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왜 지연되는 거냐?”
호루스 악시만드가 물었다. 플루토나는 거대한 너울에 휘말린 배처럼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동력부가 전리품을 탐하는 싸움에 나서기라도 한 듯 거칠게 신음했다.
“지금 공동으로 뚫고 들어와 버렸습니다, 각하.”
조종수 한 명이 말했다.
“에어 포켓입니다. 암염과 이판암 층이 침하되면서-”
“그래서?”
“견인력을 잃었습니다. 움켜잡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악시만드가 으르렁거렸다.
“얼마나 못 왔지? 지금 얼마나 아래에 있는 거야?”
“오스펙스에 따르면 지금 목표층으로부터 40미터 정도 아래입니다, 각하.”
악시만드는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머리 위의 난간을 붙들었다. 감금 상태가 지속되며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이 깊은 곳에 갇힌 채, 이제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온 황궁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전속 후진으로 추진력을 끌어내서 다시 시도해 봐.”
악시만드의 지시에 따라 조종사들이 드릴을 후진시켰다. 플루토나는 휘청하며 헤치고 물러나다 무언가를 붙든 것 같았다.
“지금이다!”
악시만드가 짖다시피 소리쳤다. 조종사들이 동력 공급기를 비틀어 바로 전진으로 기어를 돌리고, 기계가 다시 휘청거렸다. 다음 순간 드릴이 전방을 향해 갈아내기 시작했다. 악시만드는 드릴 머리가 돌을 씹어내며 동체 뒤로 폐석을 뱉어내는 채 흐름을 따라 기어오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악시만드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움직인다. 잠시 후면-
다음 순간, 마치 거인이 망치로 두들기기라도 한 것처럼 거대한 충격이 동체 전체에 울려퍼졌다. 잠시 동안, 악시만드는 지금 포격을 맞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머리 위로 있는 객실 구획의 외피가 극심한 힘으로 짓눌렸다.
그리고 선체는 미친 듯이 구르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던 악시만드만 심하게 내던져졌다. 내부 조명이 꺼졌다. 마치 눈사태같은 소리가 나면서 돌무더기가 비처럼 쏟아졌다. 플루토나가 뒤흔들렸다.
혼란이 멈췄다.
비상등이 켜졌다. 동체는 측면으로 뒤집혔고, 동력 공급기는 꺼진 채였다. 악시만드는 기어오르듯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된 거냐?”
조종사 한 명은 결속된 채 의식을 잃었다. 머리에는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다른 하나는 흐릿한 눈을 한 채 계기반을 확인하고 있었다.
“낙석입니다, 각하. 우리 드릴이 공동의 불안정한 가장자리를 뚫고 들어가서 우리 위로 쏟아진 것 같습니다.”
악시만드는 이제 천정이 되어 버린 벽을 응시했다. 동력 공급장치는 완전히 죽어버렸고, 수천 톤에 이르는 돌이 그들의 위를 짓눌렀다. 플루토나 패턴은 그보다 더 큰 만톨리스 패턴과 달리 텔레포트 그리드를 갖추지 못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악시만드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얕고 빠른 숨소리. 그리고 다음 순간 악시만드는 공포와 분노 속에서 자신의 오랜 꿈, 그를 짓눌러온 꿈의 정체를 깨달았다. 어둠 속에서 숨쉬던 존재는 바로 그였고, 지금 이 순간이었다.
이 금속 상자가 그의 무덤이었다.
“싱크홀 붕괴 확인 중.”
“위치는?”
지휘소의 오퍼레이터를 향해 엘그가 빠르게 확인했다.
“세타와 파이 아래쪽입니다. 방금 그 인근에서 포착되던 목표 궤적이 사라졌습니다.”
오퍼레이터가 답했다.
“큰 침하가 일어났습니다. 걱정거리입니다. 저 약점부는 압박에 취약합니다. 적의 굴착 규모와 속도를 고려할 때 조만간 붕괴가 예측됩니다.”
엘그는 디아만티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마고스 랜드가 시작해야 합니다.”
“너무 빠르오, 여주인. 아직 그럴 때가 아니오. 놈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들여 가두는 게 우리 목표였소. 저기엔… 지금 확인된 목표 궤적 수는 얼마나 되지?”
“총 16개의 궤적이 포착되었습니다, 전하. 모두 약점부 인근에 모여 있고, 다음 14분 이내에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퍼레이터 하나가 보고했다.
“16개 궤적이오. 최소한 2개 내지 3개 중대 전력이지. 나는 이런 큰 사냥감을 잡을 수 있는 올가미를 치울 생각은 없소.”
“얼마나 되는 피를 흘렸는지로 승패가 갈리는 전사의 말씀입니다, 허스칼.”
엘그가 답했다.
“전쟁 의회의 선임 담당관으로서, 저는 승리를 부대 손실과 적 피해 규모로 판단합니다. 저들을 모두 직접 죽일 필요는 없습니다, 디아만티스. 마고스 랜드의 록크리트는 저들을 약점부에 영원히 가둘 것입니다. 탈출은 불가능합니다.”
“확인이 필요한 거요. 마고스 랜드의 절차가 정확히 정한 대로 이루어질 거라고 가정하신 것 아니오.”
“그게 더 나은 방책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설명드리지요, 경. 침하는 이제 시작되었고, 급격히 번질 것입니다. 만약 마고스 랜드가 이 결함을 봉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재앙적 규모의 지반 침하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새터나인 구역의 궁극의 벽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주 최소한으로 보더라도, 약점부가 너무 넓게 벌어져 다시 채우거나 닫을 수 없을 규모가 될 것입니다. 생텀 임페리알리스 측면에 구멍을 뚫는 행동입니다.”
디아만티스는 잠시 주저하고서 복스 마이크를 잡았다.
“여기 트릭스터. 랜드, 시작하시오.”
가로의 킬팀 대원들은 탄약 대부분을 써 버린 상태였다. 카툴란 리버는 이제 남은 병력을 모두 끌어모아 에타 구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아치와 사격 방벽은 포화 속에서 으깨졌고, 지하 수장고의 공기는 먼지로 끓는 중이었다.
가로의 대원들은 에타 구역을 완전히 벗어나 에타 구역이 2차 간극로와 이어지는 곳에 새로운 조임목 지점을 형성하라는 지시를 가로로부터 받았고,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로는 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갑자기 다가오던 총성과 사격 패턴이 바뀌었다. 카툴란들이 쏘아대는 총화 위로 새로운 총격의 굉음이 덮어씌워졌다.
- 가로! 아직 살아 계십니까?
갤로어의 목소리가 복스 너머로 들려왔다.
“갤로어?”
- 세븐스, 도착했습니다!
킬팀 세븐스는 알파 구역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아치 통로 중 하나를 따라 진입했다. 갤로어가 지휘하는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 소속 카타프락티 병력들이 카툴란의 후방을 낫으로 베어내듯 진격했다. 팔쿠스 키브레는 노출된 병력들을 끌어들이고서 다른 아치를 버팀점으로 삼으려 했다. 카툴란 대원들은 발 위로 폭발해 날아가거나 플라즈마 포격에 맞으며 산산조각으로 잘려나가는 중이었다.
킬팀 블랙 독이 세븐스가 선택하지 않은 아치를 따라 진격했다. 하르가 포효하는 명령을 따라, 블랙쉴드와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원이 혼성 편제된 그의 킬팀이 무자비한 총격을 뿜어냈다.
카툴란 리버에 전해지던 영광과 이야기들은 단 몇 초만에 사라졌다. 킬팀 블랙 독과 세븐스가 함께 뿜어낸 공격은 카툴란 리버를 으깨진 과육 조각으로 전락시켰다. 두 명의 터미네이터가 길을 열기 위해 킬팀 블랙 독 쪽의 아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르의 분대장이 휘두른 도끼 일격에 한 놈이 쓰러졌고, 리벤 하운드 본인은 다른 놈의 머리를 움켜쥐고 그대로 벽에 후려쳤다.
탄약이 다한 가로와 그가 이끄는 소수의 생존자들은 그 십자포화의 부수적인 피해를 피하기 위해 에타 구역을 가로질러 후퇴했다. 오론티스는 자신의 마지막 안장형 탄창을 오토캐논에 꽂아놓고 제압사격을 퍼부었다.
가로는 갤로어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 가로! 그쪽으로 갑니다!
키브레와 드랄, 그리고 살아남은 마지막 카툴란 터미네이터 한 대가 무너져 내리는 에타 구역의 아치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오론티스가 놈들을 맞이했다. 오론티스가 뿜어낸 사격이 드랄을 두동강이로 만들었지만, 카툴란 터미네이터가 그런 오론티스의 목에 파워 소드를 꽂았다. 키브레는 두 사람을 모두 밀치고 달려들었다. 이온 마울이 빛났다. 탄약은 없었다.
가로 역시 그런 키브레에게 리베르타스를 뽑아든 채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둘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가로는 키브레보다 작았지만 더 빨랐기에 키브레가 휘두르는 치명적인 메이스 일격을 두 차례 피해냈다. 휘둘러진 리베르타스가 키브레의 복갑을 갈라냈다. 과부 제조기의 허벅지를 따라 피가 튀겼다. 키브레는 다시 메이스를 휘둘러 대기를 불살랐다. 그의 갑옷만으로도 가로를 압도할 수 있었지만, 키브레의 육신은 거기에 워프의 힘으로 끔찍하게 증폭된 채였다. 가로는 몸을 숙여 키브레의 팔을 붙들려 애썼다. 키브레의 끓어오르는 메이스가 가로의 턱밑에 있었다.
바로 그때 오론티스를 끝장낸 터미네이터가 가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로는 터미네이터가 아래로 휘두른 파워 소드의 궤도 밖으로 몸을 날렸다. 확인을 마친 가로는 검을 가로질러 양손으로 브로드소드를 내리쳤다.
가로가 휘두른 검은 느려지지도, 질질 끌리지도 않았다. 그대로 터미네이터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내리쳐진 검은 그대로 왼쪽 엉덩이까지 일격으로 베어내렸다. 절단된 카툴란 터미네이터의 반쪽이 그대로 판석에 충돌했다.
다음 순간 휘둘러진 키브레의 메이스를 보며 가로가 벌떡 일어섰다.
옆으로 재주를 넘듯 뛰어오른 가로는 거세게 내려앉았다. 그의 견갑이 쪼개졌다. 리베르타스는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채였다. 2미터 가까운 거리에 검이 떨어졌고, 칼날의 삼분의 일 가까이가 돌바닥에 꽂혀 있었다.
가로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회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키브레가 쿵쿵 뛰면서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키브레는 바닥에 꽂힌 채 떨리고 있는 검을 힐끗 바라보았다. 키브레는 리베르타스의 역량을 보았다. 키브레는 자신의 손에 들어오는 어느 것이라도 써먹을 생각이었다. 키브레는 리베르타스를 움켜쥐고 뽑아내려 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키브레는 자신의 증강된 갑옷과 육신의 힘을 다 쏟아내 검을 당겼다.
하지만 리베르타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음 순간 갑옷에 덮인 발뒤꿈치가 키브레의 얼굴을 후려치며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가로는 다시 일어난 채였다. 그의 발차기가 키브레의 면갑을 일그러뜨렸다. 키브레는 가로에게 달려들었다.
가로는 검을 손쉽게 바닥에서 뽑아냈다. 그대로 올려쳐진 칼날이 키브레의 가슴을 꿰뚫었다.
키브레의 육신이 뒤흔들렸다. 가로는 칼을 비틀어 뽑아낸 뒤 난도질했다. 팔쿠스 키브레의 턱과 흉골, 그리고 사타구니까지가 그대로 갈라졌다.
찢어발겨진 채 키브레는 무릎을 꿇었다. 윤기가 도는 시커먼 장기들이 튀어나와 그의 앞에 흩어졌다. 프로메슘처럼 시커먼 체엑이 장기와 함께 쏟아졌다. 그는 어떤 유기적 의미에서도 팔쿠스 키브레가 아니게 된 지 오래였다. 무엇이었던 간에, 그 박살난 육체에 거하던 보이지 않는 에테르의 무언가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테라의 옥좌여, 이 망할 자식…”
가로는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팔쿠스 키브레의 헐떡이는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들은 죽어버린 돌격 드릴에서 어떻게든 길을 열어냈다. 악시만드와 루카쉬는 해모라 디스트로이어(Haemora Destroyer)들을 이끌어 황혼의 어둠 속에서 할로겐화물로 이뤄진 거대한 비탈을 올랐다. 마치 한밤중에 극지를 벗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펼쳐진 암흑이 그들을 감산 채였다. 청백색의 할로겐화물 지각이 그들의 발을 디딜 때마다 으드득거리며 부서졌다. 바이저를 통해 비친 지층은 한밤의 눈처럼 은은했다. 몇 분마다, 그들 뒤에 펼쳐진 거대한 공동으로부터 지층이 붕괴되며 낙석이 퍼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악시만드는 복스 교신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채널은 죽어 있었다. 악시만드는 지금 40명의 전사들과 함께 땅 밑에서 길을 잃었고, 그들의 목표는 이제 무효화된 채였다.
“200미터만 더 올라가면 망할 메카니쿰 놈들이 원래 우리를 이끌어야 했던 곳이 나올 겁니다.”
루카쉬가 오스펙스를 들여다보며 투덜거렸다.
“중대장 각하!”
디스트로이어 한 명이 소리쳤다. 그는 몸을 웅크린 채 무언가를 살피고 있었다.
“뭐냐?”
악시만드가 물었다.
“판석입니다.”
군단병은 바위 파편 하나를 들어올린 채 말했다.
“환상적이군, 사쿠르. 그게 우리가 찾으러 온 바로 그 물건이기라도 하냐?”
“각하, 이건 굴러떨어진 파편입니다.”
군단병이 대답하며 가리쳤다. 해모라 디스트로이어 부대원의 말이 맞았다. 할로겐화물 앞에 길게 이어지는 어두운 암석의 길이 있었다. 거의 100미터 가까이 이어진 짙은 얼룩 자국이 펼쳐진 채, 할로겐화물 지층을 따라 긴 검은색 바위층이 펼쳐져 있었다.
판석. 찢겨져 나간 바닥의 일부.
악시만드는 보고한 군단병의 견갑을 철썩 때렸다.
“장하다. 해모라! 움직이자!”
그들은 속도를 두 배로 올려 능선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얀 할로겐화물 위에 검은 얼룩은 더욱 잘 보였기에, 그 자국을 따라갔다. 판석 조각도, 벽돌 조각도 보이기 시작했다. 악시만드의 바이저는 배경 광도가 증대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저 밤하늘은 지하층의 밑바닥이었기에 구멍이 뚫릴 수 있었다. 창백한 빛이 흘러들며 싱크홀의 밑바닥이 드러난 채였다. 쏟아져 내린 수 톤의 석재가 할로겐화물 층과 처진 구멍을 잇는 가파른 기둥을 이룬 채였다. 산사태같은 진동 속에서, 고대의 저장고 바닥이 깎여나간 것이다.
“진입로군요.”
“진입로다.”
루카쉬의 말에 악시만드가 동의했다. 마침내 운명이 악시만드의 길에 미소를 지었다.
“화력 포메이션으로. 루카쉬, 선봉에 서라. 올라가서 방을 확보하고 형제들과 합류하자.”
“루퍼칼!”
“진정 그를 위해서.”
루카쉬의 울부짖음에 악시만드가 동의했다. 베테랑으로 구성된 해모라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무기는 이제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준비되었다. 그들은 이제 빛을 향해서 무너진 석재 더미를 디디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벨 세파투스는 오른손을 들어올려 검지를 편 채 거의 5분간 유지하며 완벽한 침묵을 지시했다. 그가 지휘하던 최정예 카테콘 팔라딘은 케루빔의 우두머리가 내뱉는 가장 작은 소리 이상의 지시가 필요 없었지만, 세파투스는 킬팀 브라이티스트 소속의 다른 아스타르테스들도 그럴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원, 그리고 흩어진 군단(Shattered Legion)에서 합류한 십여 명, 그리고 예의는 말아먹은 블랙쉴드 한 분대. 그가 고를 여지만 있었다면 블러드 엔젤 군단의 상위 위계로부터 골라냈겠지만, 그럴 여지가 없이 그냥 주어진 병력이었다. 근위장이 이제 그를 지휘했고, 대천사는 그 뜻을 따랐다. 세파투스는 새터나인에서 펼쳐지는 이 거대한 도박을 보고 그 대담함에 경탄을 표했다. 전례 없는 영광이 약속되어 있었고, 생귀니우스가 말한 영광은 벨 세파투스가 발디디는 그 어느 곳에건 도사리고 있으리라.
세파투스는 그 영광을 향한 첫 걸음이 30분 동안 텅 빈 지하실에 서 있는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40분 동안 그 층의 다른 방에서 어떤 지질학적 진동 이후 쩍 벌어진 구멍을 지켜보는 것이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트릭스터가 발하는 지시는 다른 구역들에서 벌어지는 무자비한 처형극을 떠들고 있었지만, 존 모탈리스 세타는 망할 구멍과 천천히 흩어지는 먼지 뿐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세파투스는 1분간 바위가 떨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 소리가 이어졌다. 그의 오스펙스가 접촉 신호를 주르륵 스크롤링하며 바이저에 비췄다. 호박색 룬이 물들고,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 붉게 빛나는 위치 표시들이 보였다.
세파투스는 자신의 킬팀 대원들이 바이저에 같은 내용을 보고 있음을, 그리고 점점 긴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무장을 갖췄다.
세파투스는 바이저를 다시 설정했다. 그의 시야 왼쪽 아래 표시된 킬 카운터는 178을 기록하고 있었다. 고르곤 바에서 전투를 펼치는 내내 작동한 숫자였다.
그리고 세파투스는 머릿속에서 고르곤 바를 떠올렸다. 그곳이 지켜지고 있기를.
그의 킬 카운터가 0으로 내려갔다.
바위가 긁혔고, 위치 표시는 이제 거의 피처럼 붉은 색이 되었다.
무언가가 구멍으로부터 빠져나왔다. 검은 투구. 묶여 틀어올려진 상투.
선 오브 호루스 군단.
세파투스가 오른손을 쓸어내렸다.
킬팀의 화력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죽음의 눈보라가 구멍을 따라 퍼부어졌다. 구멍에서 쏟아져내린 파편들보다 더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라스 세례와 볼터탄의 폭풍, 그리고 비틀리며 뿜어지는 노란 플라즈마 광선, 그리고 용광로의 혹독한 분노를 뿜어내는 플레이머까지.
루카쉬는 첫 전사자였다. 그의 머리와 어깨가 사라진 채였다. 해모라의 선두부대들은 같은 방식으로 사라지며 바윗조각과 함께 쓰러졌다. 시신과 바위들은 동료들의 뒤로 굴러떨어지며 사라졌다. 그 덕에 노출된 해모라 부대원들은 손쉬운 사냥감이 되었다. 전사자 열 명, 열여섯, 스물일곱, 서른하나…
악시만드는 해모라 디스트로이어 부대원들이 파멸을 맞이한 순간, 당황한 눈으로 허둥지둥 할로겐화물 능선을 따라 내려갔다.
“사격 중지!”
세파투스는 소리를 지르고선, 누군가 조언을 하기도 전에 구멍으로 도약해 들어갔다. 카테콘들이 검을 뽑아들고 그를 따랐다.
세파투스는 가파르고 늘어진 경사로를 미끄러지며 푸른 어둠 속에 강하게 발을 내디뎠다. 자욱한 연기에 감싸인 채, 검은 갑옷을 입은 시신들이 비탈길에 널려 있었다. 오직 소수만이 이 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세파투스는 그것을 허락한 바 없었다.
바로 점프 팩을 켜고 도약한 세파투스는 그대로 그들의 위로 내리꽂혔다. 그의 장검이 갑옷과 육신을 동시에 찢어발겼다. 금색과 코치닐빛이 도는 붉은색으로 도색된 장엄한 갑옷을 입은 카테콘들이 세파투스의 측면에 이르렀지만, 살육할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검은 시체들은 수정처럼 하얀 할로겐화물의 비탈 위에 핏빛 흐름을 그려내고 있었다.
세파투스가 돌아섰다.
“전멸 확인입니까?”
그의 부관이 물었다. 팔라딘 중대장은 재빨리 그 지역을 다시 살폈다. 그의 킬 카운터는 7을 기록하고 있었다. 선 오브 호루스 군단원 43명의 시체가 이 싱크홀의 능선에 늘어진 채였다.
총 50명. 완편된 1개 반 규모의 병력이다.
“지휘관님?”
“한 명이 없다.”
세파투스가 부관의 재촉에 주위를 돌아보며 답했다.
“50명 뿐이다. 지휘관이 한 명 있을 텐데. 지휘관은 어디 있지?”
선명한 자취는 없었다. 길게 늘어진 할로겐화물 능선을 따라 어둠이 공허하게 비췄다.
“여기 브라이티스트. 트릭스터 확인 바람.”
세파투스가 교신을 보냈다.
- 트릭스터 입감. 용건 확인 바란다.
“세타 구역 청소 완료. 적 전멸. 한 명이 탈출했을 가능성 있다는 통보. 붕괴된 지층을 따라 도주 중인 것으로 보임. 추격하겠음.”
- 불허한다, 브라이티스트. 구역을 사수할 것. 현재 지반 침하지대 봉인 시작되었다는 통보. 지층에 진입하면 함께 삼켜진다, 이상.
“알겠다, 트릭스터.”
교신을 마친 세파투스가 명령을 내렸다.
“다들 올라간다!”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세파투스는 부하들의 뒤를 따라 폐석의 비탈을 향했다. 마지막으로 돌아본 세파투스의 시선에는 좌절감이 담겨 있었다.
악시만드는 할로겐화물 능선을 따라 어둠 속을 헤치고 움직였다. 너덜너덜한 숨결… 어둠 속의 숨결이…
악시만드는 헬멧을 비틀어 벗어던진 후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모두 죽었다. 모두가, 모든 작전도, 날아갔다.
그는 패했다.
난파된 돌격 드릴로 돌아가야 할까. 이미 고철더미가 되어버렸고, 무능한 죄로 메카니쿰 인원들을 죽여버렸지만, 최소한 그 위치에서 후진을 진행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되면 그가 타고 온 돌격 드릴이 파고들어온 길로 돌아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밖으로 벗어날 수도 있겠지.
긴 길. 기나긴 도보 행군이었지만, 다른 선택지보단 나았다.
악시만드는 비탈을 미끄러지듯 내려가기 시작했다. 몸에 번쩍이는 수정이 긁히듯 붙었다.
다음 순간 소리가 들렸다. 찰랑임. 강이 흐르는 소리. 어떻게 강이 여기에-
악시만드는 자기 아래에서 흐르는 강을 보았다. 마그마처럼 흐르는, 끈적한 회색 진흙의 강. 놀라운 속도로 수위가 차오르고 있었다. 강 쪽으로 다가간 악시만드는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인공 합성물이었다. 고분자물질, 혹은 일종의 산업용 락크리트 같았다. 액화된 락크리트 비슷한 무언가. 공동을 이 강이 채우고 있었다. 망할 충성파 놈들이 약점을 닫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호박 속에 박힌 파리처럼, 락크리트 안에 영원히 봉인된다? 산채로? 그의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악시만드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비탈을 허둥지둥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선택지가 있으리라.
거대한 액화 락크리트의 강은 공동의 위태로운 구조를 점차 불안정하게 만드는 중이었다. 악시만드의 눈에 축 늘어진 할로겐화물 덩어리들이 흐름에 빠져 흘러가는 게 보였다. 낙석이 공동의 벽에 흩뿌려졌고, 강으로 굴러떨어진 바위들이 끈적하게 강물을 튀기며 사라졌다.
더 많은 산사태, 더 많은 싱크홀. 만약 지하층이 더 무너졌다면…
악시만드는 최대한 높은 곳으로 움직였다.
플루토나 조종사들은 레브 고센에게 목표 지점까지 2분 남았다고 알렸지만, 아무래도 그 2분이 길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돌격 드릴은 허우적대고 있었다. 물의 흐름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진, 죽어가는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드릴 머리에서 울려퍼지던 굉음은 이제 조용한 소리죽음 단계에 이르렀다. 동력부가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캐낼 것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바위가 아니라 진흙 속을 의미 없이 파헤치고 있는 것 같았다.
“후진하고 있잖아. 대체 어떻게 후진하고 있는 거냐?”
“각하-”
테크 프리스트가 입을 열었다.
“당장 말해봐!”
고센이 쏘아붙였다.
“계기에 따르면 우리는 점점 잠기고 있습니다.”
마고스가 말했다.
“대체 뭐에 잠기는 건데?”
“점액질 유체 흐름에 잠기는 중입니다.”
“무슨 종류의? 마그마? 진흙?”
“센서에 따르면 인공물질입니다.”
마고스는 뱃머리에 있는 조타석 옆의 비좁은 기술지원석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의 수지상 손가락은 포트와 연결된 채였고, 봉합된 눈꺼풀 안에 떠오른 데이터를 읽는 중이었다.
“구조와 구성, 특성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학술적 이론 따위는 필요 없다, 똥같은 놈.”
고센이 툴툴댔다.
“당장 목표 벡터에 도착해야 한단 말이다.”
“불가능합니다. 현재 우리는 고정되었습니다.”
“뭐가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나한테 떠들려 들지 마라.”
제25중대장이 경고했다.
“우리는 고정되었습니다. 액화된 락크리트와 유사한 복합재 속에 고정된 상태입니다. 우리 동력부와 드릴 머리는 견인력을 얻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빠르게 굳고 있습니다.”
“움직여야 한단 말이다!”
“그것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각하.”
“그럼 망할 해치라도 열고-”
“드릴 안에 넘쳐 어올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잠긴 상태입니다. 제 초기 답변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센은 다른 질문을 생각하려 애썼다. 무슨 요구를 할 수 있는지. 하지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격실 벽이 갑자기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50명의 전투 준비를 마친 아스타르테스들과 메카니쿰 승조원이 그를 둘러싼 채였다. 딱 정원을 채웠기에, 움직일 공간조차 거의 없는 판이었다.
플루토나는 완전히 멈춰섰다. 고센이 지금까지 들은 어떤 소리보다 이 침묵이 더 끔찍했다.
“얼마나 걸리지?”
결국 고센은 입을 열었다.
“무엇까지입니까, 각하?”
“굳기까지 얼마나 걸리지?”
“이미 굳고 있습니다, 각하.”
“그러면… 굳어진다는 건 고체가 된다는 건데, 그러면 그걸 파내 길을 뚫을 수 있겠군.”
마고스는 봉인된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이 물질은 우리 페어링, 드릴, 엔진 구동부까지 들어찼습니다. 외부의 물질이 굳어지면 곧 내부의 물질도 바위처럼 굳어질 것입니다. 아름다운 기계는 다시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격실이 밀폐된 공간이기에 여기까지 저 물질이 침범하진 않았습니다. 해치를 열 수도, 앞을 파낼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다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우릴 파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오지 않을 테고,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이들조차 거의…
레브 고센은 자기가 들은 말을 소화할 수 없었다. 자신의 구속석에 주저앉은 고센은 기초적인 것부터 확인했다.
“얼마나 되지?”
“각하?”
“우리 동력이 얼마나 되지?”
“100일 하고도 96일을 버틸 것입니다.”
“공기는?”
“재순환과 각하의 유전적 특질을 감안할 때, 무한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고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은 수명이 어떻게 되십니까?”
“왜 묻나?”
“그만큼이 여기 계실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마고스가 고센에게 답했다.
* 키브레/고센 퇴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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