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本能. 생물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기질을 뜻하는 명사이다. 나의 본능은 무엇이었던가. 단순히 걷는 법이 아니었다. 단순히 손을 놀리는 법이 아니었다. 무기를 들고, 적을 죽이고, 그 수급을 취하는 살육 본능이야말로 나의 본능이었다. 죽은 어미의 품 안에서 기어나와, 어둠 속을 손톱도 자라나지 않은 손으로 더듬고, 손에 집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먹었다. 그것이 설사 강철이라 할지라도 내 식도를 찢어발길지라도 난 그것을 분별할 지식이 없기에 먹었고, 상처입었으며 더 강해졌다.

다른 이들은 날 괴물이라 불렀다. 혐오의 시선, 하지만 그 시선들은- 날 괴물로 취급하며 날 바라보던 시선은.. 내가 일천이 넘어가는 생명을 거두었을 때 공포의 시선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생명을 거두어 갈수록 내 마음은 고요해져만 갔다. 미천한 자들은 나의 공포를 보고 물러섰고, 보다 더 위대한 자들은 나의 피에 물든 손을 보곤 주제도 모른다며 무시했다. 그렇기에 난 어중간하였다. 마음의 동요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고, 그저 살육만을 바라보곤 나의 길에 종착지라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마주한 순간 알게 되었다. 드디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음을. 불타오르는 몸과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가진 신의 화신化身이. 그리고 동질감 또한 느꼈다. 태어나면서부터 피 밖에 몰랐던 자들끼리 시선을 마주했다. 내 마음에 파동이 일어났다. 피의 신과 함께라면- 이제는 산의 중턱에 머무른 채 정상만을 바라보던 시절은 끝나리라. 드디어 정상에 있는 자들과 격을 맞춰 그들과 싸울 수 있으리라. 그들의 피를 취할 수 있으리라. 

나의 마음을 화신은 읽어냈다. 그는 아주 만족스럽게 포효하며 나와의 융합과 교접을 시작했다. 떨어져 나간 신체 부위를 다시 한 번 이어내듯, 끊어진 신경을 연결하고 근육을 연결하고 가죽과 살갗을 연결했다. 하지만 그것에 이질감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러움과 만족감이 깃들었다. 드디어 잃어버린 것을 채운 듯한- 공복이 사라진 것이다.

...

마치 수많은 관중 앞의 무대에서 춤을 추듯 피와 불을 휘두른 자가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관중은 공포에 떠는 적이었고, 무대는 전장이었다. 그리고 관중의 박수 소리는 피와 불이 대신해주었다. 거기엔 기교가 있었다. 거기엔 평생을 다하며 쌓아낸 무예가 있었다. 허나 침착함은 보이지 않는다. 거기엔 분노와 복수만이 있을 뿐이었다. 

내 안에서 신께서 말씀하신다. 모조리 죽이고, 복수를 이행하라고. 저 어린 종족이 낳아버린 죄악을 너의 손으로 죽여버리라고. 

불이 타오른다. 피가 흐른다. 불이 춤춘다. 강대한 적들이 나에게 검을 들이밀고, 나의 피 앞에 굴복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래왔던 경치다. 설사 신조차도 베어낼 수 있는 이 힘이야말로 내가 원해왔던 것이다. 숙원이요 본능이다. 본능은 잊혀질 수 없으며, 바꿀 수 없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했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난 이 본능을 내려준 신이자, 나 자신에게 감사할 것이다. 

나는 케일라 멘샤 드라자. 케인의 화신이오. 두려운 검은 용을 사냥할 적합자이니. 방해하는 자는 죽일 것이다. 그 어떤 자도 방해할 수 없다. 그 어떤 자도. 설사 동족이라 할지라도, 신이라 할지라도 나의 피와 불의 춤을 막을 수 없으니. 내 살육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게 끝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