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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질척질척한 치정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검은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3.19 06:17:17
조회 2123 추천 30 댓글 14
														

전에 썼던 여고생x아줌마 썰을 하나메르로 바꿔봤거든.
엄청 질척질척한 치정극을 보고 싶어서 글을 썼는데 어째서인지 훈훈한 분위기가 되어버렸음;;;;
여기를 어떻게 고쳐야 질척질척한 치정극이 될 수 있을까...?








메르시(37)는 서른에 남편과 결혼해서 한국에 왔고, 2년의 결혼생활 끝에 이혼했어. 사유는 남편의 바람. 신혼 생활이 좀 끝나갈 즈음에 남편이 다른 여자한테 눈이 돌아갔던 거지. 한순간의 실수였다며 빌었지만 바람을 안 피우는 남자는 있어도 한 번만 피우는 남자는 없단 생각에 이혼을 강행했어.

그리고 5년 동안 혼자 살아왔지. 요즘은 이혼이 흉 볼 일이 아니라곤 하지만, 이혼녀라는 딱지를 달게 되자 처녀 때는 말도 제대로 못 붙이던 인간들이 너도나도 들이대는 거야. 메르시는 지긋지긋해하면서 일에 골몰했지. 덕분에 젊은 나이에 외과 과장 직함을 달 수 있었지만 사생활은 엉망이었어.

매일 야근에 쩔어서 퇴근하면 씻고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다시 출근하는 나날이 다람쥐 쳇바퀴마냥 반복되는 삶을 살던 신년 초의 일이야. 승용차 요일제 때문에 병원 주차장을 사용 못하고 외부 주차장에 댄 차를 가지러 걸어가는 메르시의 눈에 한 남녀가 들어왔어. 중년의 주정뱅이와 여고생이었지.

그냥 지나치려는데 대화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거야. 십만원 줄 테니까 한번 자자는 내용이었는데, 안 그래도 그날 유부남인 원무과 과장이 치근댔던 터라 열이 뻗친 메르시는 화가 나서 그 둘에게 성큼 다가섰지. 그리고선 당장 꺼지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더니 주정뱅이는 도망쳤어.

교복을 입은 여고생만이 남았지. 지금이 1월이니까 겨울방학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하는 메르시에게 여고생이 대뜸 재워달라고 하는 거야. 집에서 쫓겨나서 갈 곳이 없대. 메르시가 난생 처음보는 네 뭘 믿고 집에 데려가냐고 묻자 여고생이 처량한 표정을 짓더니 그러게요, 하면서 한숨을 내쉬는 거.

이 추운 겨울에 교복 치마에 블라우스, 그리고 카디건만 달랑 입은 여고생은 참 추워보였어. 게다가 왠지 자포자기한 분위기마저 감싸고 있었기에 그냥 집에 가버리면 혼자 얼어 죽거나 아니면 원조교제 제안을 받거나 해서 그냥 수락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 이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는 거야.

여고생의 파랗게 질린 입술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결국 집으로 데리고 왔어. 그리고는 씻고 잔 뒤에 내일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고선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대충 씻고 잠이 들었지. 여고생, 하나는 메르시가 건네 준 옷을 받아들고 시간을 들여 샤워를 한 뒤 메르시가 안내해준 방이 아닌 침실로 향했어.

사실 하나는 집을 나와 동거하고 있던 애인(여대생)이 있었어. 애인의 원룸에서 둘이 알콩달콩 잘 사귀고 있었고, 애인과 같은 대학을 가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원서도 다 넣어둔 상태였는데 새해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이는 바람에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던 거지. 그러다 메르시를 만난 거야.

애인과 사귀면서 레즈비언임을 집에 밝히자 쫓겨났던 터라 갈 곳도 없겠다, 제 전부라고 여겼던 애인에게 하루아침에 차였겠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착해보이는 언니를 만난 거지. 그래서 이 언니한테 좀 비벼볼까? 싶은 마음을 먹은 거였어.

어려서부터 눈치도 빠르고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한 연기는 배우 뺨 칠 정도로 잘 했기 때문에 불쌍한 척을 좀 했을 뿐인데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이 언니가 속아 넘어간 걸 보고 옳타꾸나 한 거지. 침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깊게 잠이 든 건지 침대 위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누운 메르시가 보였어.

고교시절 내내 애인이랑 같이 자던 버릇이 들었기 때문에 혼자 자는 게 싫어서 메르시 옆에 누워서 설핏 잠에 들었다가 애인에게 하던 잠버릇이 그대로 나왔어. 껴안고서 허리춤을 살살 매만졌는데 자는 도중에도 애인과 헤어졌단 걸 깨닫고 퍼뜩 깼지. 그런데 메르시가 잠결에도 반응이 있는 거야.

메르시는 이혼한 이후 줄곧 혼자였던 데다가 매일 야근으로 스트레스가 만땅인 욕구불만 상태였는데 하나의 터치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거지. 하나는 그 모습을 보고선 이 언니 얼굴도 취향인 데다 욕구불만 같으니까 재워준 보답도 하고 겸사겸사 저도 즐길 겸 해서 메르시를 뇸뇨로뇸 해버린 거야.

가볍게 절정에 이른 후에야 비몽사몽 간에 얼핏 정신이 든 메르시는 이게 꿈이라고 생각해서 하나의 손길에 솔직하게 반응을 해버리고, 하나는 그 모습에 더욱 불타올라서 뿅뿅을 했어. 그리고는 이 정도면 서비스 진짜 죽이게 해줬다고 몹시 흡족해하면서 메르시 품 속에 들어가 잠에 들었지.

이튿날 휴대폰 알람 소리에 일어난 메르시는 제 품 속의 여고생을 보고선 간밤에 있던 일이 꿈이 아니란 걸 깨닫고 경악했어. 저보다 열 댓살은 어린 애 밑에서 좋아서 어쩔줄 몰라한 데다가 좋다고 소리까지 냈었으니 미칠 것 같은 거야. 더군다나 상대는 여자, 게다가 미성년자라 신고도 못하겠고.

메르시는 살아오면서 정도만을 걸어왔었고, 이혼 외에는 단 한번도 그 길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지난밤의 일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었지. 차마 말을 못하고 굳어 있는데 눈을 뜬 하나가 메르시를 보더니 어, 일어났어요? 하면서 가볍게 볼에 키스해주는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말리지도 못했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5년만인 데다가 애가 간밤에 어찌나 다정하던지 이혼한 전남편도 그렇게까진 해주지 않았던 거지. 당한 건 저인데도 어른으로서 죄책감도 느끼고 책임감도 느끼고 당황스러워서 어쩔줄 몰라하는데 하나가 눈치채고선 언니 우리 사귈까요? 궁합도 좋잖아, 하면서 들이대는 거.

하나는 메르시가 좋아서라기보다는 갈 곳도 없고 하루 묵어보니 집도 좋은데다 메르시가 제 취향이고 욕구불만으로 보이니까 나이 많은 언니 상대해주면서 얹혀사는 게 밖에서 떠돌며 고생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 거야. 애인한테 버림받은 지 얼마 안 돼서 누군가에게 마음 열고 싶지는 않았고.

메르시는 그 말을 듣고 기겁해서는 아니 너 미성년자 아니냐고 하면서 당혹해하자 하나가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이제 다음달이면 졸업이고, 어차피 1월 1일 지났으니까 성인이라고 하는 거야. 어쨌든 당장 교복 입은 아이니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서 안 된다고, 간밤의 일은 그냥 넘어가 줄 테니

옷 입고 나가라고 하는데 하나가 입을 삐죽이고는 밥도 안 주고요? 이러는 거. 눈망울이 큰 애가 처량한 눈빛으로 보는데 메르시는 그 얼굴을 보니까 또 마음이 약해져서는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아침도 차려주고 학교에 태워다주기까지 했어.

그리고 출근해서 일을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간밤의 일이 생생히 떠오르는데다 양심도 찔리고, 그 와중에 학교 앞에 내려다주니까 할말 많은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던 게 자꾸 눈에 밟히는 거야. 갈 곳도 없다는데 당장 한파가 들이닥친 오늘부터 어떻게 하려나, 하다가 무슨 상관이냐며 고개를 흔들다가

싱숭생숭한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는 거지.
밤늦게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현관 앞에 하나가 쪼그려 앉아서 메르시를 기다리고 있던 거야. 추워서 얼어붙은 볼이며 빨개진 목덜미가 눈에 들어와 박히는데 언니, 나 정말 갈 곳 없는데 재워주면 안 돼요? 하며 큰 눈동자에 물기가 어려서 글썽글썽하니까 또 마음이 약해져서는 일단 추우니까 들어오라며 현관문을 열었어.

그리고는 대체 어쩔 셈이냐고 물었지. 하나는 갈 곳이 없다며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방값을 낼 테니 여기서 살게 해달라는 얼토당토 않는 말을 했어.

그리고는 여자를 좋아해서 집에서 쫓겨났고 자기한테 새 집 주소도 안 알려주고 이사를 가버려서 찾아갈 수도 없다고 구구절절히 하소연하는데 예쁜 애가 눈물 또르륵또르륵 흘려대면서 호소하니까 또 마음이 안 좋아서 며칠만 머물다가 집 구해서 나가라고 한발 물러서고 말았지. 아무래도 애 얼굴에 홀린 것 같다며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이야.

하나는 그런 메르시의 뒤에서 씩 웃었어. 이 언니가 성격 좋아보여서 각 잡고 연기 한번 해본 건데 사회에 찌들고 세상풍파 다 겪었을 어른이 생각보다 쉽게 넘어가니깐 개이득ㅋ 이러면서 이대로 여기서 얹혀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거야. 세상 찬 바람을 한번 맛보곤 영악하게 굴기로 한 거지.

피곤한 메르시가 씻고 자러 간 후, 하나는 천천히 샤워한 후에 침실로 들어가서 잠든 메르시를 살살 어루만지면서 뇸뇨로뇸을 하고, 메르시는 자다가 화들짝 놀라 깨서는 말리려다 하나의 테크닉으로 인해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바람에 제대로 말리지도 못하고 같이 잠이 들고 하는 나날이 반복됐지.

메르시 입장에서는 막 환장할 지경인데 이튿날 아침이 되면 하나가 너무 예쁘게 웃으면서 아침도 차려주고 착하고 다정한 애처럼 구니까 간밤의 일로 화도 못 내고 그렇게 어영부영 창고방 하나 내주고 같이 살게 됐어.

사실 하나는 애인이랑 같이 살 적에 알바와 학업으로 바빴던 애인 대신 집안일을 도맡았기에 엉망인 메르시의 집안을 깨끗하게 치워주고 아침 식사할 시간도 없어서 매번 끼니를 거르는 메르시를 챙겨주고 하면서 제법 괜찮은 동거가 시작됐지. 그러는 사이에 하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됐어. 애초에 집에서 지원을 못 받을 테니까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한 덕에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었지.

메르시는 하나의 사정을 알고서는 아르바이트랑 학업을 병행하는 고학생에게 방세를 받을 수 없다며 하나가 내민 돈봉투를 돌려주었어. 하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 메르시 덕에 의식주 중 2개를 손쉽게 해결하게 됐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야.

처음엔 메르시를 이용해먹으려고 빌붙은 하나였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메르시란 사람 자체가 제법 괜찮게 보이는 거야. 저보다 나이가 꽤 많긴 하지만 상당한 동안이라 20대 후반처럼 보이는데다, 대형병원 외과과장에 집도 있고 차도 있고, 거기에 까칠한 척 하지만 속정 깊은 성격까지 마음에 들었지.

메르시는 메르시대로 하나가 제 침실에 들어오는 바람에 양심이 찔리는 것만 빼면 만족스러운 동거라 생각하게 됐어. 처음에는 진짜 난감 그 자체였는데, 대학생이 되어 생활하는 하나가 제법 착실하게 공부며 아르바이트며 해나가는 것을 보자 대견하기도 하고 한참이나 어린 애가 저를 챙겨주겠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요리하는 게 고맙기도 했고 말이야.

그렇게 서로가 서로한테 조금씩 물들어가기 시작했고, 하나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려갔어. 그런데 애초에 대학을 헤어진 전 애인이랑 같이 다니려고 원서냈다고 했잖아. 같은 과는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오가다가 전 애인을 종종 마주치는 거야.

자기를 버리듯 차버린 미운 인연이지만, 3년간 애타게 사랑했던 첫사랑이자 첫연인이었던지라 미련이 좀 남아서 스쳐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복잡했어. 그러던 7월의 어느 날, 하나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카페로 전 애인이 찾아온 거야. 그리고서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에게 사과하며 말했어.

부모님이 둘이 동거하는 것을 알고서 헤어지라고 압박했기에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손을 놓아야 했었다며 다시 사귀자며 매달리는 거야. 반년 후의 취업이 내정된 지금은 부모님에게서 독립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전처럼 그렇게 하나를 떠나보낼 일은 없을 거라면서. 사정을 알게 된 하나는 코웃음쳤어.

겨우 반 년만에 해결될 상황이었으면 제게 충분한 설명을 해줘도 됐을 것을, 별다른 설명도 없이 이만 헤어지자는 말로 그 추운 겨울에 내쫓았으면서 재결합을 바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하면서 말이야. 차갑게 뒤돌아섰지만 속은 복잡했지. 저도 가족에게서 버림받아봤으니 전 애인이 처했던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가면서 제 앞에선 단 한번도 눈물 보인 적 없던 사람이 뚝뚝 눈물을 떨구며 우니까 마음이 많이 안 좋았지.

그런데 그 날 이후로 매일같이 전여친이 하나가 일하는 카페에 찾아오는 거야. 커피 한 잔과 조각케익을 시켜놓고서 하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거. 사귀던 때의 추억 등을 말하면서.

손님이라서 아예 상대를 안 할 수도 없고, 오랫동안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았던 사람인지라 매몰차게 대할 수가 없는 거야. 그래도 처음엔 딱 손님으로만 대했는데 자주 얼굴을 보다보니 한두마디씩 받아주는 게 여름방학이 끝날 때 즈음엔 어느 정도 편하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지.

하나는 전여친의 얼굴을 보면서 양심이 찔렸어. 저를 받아준 메르시하고 정식으로 사귀는 건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관계를 맺고서 매일 밤 같이 잠들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나날을 보내고 있고, 그러다보니까 메르시의 마음이 저한테 점점 기우는 게 보이는 와중에 전여친과 매일 만나고 있으니.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뭐 어때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에 메르시에게 더 잘해주려 노력했지. 아무것도 모르는 메르시는 하나가 이제 자기한테 정말 마음을 열었구나 싶은 마음에 기분이 좋았어. 빨리 퇴근하는 날에는 같이 장도 보고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면 같이 보러도 가고 가끔은 드라이브도 하고 하면서 매일이 즐거운 나날의 연속이었지.

전남편이랑은 다르게 섬세한 감정변화도 잘 알아채고 배려해주는데다 같은 여자라서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처음에는 진짜 세상 뒤집히는 줄 알았는데 지내다보니까 한참이나 어린 여자애랑 사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은 거야.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행복한 기분도 들 정도였어. 하나랑 살기 시작하면서 생활도 안정되었고, 처음에는 양심도 찔리고 어색하고 부끄러웠지만 같이 잠드는 것도 마음에 들었지. 남편의 바람을 겪으며 다시는 누군가를 마음에 들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하나가 제 삶에 스며든 거야.

하나는 그런 메르시의 변화를 빠르게 알아챘어. 그래서 죄책감이 더 깊어졌지. 전여친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애틋했던 지난 날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이쯤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응어리가 풀린 마음은 점점 전여친과의 모든 첫경험을 떠올리고 되새기게 했어.

그러던 어느 날, 메르시가 부산에서 열린 학회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비우게 됐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시간, 카페엔 그날따라 손님도 없고 전여친과 하나뿐이었지. 다른 때와는 다르게 말없이 비내리는 창밖 풍경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전여친이 이야기 좀 할 수 있냐고 조용히 물어왔어.

하나는 전여친이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가서 앉았어. 전여친이 물었지. 혹시 지금 달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말이야.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건 메르시의 얼굴이었어.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하나에게 그럴 줄 알았다며, 자기가 너무 늦은 것 같다며 눈물이 어렸지.

하나는 전여친이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가서 앉았어. 전여친이 물었지. 혹시 지금 달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말이야.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건 메르시의 얼굴이었어.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하나에게 그럴 줄 알았다며, 자기가 너무 늦은 것 같다는 전여친의 눈에 눈물이 어렸지.

그 모습을 보는 하나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어. 그래도 첫사랑인데 자기가 너무 정없이 구는 걸까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토록 사랑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가슴도 아팠지. 전여친이 마지막으로 키스해도 되냐고 묻는데, 마침 비도 내리고 해서 감상적인 기분이 된 하나가 그러라며 천천히 고갤 끄덕였어.

반년만의 키스는 눈물맛이 났어. 전여친이 너무 슬프게 우니까 하나도 따라서 코끝이 찡해진 거야. 키스를 참 애달프게도 하니까 저도 모르게 그런 전여친을 안아주게 됐지. 언니 괜찮은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 만날 거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닦아주려 고개를 드는데 창밖에 보이는 익숙한 차량. 메르시였어.

학회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자 집에 가서 자야겠단 생각에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온 거였지. 가는 길에 하나가 일하는 카페에 들러서 하나도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들른 거였는데 웬걸, 어떤 여자와 부둥켜 안고서 키스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마음 한구석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어.

하나가 마침 제 차량을 발견하고서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엑셀을 밟았지. 집으로 향하는 내내 헛웃음이 새어나왔어. 남자나 여자나 나이가 적건 많건 믿을 놈 하나 없단 생각에 속도 쓰렸지. 반년간 동거하는 새에 하나가 좋아지기라도 한 거냐며 자조했어.

사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하게 됐긴 했지. 메르시도 사람인데 매일밤 같이 잠드는 데다 저한테 다정하게 대해주는 예쁜 애한테 어떻게 마음이 안 갈 수가 있겠어. 그래서 더욱 충격이 컸지. 전남편의 모습이 겹쳐보이기도 했어. 젊은 여자랑 바람피웠다는 부분이 똑같았으니까 더 충격이었고.

생각해보니까 하나에 대해 무엇하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집에 들였던 제가 너무 바보처럼 느껴지는 거야. 화도 나고 두 번이나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속이 엉망으로 헝클어지는데 도어락 비밀번호를 다급히 누르는 소리와 함께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어.

그리고 첫마디가 오해예요, 언니 이러는데 어쩜 전남편이랑 패턴이 똑같은 거야. 가슴이 싸늘해져서 외면하는데 하나가 쩔쩔매면서 빠른 말투로 사정을 설명했어. 전에 사귀던 사람이다, 감정정리 하면서 마지막으로 키스해달라고 울먹이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며 잘못했다고 비는 거지.

메르시는 믿지 않았어. 그리고는 당장 내일이라도 집 알아보고 나가라는 소리를 하고 침실로 들어갔지. 하나가 들어올까봐 문도 잠가버리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아까 본 장면이 떠오르는 거야. 젊고 예쁜 여자랑 키스하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자꾸만 생각났어. 비참한 기분이 들었지.

저와 자면서 전여친이라던 사람과도 계속 만났을 생각을 하니 너무 괘씸한 거야. 이건 뭐 호구도 아니고… 하나와 같이 지내며 행복한 기분까지 맛보고 들떴었는데 한순간에 추락하니 가슴도 쓰라리고 배신감도 들었어. 그러는 사이에도 하나는 침실 밖에서 계속 메르시를 부르면서 용서를 구했지.

제가 생각이 짧았다고, 언니가 원하면 내일 짐 싸서 나가겠는데 정말로 바람 피우거나 한 거 아니라며 메르시에 대한 제 마음도 구구절절하게 읊는데 더 화가 나는 거야. 저를 좋아했으면 더 처신을 똑바로 했어야지, 옛인연을 질질 끌고 있었으니 더 미운 거. 결국 한숨도 못자고 날이 밝았어.

하나가 차려놓은 아침을 먹지도 않고 출근해서 일에 골몰했지. 일 외의 것들은 생각하기도 싫었어. 밤 늦게 퇴근해서 돌아오는데 하나가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애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데 한순간 마음이 찌르르 아픈 거지. 저 얼굴에 참 약하다고 생각하며 외면했어.

하나는 하나대로 속이 탔지. 메르시가 원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집을 나간다고 말을 해놨긴 한데, 집을 나가면 메르시와의 접점이 한 개도 없게 되니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거야. 그래서 메르시한테 무조건 잘못했다며 매달리면서 용서를 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

메르시가 저를 못본 체해도 계속 말을 걸면서 마음을 표현하는데 메르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계속 하나를 무시했어. 아침도 거르고 다시 옛날처럼 일에만 몰두하는데 병원에 새로운 정형외과의가 스카웃되어 온 거야.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전남편.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더 머리가 아파졌지.

답답하고 짜증나는 상황에 병원 옥상에 올라가서 담배만 줄창 피워대는데 전남편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선 잘 지냈냐며, 자기는 메르시와 헤어지고 나서 매일이 후회의 연속이었다고 하는 거야. 정말 한순간 제가 미쳤던 것 같다며 다시 시작할 수 없겠냐고 매달리는데 화가 났어.

이놈이든 저놈이든 죄다 메르시한테 상처를 줘놓고서 사과하고 매달리는 걸로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게 아니꼬왔지. 무시하고서 더 일에 전념하는데, 갑자기 생활패턴이 바뀐데다 병원과 집 양쪽에서 자꾸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일주일이 흐른 날에 그만 과로로 쓰러진 거야.

정신을 차리니 병실엔 하나가 와 있었어. 얘가 어떻게 여길, 하고 생각하는데 하나가 말했지. 메르시가 식사를 거르고 계속 말라가니까 너무 미안하고 신경쓰여서 도시락이라도 전해주려 했는데 마침 쓰러졌단 이야길 듣고 병실을 찾은 거라고. 그리고선 울먹이면서 저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냔 거야.

사실이 그랬기 때문에 침묵하니 하나가 메르시 손을 꼭 붙잡고는 언니가 저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쓰러질 정도면 제가 나갈게요, 하면서 그래도 자기랑 만나줄수는 없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어. 자기가 한참 부족한 거 아는데 그래도 언니가 정말로 좋다고, 바람피웠다는 오해를 제발 풀어달라 했지.

하나도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일주일 새에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어. 그 모습을 보니까 또 마음이 약해지는 거야. 집을 나간다는 말을 하면서까지도 오해라고, 정말 딱 그날 하루만 그랬었다며 후회한다 매달리며 제게 애정을 갈구하고 애원하는 애가 딱해보이기도 했지.

이제는 정말로 다 정리했고 저한테는 메르시밖에 없다면서 우는데 그 모습을 보니 저도 마음이 안 좋고, 그리고 이게 남편이 바람핀 경우랑은 좀 다른 거란 생각이 들었어. 하나와는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던 데다가 감정정리를 위해 그랬다고 하니까 미우면서도 조금은 이해가 갔지.

게다가 상대는 첫사랑이었다고 하고, 하나가 아무리 의젓한 척을 해도 아직은 스무살짜리 애니까 그럴 수도 있단 생각도 들었고 말이야.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 때문인지 자꾸만 마음이 풀려가는 것을 탓하며 한숨을 내쉬곤 알았다고 대답했더니 눈꼬리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환히 웃는 거야.

그걸 보고서 오해를 푼 거지 하나를 받아준 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자길 받아주냐고 되물어. 그간 하나가 저한테 다정하게 굴었던 걸 생각하면 사귀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가도, 저보다 한참이나 젊고 예쁜 애랑 사귀었다가 나중에 헤어지기라도 하면 저만 불행해진다 싶은 거야.

아직 정식으로 사귀기도 전인데 다른 여자랑 키스했다고 이렇게 충격받고 마음 아파할 정도면 사귄 후에는 정말 뒷감당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차라리 밀어내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문이 노크되더니 전남편이 들어왔어. 수술방에 들어가 있어서 소식을 늦게 들었다며,

괜찮냐고 걱정하는데 하나의 눈초리가 대번에 바뀌면서 경계심을 가득 드러내는 거야. 저를 정말 좋아하긴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지. 그리고 자기를 염려해서 찾아온 사람을 매몰차게 대하는 것도 아니다 싶어 대충 대꾸해서 돌려보냈는데

하나가 저 사람 혹시 전남편 아니냐고 묻는 거야. 그리고서는 혹시 재결합하자고 들이대는 거 아니냐고 했지. 메르시는 얘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싶으면서도 하나한테는 관련없는 이야기라 생각되어서 네가 신경쓸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아무래도 하나를 받아줄 수는 없다고 말을 하는데

하나가 다시 눈물이 글썽글썽해서는 메르시 손을 꽉 붙들고는 전남편한테 가지 마요, 언니 나 좋아하잖아! 하면서 애처럼 떼를 쓰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텐 이제 언니밖에 없어요, 앞으로 정말 잘 할게요. 나 믿어줘요, 응? 하고 애걸하고.






여기까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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