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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픽서폿빼고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8.25 02: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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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환자 같은 날씨였다. 비가 그칠 것 같다가 다시 오고 결국엔 맑게 개지 않은 채로 어두워졌다. 유튜브에서 단편 드라마 소개를 잠깐 봤는데 재밌어서 풀영상을 찾아봤다. 나의 가해자에게. 나의 아저씨 이후로 오랜만에 숨이 턱턱 막혔다. 한 시간 남짓한 길이에 설정 자체가 학교폭력과 권선징악을 주제로 해 색다르게 다가오진 않았는데, 과거의 피해자였던 주인공이 현재의 다른 가해자를 옹호하고, 과거의 가해자가 현재의 다른 피해자를 옹호하게 되는 연출이 흥미로웠다. 학교폭력에 국한된 게 아니라, 트라우마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볼 때 여러 감정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창시절 나는 어떤 포지션이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방관자였다. 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방관자일 것이다. 그런 추한 솔직함이 그나마 덜 부끄럽고 싶은 나의 방어기제이다.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의 가해자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간 차마 글로 옮겨적지 못했던 은사님 얘기. 먼저 나의 가해자들은 내가 정말 미워할 수 없는 대상이다. 그들을 미워할 수 없어서 나는 나를 혐오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엔 없었다. 이제 와서 보니 결국 가해자들이 바뀌지 않으면 피해자들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꾀병으로 학교를 가지 않고 은사님이 적어준 주소로 향했다. 투박하지만 헷갈리지 않게 잘 정리된 메모였다. 그가 알려준 곳은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한 학교였는데 그리 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한 반에서 축구를 하고 있으면 다른 반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운동장이 작아 보였기 때문에. 1층 중앙 현관을 지나 잠깐을 헤매다가 교무실을 찾았다. 입구 근처의 선생님에게 그녀의 자리를 물었다. 졸업 이후에 찾아오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기에 익숙한 듯 응대해주었다. 그녀의 자리로 가 그의 이름을 아냐고 물으며 인사를 하자 보인 그녀의 표정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표정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녀는 왜 왔는지도 묻지 않고 나를 외부에 설치된 벤치로 안내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아온 그녀에게 말했다.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요. 우린 오래된 스승과 제자처럼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그가 그녀를 수십 년간 마음 속에 품었던 이유를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들려준 그의 이야기는 사실 충격적이었다. 그가 그녀를 만난 것은 처음으로 담임 선생님이 된 해였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선생님이 없어서 외로워하던 찰나에 발령이 나서 서로 대화도 자주 나누고 가치관도 비슷해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한다. 그와 그녀는 사적으로 만나는 관계로 발전했다. 학교에서는 종종 편지를 적어서 몰래 주곤 했는데 얼핏 들어도 로맨틱한 글귀였다. 이전에 그의 글을 훔쳐봐서 어느 정도 알곤 있었지만 그런 마음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게 놀라웠다. 집에 있다는 그의 편지를 전부 보고 싶었다.

그는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학교 지침이 없던 상황에서 방과 후 수업을 따로 만들어 학원을 가지 못하는 애들을 도왔고, 따로 숙제까지 만들어 내줄 정도로 가르치려는 마음이 강했다고. 자는 학생들에겐 자기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니 정말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할 정도로 개방적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런 모습이 같은 교사로서 부럽고 멋있게 느껴졌다고 했다. 문제는 그의 반에 여학생 한 명이 따돌림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시작됐다. 반에 우유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해 추궁하니 가방에 상한 우유를 집어넣고 밟았다는 것이다. 그는 학폭위를 열어 가해 학생들을 벌하고자 하였는데, 도중에 피해 학생이 선처를 바란다고 하여 교내 봉사수준으로 끝나고 말았다. 몇몇 선생들은 친구들끼리 할 수 있는 장난을 왜 저렇게까지 문제 삼느냐고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는 강하게 주장해봤지만 결국 피해 학생의 의사는 어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됐다. 더 큰 문제는 다음이었다. 며칠 뒤 가해 학생들이 여학생에게 복수심을 갖고 폭행한 것이다. 아는 선배를 함께 불러서. 그는 분개해서 날뛰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런 모습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를 달래다가 긴급소집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에 함께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그때 큰 충격을 받았는데, 선생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냥 버틸 수 있었는데. 선생님만 아니었어도. 피해 학생이 울면서 그를 향한 원망을 쏟아냈다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미안하다. 한 마디를 남기고 병실을 나왔다. 그녀는 속이 상해서 한참을 울었는데 그런 그녀를 그가 오히려 달래줘서 미안했다고 한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시야가 조금 흐려져서 눈을 비볐다. 그가 살면서 후회한 일 두 가지 중에 하나가 이거였을까. 나는 멍하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단지 짐작으로만 그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했다.

가해 학생들은 정학을 당했고 피해 학생은 이사를 갔다. 가해자는 남았고 피해자는 떠났다. 그 이후로 그는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시키는 일 외엔 하지 않았고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과도 업무 이상의 어떤 유대도 쌓지 않았다. 그녀와 짤막하게 대화를 하는 것 외엔 어떤 교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그는 다른 학교로 발령을 가게 되었고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그와의 연애사를 전해들으니 그녀가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지은 표정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아련함. 그녀는 온화하면서도 상냥했다. 자주 밝게 웃었고 차분했다.

대화를 끝마치고 집에 오는 길은 오묘했다. 감정이 섞여서 말하기 힘들었다. 화가 나면서 마음이 아프고, 또 한편으론 그가 자랑스러웠다. 그가 내 비밀친구예요. 라면서 소문내고 싶을 정도로.

여전히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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