 됐어요."
"누구... 아? 한스라는 양반 말이냐."
"맞아요 한스!"
"그게 말이지..."
안타까움으로 물드는 오큰의 표정에 크리스토프는 굳이 더 묻지 않아도 그가 어떻게 되었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 화염속에서 살아 남았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던 크리스토프는 담담히 마른 침을 삼키는 오큰의 반응에 멍하니 화염 폭퐁이 터지기 전까지 한스와 표트리아가 뒤엉켜 있던 지점으로 눈을 돌렸다.
"엘사...?"
그곳에 서 있는 이는 엘사였다. 한스 것으로 추정되는 망토 잔해를 손에 든 채 고인을 기리는 듯 그녀는 한동안 움직일 줄 몰랐다.
"나야 자세한 내막을 모른다만 여왕이 저렇게 까지 예우를 하는 걸 보니 보통 양반은 아니었나봐."
"보통 녀석은 아니었죠.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단한 녀석이었으니까요."
오큰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 크리스토프는 잠시 한스가 산화해간 방향을 향해 고갤 숙이며 그의 희생을 기렸다.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속내와 함께...
"그나저나... 나 너한테 물어 볼 거 많다고 했잖아. 이제 슬슬 말해주실까?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돌덩어리 괴물로 변신한거냐."
"돌아가서 이야기하죠. 저도 묻고 싶은게 좀 많거든요."
"듣고나면 너 앞으로 나한테 막말 못할텐데?"
"어림없는 소리죠."
저 멀리 소드 연합의 기사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는 타르겐의 모습이 보였다. 이 전란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준 저들이 없었다면 필시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으리라.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군."
오큰은 발걸음을 멈추고 타르겐과 소드 연합을 향해 머릴 숙였다. 오르칼 왕국의 제 1계승자이자 왕가 최후의 후손이라는 고결한 신분 따윈 중요치 않았다. 그저 아렌델을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 중 하나이자 아내와 자식들을 둔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그것은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준 그들을 향한 오큰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사 표시였다.
전쟁은 끝났다. 혼란스런 전란속에 수많은 이들의 생명이 희생되었으며 살아남은 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부모들은 자식을 잃었고 자식들은 부모를 잃었으며 형제와 자매, 친구...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이 전쟁의 불길속에 사라져 버렸다. 한동안 왕국엔 남은 이들의 비통한 울음성이 가득할 것이다. 지옥같은 전장에서 돌아온 이들은 끔찍했던 기억에 몸부림 칠 것이다. 평화롭던 왕국에 전쟁이란 괴물이 남기고 간 상쳐는 쉬이 아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원한 행복이 없는 것 처럼 영원한 고통 역시 없기에 이 시련이 지나고 나면 왕국은 끔찍했던 상처를 덮고 모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희생을 거름삼아 더욱 강하고 단단히 두번 다시 오늘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어날 것이다.
"아렌델은 이제 다시 일어설 거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 밝아오는 여명아래 굳게 선 엘사를 보며 오큰은 확신했다. 여왕과 함께 굳건히 재건될 아렌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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