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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집 1

ㅇㅇ(223.33) 2017.08.10 06:26:18
조회 2727 추천 79 댓글 18
														
예고 없이 쏟아진 빗줄기가 강했다.
앙겔라는 병원 입구에 서서 차를 세워둔 유료 주차장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원내 주차장이 좁아 평소 두 블록 떨어진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다니면서 우산을 안 챙긴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뛰어가자니 비에 많이 젖을 것 같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자니 꽤 오래 내릴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며 우산을 가진 아는 사람을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어쩐다, 하고 고민하며 괜히 휴대폰을 들여다보는데 머리 위로 그늘이 졌다.

“박사님.”
“아, 하나 양. 여긴 어떻게……?”

귀여운 토끼가 그려진 회색 후드 티에 탈색된 청바지를 입은 아이가 서서 앙겔라의 머리 위로 우산을 씌우고 있었다.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이 아니던가? 의아한 마음으로 묻자 아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5시경부터 갑자기 비가 내리기에요. 박사님 오늘 우산 안 챙겨 가셨잖아요.”
“학교 수업은 어쩌고요?”
“쨌죠.”

너무나도 당연하게 대꾸하는 말에 할 말을 잃은 건 앙겔라였다. 보호자로서 야단을 쳐야하나, 아니면 동거인으로서 고마워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아이가 앙겔라의 손을 잡는다.

“차 유료주차장에 있죠? 일단 가요.”
“…그래요.”

커다란 검은 우산 아래로 발을 들여놓자 후드득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가 제법 매섭게 들려왔다. 아이가 구두를 신은 앙겔라를 배려해 보폭을 작게 해서 걷는 것이 눈에 보였다. 막 씻고 온 건지 싱그러운 비누향이 풍겼다.

“오늘 어땠어요, 박사님?”
“별 일 없었어요. 오후에 교통사고 응급환자가 실려 왔는데 수술 경과가 좋아서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하나 양은요?”
“조별과제가 두개 나왔지만 좋은 하루예요.”

아이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그러하듯 조별과제를 싫어했다. 학기 초가 시작하자마자 나온 조별과제에서 이미 된통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별과제가 두 개나 나왔는데 좋은 하루라니. 앙겔라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조별과제가 두 개나 있는데 좋은 하루예요?”
“박사님이랑 데이트 할 수 있잖아요.”
“…이게 데이트예요?”
“그럼요, 우산 아래 단 둘이 걷는 거잖아요. 데이트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말에 괜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다. 아이는 밝은 얼굴로 정말 기쁜 듯이 웃고 있었다. 앙겔라는 그런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이야 솔직하게 감정도 표현하고 밝게 잘 웃는 아이지만, 처음에는 전혀 아니었다.
앙겔라는 아이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작년 1월의 일이었다.

***

“학생? 괜찮아요?”

늦은 밤까지 계속된 수술을 끝내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앙겔라는 지하주차장 계단 구석에 주저앉아 무릎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아이를 보고 말을 걸었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으나 가늘게 새어나오는 신음 때문에 걸음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앙겔라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이의 어깨를 짚었다.

“학생?”
“냅둬요.”

날선 목소리와 함께 탓, 하고 손이 뿌리쳐졌다. 기분이 상할 만도 하련만, 앙겔라는 그 짧은 사이에 얼핏 보였던 아이의 얼굴이 더 신경 쓰였다. 얼굴에 핏자국이 보였던 것 같았다.

“학생, 잠깐 저 좀 봐요.”
“내버려두라고요.”
“다쳤잖아요. 내버려두면 흉져요.”
“지든 말든 뭔 상관인데요.”

말하는 태도가 꼭 상처 입은 고양이 같이 앙칼졌다. 앙겔라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아이를 살폈다. 자세히 보니 상의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경찰을 불러야 할 일일까? 앙겔라는 고민했다.

“혹시 경찰이 필요한 일이에요?”
“하, 경찰이 뭘 해줄 수 있다고. 됐고, 가요.”

아이는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하고서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앙겔라는 아이의 앞에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이대로 지나치기에는 아이가 입은 옷이 너무 얇은 것 같았다. 거기에 상처도 너무 신경 쓰였다. 직업병인 것 같았다.

“저기, 학생…….”
“아, 진짜.”

아이가 신경질적으로 내뱉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이는 앙겔라보다 반 뼘쯤 작은 키였기에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순간 예쁘장한 얼굴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나 곧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린 듯한 흔적이 있었다. 앙겔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이는 앙겔라를 쳐다 보지도 않고 주차장으로 성큼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멈췄다. 앙겔라가 반사적으로 아이의 팔을 잡은 탓이었다.

“아윽!”
“아, 미안해요. 팔도 다쳤어요?”

그리 세게 잡은 것도 아닌데 아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통스러워했다. 앙겔라는 얼른 팔을 떼고서 사과했다. 얼핏 만졌던 팔이 몹시도 뜨거웠다.

“아씨, 내버려두라고요!”
“어떻게 그래요. 다친 것 같은데 상처 좀 봐요, 네?”
“뭔데 끼어들어요? 그냥 가라고!”

아이가 울화를 터뜨리듯 고함쳤다. 가라고, 하는 목소리가 지하주차장에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앙겔라는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려 했지만 고통을 참는 티가 역력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처량한 모습이 눈에 들어와 박혔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아프잖아요. 치료해줄게요.”
“…….”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강남에 오버워치 병원 알죠? 거기에서 일하는 의사인데…… 여기, 명함이요.”

핸드백을 뒤져 명함까지 꺼낸 앙겔라를 아이는 불신의 눈으로 보았다. 내밀어진 명함을 힐끔 보고서 다시 앙겔라를 보는 시선은 약간 누그러져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경계심이 느껴졌다.

“이 시간에 문 열린 곳이라면 응급실뿐인데, 응급실 갈 거 아니잖아요. 저 이 아파트 1703호 사는데. 우리 몇 번 보지 않았어요?”

말하면서 생각해보니 작년에 이사 온 앙겔라가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아이였다. 예쁘장하지만 표정 없는 얼굴로 꾸벅 목례하던 모습이 기억났다.

“밖에 지금 영하인데, 이 차림으로 어딜 가려고 그래요. 밖보다는 집 안이 더 나을 거 아니에요.”

앙겔라의 말에 아이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저도 고민이 되긴 되는 모양이었다. 눈은 내리지 않지만 자정에 가까운 시간, 영하로 떨어진 날씨는 지하주차장이라 해도 입을 열 때마다 하얀 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 앙겔라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말을 걸었다.

“아무것도 안 묻고 치료만 할게요. 가요.”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손목을 그러쥐고 살짝 당기며 말하자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 앙겔라 쪽으로 몸을 틀었다. 아이가 잡힌 손목이 불편한 듯한 기색을 보여서 앙겔라는 손을 풀었다. 잠시 동안 손 안에 들어왔던 온기가 아쉬웠지만, 아이가 뒤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눌러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는 말없이 앙겔라를 따라왔다.

앙겔라가 현관문을 열 때까지도 아이는 말이 없었다. 혼자 사는지라 불 꺼진 집이 썰렁했다.

“미안해요, 좀 춥죠? 그래도 바깥보다는 나을 테니까… 들어와요.”

앙겔라는 거실 불을 켠 뒤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아이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망설이는 듯한 얼굴로 아직 현관에 서 있었지만, 곧 조심스러운 태도로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발을 디뎠다. 마치 경계심 많은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다.

“여기 앉을래요? 약상자 가져올게요.”

아이를 거실 소파로 안내하고 앙겔라는 다용도실로 쓰는 방으로 들어가 약상자를 찾았다. 거실로 돌아오자 아이는 소파 앞에 서서 집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현관에서부터 거실 벽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책장으로 이뤄진 앙겔라의 집이 신기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런 면은 아직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며 앙겔라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앉아볼래요?”

아이가 엉거주춤 소파에 앉았다. 이미 집안에 들어왔으니 더 이상 가시를 세우고 있어봤자 소용없는데도 아이의 태도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잔뜩 웅크리고 있는 고슴도치 같아 앙겔라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마 상처 좀 볼게요.”

머리카락을 치우고 살펴보니 피가 굳은 이마의 상처는 날카로운 무언가에 스친 상처 같았다. 다행히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는 동안 아이는 잠깐 움찔거렸을 뿐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다음은 팔인데… 옷 좀 걷어볼래요? 아니면 제가 할까요?”

앙겔라의 말에 아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앙겔라가 잡았었던 왼팔 소매를 천천히 걷어 올렸다. 앙겔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검붉은 자국 사이에 누런 멍 자국이 있었다. 맞았다가 나아가는 상처였다. 한두 번 맞은 모양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옷자락은 서서히 걷혀져, 이윽고 앙겔라가 잡았던 팔뚝이 드러났다.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다음날이면 분명 시커멓게 멍이 들 것 같았다.

“…….”

앙겔라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었다. 오랫동안 의사생활을 해오며 가정폭력 피해자를 여럿 만났지만, 지금처럼 가슴이 먹먹한 감정이 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병원이 아니라 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 왔다는 건 학대받았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는 것을 뜻하니까.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끙끙 앓던 지하주차장에서 본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그저 안쓰러웠다.

“뭐로 맞은 거예요?”
“……골프채요.”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움직이는 데 큰 지장이 없어 보이니 골절은 아닌 것 같았지만 많이 아파보였다.

“연고 바른 후에 냉찜질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앙겔라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연고를 상처 부위에 넓게 발랐다.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찜질팩에 집어넣은 후 아이의 팔뚝에 댔다. 아이가 움찔거렸다.

“차갑겠지만 좀 참아요. 20분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찜질하는 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어 있었다. 이 시간에 맞아서 밖에 있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어린 아이를 이토록 심하게 때리는 건 무슨 이유든 부당하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상처 입은 아이가 밖에 있기에는 날이 너무, 추웠다.
아이가 조용한 분위기를 어색해하는 것 같아 앙겔라는 말을 걸었다.

“저번에 보니까 요 앞 여고 교복 입고 있던데, 거기 학생에요?”
“…네.”
“몇 학년이에요?”
“…이제 3학년 올라가요.”

예비 고3이라면 보통 집에서 가장 신경써줄 때일 텐데……. 자꾸 측은한 마음이 든다. 앙겔라는 무표정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다시 봐도 꽤나 예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은 낙엽 굴러다니는 것만 봐도 웃음이 터진다는 나이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알게 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할까요? 제 이름은 앙겔라 치글러예요. 학생은요?”
“……송하나요.”
“하나, 하나 양……. 이름이 예뻐요.”
“…그쪽은 이름이랑 잘 어울리네요.”
“네?”
“Angela. 천사에서 따온 거잖아요.”

앙겔라는 약간 놀랐다. 영어에만 익숙할 평범한 고등학생이 제 이름을 알아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쪽이라는 다소 무례한 호칭이 끼어있긴 했지만 앙겔라에 대한 아이의 인상은 꽤나 좋은 것 같았다. 더 대화를 해보고 싶었으나 아이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시계를 보고 20여분이 지난 것을 안 앙겔라가 찜질팩을 치우며 말했다.

“2~3일 뒤에 멍이 좀 가라앉으면 그때는 온찜질 해주세요. 한동안 무거운 물건은 들지 말고요.”
“……감사합니다.”

아이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앙겔라는 미소 지으며 뭘요, 하고 말했다. 그 한마디만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오지랖을 부린 것에 대한 보상이 되는 것 같았다. 곧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려고요?”
“네.”

하긴 가야 할 시간이 맞긴 했다. 그러나 가정폭력 피해자인 것으로 보이는 아이를 이대로 돌려보내도 되는 걸까. 앙겔라가 고민하는 사이 아이는 꾸벅 목례를 해보이곤 어느새 현관에서 신을 신고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아, 잘 가요, 하나 양.”

앙겔라가 다정하게 부르는 제 이름에 아이는 잠시 멈칫했으나 곧 꾸벅 목례하고 현관문 너머로 사라졌다.
마음이 찝찝했으나 더 이상 앙겔라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피곤하기도 했다. 내일도 출근하기 위해서 어서 씻고 자야했다. 앙겔라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샤워실로 들어섰다.

*

아이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1주일 후의 일이었다.
아이는 또다시 지하주차장 계단에 앉아있었다. 한번 봤을 뿐인데 그 모습이 익숙했다. 앙겔라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하나 양?”

아이가 움찔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얼굴에 피가 묻어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건 여전했다. 안색이 창백했다. 앙겔라는 순간 여러 말이 떠올랐으나 그 모두는 입 안에서 웅얼거리며 사라졌다. 결국 밖으로 나온 말은 하나였다.

“다친 것 같은데 우리 집 갈래요?”
“…….”
“여기 춥잖아요. 네?”

아이는 고민하는 듯 해보였으나 이번에는 선선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음 봤을 때의 날선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앙겔라는 슬쩍 미소 짓고 앞장섰다.
집에 도착하자 그래도 두 번째라고, 아이는 앙겔라가 이끌지 않아도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앙겔라는 다시 약상자를 가지고 아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디 다쳤어요?”

어디를 맞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다 어깨요, 하고 대답했다. 옷을 벗어야 보여줄 수 있는 부위라 꺼려하는 것 같았다.
이마에, 팔뚝에, 이번에는 어깨라. 앙겔라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옷 좀 벗어볼래요?”

아이가 주저했다. 앙겔라는 최대한 다정하한 어투를 사용하려 애쓰며 말했다.

“상처를 봐야 어떤지 알 수 있죠. 여자끼리인데 괜찮잖아요.”

아이가 입술을 깨물더니 상의를 벗었다.
앙겔라는 속으로 탄식을 터뜨렸다.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있어서 몰랐는데, 무엇으로 때린 건지 스친 건지, 찢어진 어깨의 상처는 피가 흥건했다. 게다가 입고 있는 회색 탱크톱 밖으로 보이는, 얼굴을 뺀 몸 전체가 멍으로 얼룩덜룩했다. 일부러 보이지 않는 곳만 집중적으로 때린 것 같았다.

“…….”

앙겔라는 입을 열었으나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한순간 가슴이 꽉 조여오는 듯한 감각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치부를 보였다고 생각해서인지 귓불이 약간 붉어져 있었다. 그 모습조차도 가슴 쓰라리게 다가왔다.

앙겔라는 말없이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다른 곳은 그렇다고 쳐도, 어깨는 여린 살결 위에 상처가 남을 것 같아 마음이 자꾸 마음이 쓰였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앙겔라가 아무 말도 없이 상처에만 집중하자 눈치를 보는 것은 오히려 아이였다. 앙겔라는 아이가 조심스레 자신을 살피는 것을 눈치 챘지만 말없이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지난번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겠다고 해서 별 말 안 했지만, 오늘은 물어야 할 것 같았다. 아이는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저기, 하나 양.”
“……?”
“제가… 제가 하나 양을 좀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요. 괜찮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좀 해줄 수 있어요?”

최대한 사근사근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대번에 아이의 눈동자가 경계의 색을 띠었다.

“들어서 뭐하게요?”

아이가 날카롭게 물었다. 지난번에 남긴 인상이 꽤 좋을 거라 생각했던 앙겔라가 당황하는데, 아이가 말했다.

“치료해주신 건 감사했지만 앞으로 신경 안 쓰시는 게 더 좋을 것 같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뭘 해도 안 되니까.”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빠르게 옷을 꿰어 입었다. 앙겔라도 따라 일어서서 아이의 팔을 붙잡았다.

“하나 양, 제가 정말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못 도와주니까 헛수고 하지 마세요.”

아이가 앙겔라의 팔을 떼어내고 몸을 홱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 앙겔라가 얼른 따라와서 아이를 만류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좀 더 쉬다가 가요. 밖에 아직 춥잖아요.”

아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의 얼굴에 죄책감이 얼핏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일방적으로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을 매몰차게 대했으니 마음 쓰이는 모양이었다. 망설이던 아이는 결국 앙겔라의 손길에 따라 다시 소파에 앉았다. 아이가 덜 어색해하게 TV라도 틀어주고 싶었지만, 앙겔라의 집엔 TV가 없었다. 집안이 조용했다.

“……죄송해요.”

잠시 후 아이가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역시 성품이 나쁜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궁지에 몰려있는 어린애가 날카롭게 가시 한 번 세웠다고 기분이 상할 앙겔라가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그냥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지금 방학이에요?”
“…네.”
“언제까지 방학이에요?”
“1월 말까지요.”
“개학은 3월 아니에요?”
“사립학교라… 방학은 12월 말에 했어요. 겨울 방학이 한 달이에요.”
“방학이 짧아서 아쉽겠어요.”
“별로…….”

앙겔라는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이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학교에 나가는 것이 더 나은 일일지도 몰랐다. 속으로 자책하는데 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번에…….”
“네?”
“명함 보니까 외과 과장이라고 써져 있던데, 진짜예요?”
“네, 일단은요.”
“무슨 병원장이 부모예요? 어떻게 20대 후반에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어요? TV보니까 대부분 아저씨들이던데.”

앙겔라는 소리 내어 웃었다. 아이가 의아한 듯한 눈빛을 보내왔으나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기분 좋은 얼굴로 앙겔라가 대답했다.

“저 서른여섯이에요. 젊게 봐줘서 고마워요.”
“……그래도 너무 젊은 거 아니에요? 언제 과장이 되신 거예요?”
“서른에요. 하지만 저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한국에 온 거라……. 보통 그 나이 대엔 펠로우 과정을 밟죠.”
“펠로우요?”
“임상강사라고도 해요. 그 뒤로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순서로 올라가고, 그러면서 과장이나 전임교수를 하기도 하죠.”
“…그럼 서른 살에 과장이면 엄청난 거네요.”

앙겔라는 그저 말없이 웃었다. 제 입으로 대단하다고 말하기엔 조금 머쓱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경계심이 가득했던 아이의 눈에 감탄이 서린 걸 보니 더욱 그랬다.

“운이 좋았죠.”
“……공부 잘하면 그렇게 빨리 성공할 수 있어요?”
“글쎄요, 전 공부보단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다 보니 이 자리에 있게 된 거라서요.”
“하고 싶은 일…….”
“하나 양은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아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프로그래머요. 정확히는 게임 개발자.”
“컴퓨터를 잘 다뤄야 하는 거죠? 전 컴퓨터랑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그런 거 보면 부러 워요.”

아이가 고개를 돌려 앙겔라를 빤히 보았다. 어쩐지 복잡해 보이는 시선이었다. 앙겔라가 물었다.

“왜요? 제가 무슨 말실수 같은 거 했나요?”
“……안 비웃으세요?”
“네? 비웃을 게 뭐 있어요?”
“어른들은 뭔 놈의 게임이냐, 하면서 뭐라고 하잖아요.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고.”
“공부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기는 게 제일 좋죠.”

아이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속내를 끄집어내듯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실은… 제작하고 있는 게임이 있어요.”
“벌써요? 대단하네요. 혼자 제작하는 건가요?”
“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다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보통 저 나이대의 아이들은 공부밖에 모르던데……. 위태롭게 보이기만 했던 아이가 제 꿈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니 걱정이 조금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다 제작하면 보여줄래요?”
“완성까지는 한참 멀었어요.”
“그래도요. 게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한번 꼭 보고 싶네요.”
“……네.”

아이가 귓불을 붉히며 끄덕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앙겔라는 미소 지었다. 그 뒤로 아이는 한결 편한 모습으로 있다, 12시가 다 되어서 돌아갔다. 앙겔라는 게임 이아기를 하며 제 나이또래의 얼굴을 하던 아이가 다시는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

하지만 앙겔라는 그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아이와 마주쳤다. 아이는 볼 때마다 상처를 달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마주할 때마다 몹시 속이 상했다. 주차장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정이 가던 아이였기에 더 그랬다.

아이에게 몇 번 넌지시 경찰의 도움을 받는 게 어떠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완강히 거부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돕고 싶었지만 본인이 거부하니 앙겔라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이를 치료해주는 일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자는 이야기를 할 때만 빼면 아이는 점점 앙겔라에게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마주칠 때마다 다쳐 있었지만 앙겔라를 알아보고 희미하게 웃기까지 했다. 그 웃음만으로도 앙겔라는 아이를 도울 이유가 충분하다 여겼다. 아이가 더 웃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날 또 상처 입은 아이와 마주쳐 치료해서 돌려보낸 앙겔라는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가정폭력을 방치하는 듯한 죄책감도 느껴졌고, 아직 10대에 불과한 아이가 끔찍한 폭력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쓰러움에 가슴도 너무 아팠다. 본 지 몇 번이나 됐다고, 벌써 아이에게 정이 많이 든 것 같았다.

지하주차장에 들어설 때마다 아이에 대한 것들이 생각났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경찰에 대한 이상한 불신, 그러면서도 앙겔라가 내민 호의에 반응하는 아직은 어린 아이.

한숨을 내쉬며 차를 주차하고 공동현관으로 향하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앙겔라는 아이와 마주치곤 했던 계단에서 발을 멈췄다. 귀를 기울이니 끙끙대는 듯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양?”

왠지 보지 않아도 아이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 계단 주변을 빙 돌다가 주차장 기둥 뒤 으슥한 곳에 웅크려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이였다.

“하나 양, 왜 여기에 있어요? 많이 다쳤어요?”

아이는 앙겔라의 말에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거의 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앙겔라는 공동현관 근처로 차를 끌고 와 뒷좌석에 아이를 태웠다. 그대로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아이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늑골에 금이 가 있었다. 여태까지는 그래도 집에서 치료할 수 있는 타박상 정도에서 그쳤기에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정말 경찰을 불러야 할 것 같았다.

병실 침대에서 링거를 맞고 누워있는 아이의 안색이 파리했다. 앙겔라는 몇 번이나 휴대폰을 잡았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아이의 동의 없이 경찰을 부르면 아이가 겨우 열었던 마음을 꽉 닫아버릴 것 같았다.

앙겔라는 걱정으로 마음이 들끓는 와중에도 제가 조금 웃기다 생각했다. 친하면 얼마나 친하다고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하지만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자꾸만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호흡소리가 달라지며 아이가 눈을 떴다.

“하나 양, 저 알아보겠어요?”
“아…….”
“하나 양이 주차장에서 쓰러져있는 걸 보고 병원으로 데려왔어요. 정신이 좀 들어요?”

앙겔라의 말에 아이가 몇 차례 눈을 깜박이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많이 아플 텐데 아이는 표정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앙겔라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하나 양, 대체 무슨 일이에요? 오늘은 정말 이야기를 들어야겠어요. 아버지가 또 때리던가요?”

아이가 무감정한 눈으로 앙겔라를 보았다. 아무 표정 없는 얼굴인데도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시렸다. 아이의 무표정 뒤에 숨겨진 많은 상처들을 치료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경찰에 신고해요. 국가에서 운영하는 가정폭력신고센터도 있고, 아니면 제가 도와줄게요. 네? 이렇게 가다간 하나 양 정말 큰일 나요.”
“왜…….”

아이가 작게 입을 달싹이며 말했다. 앙겔라는 귀를 기울였다.

“왜… 저한테 이렇게 신경 쓰세요? 그냥 내버려두면 되잖아요.”
“무슨……. 어떻게 내버려둬요?”
“생판 남이잖아요. 아무런 상관없는 사이인데…….”
“어린 사람이 이런 환경에 처해 있는데 어른으로서 못 본 척 해야 한다는 거예요?”
“보통은 그러잖아요.”
“전 안 그래요. 그렇게 못 해요. 이렇게 하나 양이랑 알게 된 것도 인연인데, 어떻게 모른 척 할 수 있겠어요?”
“…….”
“제가 도와줄 수 있게 해줘요. 네?”

아이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생각이 많은 것처럼도,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도 보였다. 앙겔라는 끈질기게 그 눈을 마주보았다. 아이가 뭐라도 말해주기를 바랐다. 정말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윽고 아이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아빠가 검사예요.”
“검사…….”
“3년 전 즈음에 재혼을 했는데…… 새엄마랑 그 딸이랑 집을 합쳤거든요.”

아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도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새엄마랑 그 딸한테 잘 보이려고 그랬는지 점점 저를 못 본 척 하더라고요. 가족 모임에 저만 빼놓고 가고, 어딜 놀러가더라도 저만 빼놓고 가고. 처음엔 왜 나만 빼놓냐며 뭐라고 했는데 들은 체도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 나는 가족취급 안 해주는구나 싶어서 1년쯤 전부터는 그냥 아예 포기하게 됐죠.”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옆얼굴이 참 허무해보였다.

“그 전까지는 어떻게 관심 좀 받고 싶어서 애를 썼어요. 아빠가 성적에 민감한 걸 아니까 어떻게든 성적을 올리면 나한테 신경을 써줄까 싶었죠. 기를 쓰고 공부해서 전교 1등도 해보고 그랬는데, 그게 당연한 건줄 아는 거예요. 아빠는 공부를 잘 했거든요.”

앙겔라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 다음 시험에서는 10등을 했어요. 공부 한다고 했는데 시험 문제가 어려워서 찍은 게 다 틀렸거든요. 그랬더니 불같이 화를 내는 거예요. 다른 집은 전교 10등이면 업고 다닌다고 하던데, 우리 집은 칭찬은커녕 화를 내니 어이가 없더라고요. 새엄마 딸은 반에서 10등만 해도 그렇게 칭찬을 쏟아내더니…….”

새엄마, 혹은 새엄마 딸이라는 호칭을 고수하는 걸 보니 감정의 골이 깊은 것 같았다. 아이가 말을 이었다.

“아무리 공부해봤자 관심을 못 받는다는 걸 알게 되니까 공부에 흥미가 떨어지더라고요. 혼나지 않으려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 뭐 동기도 없고, 의욕도 없고……. 게다가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게임 제작하고 있다고.”

앙겔라는 기억하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교 때부터 게임 만들고 싶어서 혼자 공부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게임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공부 때문에 잠깐 손에서 놨어요. 공부를 안 하니까 다시 게임 제작을 시작했는데 아빠는 그게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여태까지는 공부 못하는 꼴통인줄 알고 냅뒀는데 한번 마음먹고 성적을 올리니까 그 성적을 당연한 걸로 여긴 거죠. 아무튼 공부를 안 하니까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53등으로 뚝 떨어졌어요.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아빠한테 맞았죠.”

앙겔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는 무미건조하게 말을 잇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들었어요. 왜 새엄마 딸은 오냐오냐하고, 나한테는 뭐라고 하냐고. 성적으로 따지면 쟤를 혼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버릇없다고 더 때리더라고요. 반항하기는 했는데, 아빠가 체격이 크거든요. 일방적으로 얻어 터졌죠.”

앙겔라는 안쓰러운 마음에 손을 뻗어 아이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한 번 손을 올리니까 그 다음부터는 쉽게 올리더라고요. 평소에는 무시만 하니까 괜찮은데, 술만 마시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짓만 한다느니, 부모가 집에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느니 하면서 때리고……. 몇 번 반항하다가 그냥 맞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죠. 그러면 맞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하루는 참다 참다 내가 마음에 안 드냐고 대놓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새엄마 딸은 말도 잘 듣고 예쁜 짓도 하고 그러는데 저는 애교도 없고 무뚝뚝한 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예요.”
“…마음 아팠겠네요.”
“그 때는 이미 아빠에 대해 포기한 상태라 그저 그랬어요. 아, 그렇구나 하는 느낌? 나도 아빠를 놔버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고 나서 기말고사를 봤는데 성적이 더 떨어진 거예요. 90몇등이었나? 그랬는데, 술도 안 마셨으면서 골프채로 절 때리더라고요. 팔로 막다가 죽을 것 같아서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경찰에 신고했어요. 방문 잠그고 버티고 있으니까 경찰이 도착했는데, 아빠가 검사잖아요. 그냥 돌려보내더라고요.”
“그게 돼요?”
“가정교육 하다가 애가 장난으로 신고했다고 하니까 뭐 어째요. 게다가 상대가 검사인데. 그냥 넘어간 거죠. 그러고 나서 방문 따고 들어와서 죽도록 맞고……. 경찰에 신고해봤자 도움 되는 게 하나도 없던데요. 역효과만 나고.”
“…학교 선생님한테 상담은 해봤어요?”

아이가 픽 냉소했다.

“봐도 못 본 척 해요. 당장 학교폭력부터 외면하고 있는데 도움이 될 리가 없잖아요.”
“학교폭력까지 당했어요?”
“아뇨, 저 말고 다른 애들 말이에요. 학교에선 별 문제 없어요.”
“가정폭력신고센터 같은 건 생각 안 해봤어요?”
“했죠. 자리가 없어서 장기는 어렵고 단기만 가능하다고 하던데, 단기는 최대 6개월이라잖아요. 그 뒤에는 나가야 하는데, 고등학교 졸업도 안 한 제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요? 게다가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하고요. 1년만 더 버티면 독립할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버틸 거예요.”
“경찰에 신고 안 하겠다는 말이에요?”
“지금까지 뭘 들으신 거예요? 경찰 도움 안 된다니까요. 만약 경찰이 도와준다고 해도, 당장 3월부터 학교 다니면서 돈 들 곳이 많은데, 신고당한 아빠가 돈을 내주겠어요?”
“…….”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 두세요. 아빠가 잠 들 때까지만 밖에서 시간 보내면 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아이에 앙겔라는 말을 잃었다. 아이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사실 매일 때리지는 않는데……. 어제 붕대 감아줬잖아요. 그걸 들켰거든요. 그랬더니 어디서 치료받았냐고, 남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싶어서 안달냤냐면서 막 때리기에 정신없이 도망쳐 나왔어요. ……병원 간 거 알면 또 팰 텐데.”

그렇게 모습이 꼭 남의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앙겔라는 가슴 아파하며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맞으면서 버티려고 그래요. 오늘만 해도 버틸 수준이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그래서 당분간 자정 넘어서 집에 들어가려고요.”
“이 추운 날씨에 밖에서 버티겠다고요? 지금 몸도 성치 않은데 그게 가능할 것 같아요?”
“버티면 돼요. 저 인내심 하나는 강하거든요.”
“불가능해요.”
“지하주차장에 있으면 되니깐 더 이상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 추운 곳에 있겠다고요? 그 몸으로? 그럴 거면 차라리 우리 집에 있어요.”

앙겔라가 울컥해서 내뱉은 말에 아이가 눈썹을 찡그렸다.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생각할 건덕지도 없다는 태도에 앙겔라는 다시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생각하기도 전에 입이 열렸다.

“진심이에요. 오늘부터라도 우리 집에 있어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머리를 거치지 않고 나온 말에 앙겔라가 내심 당황하는 사이 아이에게서 변화가 있었다. 건조했던 아이의 눈동자에 점차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이내 글썽글썽 거리는 눈이 된 아이가 앙겔라를 보았다. 알게 된 이후로 처음 보는 약한 모습이었다. 순간 앙겔라는 결심했다. 어른으로서 정말로 도와줘야겠다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태도가 약간 까칠하기는 했지만 아이의 기본 성품은 착해보였고, 아이의 이름과 다니는 학교를 알고 있으니 신원도 확실했다. 그저 하루에 두어 시간 동안 가정폭력을 피할 환경만 제공해주면 될 일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

아이는 매일 앙겔라가 퇴근한 후 집에 찾아왔다. 그리고 거실 테이블에 노트북을 꺼내놓고 뭔가를 열심히 했다. 전에 말했던 게임 제작인 것 같았다. 앙겔라가 뒤에서 들여다보면 뭔가를 설명해주려고 애를 썼는데, 애석하게도 앙겔라는 컴퓨터에 대해선 간단한 문서 작성과 인터넷 서핑정도밖에 할 줄 몰랐으므로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에, 아이를 집에 들이기로 한 제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앙겔라는 서재에서, 아이는 거실에서 각자 할 일을 하다가 12시 즈음 되면 아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다른 사람을 집에 들인 것은 아이가 처음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저는 아이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는 폭력적인 환경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2주가 흐른 어느 날이었다.
앙겔라가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남자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이가 남자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앙겔라는 허둥지둥 아이에게 달려갔다.

“남의 입소문 탈 일 있어? 어딜 싸돌아다니고 그래!”
“어차피 가출을 하든 말든 신경도 안 쓰잖아요! 경찰에 갈 일 없으니까 내버려 두라고요!”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이 집에 안 들어오는데 신경을 안 써? 헛소리 하지 마라!”
“그래서 그렇게 두들겨 팼어요? 퍽이나 신경 쓰셨네요.”

비아냥거리는 아이의 말에 남자가 얼굴이 벌게져서 손을 올렸다. 앙겔라는 급히 아이와 남자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시죠?”
“그쪽은 뭡니까?”
“아이한테 손을 드시다뇨. 이러지 말고 말로 하세요.”
“그쪽이야말로 남의 집안 사정에 끼어들지 마시죠.”

제3자의 존재를 의식했는지 목소리를 낮춘 남자가 험악한 시선으로 앙겔라를 쏘아보았다. 순간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이가 이런 시선을 받고 지냈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앙겔라는 발끝에 힘을 주고 버텼다.

“이건 엄연한 가정폭력이에요. 세상 어느 집에서 아이를 훈육하면서 늑골에 금을 가게 하죠?”
“금? 그게 무슨 헛소립니까?”
“2주 전 하나 양을 심하게 학대하셨잖아요. 그 뿐 아니라, 하나 양은 제가 보아 온 한 달 이상 꾸준한 가정폭력을 당했습니다. 소견서라도 드릴까요?”
“소견서? 그럼 그 쪽이 오지랖 넓게 남의 집안일에 끼어든 인간이었어?”

남자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으르렁댔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이상한 소문 내지 말고 더 이상 남의 일에 신경 끄십쇼. 송하나, 빨리 안 와?”
“놔요! 안 간다니까!”
“이 손 놓고 이야기 하세요! 아파하잖아요!”
“그러니까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니깐! 무슨 상관이냐고!”

세 사람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니 지하주차장이 금세 시끄러웠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기웃거리자 남자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송하나, 마지막으로 말한다. 이리 와라.”

주위를 의식해서인지 목소리를 확 낮춘 남자의 말에 앙겔라는 미간을 꿈틀댔다.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회적인 체면을 중시하는 타입이었다. 생판 남인 앙겔라가 이 상황에 끼어들었으니 면이 팔렸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고, 아이와 둘만 있게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했다. 앙겔라는 아이를 제 등 뒤로 숨기며 말했다.

“하나 양은 제가 맡고 있을 테니 일단 손부터 떼시죠.”
“거 의사인가본데, 괜히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마십쇼.”
“하나 양이 학대당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요. 이 손 놓지 않으면 신고하겠어요.”

신고라는 말에 남자의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남자는 이를 꽉 깨물고 아이의 손을 놓았다. 아이가 끙끙대며 손목을 매만졌다. 손자국이 빨갛게 나 있었다. 그걸 보는 앙겔라의 마음이 쓰라렸다.

“뭘 어떻게 하려고 그럽니까? 괜히 귀찮은 일 벌이지 말고 신경 끄라니까.”
“하나 양이 아버님의 폭력을 피해서 집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알고 계시죠? 학대는 그만두세요.”
“학대라니, 누가 들을까 겁나네. 이보십쇼, 부모가 자식 교육 좀 시킨다는데 왜 자꾸 끼어듭니까? 네?”
“그 동안 하나 양은 저희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이런 엄동설한에 아이를 내버려두고도 잠이 잘 오시던가요?”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지가 원해서 나가는데 어쩌라는 겁니까?”
“그럼 지금도 내버려 두셔야죠. 하나 양이 원치 않잖아요.”
“아, 진짜 말이 안 통하네.”

남자가 짜증스럽다는 듯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고선 앙겔라의 등 뒤에 있는 아이를 험악하게 노려보았다.

“애를 언제까지 맡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냥 보내십쇼. 그리고 송하나. 넌 지금 애비가 협박당하는데 그걸 보고만 있어? 어? 집에 오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

살벌한 남자의 말에 섬뜩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눈에 선했다. 지금까지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이가 맞는 상상이 떠올랐다. …아이보다는 제가 그 모습을 못 볼 것 같았다. 요 한 달간 자꾸 눈앞에 떠오르던 아이의, 감정이 닳아 없어진 듯한 모습이 떠올랐다. 앙겔라는 결심했다. 그리고 말했다.

“하나 양을 그 집에 돌려보내느니 차라리 제가 맡겠어요.”
“하! 아까부터 무슨 정신으로 그런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헛소리가 아니에요. 하나 양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으면 신고하지 않을게요. 지금까지 모은 증거만으로도 아버님을 충분히 신고할 수 있어요.”
“……송하나! 빨리 이리 안 와?!”
“소리 지르지 마세요. 하나 양이 무슨 짓을 당할지 눈으로 봤으니 그냥 제가 보호하고 있는 게 낫겠어요.”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앙겔라를 노려보았다. 앙겔라가 물러나지 않자 남자가 씩씩대더니 아이를 쏘아보며 말했다.

“감히 자식이 되어선 애비 체면을 깎아먹어? 난 너 같은 자식 필요 없다. 지금 들어올 거 아니면 앞으로 영원히 들어오지 마!”

등 뒤의 아이가 움찔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앙겔라가 빠르게 맞받아쳤다.

“잘 됐네요. 그럼 하나 양은 제가 맡는 걸로 하는 거죠?”
“아까부터 끼어들지 말라니까 왜 자꾸……!”
“선생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남자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려는데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돌아보니 경비원이었다. 저 멀리에서 이쪽을 흥미진진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남자가 상황을 파악하곤 반사적으로 얼굴을 펴고 대꾸했다.

“안녕하십니까. 추운데 고생이 많으시네요.”
“일이니 어쩔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 죄송하지만 주차장에서 소란이 일어났다고 지금 민원이 들어와서요.”
“아,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잠깐 자식 교육으로…….”
“교육이라고요? 그건 교육이 아니라 학…….”

끼어든 앙겔라의 말에 남자가 입술을 꽉 깨물더니 애써 웃는 얼굴로 앙겔라의 말을 잘라먹었다.

“선생님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시죠. 저야 좋은데 저희 애가 폐를 끼칠까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괜히 선생님이 번거로우실까 그러는 거죠.”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네요. 하나 양, 가요.”

남의 앞에서는 함부로 못 구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경비원이 미심쩍게 보고 있거나 말거나 앙겔라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 등 뒤에서 별 일 아니라고 무마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공동현관까지 따라오더니 조심스레 앙겔라의 손을 풀었다.

“저기, 저 괜찮아요. …이만 가볼게요.”
“가기는 어딜 간다고 그래요. 집에 가면 어떻게 될지 알면서 그런 말이 나와요?”
“그렇다고 그 집에서 살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없기는 왜 없어요. 우리 2주간 잘 지냈잖아요.”
“하루 2시간 정도 있는 거랑 아예 사는 거랑 같아요? 어떻게 생판 남을 집에 데리고 있어요.”
“……제가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앙겔라의 말에 아이가 멈칫했다. 앙겔라는 남자와 말다툼을 하며 이미 결심을 한 뒤였다. 더 이상 아이를 저런 환경에 내버려둘 수 없었다. 양 손을 들어 아이의 얼굴을 감싸고 시선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전 제 입으로 하나 양을 도와준다고 했어요. 하나 양이 어떤 취급 받는지 뻔히 아는데 어떻게 하나 양을 그 집에 돌려보내요. 우리 잘 지내봐요.”
“……왜 그렇게 절 도와주시려는 건데요? 우린 아무 사이 아닌데…….”
“이제부터 같이 살 사이인데 아무 사이도 아닌 건 아니죠. 안 그래요?”

아이의 눈에 서서히 물기가 차올랐다. 앙겔라는 심란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아이를 이끌었다. 아이는 순순히 따라왔다. 남자의 태도에 울컥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책임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아이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을 안고 사느니 차라리 이게 나을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앙겔라는 아이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현관에 들어섰다. 아이는 현관 밖에 서서 망설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앙겔라에게 폐를 끼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앙겔라는 모르는 척 웃으며 손을 뻗었다.

“어서 와요, 하나 양.”

입술을 꾹 깨문 아이가 한동안 그 손을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앙겔라의 손을 잡았다. 아이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입술을 달싹이던 아이가 겨우 말했다.

“…감사합니다.”
“다녀왔습니다라고 해야죠.”
“……다녀왔습니다.”

어색하게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아이에게 앙겔라는 그저 웃어주었다.
아이와 지낼 앞날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기대되기도 했다. 그저 제 결정이 아이에게 위안이 되기만을 바랐다.





끝.




가정폭력에서 구해주는 연상녀 썰 보고 일단 질러봄.
천천히 가까워지는 모습을 그리고 싶은데… 시간 내서 틈틈이 써보겠음.
러브코메디가 보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분위기 왤케 다운이지ㅋㅋㅋㅋㅋ
초반 도입부만 2만자가 넘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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