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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픽서폿빼고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14 22: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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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을 위해 소풍을 간다고 했다. 설렘에 잠을 설쳤다. 속에 있는 말을 쉽게 내뱉지 못하던 그 무렵 시가 좋아졌다. 다르게 표현하고 또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동일한 언어지만 똑같이 말할 수 없음이. 한편으론 쉽게 들키지 않아 좋았다.

오후까지 자유로운 주제로 시를 쓰고 제출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백일장은 시작됐다. 주제를 정하느라 오전을 보낸 나와 다르게 점심시간 전에 이미 제출을 끝낸 친구들도 있어 다급해졌다. 친구들과 모여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다가 문득 한 글귀가 떠올랐다. 사랑은 포도주처럼 담가둔다고 해서 무르익는 것이 아니다. 당시 내가 했던 큐플레이라는 게임의 어떤 유저가 프로필 란에 적어놓은 문장이었다. 이 문장으로 마지막 연을 구성하고 나니 쉽게 써지기 시작했다.

부끄러웠다. 첫 문장은커녕 주제도 정하지 못하고 끙끙대다 남의 문장을 빌려 입을 뗐다는 것이. 다르게 말할 수 있어 좋아했던 것에서 이미 변질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제출을 마치고도 신나게 놀지 못했다. 발이 무거웠다.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문학2 선생님이 집에 가기 전 교무실로 잠깐 오라고 하셨다. 같이 집에 가는 친구들을 복도에 남겨두고 문학 선생님의 자리로 갔다. 백일장 이야기였다. 인상 깊게 읽었다는 칭찬 뒤에 인터넷에서 시를 베껴서 제출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당황해하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수상자 명단에 올랐다고. 표절이라면 문제가 발생하기에 인터넷에 검색해봤는데 내가 쓴 시의 내용은 검색이 되지 않는다고. 혹시 다른 곳에서 베끼거나 옮겨온 사실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수상의 이유가 그 한 문장이었는지, 그 외의 것이었는지. 그런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씀드리자 쓴 내용을 말해보라 하셨다. 수치스러웠다. 조금씩 생각나는 표현을 말하면서도 가장 뚜렷하게 기억나는 문장은 하나였다. 포도주.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글이었다. 시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선생님은 알았다며 그만 가보라고 하셨고 나는 기다리던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냐며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벌을 받는다고 말했다. 꼬치꼬치 묻는 애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멀었다. 며칠 뒤 아침 조회 시간엔 상장과 함께 내 이름이 호명됐다.

그와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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