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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다 알게된건데 썬더볼트 / 라이트닝은 우주에서 비행은 가능한데 본격적인 전투는 어렵다고 함.
얘네들이 타고 나오는 것들은 개조했다고 하고 이해해주십쇼... 솔직히 연필같이 생긴 퓨리 전투기 타고 공중전 하면 너무 모양새가 빠지는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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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 예비대의 지휘함이자 워드 베어러의 기함, 글로리아나급 전함 [제국의 진리(Imperial Truth)]의 지휘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홀로그램으로 투영된 전장을 바라보던 지휘관들은 모두 침통한 심정에 빠졌다.
로가와 워드 베어러, 황제교는 이번 전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들은 전쟁에 필요한 온갖 물자들을 황제교의 영지에서 넘치도록 준비하였고, 분노의 심연을 시작으로 명성 높은 전함들을 모아 함대를 꾸렸다. 워드 베어러와 갈 보르박을 비롯한 로가의 아들들과 시스터 오브 배틀들은 망설임 없이 사지에서 불신자들과 맞서 싸웠다. 마지막으로 로가는 자신이 부족한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임페리얼 네이비의 명망 높은 제독들에게 지휘권을 전적으로 일임하고 자신은 예비대에서 그들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이룬 군세가 불신자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웠고, 결과는 참혹하였다.
“중앙 함대는 궤멸, 기함 분노의 심연은 중파. 살아남은 함선들은 워프 드라이브를 작동시켜 전투 공역에서 퇴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군세로 포위망을 펼친 워드 베어러 함대를 상대로 레이븐 가드 함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레이븐 가드의 뛰어난 에이스 파일럿들을 동원하여 중앙 함대의 전함들에게 뇌격을 가하고, 코락스를 위시한 정예병들이 쉴새없이 승선 전투를 하여 최대한 많은 전함을 무용지물로 만든 다음, 분산된 예비대, 좌익과 우익의 함대를 상대로 함대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워드 베어러는 그 공격을 받아치기 위하여 성전군 최고의 전사들, 파일럿들, 그리고 전함들을 중앙 함대에 배치했다. 이렇게 워드 베어러와 레이븐 가드, 두 군세가 오판 없이 하여야 할 행동을 적시에 하였으니 남은 것은 최전선에 선 자들이 얼마나 영웅적인 활약을 하느냐에 달렸다.
결과는 레이븐 가드의 영웅적인 승리, 워드 베어러의 안타까운 패배였다. 레이븐 가드의 에이스들은 대성전과 헤러시 시대에 있었던 전투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코락스는 그림자를 타고 전함을 가로지르며 로가의 아들들을 도륙했다.
“중앙 함대는 궤멸 되었습니다만 레이븐 가드 함대의 피해도 적지 않습니다. 저 불신자들의 손실을 크게 잡으면 전함 절반 가까이가 중파 내지는 침몰했고, 손실을 적게 잡더라도 3할은 침몰했으리라 추측됩니다.”
그러나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테이블에 앉은 한 늙은 제독이 그의 긴 백발을 쓸어 넘기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홀로그램을 노려보며 내뱉은 말은 다시 지휘실에 모인 지휘관들의 눈에 불을 붙였다.
레이븐 가드는 비록 첫 번째 전투에서 영웅적인 승리를 하였으나 애초에 그들의 규모가 크지 않았기에 압도적인 교환비를 보였음에도 그들이 입은 피해는 만만치 않았다. 반면 워드 베어러는 주력 전투함들이 중파하고 침몰 되었음에도 여전히 그 수는 레이븐 가드를 압도하고 있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자 지휘관들은 순교를 각오하였고 꺼져있던 전의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파워 아머를 입은 한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든 이목이 그녀에게 쏠렸다.
“대교황 성하, 제가 진언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다른 관록 있는 지휘관들과 달리 백발을 짧게 친 강인한 인상의 젊은 여인. 그녀는 하이 로드의 일원이자 시스터 오브 배틀의 수장, 대 수녀원장 모르벤 발이었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영리하면서 동시에 신중하기로 유명한 그녀는 로가가 제일 신임하는 지휘관이었다.
“대수녀원장, 그대의 조언을 귀담아 듣도록 하겠네.”
로가는 항상 그녀의 조언이 챕터 마스터들의 조언보다 더 신뢰할 수 있으며 형제들의 조언에 버금간다고 여겼다. 늘 그러하였듯이 그는 그녀의 조언을 경청할 준비를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퇴각해야 합니다.”
지휘실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승리를 위하여 순교를 각오한 자들의 불타는 눈빛과 뜨거운 용기가 그녀의 말 한마디에 사그라들었다.
“예비대, 좌익 함대 그리고 우익 함대가 힘을 합쳐 레이븐 가드의 함대와 싸운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우리는 최소한 8할의 전함을 잃을 것입니다.”
그녀의 말은 당연히 반발을 샀다. 테이블에 앉은 애꾸눈 제독이 혈기를 추스르며 그녀에게 물었다.
“하이 로드시여, 저 불신자들에게서 도망치겠다는 것입니까? 승리가 눈앞에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돌아봅시다. 우리 성전군이 카디아로 성전을 선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질루스 전선의 승리를 위하여 원군을 보내기 위함입니다. 현재의 정국에서 다음에 있을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레이븐 가드의 전멸을 대가로 순교하는 것은 전혀 영광스러운 순교가 아닙니다.”
그녀의 말은 타당하였다. 여기서 워드 베어러가 출혈을 각오하고 레이븐 가드에게 승리한다면 그 다음 비질루스 전역과 니힐루스 구원 계획은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다.
애꾸눈 제독은 그녀의 말에 납득하고 분을 삭히며 입을 굳게 닫았으나, 처음 침묵을 깬 늙은 제독은 모르벤 발에게 다시 질문하였다.
“대수녀원장 성하, 주군의 발언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승리를 놓친다면 다음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우리가 이 전장에서 도망친다면 다음 전쟁에서 수 만이 넘는 아스타르테스들이 순교할 것입니다.”
함대전에서 패배를 인정한다면 그 다음은 레이븐 가드와 육상전을 치러야 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스페이스 마린들이 죽을지는 감히 예측할 수가 없었다. 지휘관들은 레이븐 가드 하나를 쓰러트리기 위하여 스페이스 마린 셋이 쓰러진다면 좋은 결과로 여겼고 실전에서는 레이븐 가드 하나를 쓰러트리기 위하여 평균적으로 스페이스 마린 다섯이 죽었다.
“정의로운 열정에 불타는 천사들의 수효는 충분합니다. 첫 항해를 시작하는데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리는 전함과 달리 말입니다.”
스페이스 마린과 전함, 둘을 비교한다면 당장 제국에 필요한 전력은 전함이었다. 워드 베어러와 후계 챕터들에서 동원할 수 있는 스페이스 마린은 그 숫자를 아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았으며 그 충원 속도도 비교적 빠른 편이었으나 대균열로 인하여 니힐루스 지역의 조선소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잃어버린 전함은 충원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대수녀원장의 말에 동의하네, 빛나지 않는 승리도 존재하며, 영광스럽지 않은 순교도 존재하는 법이지.”
그 말과 동시에 로가는 얼마나 많은 자신의 아들들이 죽을지 생각하였다. 5만? 10만? 그들은 천사이기 이전에 로가의 아들들이었다. 그는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서 눈을 돌리지는 않았으나, 이러한 결정을 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로가여, 이것은 네 나약함에서 비롯된 죄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아들들에게 속죄해라. 그는 속으로 슬픔을 삼키며 옳은 선택을 하였다.
“전 함대, 워프 드라이브를 가동하여 퇴각하라. 그리고, 임페리얼 헤럴드를 출격시켜라, 그들이라면 레이븐 가드의 발톱을 잠시나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로가의 명이 끝나고 지휘실에서 지령이 전 함대에 하달되었다. 모든 함선들은 등을 돌려 레이븐 가드의 함선과 뇌격기들로부터 도망치고 동시에 워프 드라이브를 가동하여 전장에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이븐 가드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8대의 전투기가 제국의 진리의 격납고에서 출격하였다. 선두에 선 기체는 워드 베어러의 색인 붉은색과 갈 보르박의 색인 회색이 섞여있었으며 노즈에는 [임페리얼 헤럴드]라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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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치열한 전투가 끝나 가루다 교육 비행대의 배틀 바지, 석양의 까마귀의 격납고로 전투기들이 복귀하였다. 그들은 코락스와 함께 패배를 앞둔 레이븐 가드를 승리로 이끌었고 무전으로 형제들의 찬사를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모든 파일럿이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그들 중 누가 최고였냐고 물으면 단연코 탱고 편대의 썬더버드와 가루다라 할 수 있었다. 둘은 합쳐서 제국군의 항공기를 백기 넘게 격추했고 동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늘을 가리는 광선과 빗발치는 포탄 속으로 뛰어들어 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결과, 가루다 비행대는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예상보다 확연히 적은 피해로 전투를 끝마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부대장인 가루다는 시끄러운 옛 지인들의 찬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그는 스톰이글을 격납고에 착륙시킨 뒤 내리지 않고 상념에 빠져있었다.
썬더버드, 그 녀석이 다 했으니까 그런 낯간지러운 소리 좀 그만해라. 가루다는 지금 자신의 후손, 썬더버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에 썬더버드와 함께 사지로 뛰어들었고 그녀 덕분에 살아남았다. 만약 그녀가 아니라 다른 파일럿과 함께 편대를 짰다면 순식간에 격추당했으리라.
그래서, 이번 전투는 어땠는가? 가루다는 자신에게 질문하며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아직도 손끝에서 느껴지는 예리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고, 전투의 여운이 남아있는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번 전투는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느 전투보다 위험하고, 재미있었다.
왜 재미있었나? 이번 전쟁에는 대의 따위는 없었고 함께 싸운 전우는 빌어먹을 새대가리, 코락스였다. 가루다는 이번 전투를 앞두고 자신이 썬더버드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 망할 새대가리의 명령으로 네가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이렇게 말할 때 그는 이번 전투가 끔찍이도 재미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썬더버드와 함께한 이번 전투는 못 견딜 정도로 재미있었다.
썬더버드, 자신의 피가 흐르지만 자신이 절대 갈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파일럿. 그녀는 그 어떤 적이나 스승보다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고,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여 완벽히 합이 맞는 편대원이었다.
이렇게 혐오스러운 코락스를 위하여 싸우는 전투마저 그녀가 있으면 재미있었으니 가루다는 다음에도 썬더버드랑 같이 날고 싶었고, 그녀가 죽는 모습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이는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만 년 전 그가 아스타르테스가 아니라 평범한 소년이었을 때 자신을 안아준 아내. 그녀에게서 느낀 감정과 비슷했다.
아니, 아니잖아, 너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생물이 아니야. 정확히 대답해. 너는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가루다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대답을 재촉했다. 그가 고통을 느끼며 그 질문에 대답하려는 찰나, 헬멧의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그의 상념을 멈췄다.
[할아버지, 어땠어?]
들뜬 목소리와 거기에 섞인 기대감, 썬더버드는 가루다가 자신을 칭찬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애처럼 구는 거냐, 그는 속으로 투덜거렸으나 그의 입가엔 웃음이 걸려있었다.
“정말 멋진 활약이었어. 네가 기분 나쁘게 얘기하지만 않았어도 참 좋았을 것 같다.”
[미안, 조종간 잡으면 열이 올라와.]
“열이 올라온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도 너 하나뿐이야.”
[정말 미안해.]
“알았으면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노력할게.]
“노력한다는건 없어, 다음부터 그렇게 해.”
[...]
무전은 끊겼다. 썬더버드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 정말로 머리에 열이 올라와 있는 쪽은 썬더버드가 아니라 가루다였다.
이제 그가 조금 전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대답할 차례였다. 자, 내가 썬더버드에 품은 감정은?
가루다. 너는 썬더버드를 네 무기로 생각하고 있어. 그걸 속이려고 하지 마.
썬더버드와 같이 날고 싶고, 그녀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감정은 그저 썬더버드가 내게 유효한 무기이기에 본능적으로 품는 감정인가? 아니면 진심으로 그 녀석을 사랑해서 품은 감정인가? 그 질문에 가루다는 전자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코락스가 압제자들에게 팔아넘긴 딜리버런스에서 죽은 자신의 아내를 시작으로 소중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가루다는 진심으로 슬퍼할 수가 없었다. 이는 아스타르테스의 정신이 인간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아스타르테스는 전투에서 쾌감을 느끼고, 전투가 없을 때는 명예나 말초적인 쾌락을 먹고 산다. 초인이라 불리는 이 존재들은 별 것 아니라 그저 정신을 거세당하고 인간들을 대신하여 전투에 나서는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을 때마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며 자신이 품는 감정은 그저 다음 전투를 위한 거짓된 감정임을 깨달았고 그는 그것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명예를 먹고 살던 시절에는 그는 이러한 고통을 명예로 덮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명예를 버린 다음은 약물과 술과 같은 말초적인 쾌락으로 덮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은 존재와 마주한 지금, 그는 썬더버드와 함께 날고 나서 매번 이 고통을 느꼈다.
가루다. 너는 호전적인 전투광이 아니고, 순수한 감정을 가진 인간도 아냐. 그저 추한 아스타르테스일 뿐이다. 여기서 눈을 돌리지 마.
...이쯤 해두자. 가루다는 더 이상 자신의 추한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것 대신 다른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침 똑똑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봉황이 스톰이글의 캐노피를 두들기고 있었다. 가루다가 캐노피를 열자 그의 입가에서 포도주 냄새가 확 풍겨왔다.
새끼, 전투 끝나갈 때 맘 놓고 술 퍼마신 모양이구만. 평소라면 가루다는 봉황의 머리를 쥐어박고 잔소리를 하고, 봉황은 시덥잖은 변명을 하며 낄낄 웃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테이블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앉은 뒤 봉황에게 힘없이 말했다.
“물.”
“끝?”
“끝.”
가루다는 헬멧을 벗고 테이블에 탁탁 두드렸다. 헬멧에 고인 땀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더 필요 없어? 뭐 할 말 없나? 부대원 다 모아놓고 샴페인 터트릴만한 활약이었어.”
가루다는 손사래를 쳤다.
“물.”
“알았어.”
봉황은 냉장고를 열고 유리컵에 물을 가득 따라 가루다에게 건넸다. 가루다는 턱 아래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부족한 수분이 돌아오고 뜨거운 머리가 식으니 조금 감정이 가라앉았다.
물을 마신 가루다가 숨을 고르고 잔뜩 굳었던 그의 인상이 조금 풀어지자 봉황이 그의 헬멧을 가리켰다.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봉황은 그의 귀를 가리켰다.
“부대장. 물 다 마셨으면 헬멧 써, 다른 부대에서 연락 왔어.”
“땀 때문에 습한데.”
가루다는 투덜거리면서 머리에 헬멧을 썼다. 확인해보니 무전이 온 곳은 그와 함께 헤러시 시대에서 함께 싸웠던 베테랑들이 아니라 젊은 레이븐 가드들로 구성된 비행대인 모양이었다. 그가 무전 채널을 돌리자 확실히 옛 동지들에 비해서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로렐라이 편대, 가루다, 명성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활약이었습니다.]
“로렐라이는 인어 아닌가? 그건 수색대 애들이 쓰는 콜사인인데.”
[11차 블랙 크루세이드에서 그 전통이 끊겼습니다. 가루다, 당신은 더 이상 레이븐 가드가 아니라 울트라마린에 계셔서 모르셨나 보군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가루다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말이었다. 가루다는 비록 레이븐 가드를 떠났지만 헤러시 내내 레이븐 가드를 위하여 온 힘을 다해 싸웠기에, 그가 군단을 떠나 울트라마린으로 갈 때도 형제들은 그의 공헌을 인정하고 군말 없이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헤러시 시절 레이븐 가드에 해주고 간 게 얼마인데, 조금 서운한 대답이네 그려.”
[떠나셨으면 끝난 것 아닙니까.]
맞는 말은 정말 잘하는군, 그는 두 손을 들었다.
“그래, 떠나면 끝난 거지. 잡담은 여기서 끝내고. 그쪽도 전공을 올리고 싶은 건가?”
[그렇습니다. 굳이 베테랑들이 직접 날개를 펴고 발톱을 꺼낼 필요 없이 저희들의 발톱도 레이븐 가드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날카롭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예의는 없지만 그래도 패기는 있는 녀석들이군, 자신감이 넘치는 대답에 가루다는 감탄했다. 가루다는 이들의 기세를 꺾고 싶지 않아서 그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대화를 끝내기로 하였다.
“확인 완료. 열심히 해보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로렐라이 편대와의 통신이 끝나자 가루다는 무전을 끄고 봉황에게 투덜거렸다.
“어린 애들이 버릇이 없네.”
“네가 할 말이냐, 네가 신참일 때 테라 출신 선임들한테 뭔 말을 했는지 기억해봐.”
봉황은 가루다가 만 년 전 어떤 신참이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녀석이었고, 가루다도 아주 양심이 없지는 않은지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하긴, 나도 저러고 살았지. 봉황, 우리가 안 가도 된다고 해서 출격 안 하기로 했다. 어린 애들이 전공 욕심이 나나 봐.”
“부대장, 코락스한테 보수는 후불로도 받는다고 계약하지 그랬나? 전부 선불로 받아버리니까 여기서 보수 더 받을 수가 없잖아.”
“이번 전투에서 우리가 절반쯤 죽을 거 같았거든, 그래서 선불로 다 받기로 했지.”
봉황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이번 전투에서 이렇게 많은 동료들이 살아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봉황은 가루다를 따라 테이블에 앉고 그에게 물을 한 컵 더 따라주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을 마셨다.
봉황이 이제 긍정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며 가루다의 기를 살려주려던 차, 맥을 정확히 끊는 순간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헐레벌떡 뛰어오는 썬더버드를 보며 봉황은 고개를 숙였고, 가루다는 그녀에게 눈을 부라렸다.
“가루다, 공중전 이제 끝난 거야?”
가루다는 인상을 찌푸렸다.
“더 남아있긴 한데 이제 다 끝났고, 다른 녀석들이 우리 대신 가기로 했어. 가서 쉬어.”
썬더버드는 가루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가 가루다에게 원하는 것을 조를 때 항상 하는 행동이었다.
“가루다, 썬더버드는 아직 더 싸울 수 있어.”
아, 이거 또 출격하는 패턴이군.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진 봉황은 썬더버드의 말을 듣자마자 냉장고로 걸어갔다. 파워 아머의 수통에 비어버린 포도주를 다시 채워 넣기 위해서였다. 썬더버드와 가루다는 입씨름을 시작했으나 봉황이 포도주병의 코르크 마개를 따자 결국 가루다는 그의 예상대로 항복했다.
“봉황, 안되겠다. 너도 출격해줘, 이 썅년 때문에 나랑 네가 고생 좀 해야할 것 같다.”
“괜찮아, 대신 냉장고에 있는 네 마크라그산 적포도주 내가 마셔도 괜찮지?”
“아, 출혈이 큰데 어쩔 수 없지. 끝나고 네가 마셔.”
“고맙다.”
봉황은 수통에 포도주를 채워 넣었고, 썬더버드는 재빠르게 자신의 전투기로 뛰어가 정비사들에게 다시 비행할 준비를 해달라고 소리쳤다. 가루다는 헬멧을 도로 쓰고 로렐라이 편대와 무전을 시작했다.
“생각이 바뀌었다. 이쪽에서 호위기로 탱고 편대가 출격해서 너희를 엄호하도록 하겠다.”
[그쪽도 전공이 욕심나십니까?]
“그쪽 전공으로 쳐라, 그냥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싸우나 좀 보고 싶거든.”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지만 듣는 쪽은 진심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한층 더 부드러워진 목소리가 가루다에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엄호를 부탁드립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군.”
그 무전을 끝으로 가루다도 다시 스톰이글의 콕핏에 앉았다. 봉황이 바이오맨시로 썬더버드와 가루다의 신체를 강화하자 썬더버드를 선두로 세 비행기가 속도를 높여 격납고에서 출격했고, 그들은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합류할 수 있었다.
새의 날개를 단 인어를 노즈에 그린 썬더호크 건쉽들이 멀리서 보이자 가루다는 그들에게 살짝 날개를 흔들어 인사했다. 썬더버드는 로렐라이 편대를 흘끗 보고, 집중할만한 가치가 없는 초짜 파일럿들이라는 평가를 내렸는지 노래의 볼륨을 높였다.
“여기는 탱고 2, 리더가 음악을 듣는 중이라 윙맨이 대신 통신한다. 그쪽이 로렐라이 편대인가?”
[여기는 로렐라이 1, 맞습니다. 직접 오실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와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만해, 나도 힘든 일 하러 온 거 아니야. 그쪽이 싸우는 거 구경하러 온 거지, 우리 리더는 적기들이랑 앞뒤 안 가리고 싸우긴 하겠지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무전이 끝나자 가루다는 레이더를 확인했다. 곧 있으면 로가가 타고 있는 워드 베어러의 기함, 제국의 진실에 뇌격을 가할 수 있는 거리였다.
어짜피 워드 베어러는 도주를 선택하였고, 적 전함들은 워프 드라이브를 작동시킨 상황이니 로렐라이 편대는 적들에게 어뢰를 몇 발 날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 어뢰 중 하나라도 바이탈 파트에 명중한다면 그들이 로가를 죽여 이 전쟁을 빠르게 끝낼 수도 있었다. 거리가 충분히 좁혀지자 로렐라이 편대는 속도를 높이고 급강하 뇌격을 준비했으나,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은 순간 봉황이 그들을 제지했다.
[여기는 AWACS 봉황, 로렐라이 편대에서 3시 방향에 적기 출현! 미확인 기체 1기와 썬더호크 7기!]
[여기는 로렐라이 1, 미확인 기체라고 하셨습니까?]
‘
[처음 보는 기체다. 썬더호크를 개수한 것 같긴 한데 정확히 어떤 기체인지는 모르겠다.]
“여기는 탱고 2, 빨리 분석해줘, 신형기 상대로는 조심해야지.”
[알겠다.]
“리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나도 뒤에서 대기, 윙맨은 입 닥치고 바퀴벌레처럼 스텔스 걸고 숨어있어.]
“...확인 완료,”
가루다는 썬더버드의 지시를 따라 뒤로 빠져 그녀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숨었다. 가루다가 풀어놓은 그림자가 스톰이글을 덮자 그는 레이더상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봉황의 말대로 가루다의 레이더에 8기의 적기가 나타났다. 방향은 정확히 3시 방향, 봉황이 말했던 미확인 기체가 썬더호크들을 뒤에 세워두고 선두에 서는 V자 대형이었다.
미확인 기체가 썬더호크를 기반으로 개수한 기체임은 확실했다. 차이점을 꼽자면 날개의 폭은 더 넓었고, 동체의 포탑에 달린 썬더호크 캐논이 사라진 대신 알 수 없는 장치들이 증설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차 병력을 위한 램프가 없어지고 썬더호크 특유의 네모난 기수가 아닌 날카로운 팔각뿔의 기수가 붙어있었다. 아마 병력 수송칸을 제거하고 기수에 레이더를 추가로 탑재한 모양이었다.
그 미확인 기체는 멍청하게도 로렐라이 편대에게 냅다 미사일을 쏘았다. 3시 방향에서 날아오는 미사일, 기체의 진행 방향과 수직을 이루고 날아오는 저런 미사일은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 있다. 로렐라이 편대는 멍청하게 미사일을 쏜 적기를 비웃으며 수직 방향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 달리 미사일은 급격히 방향을 꺾어가며 수직기동을 하는 전투기들에 직격했고 로렐라이 편대는 탈출 버튼을 누를 새도 없이 명을 달리했다.
[로렐라이 편대, 전기 격추됨... 가루다, 역시 그거 맞지?]
봉황의 무전이 들려왔다. 가루다는 저 미사일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락온 하지 않고 직접 궤도를 짜야 저렇게 꺾여. 비례항법 미사일은 반응이 한 발 늦어서 저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꺾지 못해.”
저것은 가루다의 특기 중 하나인 락온 없이 쏘는 미사일이었다. 제국의 미사일보다 품질이 월등히 좋은 타우의 미사일도 저렇게 꺾이진 않는다. 오직 쏘기 전 파일럿이 직접 궤도를 설정한 미사일만이 저렇게 완벽하게 궤도를 꺾어 적기에 명중했다.
탱고 편대는 강력한 에이스를 만났고, 이는 썬더버드의 투쟁심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기수를 적기들이 있는 곳으로 돌리고 속도를 높이며, 가루다에게 소리쳤다.
[지금 미사일 뿌려!]
“리더, 싸울 생각인가? 적기 분석이 끝나지 않았-”
[시간 없어! 쏴!]
적기들도 싸움을 회피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도 기수를 썬더버드에게 돌리고 속도를 높여 빠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8기의 적기가 다양한 고도에서 정면으로 썬더버드와 맞붙는 상황, 뒤에 숨어있던 가루다가 적기들을 쓸어버리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가루다도 워드 베어러의 에이스가 했던 공격을 똑같이 돌려주었다. 그림자가 걷히며 스톰이글이 미사일을 흩뿌렸고, 가루다가 직접 짠 길을 따라 미사일들은 사냥감을 쫓는 물고기처럼 날카롭게 적기들의 사각으로 움직였다.
[AWACS에서 알린다. 적기 3기 격추!]
“...꽤 위험하겠는데.”
평범한 스페이스 마린 파일럿들이었다면 여기서 적어도 6기는 격추당했을 텐데, 저 적기들의 회피기동은 조금 전 가루다와 싸웠던 스페이스 마린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단순한 수직기동으로 끝나지 않고 정확한 순간에 엔진과 날개를 살짝살짝 조절해서 좌우 움직임을 더하고, 미사일에 혼란을 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회피하는 그 실력은 타우 파일럿들 사이에서도 흔치 않았다.
가루다는 다시 그림자를 덮어쓰고 도망치며, 미사일 런처에 차탄이 장전될 때까지 생각을 정리했다. 적기들이 지금 보여준 회피기동은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텔레파시 사이커들을 데려와도 할 수 없는 기동이다. 생각을 읽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이킥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다음 수를 예측하며,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없다면 할 수 없는 기동. 이건 순수한 공중전 실력이 바탕이 된 기동이다.
그렇다면 워드 베어러 측에서는 이러한 실력을 가진 파일럿들을 처음부터 투입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가루다는 그 이유가 저 미확인 적기에 있으리라 확신하며 다음 미사일을 쏠 위치로 움직였다.
썬더버드는 워드 베어러의 썬더호크 4기를 상대하고 있었다. 가루다는 선회전을 하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일격이탈로 전술을 바꾸는 적기들의 기동을 보고, 아무리 썬더버드라고 하지만 저 파일럿들을 격추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리라 직감했다.
지금 자신이 격추해야 할 적은 미확인 적기, 그것은 썬더버드보다 조금 높은 고도에서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미확인 적기가 썬더버드를 락온했다는 신호가 레이더상에 뜨자, 가루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모든 미사일을 쏘았다.
높은 고도, 낮은 고도, 전후좌우에서 쇄도하는 다양한 미사일은 오직 하나의 적기를 격추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 순간, 미확인 적기의 동체 상판이 열리며 알 수 없는 장치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레이더가 크게 노이즈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강력한 전자파가 관측되었다! 플라즈마야!]
“뭐라고?!”
가루다의 회심의 일격은 빗나갔다. 미확인 적기가 사방으로 푸른 빛 광선을 쏘아 보내자 광선에 닿은 미사일들은 과열로 녹아내리거나, 전자파에 회로가 타버리며 공중에서 폭발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플라즈마 광선들이 폭발하기 시작하자, 썬더버드와 가루다는 플라즈마 폭발과 적기들이 쏘아대는 미사일을 피하여 급기동을 시작했다.
[가루다! 저 녀석이 타겟을 너로 바꿨다!]
[윙맨! 조금만 버텨! 조금만, 조금만 더!]
미확인 적기는 한 끗 차이로 유려하게 모든 공격을 피하면서 하나씩 썬더호크들을 레일건으로 떨어트리는 썬더버드와 달리, 플라즈마 광선과 미사일에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피하려는 가루다가 더 약한 상대라고 판단했다. 나머지 썬더호크들이 죽어가며 썬더버드를 붙드는 사이 미확인 적기는 속도를 높여서 가루다에 따라붙었다. 이제 두 에이스들의 선회전이 시작되었다.
“들리나? 워드 베어러의 에이스, 너는 대체 누구지? 로가의 아들 중 너처럼 강한 녀석은 만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가루다는 숨 막히는 압박감을 이겨낼 요량으로 따라붙은 적기에게 통신했다. 목소리는 태연했고 침착함이 느껴졌으나 사실 그는 지금 수백 년 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각,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불신자여, 우리는 군단이다. 워드 베어러의 선발대이자 제일 날카로운 발톱이 우리다.]
“나는 네 이름을 물었다. 이 개자식아.”
적기는 일단 가루다에게 가까이 따라붙은 다음 정확히 고도와 속도를 관리하며 꼬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엔진의 출력을 조절하며 헛다리를 짚듯 급격히 진로를 바꾸고, 가루다가 파둔 함정에 걸리지 않고 좋은 기회를 과감히 포기했다.
가루다는 미사일 런처에 차탄이 장전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소에는 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저 적기와 선회전을 하는 지금, 그 시간은 영겁처럼 느껴졌다.
[가루다! 락온 당했어!]
“하...”
마침내 적 에이스에게 틈을 내주자 가루다는 탄식했다. 경보음과 함께 미사일이 하나 둘씩 늘어나며 그를 쫓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권투에서 주먹을 짧게 끊어치듯, 미사일 축차 사격으로 가루다의 속도를 계속해서 깎아 먹는 공격이었다.
가루다는 일단 플레어를 터트려 미사일 세 개를 뿌리치고 느려진 속도를 다시 올린 뒤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적 에이스는 훌륭하다. 기동은 매섭고, 멍청하게 미사일 하나를 쏘고 바로 차탄을 쏘지 않고 최대한 자신에게 압박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차탄을 쏜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다. 만약 가루다였다면 이 상황에서는 락온 없이 미사일을 쏴서 적기를 잡겠지만, 저 에이스는 본인의 실력을 확신하지 못하고 락온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에이스가 존재할 수 있나? 이 정도 실력인데 자신의 실력에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가루다는 도저히 저 에이스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적기 분석이 끝났다. 적기는 훈련용 가상적기, 코드네임 ‘ADP(Advanced Dreadnought Pattern) 임페리얼 헤럴드’, 유인기가 아냐, 저건 스페이스 마린 수십 명을 갈아 넣은 드레드노트다!]
봉황의 분석이 끝났다. 일렁이는 영혼의 흐름을 보고, 봉황은 적 에이스가 그저 뛰어난 사이커이리라 생각하였으나 점차 영혼의 흐름이 눈에 익자 그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적 에이스, ADP는 스페이스 수십 명의 뇌를 연산소자로 써서 레이븐 가드의 베테랑들이 워드 베어러의 초짜 파일럿들을 도륙하며 보여준 기예를 연구한 끝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ADP가 처음부터 나서지 못한 이유였다.
“말도 안돼, 드레드노트라고?!”
[확실하다. 네 기술은 전부 저 녀석이 베꼈어! 날개 한 짝 부러질 각오하고 빨리 튀어!]
가루다가 지금까지 공중전을 하며 보여주었던 모든 기예는 ADP가 분석을 끝낸 상태였다. 가루다가 기동을 하면 ADP의 영혼들은 일제히 다음 수를 계산해냈고 그 중에서 최적의 답을 골라냈다. 그리고 그들이 답을 찾아내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잠깐, 내 기술이 이제 전부 넘어갔다면, 그렇다면 다음 미사일은?
ADP가 끊어치듯 쏘는 미사일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고, 동시에 적기가 자신을 락온 했다는 알람도 들려오지 않았다. 가루다는 그 순간,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재빨리 상승 기동을 했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고속 미사일이 가루다가 있던 자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봉황, 빼지는 못할 것 같다.”
이런 상대를 뿌리치고 도망칠 방법은 없다. 승부를 내야하는 상대다.
- Missile launcher loaded!
마침내 차탄이 미사일 런처에 장전되었다는 알람이 들려왔으니 이젠 가루다가 공격할 차례였다. 가루다는 ADP와 정반대로 모든 미사일을 한 번에 흩뿌리는 방식으로 공격했다. ADP는 다시 동체의 플라즈마 배터리를 전개하고, 사방에 플라즈마 광선을 쏘는 것으로 대응하였으나 가루다는 그것까지 고려했다.
가루다가 궤도를 잘못 짜서 헛돌았던 것으로 보이던 미사일들이 방향을 꺾어 ADP를 향했다. 미사일들이 플라즈마 광선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며 날아들자 ADP는 회피 기동에 돌입했다.
그리고 ADP는 모든 미사일을 가볍게 따돌렸다. 연료를 소모하고 방향을 꺾어 속도가 느려졌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미사일 따위는 점점 강해지는 ADP에게 멈춰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허나 모든 미사일을 피하고 나서 ADP는 자신이 가루다의 함정에 걸렸음을 깨달았다.
“이제 끝이다.”
ADP가 추격해오는 미사일을 뿌리치는 사이, 가루다도 자신을 쫓아오던 미사일을 전부 뿌리치는데 성공했다. 먼저 미사일을 쐈던 ADP의 미사일이 수명을 드디어 다하자, 가루다는 스톰이글의 기수에 달린 레일건을 꺼냈다.
레일건의 조준경에는 정확히 회피 기동을 막 끝마쳐 느려진 ADP가 들어왔고, 가루다는 조종간의 버튼을 눌렀다. 레일건의 포신에서 하늘빛 섬광이 곧게 뿜어져 나갔다.
[윙맨! 이제 이쪽은 다 끝났...]
아, 썬더버드.
ADP는 전조 없이 코브라처럼 기수를 치켜들고 급상승하는 기동으로 가루다의 레일건을 피했다. 그것은 가루다의 기술이 아닌, 썬더버드의 기술이었다.
ADP는 썬더버드의 기술까지 익히고 있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확신이었고, 가루다와 싸우며 그들은 자신이 불신자 에이스에게 패배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패자는 가루다였다.
여기서 이어질 ADP의 공격은 절대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썬더버드와 함께 싸워온 가루다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탈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텔레포타리움이 성공적으로 작동하여 레이븐 가드의 함선으로 워프할 확률은 고작해야 50%, 자신의 생사가 고작 절반의 확률로 결정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싫은 가루다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현실의 장벽을 찢는 비명소리같은 시동음이 들리며 흰 빛이 콕핏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생사가 결정될 때까지 남은 찰나의 시간, 가루다의 뇌리에는 수많은 기억이 스쳤지만 워프가 완전히 그를 집어삼킬 때 그가 한 생각은 이것이었다.
썬더버드, 한 번 더 너랑 날고 싶다. 진심이야.
다른 잡념은 없었다. 명예도, 쾌락도, 한스러운 과거도, 마지막으로 추악한 자신의 밑바닥도 전부 잊고 가루다는 오직 그녀만을 생각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고 나서야 가루다는 썬더버드를 거짓 없이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 이제 후회 없이 동전을 던져보자. 그가 만족감에 미소짓고 눈을 뜨자 초록빛 라스캐논의 섬광과 텔레포타리움의 흰 빛이 동시에 그의 스톰이글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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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고 하고싶음. 사실 재미있게 읽으시는 분들이 몇분이나 계시는지는 모르지만 개추가 계속 박히는걸 보면 어찌저찌 재밌게 읽으신 분들이 계신거 같은데. 그 분들에게 정말 죄송함.
사실 관심받고싶은 것도 아니고, 그냥 쓰는게 재밌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좀 욕심도 생기고 막 다른 아이디어도 생각나서 계속 내용을 고치게 되었음.그러다보니 또 글 쓰는게 한번 탁 끊기면 거기서 또 기세가 이어지지 않기도 했고...
어쨌든 마음을 다잡고 거의 다 끝까지 쓰는데 성공했음.
원랜 3편에서 끊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쓰다보니 내용이 길어져서 다음 편에서 끊어야 할 것 같음.
혹시 뭐 궁금하신 내용이나, 좋았거나 아쉬운 내용 있으심 댓 꼭 달아주셈. 뭐... 사실 나도 글 잘 쓰는 편은 아니라서, 다음에 글 쓰면 그때는 단점 좀 고치고 싶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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