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이미 일어났던 일]
[영광의 쓰임새]
[예언과 예지]
라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그의 감각을 꿰뚫고 들어올 만큼 깊은 어둠이, 흘러나온 기름 웅덩이처럼 새까맣게 그의 두 눈구멍을 가득 채웠다. 라는 자신의 지각이 하나로 정렬될 때까지 기다렸다. 두려움은 없었다. 그의 주군이 그를 부르는 감각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가슴 속에 회한이 쌓여 있었다. 납골당에서 있었던 매복전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라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문제들의 답은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거의 다 된 일이었건만.
황제로부터는 그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그의 왕이 이 일에 대해 듣기나 했을지도 의문이었다.
곧 빛이 나타났다. 희미하고. 갈라진. 고통스러우리만치 아득한 빛이. 빛은 극히 작은, 저 머나먼 태양들의 눈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빛의 눈들은 뿌연 빛의 다발들로 변하여 공허 속에서 반짝이며, 번뜩이고, 깜빡였다. 라의 눈에까지 빛을 닿게 하기 위해, 각각의 태양들은 짧은 영원을 들여 그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라에게는 형상도, 형체도 없었다. 그저 공허 안에 존재하는, 무한한 암흑 속에 감싸인 하나의 세계 위에 떠있는 존재일 뿐. 전쟁에 집어 삼켜진 한 행성이, 보잘것없는 노란 태양의 핵융합광 속에 잠겨 있었다.

“테라.” 입도 없이, 숨도, 이빨도, 혀도 없이 라는 말했다.
+테라.+ 황제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그 목소리는 여느 별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하였다.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통합 전쟁에 묶여 있던 행성이지. 군벌들과 대사제들, 그리고 마법사-왕들과 부족장들이 파괴된 영토를 두고 다투던 부서진 행성. 나의 썬더 리전이 그들과 전쟁이 벌이기 위해 그 땅을 진군하였었지. 그들 모두와 싸우기 위해 말이다.+
“그 날들에 폐하의 곁에서 싸우지 못하였음이 슬플 따름이옵니다, 나의 왕이시여.”
+너의 충심은 잘 알겠으나, 이를 슬퍼할 필요는 없느니라.+
“어째서 제가 이곳에 있나이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것을 말하였다. 그가 마음 속에서 생각하는 것과 공허 속에서 목소리로 내는 것, 그 둘 사이에는 명확한 구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그리 뜻하였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라에게는 충분한 대답이었지만, 라는 그보다는 더 많은 답을 바라고 있었다. 이 계시의 목적이 무엇이던지 간에, 그 목적은 아직까지 라가 추측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곳에 있었다.
공허가 확 비틀리 듯 요동침과 함께 별들이 회전하고, 빛이 굽어지며 접혔다. 일시에 무한한 암흑이 그를 반겼다가 쫓아내고, 그의 존재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의 감각에 저항하였다. 그리고 그 도중에서, 라는 자신이 공허 속을 날아가고 있는 속도를 계산하려 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그리고 주변 사방에서 성운들이 꽃피 듯 피어났다. 성운들은 금지된 병기의 독가스 구름처럼 짙게 그의 시야를 가렸지만, 그럼에도 다른 모든 감각들에는 완전한 암흑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신의 눈과 같은 별들 주위로 세계들이 회전하고, 그 중 일부는 잔뜩 부풀어 오른 항성들이 발하는 대량의 푸른 열기 아래에서 그을리고 있었다. 또 어떤 세계들은 별들이 추는 윤무의 외곽에 싸늘하게 남겨진 채, 생명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심우주 속을 굴러 다니는 얼어붙은 암석들 사이로 유배를 다니고 있었다.
둥근 보석 같은 행성들 중 다수는 사실 보석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목숨을 수용하기에는 부적합한 세계들이었으니까. 기술의 암흑기의 경이로운 테라포밍 기술들이 은하계에 흩어진 행성들에 총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한히 많은 행성들이 황폐화되고, 폭풍에 휩싸이고, 고요한 가스 폭풍 속에 잠긴 채,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해진 상태로 자전하고 있었다.
진정한 보석들은 색조와 색채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알칼리성 황토색 사막이 눈에 들어왔다. 사막은 식민화 과정에서 매끄럽게 평탄화되거나, 구조적 불안성으로 인해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며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해양성 행성들은 사납게 요동치는 사파이어와 아쿠아마린이었고, 햇빛은 그 행성들의 거대한 심연 속으로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해양성 행성들 중 여럿은 순수한 물의 색깔 그 자체까지 거부하고 있기도 하였다. 그 대신, 끝없이 펼쳐진 바다들은 넘쳐나는 박테리아 생명체들로 인해 금록석* 빛깔로 물들어 있거나, 혹은 홍옥수** 색으로 물든 채, 물결치는 심연 속을 아쿠아카르노사우루스 무리들의 안식처로 내어주고 있었다.

(*역주: 보석의 일종으로 영어로는 크리소베릴-chrysoberyl. 이름대로 누런색과 녹색이 섞인 색을 띠고 있다.)

(**역주: 역시 보석의 일종. 영어로는 카넬리언-carnelian이며 주황색과 붉은색의 중간 정도 색을 띈 옥석의 일종.)
가지각색으로 물든 여러 세계들은 각기 저들이 일구어 낸 것들을 한데 섞으며, 서로 다른 지형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아직 분열되기 전의 고대 테라가 지니고 있던 청색과 녹색은 가히 가장 진귀한 색채라 할 수 있었다. 그처럼 순결한 색조란, 인류가 지닌 필연성조차도 거부하는 무언가였다. 바로, 인류가 발을 디디는 모든 곳에서 인류는 땅을 뜯어내고, 바다를 빨아들이고, 자원을 수확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그 필연성을 말이다. 인간은 차지하고, 정복하고, 파괴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류의 필연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바로 테라의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 사이였다. 궤도상에서 처음으로 테라의 모습을 보았을 때, 라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환경 오염으로 질식한 수도성은 끝없는 전쟁의 상흔들이 남은 채, 창백한 베이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때 화성은 인류의 정교한 기술로 대궐처럼 으리으리한 전원 행성으로 테라포밍 되었었고, 죽은 토양에서는 초목이 자라났었다. 그러나 지금의 화성은 전쟁으로 갈가리 찢겨나간 채, 식민화 시대 이전의 메마른 황무지로 되돌아가 있었다.
라는 이제 태양계의 행성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라는 형체 없는 자신의 몸을 어둠 속에서 비틀며, 구름으로 휩싸인 또다른 행성을 마주보았다. 이번 행성은 토양성 대륙들과 그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바다들만이 존재하는 판게아 행성이었다. 광활한 대지 위로 도시들이 회색 멍 자국처럼 나있었고, 신속히 찾아온 밤이 행성의 절반을 뒤덮자 도시들은 작게 빛나는 등대가 되었다. 겨우 몇 번 심장 박동이 뛰고 났을 뿐이건만, 새벽이 찾아오며 어둠에 뒤덮였던 행성의 절반이 밝아오고, 여명의 빛이 도시에서 빛나던 다수의 불빛들을 가려 버렸다. 궤도상에서 보는 문명의 모습은 다시 회색 얼룩들로 바뀌어 있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수십억의 사람들이 이 행성을 자신들의 고향이라 불렀으리라.
“이곳은 어느 행성이니이까?” 라가 공허에 대고 물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라는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간단히 밤하늘을 다시 가르고 날아갔다. 중량이나 가속도는 그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고, 라는 마치 꿈결처럼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감각 저편에서 편두통이 일며, 말기 뇌암에 걸린 것처럼 망막 위로 비치는 공허에 얼룩이 생겨났다. 별들을 둘러싼 가스 성운들이 불타오르고, 어른어른 빛을 발하는 독기가 시내를 이루며 공허 속으로 도로 흘러갔다. 타오르는 별들은 기체이자 동시에 기체가 아닌, 그리고 현실이자 동시에 현실이 아닌 어떤 외계 물질의 변화하는 조류에 옭죄여 있었다.

오쿨라리스 말리피카-Ocularis Malifica.* 바로 워프 폭풍이었다. 워프의 대체 현실이 사실우주-truespace에 길을 비틀어 열고, 그 악의 어린 독기 속에 수십의 성계들을 응고시키는 워프 폭풍. 이곳이 바로 두 개의 우주가 맞닿는 곳, 그리고 그 두 우주가 서로의 결합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곳이었다.
(*역주: 아이 오브 테러.)
라는 공허를 오염시키고 있는 부패의 눈을 응시하였다. 워프의 눈 역시 그를 마주 응시하였다. 이해하지 못할, 지각 없는 악의로 끓어오르며.
“제게 이 모든 것들을 보여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니이까, 폐하?”
+내가 보여주는 것이 아니니라. 참으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우리 둘의 사고가 연결되어 있을 때에 네 스스로가 배우고 있는 것들을 네가 받아들이는 방식일 뿐이니라. 네 정신이 내가 네게 각인시키고 있는 지식의 규모에 스스로를 맞추고 있는 것이지.+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라는 황제의 말에 안도를 얻었지만, 황제의 말을 쉬이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역주: 원문은 He did not, however, take much in the way of easy understanding. “take much in”이 대체 뭔 소린지 정확히 모르겠어서 의역함.)
“폐하?” 라는 공허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공허는 그를 우주를 가로질러 내던지는 것으로 대답하였다. 무게도 없이 공기처럼 가볍게, 죽어가는 어느 종족의 비명소리에 휩싸인 채 라는 날아갔다. 수 년 전. 수 세기 전. 은하계에 존재하는 인류의 영토들 중 대부분은, 옛 밤의 워프 폭풍들이 일으키는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이곳, 엘다들의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라는 요술로 자아낸 뼈로 이루어진 궤도 플랫폼들을 보았다. 뼈로 된 플랫폼들은 어찌나 섬세한 지, 태양풍의 숨결만으로도 그 연약한 구조를 부수어버릴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라는 초목이 무성한 행성들을 보았다. 수정으로 된 첨탑들, 그리고 사이킥 노래로 자아내어진 레이스본은 거대한 첨탑들과 그 사이를 잇는 통로들을 이루었고, 웹웨이 관문들은 끊임없이 이용되며, 웅장한 핏줄을 이룬 첨탑들 내부에서 빛을 발했다. 라는 그 종족이 더 많은 것들을 바라며 울부짖는 광경을 보았다. 그들은 항상 더 많은 것들을 갈구하였다. 뇌의 생명 활동을 자극하는 음악을. 신경계에 불을 붙이는 포도주를. 위엄과 품위를 광기의 조화로 바꾸는 오락과 쾌락을.
라는 그들의 사회에 드리운 그늘 속에서, 엘다의 가죽을 뒤집어쓴 괴물들이 거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들이 칼날로 몸을 애무하고, 물어뜯는 입맞춤으로 누군가를 살해하고, 피를 마시고 금지된 살점을 먹으며, 날카롭게 깎아낸 이빨을 씩 드러내어 미소 짓는 모습을 보았다.

창백한 외계인의 육신으로부터 진리가 터져 나왔다. 진리가 육신을 뚫고 풀려 나왔다. 갈퀴 발톱들이 엘다의 육신을 안쪽에서부터 갈라 열고, 퇴폐와 나태로 물러진 육신과 정신으로부터, 피투성이 살점으로 된 통로들이 열렸다. 워프의 괴물들이 귀에서부터, 콧구멍에서부터, 눈물샘으로부터 기어 나오더니, 점점 부풀 듯 자라나며 그것이 차지한 육신의 머리를 산산이 깨트려 버렸다. 전갈과 처녀, 그리고 남성의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양성구유의 신생 악마들은 피에 젖은 채, 타오르는 하늘을 향해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리고 그 공포스러운 광경으로부터 머나먼 곳에 떨어진 인류는 옛 밤의 고립 속에 갇혀 버렸다. 백만의 서로 다른 행성들은 서로 간에 연락할 능력을 상실한 채, 사실우주 속에서 영원히 휘몰아치는 워프 폭풍들이 불러온 타오르는 황혼 속에 홀로 고립되어 있었다. 오직 한 종족이 죽어야지만 다른 종족이 일어설 수 있으리라.
엘다 종족은 몰락하였다. 그들 스스로의 악덕이, 그들의 사이킥 영혼 주위로 쳐놓은 결계를 뚫고 들어가 그들 모두는 저주받은 존재들이 되었다. 온 세상을 파괴하던 워프 폭풍들은 이윽고 피 흘리며 물러나, 최종적으로는 여러 개의 군집들로 집중되었다. 마엘스트롬-Maelstrom. 오쿨라리스 말리피카. 그리고 그 둘보다 훨씬 미약한 그 외의 폭풍들. 영원히 휘몰아치던 워프 폭풍들이 가라앉고, 여명이 밝아오며, 옛 밤이 물러가고, 인류가 재기하였다.
새로운 어린 신이 탄생하였다. “슬라네쉬!” 엘다들이 흐느끼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슬라네쉬! 슬라네쉬!” 그러나 그와 함께 은하계의 나머지 영역들은 돌연한 고요를 되찾았고, 그 영역들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첫 숨을 내쉬었다.
배들이 항해하기 시작한다. 성간 제국들이 세워진다. 그리고 그 제국들 가운데서, 이후 유일한 제국이 될 국가가 탄생하였다. 바로 인류제국-Imperium of Man. 이제 맑고 고요하게 개인 밤하늘을 정복하기 위해 한데 뭉친, 테라와 화성의 동군연합이었다.
성전이 일어나고, 하나의 제국이 세워지고, 모든 이들이 단 한 명의 인간의 깃발 아래 모두 모이게 되었다.
+이미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다시 한 번 일어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만물의 순리이지. 그러나 인류의 죽음은 엘다의 멸망이 일으킨 여파의 열 배에 달하는 여파를 일으킬 것이니. 이는 인류가 엘다 종족보다 훨씬 더 강력한 사이킥 능력을 지닌 종족으로 진화해가고 있기 때문이니라. 통제 받지 않은 사이킥 에너지가 현실을 갈가리 찢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워프의 존재들이 은하계의 시신을 뜯어먹게 되겠지. 사이킥 에너지는 통제 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 통제는 유지되어야만 하느니라.+
“통제….” 라가 되뇌었다. 이만한 규모의 야망이라니 그것은….
+필요한 일이다. 인류가 엘다보다 훨씬 더 끔찍한 멸종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영혼은 워프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으며, 그 빛은 워프의 조류 속에 서식하는 짐승들의 포식을 불러올 것이다. 머지 않아, 모든 인간의 영혼들이 등불과 같이 타오르리라.+
대체 어찌. 라는 의문을 품었다. 대체 어찌 그것을 아실 수 있으십니까? 대체 그 어떤 믿지 못할 미래들을 예견하시었나이까? 어찌 진화 그 자체를 정복하고 통제할 수 있단 말씀이시옵니까?
+예지를 통해서이니라, 라. 우리는 워프를 현실을 대체하는 또 다른 현실이라 여기고 있으며, 이는 또한 진실이니라. 워프는 하나의 거울이다.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동을 비추는 거울. 모든 증오. 모든 죽음. 모든 악몽과 꿈들이, 영원 속에서 메아리 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모든 남녀노소들이 겪은 고통과 시련이 둥지를 튼 영역으로 침입하여, 그 영역을 성간 항행을 위해 사용한다.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다른 선택지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그것이 웹웨이로군요.” 고요한 밤하늘 속에서 라가 중얼거렸다.
+바로 웹웨이지. 인류는 승천하고 있다, 라. 인류는 위대한 발전의 걸음을 내디뎌, 사이킥 종족으로 진화하고 있다. 통제 받지 않는 사이커들은 워프의 접촉을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다. 그 자석들을 품고 있는 종족은, 엘다들이 과거 겪었던 것과 같은 시련을 겪게 되겠지. 그리고 엘다들에게 있어 이 진화 단계는 그들이 멸망하기 직전 내디뎠던 마지막 발걸음이 되었지. 나는 인류가 그와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여 멸망에 처하도록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엘다는 이미 그에 대한 해답을 그 손아귀에 쥐고 있었으나, 스스로를 구원하기에는 너무도 순진하고 너무도 오만하였지. 그들은 웹웨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구원이 될 수도 있었던 해답을. 그러나 그들은 결코 워프로부터의 연결을 완전히 끊어 버리지 못했다. 그들의 영혼은 불꽃이 되어, 그들의 종족 전체에 멸망을 불러오고 말았지.+
라는 이 지식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이토록 명확하게 이해해본 적이 없었다. 예언에 가까운 약속을 통해, 그 지식에는 한층 더 진실성이 가미되었다. 웹웨이가 있으면, 인류는 더 이상 네비게이터들이 필요하지 않게 되리라. 신뢰할 수 없는 아스트로패스들의 워프-속삭임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아도 되게 되리라. 전함들은 더 이상 워프로 진입하였다가 실종되거나, 그 속에 거하는 존재들에 의해 갈가리 찢기지 않게 되리라. 그러나, 엘다들도 그와 똑같은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던가?
+아니. 엘다들은 워프에 대한 의존성을 근절하였으나, 결코 워프와 그들 종족 전체의 연결은 끊지 않았다. 나는 인류를 위해 그들이 하지 못했던 그 일을 행할 것이다. 완전무결하게.+
라는 아무 것도 없는 공허 속에서 몸을 돌려, 머나먼 곳에 떨어져 있는 수많은 별들의 빛을 바라보았다. 그 중 한 별, 아득히 먼 곳에 떨어져 있는 태양-Sol의 별빛이 미세한 점처럼 작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인류의 요람-행성을 정복하였다. 인류가 마침내 사이킥 종족으로 진화하고 있을 때 인류의 발전 형태를 모양 짓기 위해, 은하계를 정복하였다. 그들의 무지로 인해 그들이 우리 모두에게 멸망을 초래할지도 모르기에, 우리 종족 중에서 그 어떤 세력도 고립된 채로 남아 있어서는 아니되었다. 나는 인류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신앙과 공포의 속박을 부수었다. 미신과 종교는 워프의 존재들이 인간의 마음으로 손쉽게 침투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에, 그 둘은 반드시 계속해서 금지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가 이미 행하였던 일들이지. 이윽고 나는 인류에게 겔러 필드와 네비게이터에 의지하지 않고도 성간 항행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아스트로패스들이 꾸는 워프의 꿈에 의존하지 않고도 행성들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내어줄 것이다. 그리고 제국이 나의 팍스 임페리알리스의 법도 안에서 전 인류를 수호하게 되고 나면. 인류가 워프로부터 자유로워져, 나의 비전 아래에서 통합되고 나면. 그때서야 마침내 나는 인류가 사이킥 종족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그 진화를 이끌 것이다. +
프라이마크들. 라는 떠올렸다. 썬더 리전. 통합 전쟁. 대성전. 스페이스 마린 군단. 제국의 진리. 웹웨이 프로젝트. 화물창에는 사이커들을 싣고 침묵의 자매단으로 그들을 감시토록 한 흑선들. 그 모든 것들이 다─
+통제를 위함이지. 압제는 끝이 아니다, 라. 완벽한 통제, 그것은 그저 끝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니라.+
저 오만함…. 그의 주군의 야망 저변에 깔린 그 숨겨진 진의의 깊이를 보게 되자, 라는 교활하게 마음 속으로 파고드는 반역적인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어졌다. 이토록 순전하고도, 비길 데가 없는 오만함이라니.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황제의 목소리는 얼어붙은 쇠처럼 싸늘하였다. +이는 오만도, 허영도 아닌, 필요에 의한 일이다. 내가 이미 말해주었을 터이다, 라야. 인류에게는 지배자가 필요하다. 이제는 너도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지. 단 한 번의 살인이 이 모든 일들의 시작이 되었으니, 이에 지배자들이 법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작된 일들의 끝에 전 인류의 희망이 놓여 있으니, 내가 지배자로서 구원을 가져왔노라.+
라는 아득히 떨어진 테라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공포와 유사한 어느 낯선 감정에 마음이 꺾인 것인지, 아니면 거기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라.+
놀란 커스토디안은 금빛 손가락 끝을 들어 문신이 새겨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었다. 손가락을 떼어 보니 희미한 물기가 머나먼 태양들의 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지금까진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나이다.”
+그렇지 않느니라. 네 어미가 죽은 날 밤, 너는 울음을 터트렸었지. 그저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라는 손끝에 남은 희미한 물기를 여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군. “품위 없는 모습을 보여드린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폐하.”
+내가 용서할 것도 없다. 나의 거대한 야망은 필멸자의 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니. 그것이 나의 만인대와 같이, 영겁에 한없이 가까이 살아가는 필멸자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또다른 반역적 생각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모든 것들이 위기에 처해 있군. 조금씩 조금씩,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어.
+프라이마크들 때문이지.+ 황제는 라의 생각에 동의를 표하며 말했다. +그들을 볼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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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워낙 유명해진 장면이지만, 처음 나왔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던 부분.
지금까지 팬들이 황제와 황제의 목적에 대해 품었던 거의 모든 의문들을 깔끔히 해소시켜준, 무척 잘 풀린 설정이라 생각함. 개인적으로는 말이지.
최근에 황제 폐하에 대한 비방과 중상모략이 판을 치던데, 전에도 다른 갤러가 깔끔하게 정리를 해줬었지만, 이번 글로 어느 정도 의문이 해소가 갈 수 있으면 좋겠다.
p.s. 이번 장은 이것저것 짤들이 좀 많이 들어갔다. 너무 정신 산만하다 싶으면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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