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가 조금 안 된 시간, 새벽의 고요함을 깨우는 벨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한번 끊겼다 다시 걸려오는 전화에 머리 끝까지 덮은 이불 속에서 잠시 뒤척이던 인기척이 머뭇거리더니 곧 손 하나를 쑥 뻗어 베드테이블 위의 핸드폰을 찾아 헤멘다.

“-치글러 형사입니다. ⋯아파트요? 네, 곧 가겠습니다.”

이불 안에서 잠긴 목소리로 몇마디 웅얼거린 앙겔라는 끊어진 전화를 붙들고 후, 하는 낮은 한숨을 뱉고는 또다시 고단할 하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커피숍도 열지 않은 이른 아침임에도 앙겔라가 도착한 사건 현장에는 꽤 많은 경찰들이 모여있었다. 피곤함이 남아있는 굳은 얼굴로 현장을 지키고 있는 순경에게 허리춤에 찬 뱃지를 보여주며 앙겔라는 눈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폴리스 라인너머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과학 수사대를 피해 앙겔라는 곧장 시체가 있는 침실을 향해 걸어갔다. 동선을 따라 죽 이어진 거친 핏자국들이 어쩐지 눈에 익었다.

“안녕하세요, 아마리 박사님.”

자신보다 먼저 도착한 검시관 아나 아마리에게 앙겔라가 인사를 건넸다. 집중해서 시체를 살피던 아나가 들려오는 앙겔라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른 아침부터 앙겔라 자네도 고생이 많구만.”
“제 일인 걸요. 그나저나⋯ 사인은요?”

앙겔라는 침대 위 지나치게 깨끗해보이는 시체와 그와 대조적으로 끔찍하게 흩뿌려진 현장의 핏자국들을 흘끗 보며 물었다. 아까부터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뭐였더라, 최근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가?

“지금으로선 확실치 않아. 눈에 보이는 흔적이 거의 없네. 누군진 몰라도 꽤나 신중히 일을 벌인 것 같아. 부검을 해봐야 알 수 있겠어.”
“그렇군요. 그럼 여기 현장의 핏자국은-”
“안녕하세요. 아나 박사님, 치글러 형사.”
“안녕하십니까, 박사님, 형사님들.”

아나의 말에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앙겔라가 무어라 말을 할 때쯤 형사 두어 명이 폴리스 라인 안으로 들어오며 인사를 건넸다. 아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채 다시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앙겔라도 말없이 살짝 목례로 답했다.

“이야... 아침부터 꽤나 화려하게 일을 저질렀네요.”
“이거 완전 싸이코 아니에요? 현장은 피범벅을 해놓고 시체는 닦아서 이불까지 고이 덮어둔 거 보면.”

현장을 둘러본 형사 한 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꺼냈다. 옆에 있던 형사도 선명한 붉은 자국이 상당히 충격인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형사의 말에 앙겔라의 머리 속으로 문득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앙겔라의 눈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역시 이 장면, 눈에 익지 않나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치글러 형사님.”
“그래, 이게 무슨 연쇄살인이라도 된다는 말이야?”

청장님이 연쇄살인이라는 얘기만 나와도 치를 떨잖아, 하며 목소리를 낮춰 반문하는 형사에게 앙겔라가 다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자는 듯한 시체, 동물의 피로 엉망이 된 사건 현장, 그리고⋯⋯.”

앙겔라는 말을 끝맺지 않은 채, 시체에 다가가 천천히 손을 들어 시체의 입 안을 열어보였다. 형사들은 그저 가만히 앙겔라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움직일 뿐이었다.

“그리고, 입 안에 들어있는 이 종이.”

앙겔라의 말이 마치 예언처럼 증명되자 주변 형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모습이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치글러 형사가 알아-”
“동물의 피란 건 뭘 보고 확신을 하는 겁니까?”

거의 앙겔라를 범인으로 보며 취조하다싶이 질문해대는 동료 형사들의 반응에 앙겔라는 순간 당황스러워하다가 이내 살풋 한숨을 쉬고는 어이없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니, 다들 책 안 봐요?”