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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유키란 망상글

ㅇㅇ(222.111) 2018.11.27 02:16:27
조회 677 추천 24 댓글 5
														

“미타케씨. 나와 잠시 입을 맞춰 주겠어?”

“어, 네??”


이른 아침, 갑작스럽게 1학년 A반에 찾아온 미나토씨가 내게만 내밀히 할 이야기가 있다며 점심시간에 옥상으로 나를 불러냈다. 저번에 했던 투맨 라이브에서의 보완점에 대해서인가하고 생각했었지만, 정작 만나보니 내용은 이것…….


너무 두서없는 그녀의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볍게 털며 넘어갔다. 매사 진지하고 음악에만 빠져 사는 그 미나토씨가 이상한 소리를 내뱉을 리가 없지.

난 작게 헛기침해 목을 가다듬고 질문을 던졌다.


“입을 맞춰 달라니. 미나토씨, 누군가에게……아니, 리사씨에게 거짓말이라도 하려는 건가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펜스 바로 앞에 서 있던 미나토씨가 내게 한걸음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입맞춤을 말하는 거잖아. 미타케씨와 나의.”

“네???”


경악한 날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폭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한다니 곤란한 아이네. 여러 걸즈 밴드 보컬들 중 미타케씨만은 똑 부러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


대답을 주저하는 날 바라보며, 미나토씨는 곧바로 언제나처럼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치켜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할게. 나와 입을 맞춰주겠어?”

“제정신인가.”

“응? 미타케씨, 뭐라 그랬어?”


너무 말도 안되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생각이 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난 헛기침을 하며 얼버무렸다.


“...그냥 혼잣말이었습니다.”

“아까부터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거야. 춥다 해서 눈앞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프로 실격이야.”

“추운게 문제가 아니라……, 음.”


여기까지 말하던 난 살짝 눈을 돌려 미나토씨의 눈치를 살폈다. 자세히 보니 춘추복 차림의 얇은 팔은 사시나무 떨듯 애처롭게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 추운데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다니, 역시 로젤리아……. 인걸까?


“날씨가 좀 쌀쌀해졌는데, 지금이라도 다른 장소로 옮기지 않으시겠어요?”

“여기가 좋다고 생각해.”


바람이 그녀와 내 몸을 핥고 지나갔지만, 미나토씨는 고개를 치켜들며 당당한 자세를 유지했다.


“이곳이 미타케씨의 마음의 장소잖아. 미타케씨에게도 중요한 내용이니 이곳에서 하고 싶었어.”

“미나토씨…….”


미나토씨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지.

그렇게 생각한 난 헛기침을 한 후 그녀의 대답을 받……을리가 없지. 갑자기 키스라니, 진짜 제정신인가 이사람? 감기라도 걸린거 아닐까.


“계속 질문만 해서 죄송합니다만,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게 된 계기가 뭐죠? 벌게임인가요?”

“벌게임? 그게 뭐야?”


벌게임도 아닌데 맨 정신으로 저런 소리를…….

잠깐 어지러워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누르는 날 잠시 흘겨본 미나토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번 연습 때 사요가 한 말이 신경쓰여서 말야.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입맞춤을 함으로써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인스피레-숀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고 말했어. 그러고 보니 사요의 상대는 누구인걸까.”

“인스피레이션 이겠지요. 그리고 것보다 왜 저한테…….”

“입맞춤을 할거면 대등한 위치의 사람과 하는 거랬어.”


히카와 사요 이년……!


“아까부터 혼잣말이 많네, 미타케씨.”

“아, 죄송합니다.”


또다시 입 밖으로 튀어나간 모양이다. 오늘 정말로 혼잣말이 많은 날이네…….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으면 전혀 하지 않았겠지만 말야.

깊게 심호흡을 해 숨을 가다듬은 난,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서 있는 미나토씨에게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리사씨랑 하면 되잖아요.”

“그, 그건...”


추위에도 꿋꿋이 평소 같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미나토씨가 리사씨의 이름을 듣자마자 쭈뼛거리며 움츠러들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귀는 마치 석양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리, 리사와는 아직! 리사와 하기엔 아직 너무 일러!”


미나토씨는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은 같은 보컬인 너와 하는게 순서에 맞을 거라 생각해.”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어라? 왜 안되는 거라 생각하는 걸까.”

“당연하잖아요!”


나도 모르게 미나토씨에게 큰소리를 냈지만, 약간 상기된 뺨을 제외하면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온 그녀에게 내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왜 뜬금없이 저와 미나토씨 둘이서 키스하지 않으면 안되는 건데요. 아무런 이득도 없다구요.”

“키, 키스라니.”

“뭘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는 건데요!”


다시 한 번 얼굴을 붉게 물들인 미나토씨였지만,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갈무리했다.


“아무튼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는 걸까? 모든 일에 도망치기만 하면 성장할 수 없어.”

“좋은 말이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좀!”

“…… 미타케씨. 아니, 란씨…… 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 제발 진정하세요. 그리고 그런 영화에나 나올법한 대사 하지 마시고.”

“…….”


이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미나토씨. 그녀의 옅은 호박색 눈동자에 비친 나는 살짝 겁에 질리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다급히 그녀의 손길에서 피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어느새 내 등 뒤엔 차가운 철망 뿐. 미나토씨는 팔을 쭉 뻗어 그 안에 날 가두고는, 노래를 부를 때보다 더한 박력을 뿌리며 내 눈을 진지하게 응시하기 시작했다.

아름답다, 라고 감탄한 것도 잠시,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난 다시 한 번 혼비백산했다.


“아무튼 첫 번째, 갈거야.”

“아니! 제발 좀 정신 차리라고요!!”


날뛰려는 내 어깨를 붙잡은 미나토씨는 진지한 표정 그대로 점차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붉게 달아오른 앵두 같은 입술이 내게 맞닿는 걸 피하고자 고개를 돌렸지만, 차갑고 부드러운 손이 내 뺨을 붙잡았다.


“윽...”


이윽고 뜨거운 입김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얗게 몸을 빛내다 사라진 그녀의 숨결에선 약하게 레몬 향이 났다.

미나토씨 치약은 레몬향을 쓰시나보네. 그러고 보니 음료수로는 쓴 건 싫어하고 달콤한 꿀 차를 좋아하신댔나? 항상 올곧고 엄격해 보이기만 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점은 어린애 같아서 귀엽네.

…….

아니아니아니! 나 지금 무슨 생각하는거야!!


뒤늦게 나마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몸을 밀어내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내 어깨를 아플 정도로 쥔 그녀의 얼굴이 점차 다가왔고,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무렵 미나토씨가 눈을 감았다.

내 뺨에 살짝 맞닿은 그녀의 피부는 가을 하늘처럼 맑고 부드러웠다.

자신이 빗나갔다는 걸 깨달은 미나토씨는 이번엔 제대로 조준하고 내게 다가왔고, 난 두려움에 눈을 꼭 감았다.


모카, 츠구미, 토모에, 히마리 모두, 아니 아무나 제발 도와줘!

3cm, 2cm, 1cm, 그리고…….


“유, 유키나?”


계단 쪽에서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비닐봉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미나토씨도 황급히 내 몸에서 떨어졌고, 다리에서 힘이 풀린 난 철망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산소가 들어오지 않아 멍한 머리를 어떻게든 수습하려 노력했지만,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에 심호흡으로 산소를 공급한 뒤에야 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윙윙 울리는 이명을 무시하며 간신히 고개를 든 내 시야 한구석에 미나토씨가 출구 쪽으로 달려가는게 비춰졌다.


“란이랑 잠깐 만나고 온다고 한 후 그 이후로 연락이 안돼서 찾으러 왔는데... 미안, 방해였지.”

“달라, 리사. 이건...”

“나, 난 유키나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환영이니까……. 으……. 아, 미안…… 눈에 뭐가 들어갔나봐.”

“리사, 기다려!”

“먼저 갈게.”


미나토씨는 내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리사씨를 따라 달려갔다. 여러 차례 심호흡을 반복하자 그제서야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철망을 붙잡으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깊은 한숨과 함께 완전히 일어선 내 귀에, 여러 명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Afterglow의 모두들. 출구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밀고 있던 네 명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약간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란쨩. 늦어서 미안해……. 끼어들기 힘든 분위기여서.”

"엿보려던 건 아니었어! A반 애한테 란이 점심시간에 선배한테 불려갔다고만 들어서 엄청 놀랐다고 해야할까……."
"마, 맞아! 위험해 보이면 바로 구해주려고 했었다고? 하하, 하하하..."

“휴~휴~ 엄~청 뜨거운 사이던데요~.”

“자, 잠깐 모카!”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마음껏 내질렀다.


“바보! 멍청이!! 느림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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