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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여행일지. 파트 0
출국 전날 예술의 전당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초연을 보느라 근처 모텔에서 잠을 잤다. 인천-나가사키행 비행기는 8시 출발이니 약간만 자고, 금방 일어나서 첫 공항버스를 타고 가면 될 것 같았다. 알람이 울린 것은 새벽 3시. '아아 피곤해. 조금만 더 잘까' 생각했던 것도 잠시, 제대로 뜨지 못한 눈은 금새 감기고 말았다. 다음에 일어난 것은 6시 20분. "어레?" 늘 떠오르던 수많은 잡생각은 오늘따라 자취를 감추었고, 당장 공항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만이 홀로 고고히 남아있었다. 8시 출발이라는 것은 최소 7시 50분까지는 탑승해야한다는 뜻. 서둘러 택시를 잡아탄 나는 공항으로 가는 길 내내 초조함과 묘한 스릴감을 느끼고 있었다. 기사님왈 공항까지는 약 1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착하면 약 7시 20분이 될 거고, 출국수속을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 그나마 떠나는 비행기라도 볼 수 있을 터. 이런 타임어택 속에서 내가 위탁을 맡길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위탁 물건을 버려야겠다' 과연 그것은 21세기 내가 떠올린 최고의 생각이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열어 기내 반입 안내문을 다시 읽어가며 나는 화장품들을 버릴 준비를 했다. 그리고 끝내 도착한 인천공항. 인천공항이 보이자마자 대충 내려달라는 나의 요청에 택시 기사님은 "나만 믿어! 가장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내려다줄게!" 라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하듯 차에서 내린 나는 10초채 걸리지 않아 공항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연륜의 시티 드라이버. 운 좋게도 공항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인 것은 대한항공의 위탁 수속장. 평소라면 꽤나 한가하다고 느낄만큼 적은 인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적더라도 최소 5분은 걸릴 것 같은 대기줄. 접수 카운터 앞 쓰레기통에 택시에서 정리한 화장품들을 버린 나는 출국장으로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출국 수속 내내. 드디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 면세지역에 도착한 나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나의 이름을 들은 것만 같았다. 아아, 이건 신의 목소리인가... 잠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시간은 7시 49분. 신의 목소리고 나발이고 달려야한다. 결과는 성공. 정말 여행 첫날부터 이 무슨 개고생인지. 원인 명확에 과실 100%인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나는 나가사키를 향해 인천을 떠났다. 아, 세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물체가 있다. 첫 번째는 킨텍스 건물이고 두 번째는 비행기의 뒷모습이다. 정말 섹시하지 않은가? 기내식은 나가사키라 그런건진 몰라도 해산물이 나왔다. 먹어본 기내식 중 가장 맛이없었지만, 그래도 경험이니. 입국할 때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비지트 재팬을 내가 잘못입력한 것 같았다. 정확히는 재류자격을 반납하고 나서 이를 수정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기에 일어난 문제였다. 당장은 다행히도 입국 심사관 누나가 수정해주어 무사히 입국할 수 있었다. 세관에서는 그냥저냥 넘어가는 듯 했지만, 내 목적지인 타카시마를 듣고 왜 가느냐고 약간의 질의응답을 했다. 세관 형님:타카시마 거길 왜 가. 볼 거 없어. 낚시라도 할거야? 나:??? 낚시가 유명해요? 그냥 한 번 가보는건데 세관 형님:간 김에 낚시라도 해. 거기 아무것도 없어 나:넹 타카시마는 아무래도 낚시가 유명한 듯 하다. 나에게는 가보고 싶은 공원과 "이국의 섬에서 맛있는 점심을!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라는 느낌의 홍보문을 어디선가 보고 가볼까싶은 타카시마였다. 입국장에서의 마무리는 역시나 "니혼고 혼토 죠즈데스네!" 입국 수속을 마친 나는 공항 내 세븐일레븐에서 현금을 뽑고 IC카드를 충전한 뒤, 밖으로 나와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앞 버스가 떠난 건 10시 5분이었는데 내가 세관에서 나온 게 9시 57분쯤이었으니 아마, 세븐일레븐만 가지 않았어도 탈 수 있을법했다. 에잇, 어쩔 수 없지. 10시 40분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타카시마다. 어떤 큰 기대를 가지고 간다기 보단, 앞서 말했듯 그냥 보고 싶은 공원을 보고 오자라는 성격이 강했다. 이 버스를 타고, 시내에 도착해 나가사키항까지 약간 걸어가면 얼추 시간에 맞추어 타카시마행 페리를 탈 수 있을거다. 가는 길에 떠올랐는데 충전기는 물론이고, 어댑터도 안챙겨오고, 보조배터리도 없고, 여행자 보험도 안했네. 나라는 놈은 고츄하고 여권만 가지고 일본에 왔나? 싶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나 무사히 나가사키 항에 도착한 나는 때마침 출발하는 페리를 타고 타카시마로 향할 수 있었다. 페리를 타고 나가사키항을 떠나 바다 위에서 마주 보는 군함은 나가사키에 왔구나라는 느낌을 톡톡히 준다. 그 특유의 회색빛 섹시함이 나를 두근두근거리게 하는 건 어째서일까. 나는 군함의 ㄱ도 모르는데. 때마침 내가 온 날이 바람이 강한 날이라 그런지, 휘몰아치는 풍랑덕에 위아래 들썩이는 즐거운 뱃길이었다. 이오시마를 경유해 타카시마로 가는 이 페리는, 잠시나마 이오시마에서의 추억에 나를 잠기게 만들었다. 추억이라... 개인 노천탕이 단돈 1,500엔 정도라니까?! 정말 싸다고! 아아, 노천탕 가고 싶어. 개인 노천타아아앙 노천탕만 따로 예약할까 싶어 홈페이지를 둘러보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여정에서는 못 갈 듯 싶었다. 알몸으로 바깥 바람을 쐬며 뜨뜻한 물에 몸을 담구는 해방감을 떠올리고 있자니, 금새 타카시마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들려온다. 사람들과 함께 내리는 여러 우편물들. 이것이 이 섬에서의 생활을 언뜻 비춰주는 것만 같아 알 수 없는 시골스러움의 익숙한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배에서 내려 느낀 첫 풍경은 다소 화려하진 않지만 친숙함이 묻어나는 항구였다. 아니, 재차 느낀 감성은 그저 팍팍함이 느껴질 뿐인 항구였다. 그야 처음으로 반겨주는 건 공사중인 터미널이니까. 관광지라 말하기도 뭣한 곳에서 감성은 무슨. 오늘 여기 온 목적은 타카시마해수욕장에서 뻗쳐져있는 저 외딴 섬같은 곳이다. 高島飛島磯釣(타카시마 토비시마 이소츠리)공원이라 한다. 말하자면 그냥 낚시공원. ...여기까지 와서야 저 공원이 낚시공원이란 걸 알았다. 그야, 그냥 구글맵에 저렇게 뻗어진 곳을 이름도 제재로 안보고 온 거니까... 아무튼 가자. 뭔가 구소련스러운 콘크리트 아파트를 지나 나름의 감성(?)이 느껴지는 자전거 거치대를 지나고 에메랄드... 빛? 아무튼 타카시마의 바다를 보며 타카지마에 온 단 하나의 이유에 도착했다. 이 입구 바로 앞에 매표소가 있다. 거기서 고양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 상당히 귀엽다. 낚시할거라면 150엔, 단순 구경은 100엔. 나는 구경이니까. 공원에 들어오니 방금까지와 확 다른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 하지만, 여전히 바닷바람은 거센 탓에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무서움을 느끼게 한다. 매표소 직원분에게도 오늘은 바람이 강하니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연의 무서움 속 긴장감. 스릴을 느끼며 사람이 만든 인공 건물로 향한다. 건물 내부로 들어오니 나 혼자 있다는 상황에 스산함이 느껴졌다. 건물 아래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공포감을 조성한다. 건물 위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지만, 음. 무섭다. 무서운 건 싫다. 그러니까 포기! 건물을 지나 반대편 길로 나오니, 확실히 낚시를 할 법한 장소라는 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낚시 편의를 위해 여러 펜스나 인공물을 설치한 느낌.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바다로 향한 길은 무엇에 쓰는 용도인가. 여기도 바닷물이 빠지는건가? 아니면, 혹시 사고로 바다에 빠진 사람이 올라오기 쉽도록 설계한 걸지도 모른다. 아! 이 길을 걸어 쭉 가면 용왕을 만날 수도 있는건가?! 아무튼 잡생각을 떠올리며 공원(?) 구경을 마친 나는 돌아가기로 한다. 슬슬 저 멀리부터 가까워지는 잿빛구름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환청인지 파도소리인지, 마치 번개가 떨어진 것 같은 쿠르릉! 소리도 들리고. 이런 곳에 혼자있으니 오묘한 느낌이 든다. 다시 건물을 지나 돌아오는 길,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볼 필요도 없이 눈 앞이 구름의 그림자로 드리우는 것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파도소리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불어닥치는 바닷바람. 우산은 가지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비가 오는 건 싫으니 황급히 발걸음을 옮겨 큰 섬으로 도망간다. 입구쪽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니 다음 배편 까지는 넉넉했다. 예상보다 구경이 빨리 끝났어. 뭘 해야할까. 갈 곳을 잃은 나는 매표소 고양이 좀 만지작 거리다가 일단 터미널로 돌아가기로 한다. 터미널로 돌아가는 길은 금방이라도 마음이 변했는지 맑아진 하늘 아래 다소 줄어든 바람과 함께 가는 길이 되어버렸다. 마치 토토로에서 보았던 것 같은 창고(?)도 만나고 다소 비싸보이는 야옹이도 만났다. 섬을 돌아다니며 고양이가 참 많다라고 느꼈다. 터미널로 돌아가는 길. 군함도-석탄 자료관을 만나 들렸는데, 건물 외부에는 군함도의 전체적인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자료관 내부로 들어가니 석탄과 관련된 탄광이야기나, 군함도의 역사 등등 여러가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입장료는 따로 없었지만, 나름 내부 퀄리티가 괜찮은 듯 하여 이런 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괜찮을까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쉽게도 나는 석탄이고 군함도고 관심이 없었지만. 대충 훑어보고 터미널로 돌아온 나는 배편을 기다리기로 했다. 여전히 꽤나 남은 배차 시간이다. 터미널 의자에 앉아 멍하니 뉴스를 보고 있던 나는 어디선가 우르르 몰려와 익숙한 언어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촬영 어쩌구 EBS 어쩌구 하길래 뭔가 방송사라도 온걸까? 싶었던 나는 호기심있는 눈으로 그들을 관찰했다. 마침 인원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터미널 내에는 서너명만 남아 자연스럽게 그들이 누군지 물어보았다. 알고보니 그들은 어느 대학에서 연수(?) 비슷한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이곳에 온 것으로, 한 주제에 대해 여러 표현을 하는데 때마침 나와 만난 것이 해당 주제를 다큐로 만드는 팀이었다. 오오... 그래그래... 슬슬 배가 고파서 식당이나 어디 시간 때울 곳 없을까 싶었는데, 터미널 안쪽 식당이 유일한 밥집이자 카페라고 한다. 타카시마 명물요리? 토마토 우동과 토마토 쥬스를 먹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토마토가 유명한가 싶었다. 나가사키 시내에서도 토마토 라멘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아, 중화거리가 있으니까 토마토를 재료로 쓰는 게 발달했나? 아무튼, 토마토 우동은 예상보다 맛있었고, 토마토 주스는 기대보단 맛이 없었다. 맛 없기 보다 왜 짠거야 대체. 야마가타는 폭설이라 난리라는 뉴스를 보고 있자니, 시간은 금새 다음 페리를 탈 시간이 되었다. 좋아! 탈출이다! 페리에 오르며, 나가사키 시내로 돌아가는 나는 아침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거기 낚시말고 할 게 없는데 왜 감?" 아아... 세관 형님의 말이 맞았다. 정말 할 게 없네. 뭐 그래도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다. 와보지 않은 것보단 낫겠지. 나가사키 항구에 돌아온 나는 근처에 있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신치중화거리로 나갔다. 중화거리에서 노닥거리며 시간 좀 때우다가 야경이나 보러갈 생각이다. 약 4개월만에 다시 걷는 이 나가사키의 거리는 참으로 익숙한 느낌으로, 여행을 왔다는 느낌보다는 동네 마실을 나왔다는 기분이었다. 신치중화거리에 온 김에 소룡포나 하나 먹을까 했는데, 어째선지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고 있었다. 지금 시간은 오후 4시 언저리. 으음, 확실히. 목요일 오후 4시는 애매하단 말이지. 소룡포 파는 곳도 없고. 대부분의 가게가 오후 5시부터 문을 여는 듯 했다. 오후 5시라... 그 또한 애매하다. 왜냐하면 오늘은 야경을 보러 산을 올라야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소득이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야경을 보러 가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네에 나가사키 최고의 야경은 어디인가?! 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마 이곳일 것이다. 나베칸무리야마. 차가 있다면 가볍게 갔다올 법 하지만, 뚜벅이인 나는 걸어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곳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는 우선 구라바엔쪽으로 가야하는데, 다행히도 구라바엔 뒷문? 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참고로 이 엘리베이터는 작동 시간대가 있기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몰을 보러 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일출은 불가능하다. 6시인가 7시부터 작동하는 걸로 기억한다. 일출은 이 계단을 통해 경사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종점에 도착하면 꽤나 높이 왔다는 것이 체감된다. 이제부터는 전망대까지 다시 올라갈 차례. 엘리베이터 덕에 이러한 경사길을 15분 정도만 걷게되면 금방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다. 딱 일몰하는 시간대에 전망대 도착. 나는 뚜벅이라 오후 6시쯤에 도망가야하기 때문에 못 보지만, 차 타고 갈 사람들은 한 번쯤 봐도 괜찮을 것 같다. 15분 정도 지나고 오후 6시쯤 되니 슬슬 어둡기 시작해서 내려간다. 저 도시 야경이 내 똥손으로는 잘 찍지 못해서 아쉽지만, 두 눈으로 보면 다를 거라 생각한다. 근데 솔직히 야경이 뭐가 아름답고 이쁜지 모르겠는 나는 퀘스트 하나 했다는 생각이긴 했다. 그래도 뭐, 도시 야경 보단 바다 일몰을 좋아하는 나는 이곳이 좋았다. 그러니까 런.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오늘의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고민하다가 전에 좋은 기억이 남아있는 오코노미야키 가게로 향했다. 히로시마야키는 처음 먹어보는데, 으음. 역시 내가 맞아! 오코노미야키는 오사카풍이야!!! 돌아오는 길에 교자집 갈까 싶었는데, 현금이 없어서 편의점 교자털고 1일차 끝!
작성자 : ggkr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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